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 바빌론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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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 지은이 : 허수경

◎ 펴낸곳 : 난다

◎ 2018년 11월 20일 초판1쇄, 251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열린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시인 허수경을 알고 있던 나는 그녀가 발굴지로 여행을 다녀왔구나, 싶었다. 산문을 별로 즐기지 않지만 시인의 시선이니 뭔가 다르려니 호기심이 일었고 그렇게 가을에 내게 온 책인데 여태 읽기를 망설인 건 마치 '이 안에 들어오기만 해봐. 흙으로 덮어줄 테니' 하며 노리고 있는 것만 같은 저 표지 때문이었다. 햇볕때문이다. 부족하면 사람이 우울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고고학을 모른다. 관심도 별로 없다. 박물관에 가서 구경하는 건 즐기지만 그 물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거기 그렇게 우아한 모습으로 놓여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므로 '발굴지에 있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진짜 고백같지 않은가. 서슬 퍼런 경찰 앞에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필사적으로 입증하려는 용의자처럼 그녀는 '그때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고 쓰고 있으니) 내가 모르는 그 경로들을 밝혀줄 것이라는 희망이 우울을 이겨냈다. (그래서 희망은 빛으로 표현하는 모양이다.)

그녀의 고백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삶의 터전이 무엇인가를 물으며 시작한 이야기는 그녀가 직접 발굴에 참여하고 연구했던 발굴지의 역사와 자신의 역사와 현재가 버무려져 둥글게 둥글게 굴러간다. 찰칵하고 슬라이드 한 장이 돌아가는 동안 그 슬라이드를 돌리는 내가 보이고, 또 그 안에 내 과거가 둥실 떠오르는 그림을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먼 옛날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구나, 그들의 역사와 신화가 그렇구나 방심하며 읽다가 코가 맵고 눈물이 삐죽거렸다. 낯선 곳에서 서로 엇갈려 지나기도 좁은 골목길을 가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 (그것도 인상마저 험상궂다든가 혹은 껄렁껄렁한 얼굴로 비릿한 웃음이라도 흘리는 사람일 경우는 더더욱) 저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다. 독일 유학시절 마른 빵을 삼키며 따뜻한 음식을 그리워했던 그녀가 전혜린을 떠올리게 했으므로 더욱.

-독일에서 살고 공부를 하게 되면서 모어로 통신을 하지 않았던 셀 수 없는 나날들을 나는 이미 살아온 뒤였다. 그러나 이 발굴 숙소에서 아팠던 나날들이 아마도 나를 얼마간 약하게 만들었는지 문득, 내 앞에서 응응거리는 모어가 아닌 말들 속에서 나는 기력을 잃고 있었다. (152쪽)

-ㅎ은 그리고 언젠가 ㅎ이 시인이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10년 동안 무슨 두부를 베 보자기에 가두어 놓고 물기를 짤 때처럼 끙끙거리며 손에 쥐고 있었다. (186쪽)

작가는 자신을 'ㅎ'이라든가 '시간이 있는 사람'이라고 제3자를 바라보듯 지칭한다. 그래서 더 슬프다. 정신만 둥둥 떠서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갖게 하니 말이다. 어쩌면 이런 느낌은 작가 소개를 먼저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에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기적을 바랐던 그녀가 10월에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걸 알고 시작한 글이라서.

-인간에게 삶의 터전은 무엇인가.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방이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마루와 마당과 그 마당에 조금씩 피어있는 빛 좋은 작은 꽃이며 그 모든 것을 어루안고 있는 담이다. 그리고 그 담을 잇대고 있는 이웃의 담이며 이웃의 꽃이며 마루며 이웃의 방이다. 담과 담 사이에 갓 지은 밥냄새가 삶의 터전, 그것이다. (16쪽)

-폐허 도시의 죽음의 시간은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간이다. 그러나 놀라워라, 인간의 시간과는 달리 폐허 도시의 시간은 죽음의 시간인 지층을 파내면 순간순간마다 유년과 청년과 장년과 노년이 한 지층 안에 어우러져 숨쉬고 있다. 각각의 지층이 머금고 있는 시간의 스펙트럼. 발굴은 도시의 죽음을 파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21쪽)

-기록자가 절대 화자인 고대인들의 글쓰기는 강력한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 기록자가 사실 전부를 지배하고 있는 이 태도에는 글쓰기, 라는 것이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고대적인 인식에서 비롯되며 그 주술의 힘을 타인하고 나누지 않으려는 '혼자서 말하는 자'를 수없이 태어나게 했다. (33쪽)

-사물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반복해 외우는 길을 통하여 아마도 그들은 세계와 자신과의 관계를 문자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정되지 않은 사물의 세계가 문자로 고정되면서 나, 라는 존재 역시 문자 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경험을 그들은 했는지도. (39쪽)

-아무리 찬란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발견되지 않은 과거는 고고학적인 사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고고학적인 조사를 통하여 얻어지는 과거는 그러므로 언제나 잠정적인 결론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고고학적인 결론이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이라는 단서가 붙여진 결론이다. (65쪽)

-컴퓨터 앞에 앉아 고향을 생각한다. 고향이 겪어내는 당대성을 같이 경험하지 못하는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주자 가운데 하나인 이 '시간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구체적인 당대성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 꽃빛일까, 그 꽃빛 아래 어찔해서 말을 잊고 한 생애의 오후를 정지시키는 그 마음일까. 그 마음의 주인은 누구일까, 어떤 대륙도 주인을 가지지 않았는데, 누구도 어떤 한 뼘 땅의 주인이 될 수 없는데…… 오,오, 이동의 역사여,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하라. (83쪽)

마지막으로 그녀는 신도 인간도 다 떠나버린 폐허를 이야기하며 무엇을 위해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한다. '타인을 찾아가는 마지막 여정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내 속에는, 많은 이가 그렇게 적은 것처럼, 많은 타인이 들어 있다. 그 타인들이 나의 얼굴을 만들고 있다. 나의 얼굴은 타인의 얼굴이다. 그 얼굴이 끔찍하지 않기를 바란다.' (108쪽) 내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나의 얼굴도 그렇기를 바란다. 너의 얼굴도 그렇기를 바라는가.

마지막 장을 덮고 허전해서 표지를 보며 멍하니 앉았다가 홀린듯 일어나 허수경의 시집을 찾아왔다. 쉽게 동화되지 않는 시들이었던 기억을 젖혀두고 다시 넘겨보다가 똑같은 곳에서 멈추었다. 그녀의 역사를 조금 알게 된 뒤에 읽어 더 와닿는 시다.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이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겠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속에는 눈물이 없다

다만 짤막한 안부 인사만, 이렇게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허수경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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