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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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일요일
한쪽 나사가 자꾸만 풀려 삐걱이는 안락의자에 앉아
(여기 앉아 있으면 안락사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두 무릎을 한껏 끌어들여
다리를 바닥에 주지 않은 자세로
그렇게 힘겹게 쭈그리고 앉아 리모컨과 놀았다
2번에서부터 36번까지
우리 집 채널은 그게 끝이다.
내 시선은 자꾸만 26번 영화 채널에 머문다.
거의 다 본 것들을 재탕하는 OCN
'달마야 놀자‘ 이것도 벌서 몇 번째 보는 영화인지.
지루해서 여기저기 돌리다가 다시 맘 잡고 봤는데
노스님을 따라다니면서 왜 자기들을 받아줬느냐고
따지듯 묻는 장면부터였다.
“넌 왜 밑 빠진 독을 강물에 던졌냐?”
“그야 그냥 던졌습니다”
“나도 그냥 밑 빠진 네놈 들을 내 맘에 던졌다”
늘 껄렁껄렁하고 성격파탄자 같은 김인문 아저씨가
맘에 드는 찰라다.
절의 풍경이 참 좋다.
어딘지는 모르겠다.
대웅전 앞도 널찍하고 깔끔한 게 마음에 든다.
선암사도 못 가보고, 개심사도 못 가봤다.
지금은 대부분의 절들이 수리를 해서 화장실도
깨끗하게 수세식으로 바뀌었다.
좋긴 하지만 가끔
밑이 까마득해서 보이지도 않는 그런 해우소에 앉아
볼 일은 안 보고 다리 아플 때까지 생각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여기서처럼 실컷 우는 것도 좋은 생각이리라
눈물이 너무 흔해서 그저 생각만으로도 줄줄 흐르는 나는
요즘 어떤 생각에 골몰해 눈물이 더 흔해졌다.
남들 눈치 보느라 잘 울지도 못 하는데
선암사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실컷 울다 왔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