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나는 아이들에게 한 번 읽어본 건 세월이 조금 흐른다음

꼭 다시 읽어보라고 자주 말한다.

아직 시의 맛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시를 읽으라는 건 고문이고

좋게 읽은 동화책을 그리 읽으라 한다.

 

난 옛날에 읽을 책이 없어서 같은 책을 몇 번씩 읽곤 했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가끔 그런 일을 한다.

그러기에 제일 좋은 건 역시 시집이다.

주머니에 집어 넣고 다닐 수도 있는데다가

내 책꽂이에서  손이 제일 잘 닿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내가 가끔 우울해질 때나 너무 힘들다고 여겨질 때

보는 몇 권의 시집 중 한 권이다.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묵묵히 강둑에 앉아

잘못들이 덕지덕지 묻은 내 손을 강물에 넣고

흐르는 강물 속에 떠내려가는 그것들을

아무 생각없이 보는 내가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조금 가벼워지는 것이다.

오늘 무게를 줄여야 할 일이 있어서 ^^

이렇게 내 잘못들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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