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제목 : 시핑뉴스 The Shipping News
◎ 지은이 : 애니 프루
◎ 옮긴이 : 민승남
◎ 펴낸곳 : 문학동네
◎ 2019년 6월 10일 초판발행, 507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작년 우리 책모임 송년회에서는 2022년에 읽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각자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저자라는 소리에 호기심이 일었는데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해서 완전 궁금해졌다. 하지만 부글거리는 궁금증과는 별개로 연말연초에 알콜 속을 헤엄치느라 바빠서 겨우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이 책은 1994년에 처음 『항해뉴스』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왔고, 2007년에 『시핑뉴스』, 세 번째로 문학동네에서 『시핑뉴스』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모두 다른 출판사였지만 역자는 세 번 다 동일인물이란다. 번역이 상당히 매끄럽고 깔끔하다 여겼는데 세 번째로 손을 보아서 그런 모양이다.
코일(Quoyle : 밧줄 한 사리coil) 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 이름이 그래서인가. 시작부터 참 꼬인 인생이다.
'겨울멜론 같은 머리통에 목은 아예 없고 불그스레한 머리카락은 주름장식 같았다. 게다가 이목구비는 오종종하게 몰려 있었다. 비닐 빛깔의 눈동자. 얼굴 밑에서 마치 괴상한 선반이 툭 튀어나온 것처럼 흉측한 턱.'(13쪽)
어떤 문학작품속에서도 보지 못할 주인공의 외모다. 아, 노틀담의 꼽추는 빼고. 그런데 외모만이 아니다. 작가는 작심을 한듯 그를 완전히 바닥으로 끌어내려버린다. '아버지는 개헤엄을 배우는 데 실패한 막내아들의 모습에서 마치 악성 세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듯 다른 실패들이 증식하는 것을 보았다. 말을 똑똑히 하는 것도 실패, 바른 자세로 앉는 것도 실패,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실패, 태도도 실패, 야망도 능력도 실패, 사실상 모든 것이 실패.'(12쪽)
이러니 세상이 그에게 녹록치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자동판매기용 사탕 배달원, 편의점 야간 근무 점원, 삼류 신문기자를 전전하다가 어찌어찌 겨우 여자를 만났으나 그녀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느라 바쁘더니 애 둘을 남긴 채 자동차 사고로 죽고만다. 실직자 신세가 된 코일은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고모를 따라 조상들이 살던 곳 뉴펀들랜드로 이사하기로 결정한다.
친구 소개로 그 지방 신문사인 개미 버드에 기자로 취직한 그는 아직도 아내를 잊지 못하고 슬픔에서 허우적거리지만, '해운소식 shipping mews'란을 맡으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게 된다. 천천히 그곳 생활에 적응하는 코일과 두 아이, 그리고 그들 삶으로 스며들어오다시피한 웨이비와 그녀의 아들 해리.
코일은 버릇처럼 일상에 기사 제목을 붙인다. '숙취에 시달리는 남자, 배 만드는 작업의 변수들에 대해 들어.' '흰 개를 두려워하는 소녀, 가족을 혼란에 빠뜨려' 그러다가 편집장이 된 후부터 슬그머니 사라져버리는데, 주위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던 그가 비로소 편안해지고 정착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돌출된 제목이 아니라 내용 그 자체가 삶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곳에서 그는 인생을 보다 깊고 분명하게 보도록 해주는 편광렌즈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모킹버그에서 너무나 우둔했던 그는 자기에게 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였다. 그러니 사랑이 그의 심장과 폐를 관통하여 내출혈을 일으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353쪽)
그 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코일가의 놀런 아저씨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건지 그런 척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코일이 사는 집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며 해로운 매듭을 만들어 주술을 건다. 그 탓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정말 큰 바람이 불어 집이 바위 위에 있던 집이 날아가버린다. 조악한 배를 샀다가 바다에 빠져죽을 뻔도 하고 집도 날아가버린 것은 태생부터 그를 옥죄었던 조상들의 사악함을 청산하는 의미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