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오독
- 임영조
장마 걷힌 칠월 땡볕에
지렁이가 슬슬 세상을 잰다
시멘트 길을 온몸으로 긴 자국
행서도 아니고 예서도 아닌
초서체로 갈겨쓴 일대기 같다
한평생 초야에 숨어 굴린 화두를
최후로 남긴 한 행 절명시 같다
그 판독이 어려운 일필휘지를
촉새 몇 마리 따라가며 읽는다
혀 짧은 부리로 쿡쿡 쪼아 맛본다
제멋대로 재잘대는 화려한 오독
각설이 지렁이의 몸보다 길다
오죽 답답하고 지루했으면
隱者가 몸소 나와 배밀이 하랴
쉬파리떼 성가신 무더위에
벌겋게 달아오른 肉頭文字로.
***
내가 살면서 하는 잘못 중 가장 큰 것
오독이다.
사람의 말을 잘못 읽고
사람의 글을 잘못 읽고
풀의 말을 잘못 읽고
하늘의 말을 잘못 읽고
땅의 말을 잘못 읽고
동물의 말을 잘못 읽고
그리하여,
사람 사이에 오해를 낳고
좋은 글을 터무니없이 깎아내리거나
반대로 허접쓰레기를 좋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고
풀에게 너무 많은 물을 주거나 너무 안 주거나 해서 죽이게 되고
비가 올 것 같다 우산을 준비한 날은 하루종일 우산을 끌고 다니고
멀쩡하다 읽고는 비를 맞는 일이 생기고
밟으면 안 되는 곳을 밟고 서서 동티가 나거나
쉬게 해달라는 땅속에 뭔가를 박아두거나
개가 귀찮다고 저리 가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물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무지하게 오독이 난무하는 내 삶이 여지껏 유지되는 건
나 못지않게 오독을 해대는 이들이 많아
서로 위안받고 살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