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 신경림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들리지 않아 아름답고 보이지 않아 아름답다.

소란스러운 장바닥에서도 아름답고

한적한 산골 번잡한 도시에서도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데서 힘을 더하고,

들리지 않는 데서 꿈을 보태면서, 그러나

드러나는 순간.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다움을 잃는다.

처음 드러나 흉터는 더 흉해 보이고

비로소 보여 얼룩은 더 추해 보인다.

힘도 잃고 꿈도 잃는다.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데서 힘을 더하고

들리지 않는 데서 꿈을 보태면서,

숨어 있을 때만,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

그닥 잘 하는 놀이는 아니지만

가끔 포켓볼을 치러 당구장에 가게 되면,

음침한 가운데 보라색, 재색, 파란색, 빨간색, 녹색을 두른

당구대 위에 전등 세 개가 흔들리면서 색을 더욱 묘하게 만들어

평소보다 훨씬 근사한 빛깔로 내 시선을 붙잡는데,

기분 좋게 보라색이나 빨간색을 골라서 가보면

멀리서 봤을 때 느꼈던 그 빛깔을 절대 만날 수 없다.

멋으로 당구대 위에 담배를 올려놨다가

재가 떨어지면서 생긴 시커먼 구멍들과

당구알들이 굴러다니면서 이리저리 쓸어

본디 색깔이 나오려는 빛바랜 천들이

좋았던 기분을 급속도로 떨어지게 만든다.

숨어 있을 때 아름다운 색이었던 것을 내가 잊은 탓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부분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요즘 너무 드러내면서 살았다.

특히 아무 것도 채워진 게 없으면서 드러내는 것은

빈 소리 요란한 깡통이다.

경박하다.

얼룩이 드러나지 않도록,

흉터가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어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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