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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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H마트에서 울다

◎ 지은이 : 미셀 자우너

◎ 옮긴이 : 정혜윤

◎ 펴낸곳 : 문학동네

◎ 2022년 7월 13일, 1판 9쇄, 407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책 소개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문학동네에서 나왔으니까 (문학동네에서 소설만 펴낸 것도 아닌데 이건 무슨 일반화인가) 또, 저 표지가 김숨의 소설집<국수>를 떠올리게 만든 탓에 자연스레 소설로 착각했다. 그래서 작가 소개를 보고 뮤지션이 글도 잘 쓰니 부럽구나로만 생각했다가 에세이인 걸 알고는 초반에 얼마나 뜨악했던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56세라는 젊은 나이의 엄마를 암으로 잃는다. 그 상실감은 한국 식료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H마트에서 울음으로 터지고, 엄마의 죽음 직후 아버지와 여행하며 치유하려 하지만 엄마와의 유대감 같은 것이 아버지와의 사이에는 없다. 결국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고 엄마와의 추억을 노래로 만들고, 엄마와 먹던 한식을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해보고, 엄마와 하려던 제주여행을 남편과 함께 하면서 나아진다.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라." 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말하자면 나도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10쪽)

-나는 지난 5년 사이 이모와 엄마를 모두 암으로 잃었다. 내가 H마트에 가는 것은 갑오징어나 세 단에 1달러짜리 파를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두 분에 대한 추억을 찾으려고 가는 것이기도 하다. 두 분이 돌아가셨어도, 내 정체성의 절반인 한국인이 죽어버린 건 아니라는 증거를 찾으려는 것이다. (22쪽)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203쪽)

-내가 된장찌개와 잣죽을 직접 만들었던 것은, 엄마를 돌보는 데 실패한 기분을 심리적으로 만회해보려는 노력이자 한때 내 안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고 느낀 문화가 이제 위협받는 기분이 들어 그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이었다는 것도.(341쪽)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360쪽)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373쪽)

이 책이 어떤 책이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나는 한 마디로

영화<미나리>의 모녀 버전이라 답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401쪽)

숨기는 것 없이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솔직함으로) 자신의 속을 다 뒤집어 보여준 것 같은 이 이야기는 그런 이유로 나를 많이도 울렸다. 엄마에게 해주고 싶었지만 끝내 해주지 못했던 잣죽을 끓이는 걸 보면서 내가 그녀가 된듯 죽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잣은 없고 냉동실에 팥은 있으니 팥죽이라도. 엄마가 밥에 둬 먹으라고 삶아 보내준 팥이라 물만 조금 더 붓고 우르르 끓여 도깨비방망이로 갈고 쌀 대신 찹쌀가루를 넣었다.



새알심도 없으니 보는 것도 심심하고 쌀을 넣었을 때처럼 살짝 묵직한 듯 혀를 감싸는 그 진중함이 없다. 김치도 안 꺼내놓고 먹다가 나중에야 김치 몇 조각을 얹어 먹었다. 그래, 심심한 팥죽에 김치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헌데, 이 나이 되도록 엄마한테 김치를 얻어먹고 있는 나는 언제쯤 김치를 직접 담글 것인지. (너도 상실을 겪은 뒤에야 할 거니?)

그녀에게는 물론 남편과 남편의 가족들이 있지만 아직 한국에 이모와 이모부, 이종사촌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엄마가 생각나면 한국으로 훌쩍 날아와 이모가 선사해주는 따뜻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 테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보통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고마움과 그리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주위 친구 부모님이 한두 분 돌아가시면 모인 자리에서 늘 다짐들을 했다. 계실 때 잘 하자. 그런데 그게 딱 그때뿐이다. 사는 게 바쁜 탓도 있지만 극도로 이기적인 때문이다. 제발,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말로 정당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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