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석과. 그것을 잃지 않았기에 희우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과거에 남겨둔 채 딸 영서를 낳고, 돌아와 다시 한 번 성민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성민을 사랑했던 또 한 명의 여자 윤하는 석과를 잃은 쪽인데, 어릴 때 엄마 잃은 상실감을 성민을 사랑하는 것으로 채우려 했지만 성민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희우를 발견한 뒤 자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주문 너머 부처의 세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절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의 완벽한 폐허였다. 그 허허로운 벌판을 거닐면서 부처의 세계란 어쩌면 이런 폐허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 속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239쪽)
폐사지만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던 성민은 어쩌면 자신, 그리고 혹독하게 인생을 갈취당했던 그 시절 청춘들의 마음을 보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상처받은 마음들 안에서 새롭게 살아갈 희망을 발견하고 싶었던 건지도.
이 책은 70년대와 80년대 사회를 아주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찌 보면 너무 많이 들어서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 이야기, 이제는 지겹다며 손사래치고 싶은 그 시절 이야기지만 분명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다. 숨쉴 공기가 있다는 걸 자주 까먹는 것처럼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도 가끔씩 일깨워야 한다. 소중한 걸 또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