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전철을 타는 일은 고역이다.

특히 인천행 지하철을 탈 때는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밀릴 각오도 하고,

지금 같은 계절엔 더울 것도 예상을 해서 머플러도 풀고 겉옷도 적당히 얇아야

그나마 집까지 오는 길이 무사할 수 있다.

운전을 할 때 나만 열심히 교통법규 지킨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게 아니라 방어운전이라는 걸 해야 하듯,

이렇게 기본적인 사양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불쾌한 귀가길을 만드는 요인은 한두 가지씩 복병처럼 튀어나온다.

유난히 진한 향수를 쓴 여자 옆에 서는 것도 무척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화를 부추기는 것은

옆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이다.

이어폰이라는 좋은 발명품도 있거늘 자신의 핸드폰이 좋다는 걸 그렇게도 자랑하고 싶은지

볼륨을 있는 대로 키워서 드라마 속 인물들이 괴성을 내지르거나 까르륵 거리고 웃는다거나,

효과음까지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판이니 책을 읽다가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조용히 생각을 하면서 가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안 난다.

한두 번은 '저러다 말겠지' 했다가도 계속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읽던 곳을 두번이나 반복적으로 쫓고 있는

내 시선을 의식하자 울화통이 치밀어올라 쳐다보니, 깍두기 머리에 빨간 점퍼를 입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다.

뭐라 한 마디 할 성격도 못 되는 소심함을 탓하며 그저 힐끔거리며 시위할 수밖에.

다른 사람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쳐다봤다가 얼른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일본에서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음악소리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 (메이와쿠)이라 하여

매년 시민단체들이 발표하는 '지하철 이용 꼴불견' 순위에 들어갈 정도라는데

이건 작은 음악소리 정도가 아니라 전철 한 칸에 있는 사람들이 몽땅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혼자 낄낄거리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 뉴스를 보니 그놈의 진단고사 성적 때문에 중학생들도 아침 저녁으로 자율학습을 받느라

더 고생하게 생긴 이야기가 들리던데, 그런 거 말고 제발 예의라는 것도 좀 가르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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