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당수에 몸을 던진 청이는 용왕님의 배려로 다시 인간세에 나와 왕비가 되고, 맹인잔치를 열었다가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의 눈도 뜨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이 이야기다. 지금 세상에 남녀상열지사가 심히 어지러우매 그것 또한 보살인 너의 죄이니라. 너는 가서 여자로 현신하여 세간을 깨우치라.. 청이가 과음보살의 현신이라고 믿었던 청이 어머니의 꿈. 정말 그렇게 태어난 걸까? 청이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인당수에 빠지긴 하였으되, 의식을 치르듯 물에 몇 번 담갔다가 꺼내고 인형에 청이의 옷을 입혀 빠뜨린다. 그리고 살았나싶었으나 중국으로 팔려가 렌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고 첸 대인에게 기를 전해줄 시첩이 된다. 첸대인이 죽은 후 그의 막내 아들 구앙을 따라 나왔다가 기녀가 되고, 정인인 동유를 만나 잠깐 사랑을 나누지만, 타이완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가 미야코 섬의 영주 가즈토시의 아내가 되어 왕후의 지휘에 오르게 되어 편안하게 살만한가 싶더니 변화하는 정세에 휘말려 가즈토시가 죽으면서 그녀는 다시 류쿠에 정착해서 술장사를 하면서 링링이 남겨 놓은 딸을 키운다. 나이가 들고, 요정에서 함께 지냈던 기리가 조선으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 함께 조선으로 건너와 여관을 하며 말년에는 '연화암'을 짓고 조용하게 살다 죽음을 맞는다. 그녀의 마지막 말대로 "참 길은 멀기도 하다.." 작가의 말대로 하자면, 매춘과 남녀상열지사야말로 시정 잡배들 삶의 자상한 기록이라고. 역동하는 세상에서 굵직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심청의 고난한 길을 통해서 그 당시 동아시아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단지 마음이 착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왕비가 되는 옛 이야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살아 온 심청이에게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진짜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진해서였을까? 이 책 역시 전철에서 읽은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남녀상열지사의 자세한 표현 때문에 괜히 책을 반듯하게 펴지 못하고 반쯤 접은 어정쩡한 자세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고단한 삶을 끝냈으니 이제 좀 쉬라고 다독이며 책장을 덮었다. 관음보살이 현신한 청이는 여자가 되어 세간을 깨우친 걸까? '새옹지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한 여인의 다부진 몸짓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길은 있는 거라고 눈 똑바로 뜨며 날 보는 눈길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