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핑 뉴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9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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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시핑뉴스 The Shipping News

◎ 지은이 : 애니 프루

◎ 옮긴이 : 민승남

◎ 펴낸곳 : 문학동네

◎ 2019년 6월 10일 초판발행, 507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작년 우리 책모임 송년회에서는 2022년에 읽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각자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저자라는 소리에 호기심이 일었는데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해서 완전 궁금해졌다. 하지만 부글거리는 궁금증과는 별개로 연말연초에 알콜 속을 헤엄치느라 바빠서 겨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이 책은 1994년에 처음 『항해뉴스』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왔고, 2007년에 『시핑뉴스』, 세 번째로 문학동네에서 『시핑뉴스』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모두 다른 출판사였지만 역자는 세 번 다 동일인물이란다. 번역이 상당히 매끄럽고 깔끔하다 여겼는데 세 번째로 손을 보아서 그런 모양이다.

코일(Quoyle : 밧줄 한 사리coil) 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 이름이 그래서인가. 시작부터 참 꼬인 인생이다.

'겨울멜론 같은 머리통에 목은 아예 없고 불그스레한 머리카락은 주름장식 같았다. 게다가 이목구비는 오종종하게 몰려 있었다. 비닐 빛깔의 눈동자. 얼굴 밑에서 마치 괴상한 선반이 툭 튀어나온 것처럼 흉측한 턱.'(13쪽)

어떤 문학작품속에서도 보지 못할 주인공의 외모다. 아, 노틀담의 꼽추는 빼고. 그런데 외모만이 아니다. 작가는 작심을 한듯 그를 완전히 바닥으로 끌어내려버린다. '아버지는 개헤엄을 배우는 데 실패한 막내아들의 모습에서 마치 악성 세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듯 다른 실패들이 증식하는 것을 보았다. 말을 똑똑히 하는 것도 실패, 바른 자세로 앉는 것도 실패,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실패, 태도도 실패, 야망도 능력도 실패, 사실상 모든 것이 실패.'(12쪽)

이러니 세상이 그에게 녹록치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자동판매기용 사탕 배달원, 편의점 야간 근무 점원, 삼류 신문기자를 전전하다가 어찌어찌 겨우 여자를 만났으나 그녀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느라 바쁘더니 애 둘을 남긴 채 자동차 사고로 죽고만다. 실직자 신세가 된 코일은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고모를 따라 조상들이 살던 곳 뉴펀들랜드로 이사하기로 결정한다.

친구 소개로 그 지방 신문사인 개미 버드에 기자로 취직한 그는 아직도 아내를 잊지 못하고 슬픔에서 허우적거리지만, '해운소식 shipping mews'란을 맡으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게 된다. 천천히 그곳 생활에 적응하는 코일과 두 아이, 그리고 그들 삶으로 스며들어오다시피한 웨이비와 그녀의 아들 해리.

코일은 버릇처럼 일상에 기사 제목을 붙인다. '숙취에 시달리는 남자, 배 만드는 작업의 변수들에 대해 들어.' '흰 개를 두려워하는 소녀, 가족을 혼란에 빠뜨려' 그러다가 편집장이 된 후부터 슬그머니 사라져버리는데, 주위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던 그가 비로소 편안해지고 정착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돌출된 제목이 아니라 내용 그 자체가 삶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곳에서 그는 인생을 보다 깊고 분명하게 보도록 해주는 편광렌즈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모킹버그에서 너무나 우둔했던 그는 자기에게 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였다. 그러니 사랑이 그의 심장과 폐를 관통하여 내출혈을 일으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353쪽)

그 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코일가의 놀런 아저씨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건지 그런 척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코일이 사는 집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며 해로운 매듭을 만들어 주술을 건다. 그 탓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정말 큰 바람이 불어 집이 바위 위에 있던 집이 날아가버린다. 조악한 배를 샀다가 바다에 빠져죽을 뻔도 하고 집도 날아가버린 것은 태생부터 그를 옥죄었던 조상들의 사악함을 청산하는 의미로 보고 싶다.

-그렇다면 사랑은 돌아가면서 하나씩 꺼내 먹는 종합 사탕 봉지 속의 다양한 사탕 같은 것이고 우리는 사탕을 맛보듯 사랑도 이것저것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혀에 톡 쏘는 맛을 남기는 것, 밤의 향기를 일깨우는 것, 속이 쓸개처럼 쓴 것, 꿀과 독을 섞은 것, 금방 삼키게 되는 것, 그리고 평범한 눈깔사탕과 박하사탕 틈에 희귀한 것들도 섞여 있다. 독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것들 한두 알과 평온과 부드러운 기쁨을 주는 것. 지금 그의 손은 그 평온과 부드러운 기쁨의 사탕을 집으려 하고 있는 것일까? (455쪽)

부드러운 기쁨을 주는 사탕을 쥐듯 웨이비와 결혼한 코일은 아마도 행복해질 것이다. '잭 버깃이 피클단지에서 벗어났다면, 목이 부러진 새가 날아갔다면, 또 어떤 일이 가능할까? 물이 빛보다 먼저 생겼을 수도, 뜨거운 염소 피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깨질 수도, 화산이 차가운 불을 뿜어낼 수도, 바다 한가운데에 숲이 나타날 수도, 게 위로 손만 가져가도 그 손 그림자에 게가 잡힐 수도, 매듭 속에 바람이 갇힐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도 가끔은 있으리라.' (488쪽)

-바람의 명단에도 들어 있지 않은 지독한 바람. 무시무시한 강풍 블루너더와 블라스트와 랜드래시의 친척. 한가운데가 불그레한 작은 구름으로 시작되는 불스아이 스콜의 사촌. 북유럽의 전설에 등장하는 빈드그니르와 뉴잉글랜드 해상에 사흘간 부는 노스이스터의 시어머니. 알래스카의 윌리워와 아일랜드의 도이니온의 아저씨. 러시아의 눈雪으로 유고슬라비아의 평원을 강타하는 코샤바, 슈테펜빈트,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스텝 지역에서 불어오는 부란, 크리베츠, 시베리아의 비우가와 푸르가, 북러시아의 먀텔의 이복자매. 프렐리 블리자드와 그냥 노스윈드라고도 불리는 캐나다의 북극풍, 그린란드의 얼음 평원을 달리는 피타라크의 친형제. 이렇듯 어마어마한 세력을 지닌 저 이름 없는 바람은 예리한 금속 날처럼 바위섬을 깎아냈다. (459쪽)

저 바람을 묘사한 부분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문장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무작정 아름답게 포장하지만은 않는다. '흰 거품을 물고 기어오르는 만의 파도가 마치 큰 상처 속에서 우굴거리는 구더기떼처럼 보였다.(291쪽)' '밤사이 따스하고 향기로운 대기의 갈라진 혀가 육지에서 바다로 핥아내려가 기어오르는 얼음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녹였다.'(363쪽) '상처에서 흐르는 누런 고름 색깔의 하늘'(420쪽)

등장인물의 기분에 따라 느껴지는 분위기를 그대로 알 수 있게 만든 문장들은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튀어오를 것만 같은 생생한 인물 묘사는 물론이고 배를 건조하는 부분이나, 고기잡이 어선에 관한 것들, 신문 기사의 자연스러움은 작가의 이력과 철저한 자료조사 덕분일 텐데, 그리 자연스레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싶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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