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4 - 1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제목 : 토지 제1부 4권

◎ 지은이 : 박경리

◎ 펴낸곳 : 나남

◎ 2007년 7월 20일 14쇄, 401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마을에서는 서로가 서를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와 같은 독(毒)을 마을에다 뿌리고 다닌 것이 삼수다. '너거들 멩줄은 내가 쥐고 있이니께 아라서들 하라고. 나는 이자 최 참판네 종놈은 아니다. 다른 일이믄 몰라도 동네 일이라 카믄 내 입 하나에 달리 있이니께.' (24쪽)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더니 삼수가 딱 그짝이다. 결국 봉기 딸 두리에게 몹쓸 짓까지 한 천하의 나쁜 잡놈! 그러나 끝에서는 권선징악을 볼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 참판댁을 차지한 조준구와 홍씨야 밉상이지만 그들의 아들, 곱추로 태어나 부모에게까지 외면을 당하는 병수, 서희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주제를 아는 그는 부모의 욕심을 부끄럽게 여기며 한사코 서희와의 혼인을 거부하는 가엾은 인물이다. 병을 앓던 수동은 죽고 서울에 화려하게 꾸민 집까지 마련해놓은 조준구는 더욱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친다. 봉순은 길상을 좋아하지만 길상은 그저 어린 누이를 대하듯 하여 속을 태운다.

-이같은 전쟁 얘기로 들떠 있다고 해서 마을에 어떤 별다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난리가 난다는 바람에 보리떡 서 말을 먹는 사람도 없었고 천체의 운행(運行)을 따르는 해와 달과 같이 여느 때의 봄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날이 새면 농부들은 일찍부터 밭에 거름을 내고 아낙들은 봄 길쌈에 여념이 없고 소년들은 쇠죽을 쑤고 조무래기들은 염소와 송아지를 몰고 둑으로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보다 하늘의 기색과 끝없이 드러누운 들판 빛깔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44쪽)

-"모조리, 다아 잡아가라지. 하지만 나는 안 될걸. 우리집은 망하지 않아. 여긴 최씨, 최 참판댁이야! 홍가 것도 조가 것도 아냐! 아니란 말이야! 만이 일이라도 그리 된다면 봉순아? 땅이든 집이든 다 물 속에 처넣어버릴 테야. 알겠니?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찢어죽이고 말려죽일 테야. 내가 받은 수모를 하난들 잊을 줄 아느냐?" (148쪽)

-아랫것이면 아랫것답게 내 명령을 좇으면 될 일이지 주제넘게 누굴 보호하며 누굴 감싸겠다는 것이냐, 수동이가 죽었기로, 머슴 한 놈이 죽었기로 내 자리가 흔들린단 말이냐, 나라가 망하여 왜놈이 땅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야 누구든 백성이면 하는 것, 왜놈이 득세한다고 조가(趙家)가 최 참판댁을 삼킨다는 그따위 이야기는 또 뭣인고? 임금님이 산송장이 되셨다고 나도 산송장이 될 거다 그 말이냐? 그래서 나를 가엾게 여긴다 그 말이냐? 이 나를? 아랫것인 주제에 나를 가엾게 여겨? 서희의 기분은 그러했다.(209쪽)

"애기씨! 나라가 망했다 합디다! 대신놈들 다섯이 들어서

나라를 팔아묵었다 합디다! 이렇게 되믄 우리는 우떻게 살겄십니까? 이럴 수가 있겄십니까? 모두 땅을 치고 통곡을 한다 캅디다. 충신들은 칼로 목을 찌르고 죽었다 카고요."

울며 봉순이 말했을 때

"죽으면 무얼 해? 죽는다고 나라가 안 망하나? 충신이라는 말이나 듣자고 하는 수작이지. 그럴 바에야 왜 망하기 전에 손을 못 썼으까까. 병신들 같으니라구. 초상난 것도 아니니 울지

말아라." 태연하고 냉정했다.

212쪽

버릇 없고, 안하무인이라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답답한 서희의 마음이 전해져 찌르르하다. 윤씨 부인이나 어머니, 아버지인 최치수, 혹은 봉순네만 살아 있어도 그늘이 되어주고 병풍이 되어줄 수 있었을 것을.

-마을의 살림이 전보다 점점 더 어려워 허덕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은 물론 조준구의 과도한 수고(收穀)강요에 있었고 희망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무기력해진 심리상태에도 있었다. 마을사람의 기색을 살피며 제법 온정을 베풀고 너그러이 행세했던 왕시 그 무렵은 조준구의 기반이 다져지기 이전이요 농사꾼이란 우마(牛馬)와 다를 것이 별로 없고 일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음이 분명하다는 따위의 말을 서슴지 않는 요즈음은 그의 지반이 그만큼 탄탄해진 것을 의미한다. (323쪽)

-을사보호조약으로 나라의주권은 일본제국으로 넘어갔고 새로운 실권자를 추종하는 새로운 세력군이 형성되는 혼돈 속에 권력과 동반하게 마련인 경제의 유동, 그 중에서도 후일 대다수의 농민들이 피땀에 전 땅을 버리고 남부여대 기약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게 한 악명 높은 착취기관 동양척식회사 설립의 소지는 다져지고 있었다. (324쪽)

나라는 여전히 어수선하고 마을도 어수선하다. 조준구의 횡포로 살기가 어려워진 평사리 사람들은 '그러나 지금 양반 상민, 있는 놈 없는 놈, 백성하고 관가, 그런 쌈이 아닌 기라요. 다만 그자를 치자는 거는 딱 두 가지 까닭이 있실 뿐인데, 그 하나는 그자가 시적 왜나막신이라도 끌고 나올 만큼 왜놈들 편에 빌붙어서 자개 영화만 생각는 역적이니께 이 차에 목을 쳐서 뽄뵈기로 삼자는 거요, 다른 하나는 누구 재물이든간에 고방에 썩고 있는 거를 우리 의병이 써야겄다 그겁니다. (339쪽)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밖에 없고 찢어발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349쪽)

이렇게 들고 일어나지만 마루장 밑에 숨어 있던 조준구를 삼수가 모른 척 구해주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간다. 한몫을 떼어받고자 했던 삼수는 목숨이 달아나고 일에 가담했던 무리들은 일단 몸을 피한 뒤 간도로 떠나기로 한다. 서희와 김훈장까지 합세한 무리는 두 패로 나뉘어 일단 부산에서 모이기로 했으나 봉순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진즉 마음을 표현해주지 못한 길상의 안타까운 마음만 .. 간도에 가서 어찌 사누.

번화하고 낯선 밤거리에 바람이 불었다.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겠다고 나선 길상의 눈에 불빛이 아물거린다.

'봉순아!'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낯선 거리에는 찝찔한 바닷바람이 분다.

4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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