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깃들여

-정현종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

 

"언니, 오늘 쉰다며? 나랑 같이 경원이 옷 사러 가자."

다섯 살이 되는 조카 경원이는 유난히 치마에 대한 애착이 크다.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간 엄마와 나를 보더니

"이모, 경원이 치마 사러 갈 거예요?" 이런다

"그래. 치마 사러 가자. 예쁜 잠옷이랑"

송내역에 내려 투나에 갔더니 너무 예쁜 옷들이 많다

아장아장 걸을 무렵 아이들에게 잘 어울릴 듯한 니트들.

 

치마는 결국 못 사고 바지와 가디건,

도톰한 니트 몇벌을 사갖고 돌아서는데

집을 나서면서 들었던 얘기가 영 마음에 걸렸다.

니 아버지가 네가 사준 청바지만 그냥 입더니

결국 무릎에 구멍이 나서야 버렸잖냐

내가 시장에서 사준 청바지는 보기 싫다고 입지도 않더니

그거 버리고 나선 입을 게 없어서 그랬는지 그 옷도 입으시더라.

 

다시 올라가 청바지를 골랐다.

"사이즈 36있어요?"

예쁜 디자인의 바지는 그렇게 큰 사이즈가 없단다.

우리 아빠는 배가 좀 나와서 36입어야 하는데

결국 몇 군데를 돌다가 뱅뱅에 가서야 하나 찾았다.

세일을 해서 이만 원(조카 녀석 옷은 십만 원이 넘었는데)에

한 벌을 사서 갖다 드렸다.

 

"청바지 있는데 뭘 또 사왔냐?"

그러시면서도 한 번 입어보세요 하니까 얼른 입으신다.

청바지 입으신 폼이 참 근하하다.

우리 아버지는 올해 일흔 두살이 되신다.

너무나 깔끔하고 풍채가 좋으셔서

무슨 옷을 입어도 참 잘 어울리신다.

길이를 너무 짧게 자르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하고서

어제 먹기로 했던 잡곡밥과 나물을 배부르게 먹고 왔다.

 

이만 원짜리 청바지에 흐뭇해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시집간 딸에게 오곡밥과 나물을 챙겨주시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깃들여 사는 곳은 우리 아버지라는 나무

우리 엄마라는 나무가 아닐까 생각했다

끊임없이 퍼주는 나의 나무. 결국 밑둥만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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