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딸만 넷.

지금은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 옛 기억을 굳이 들춰내지 않아도

사진으로 버젓이 남아 있는 증거물에 의하면 내 머리카락은 늘 짧았다.

심지어 어떤 때는 사내아이의 그것처럼 바짝 잘라 여자아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거라곤

입고 있는 치마 덕분일 경우가 더 많았다.

그에 반해 우리 언니는 항상 머리카락이 길어 양갈래로 땋거나 긴 머리 위로 멋진 모자를 쓰고 있기 일쑤였고,

내 밑에 바짝 줄을 선 동생도 나와 같은 처지여서 짧은 머리카락,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는 막내동생은 언니와 똑같은 스타일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여자아이 네 명의 머리를 아침마다 빗겨서 학교에 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테지만 어쨌든

중간에 끼인 우리 둘은 항상 머리카락이 짧았고 그 때문에 나는 변변하게 핀 한 번 꼽아본 적이 없이

이 나이를 먹게 되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날 지배한다.

조금이라도 머리를 기를라치면 이 머리카락들을 어떻게 정리해줘야 될 지 몰라서 허둥대다가

그만 내 성질을 못 이겨 미용실로 달려가 이제 막 어깨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머리카락들을

죄다 싹둑싹둑 잘라버리니 여간해서는 긴 머리카락을 갖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봄바람에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휘날리며 걷고자 했던 바람은 결국 오늘 또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런 사태의 원인제공자인 엄마한테 한 번 따져봐?

나도 어릴 때 머리카락을 좀 길러줬으면 좋잖아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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