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준다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보기에도 아까워서 책을 펼쳐 가운데를 꾸욱 누르는 짓도,

감히 책장을 접어 읽었던 곳까지 표시를 하는 짓도,

더구나 연필로 밑줄을 쫘악 긋는 일 따위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 거의 신봉에 가까운 책사랑 때문이었는데

그런 것들도 머리카락 새에 흰 색이 끼어들면서 조금씩 누그러져

친한 사람들에게는 더러 내 책을 대여해주기도 하는 걸 보면서

나 스스로는 굉장히 관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착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 착각이 깨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는데 오늘 아침에만 해도 그렇다.

이 작은 방은 오로지 나의 서재인 양 아들 녀석이 들어와 잠깐씩 컴퓨터를 할 때나

남편이 메일을 확인해야 한다고 간청을 해야만 마지못해 컴퓨터 암호를 풀어주고 있는데

매일 바꾸는 암호를 어제는 깜빡 잊고 그저께 암호를 유지했더니만 사단은 벌어졌다.

자판에 비닐을 덮은 채 사용하고 있는 게 다행이지..

그 비닐 위에 김치 국물이 무려 네 군데나 떨어져있는가 아닌가!

밤늦게 라면 먹기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은데 왜 하필 여기서 그러냔 말이지..쩝.

정말 화가 난다. 관대함이고 뭐고 다시 암호를 알려주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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