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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피부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유혜경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일랜드와 영국이 전쟁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들볶던 무렵
고아인 '나'는 온순하고 고분고분한 영국의 프롤레타리아로
개조하는 임무를 띤 블랙손학교에 가게 되고 거기서
해상병참기술자가 된다.
그후 후견인인 톰을 만나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되지만
갑자기 톰이 죽어버리고 난후 공화국 군대에 들어가고
평등한 다른 세상의 전주곡이 될 거라 믿었던 아일랜드의 해방이
눈앞에 보이지만 지도자들은 영국의 압제를 뒤따르기 시작한다.
이 압제에 맞서 또다른 시민전쟁이 일어나자
이런 폭력의 악순환이 난무하는 세상에 남아 있지 않기로 결심하고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섬으로 기상관 자리를 자청하고 나선다.
전임 기상관은 찾아도 보이지 않고 등대를 요새처럼 만들어놓은
적대적인 등대지기 바티스가 있을 뿐인 황량한 섬.
그 알 수 없는 섬뜩함은 밤이 되자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선장이 호의를 베풀어 주고 간 총과 탄약이 없었다면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었을 긴 밤.
일 년이나 그렇게 밤마다 힘든 시간을 보낸 후
거짓말처럼 바티스는 사라지고 환상을 보듯 후임 기상관이 찾아와
'나'와 똑같은 절차를 밟는다.
되풀이되는 나와 후임 기상관의 행동들은 작가의 말대로
"사람은 복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노예!"
인간의 욕망이란 건 마치 소리 없는 방귀처럼 시끄럽지는 않아도
자꾸만 나를 일깨워 알아차리게 만들고 그걸 따르게 하는 걸까?
인간의 불행을 영속시키는 폭력의 안순환이 난무하는 세상에
남아 있지 않기 위해 기꺼이 섬으로 갔지만
결국 '나'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폭력으로 던져졌다.
후임자가 타고 온 배에 승선하면 다시 인간세상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거기서 찾은 사랑을 놓을 수 없었던 나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랑이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사랑을 해본 사람들만이 믿는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던 내가 그 섬에서 사랑이라는 희망을찾았기에
다시는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게다.
꿩은 두려워지면 숲에 머리를 박고 숨는다고 한다.
자기만 그 두려움을 안 보면 된다는 아주 귀여운 발상인 셈인데
그걸 비웃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현실에 마주하기 보다는
뒤로 숨어 그것이 나를 비켜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생존의 위협이 삶을 열정적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움직이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절박감으로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는
불안감이 열정적인 것으로 비춰지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