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황지우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魚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년에 두 켤레씩
나는 벌써 80켤레의 신발을 갈아신은 폭이다.
내가 신은 신발에 대한 기억들은
껍질 벗겨내는 칼이 만들어낸 얇은 당근 껍질과도 같은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신발 갈아신기는 몇 번이나 될까?

어릴 때에야 어른들이 신겨주는 대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얌전하게 신었지만
내 마음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부터
나는 신발을 내 멋대로 신으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내게 맞지 않는 신발들로 인해
발에 상처가 나고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고
다리때문에 머리까지 아파오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신발 갈아신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도 내가 신은 신발은 나를 기우뚱거리게 만든다
뒷축이든 앞축이든 닳아버린 이 신발을
어느 순간에 벗어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내가 정말로 끝까지 신고 갈 신발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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