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소파를 위한 연가
-이미란-

머지않아 나는 너를 버릴 것이다
너는 이제 너무 낡았고 너의 숨결 또한 너무 낡았다
네가 처음 내게로 왔을 때
나는 흐뭇했고 기쁘게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제법 육중했고 품위가 있었고
너 나름의 틀을 갖추고 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우리는 서로를 길들여 갔다
네 위에서 차를 마셨고 네 위에서 책을 보았고
네 위에서 낮잠을 잤고 네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세월은 계속 흘렀고 서서히 우리도 지쳐 갔다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내 안의 요구를 감당하기엔
너는 이제 너무 낡았다 더 이상의 안락함이 없다
머지않아 나는 너를 버릴 테지
또 다른 처음인 안락함에 허전했던 등을 묻고
목청을 가다듬어 흐르는 세월의 노래를 부르겠지
그렇게 너와 함께 했던 즐거움의 시절을 잊고
조금씩 나의 꿈도 낡아 가겠지
뒤틀린 용수철의 생으로 지상의 문 밖으로 밀려날 테지
내가 너를 그랬듯 나 또한 미련 없이 잊혀질 테지

***
이 시인은 몇 년전 사석에서 만나 안면을 트게 되어
가끔 볼 때마다 웃음만을 주고받는 언니뻘되는 시인입니다.
시집이 나왔을 때 첫 장에 적혀 있던 이 시가
어제, 오늘 새삼 생각이 나서 다시 훑어보았습니다.
시 안에 감춰진 무언가가 있거나 가슴을 꿰뚫는 큰 감동은 없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귀절이 있네요.

'세월은 계속 흘렀고 서서히 우리도 지쳐 갔다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내 안의 요구를 감당하기엔
너는 이제 너무 낡았다 더 이상의 안락함이 없다
머지않아 나는 너를 버릴 테지'

내가 버리고 떠나는 것
내가 버려지는 것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분상의 묘한 차이는 있겠지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