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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도서관은 내가 학교에서 제일 사랑하던 장소였다.
점심시간이면 후다닥 밥을 먹어치우고 중학교 건물까지 달려가느라 시간이 늘 빠듯하긴 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겨주는 사서 언니와 송 수녀님의 웃는 얼굴이 있기에 다정했던 공간.
특히 비오는 날이면 더 환장하게 좋아했는데 책에서 뿜어나오던 엷은 곰팡내가
안정감 있게 코를 감싸고 도는 게 비싼 향수보다 내겐 더 좋았기 때문이다.
햇빛이 서가 사이사이를 뚫고 지날 때마다 같이 춤추곤 하던 먼지와 더불어 맡아지던 이 곰팡내는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했는데, 그때 만나서 제일 좋아했던 작가가 바로 이청준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섭렵했고, 그러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건방지게도
거의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작품 경향에 싫증이 났노라고 떠들어대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와 멀어지게 되었는데, 얼마전 교수님이 이 작품이 너무나 좋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신 바람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구입을 해놓고 다시 읽기를 미룬 게 벌써 몇 달.
책상을 어지럽히는 읽다 만 책들 가운데 이걸 다시 챙겨들고 읽으면서 난 또다시 감탄해야만 했다.
역시..이청준! 이란 말이 내 입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표제작인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보다는 '지하실'이나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가
더 마음에 들었지만 어느 작품 하나 들어내어 버리기 아까운 글들이다.
선생님이 오래오래 거강하셔서 더 좋은 작품을 써서 우리 곁에 남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