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이 있는 뒤란

-문태준

 

처음 이곳에 대나무숲을 가꾼 이 누구였을까

푸른 대나무들이 도열한 창기병 같다

장독대 뒤편 대나무 가득한 뒤란

떠나고 이르는 바람의 숨결을

공적(空寂)과 파란(波瀾)을 동시에 읽어낼 줄 안 이

누구였을까

한채 집이 할머니 귓속처럼 오래 단련되어도

이 집 뒤란으로는 바람도 우체부처럼 오는 것이니

아, 그 먼곳서 오는 반가운 이의 소식을 기다려

누군가 공중에 이처럼 푸른 여울을 올려놓은 것이다

***

 

글쎄..

특별이 이 시가 당기는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라도 들어있으면

나는 금세 끌리고 마는지라.

오늘은 대나무숲에 꽂혔다..과녁을 정확히 맞춘 10점 만점이다.

그리고 이 구절.

'바람도 우체부처럼 온다..'

그렇지.

어릴 적 우리집 우편함은 늘 내게로 오는 우편물로

가득했다.

파란 우체함을 덜컹 열었을 때 낯익은 필체가 눈에 뜨이면

나는 참으로 행복했었다.

지금은 이메일로 대신하기 때문에

이슬에 약간 젖어 글씨가 번지거나

더 두툼해진 그 촉감도 느낄 수 없고

언제 편지가 오려나 자꾸만 덜컹대며 우편함을 열어보는

조바심도 없어져버렸다.

그래서일까..빨간 우편함을 자전거 뒤에 매달고 가는

우체부 아저씨를 보아도 설렘이 없어졌다

슬픈 일이다.

 

오늘은 바람이 오는 길을 유심히 지켜봐야겠다

내 어릴 적, 늘 웃는 인상이시던 둥근 얼굴의 그 우체부아저씨를

다시 볼 수 있을 지도 모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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