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집

-이윤학


제비가 떠난 다음날 시누대 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 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상처를 생각하겠지
전깃줄에 떼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하늘 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

‘버리데기’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의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 버려진 아이.
논도 갈아주고, 온 산의 나무도 다 해주고,
흰 빨래는 희게 검은 빨래는 검게 해주고
패랭이 쓴 총각에게 아들 세 명까지 낳아준 후에야
시약산의 약물을 받아 가져올 수 있었던 여인네. 버리데기
아이들과 함께 인형극으로 꾸며봤다
무대를 꾸미고 젓가락 끝에 인형을 붙이고 나면
어김없이 ‘흥부와 놀부’가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한 장의 천을 둘러쓰고 앉았던 힘없는 흥부와
날씬한 꼬리 치켜들고 맵시있게 걷던 제비가 떠오르는 거다.
처음 해본 연극이라 그랬을까?

제비..
얼마 안 있으면 날아오고
저마다 집을 지으려고 부산을 떨겠지.
우리 집에도 제비집이 있었다.
마당이 너른 그 집에는 해마다 제비가 찾아오곤 했는데
눈이 어둔 나로서는 그 제비가 작년에 왔던 제비인지
알 길은 없으나
우리집 속 제비집은 여전히 그대로 방을 비워둔 채였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햇볕을 피해야 할
빨래들을 널어두는 공간에

하필이면 그 기둥 밑을 노리고 제비는 집을 지었다.
하얀 빨래에 똥 싸는 걸 질색했던 엄마는
커다란 빗자루를 들어 집을 헐어버리셨는데
명당자리라고 여겼는지 제비들은 여간해선 포기를 몰랐다.
결국,
아빠가 널따란 판자를 구해와 넉넉하게 밑을 대준 다음에야
엄마도 같이 사는 걸 허락하셨다.

얼룩덜룩한 제비알도 훔쳐보고
정말이지 흥부네 집에서처럼 추락한 제비도 올려줘보고
삐이이쪽쪽. 이렇게 명랑한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기도 했는데.

지금은 제비집 구경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잊은지 너무 오래 되었다.

이번 봄에 제비가 오거든 반갑다고 인사나 해야겠다.
얼른 와라, 제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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