
水墨정원 9
-번짐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마리 날아온다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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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장석남의 이런 시풍을 좋아합니다
번진다.. 이 말을 꽤 오랫동안 입안에서 굴려봤어요
어감이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의미심장하죠?
내 열정이 번져 아이들을 바꾸기도 하고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번져 다른 사람을 아프게도 하고
슬픔이 번져 죽음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도 하고
사랑이 번져 세상을 아름답게도 합니다
내가 뻗은 팔과 다리와 온 몸에 난 촉수들은
어디를 향해 번지고 있는 중인지.
혹여 남을 싫어하는 마음과 미움, 질투, 시기들이
사랑을 제쳐두고 저만 앞서 번지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차분하게 앉아 먹물 곱게 갈고
화선지 가득 먹빛이 우아하게 번지는 걸 보고 싶습니다.
어둠이 그렇게 번지고 있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