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 사이에는

-신경림

철물점 지나 농방 그 건너가 바로 이발소,

엿도가에 잇대어 푸줏간 그 옆이 호떡집, 이어

여보세요 부르면 딱부리 아줌마 눈 부릅뜨고

어서 옵쇼 내다볼 것 같은 신발가게.

처음 걷는 길인데도 고향처럼 낯이 익어.

말이 다르고 웃음이 다른 고장인데도,

서로들 사는 것이 비슷비슷해 보이고.

 

그러다 내 고장에 와서 나는 남이 된다,

큰길도 골목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너무 익숙해 들여다보면 장바닥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로 가득하고,

술집은 표정 모를 얼굴들로 소란스럽다.

말이 같고 몸짓이 같아 외려 낯이 서니

서로들 사는 것이 이렇게도 다른 걸까.

 

나와 세상 사이에는 강물이 있나보다.

먼 세상과 나를 하나로 잇는 강물이, 그리고

가까운 세상과 나를 둘로 가르는 강물이.

***

며칠 전 상갓집에 다녀왔다.

들어가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상주에게 맞절을 하는 것까지야 갖춰진 형식이니 따라하면 그만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 마음을 다독일 방법을 몰라 괜히 어정거리다가 어쩔 줄 모르고

혼자 지레 얼굴 붉히고 서서 마음까지 우울해지는 그곳 찾기는 정말 꺼려지는 일이다.

이번에는 그런 감정에 더하여 거북스럽고 불안한 마음까지 드는 게 나 스스로도 이상했는데

따져보니 내 주위에 나이가 제법 지긋한 어르신들이 계신 탓이었다.

조만간 내게 그런 일을 치뤄야 한다는 압박감이 무섭게 다가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낙타>를 꺼내 쭈욱 훑어보고 있노라니

얹혀서 안 내려가는 체증처럼 쌓였던 두려움들이 한 줌씩 사그라들더니

지금은 흔적만 가늘게 남겨둔 상태로 변해버렸다.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이신 선생님의 달관한 듯한 시가 나를 다독인다..

에너지의 변환일 뿐이지만 윤회는 계속되는 것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