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보급판)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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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향모를 땋으며 BRAIDING SWEETGRASS (보급판)

◎ 지은이 : 로빈 월 키머러 ROBIN WALL KIMMERER

◎ 옮긴이 : 노승영

◎ 펴낸곳 : 에이도스

◎ 2021년 1월 11일 1판 1쇄, 570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2020년 <한겨레> <문화일보> '올해의 책', 제 61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최종후보작, <국민일보> '2020년 놓치기 아까운 책 20선', '2020년 YES24 '작가·출판인·기자·MD 50인의 올해의 책', 리터러리 허브 선정 '2010년대 최고의 에세이 TOP10', 2020년 알라딘 '올해의 책' 후보도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베스트셀러. 숨찰 정도로 타이틀이 많다.

2020년이라... 다이어리를 찾아보니 그 해에 나는 고작 서른다섯 권 읽었다. 지독하게 힘들고 피곤했던 해라는 기억. 그래서 몰라봤구나. 2020년에 겨우 내가 건진 책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옌렌커의 『연월일』 뿐이니.

화려한 날들이 간 다음 만났지만 내게 '2022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올라선 이 책은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이라는 부제가 모든 걸 말해준다. 꽤 두꺼워서 양쪽에서 꽉 잡아주는 독서대의 두 발이 아니었다면 보기도 힘들었을 분량 570쪽이건만, 소설도 아니건만 어찌나 재미있게 술술 읽히던지!

손을 내밀어보세요. 갓 뽑아 마치 방금 감은 머리카락처럼 하늘거리는 향모 한 다발을 올려드릴게요. 윗부분은 황금빛 감도는 반짝거리는 초록이고, 땅과 만나는 줄기는 자주색과 흰색 띠를 둘렀어요. 향모 다발을 코에 대보세요. 강물과 검은 흙의 내음에 얹힌 꿀 바른 바닐라 향을 맡아보세요. 그러면 향모의 학명이 왜 Heirochloe odorata(향기롭고 성스러운 풀)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저희 말로는 윙가슈크wingaashk라고 해요. 감미로운 향기가 나는 어머니 대지님의 머리카락이라는 뜻이에요.

머리말 중에서. 10쪽

-우리는 향모를 어머니 대지의 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자, 우리에게 베푼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녀의 아름다움과 안녕을 바라는 염원을 드러내는 것이다. (19쪽)

작가는 인간과 동식물에 존재 서열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범주를 나타낼 때 말고는 사람 이름처럼 동식물도 대문자로 표기한다. 한글에는 대문자가 없으므로 번역가는 뒤에 '님'을 붙이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읽는 동안 처음에는 '루이 비외 느릅나무님'이라든지 '위치헤이즐님' 혹은 '검은물푸레나무님'이라는 호칭에 당황했지만 점점 익숙해져, 이렇게 '님'이 붙은 호칭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은 경건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 걸 보면 작가의 생각이 옳다고 느껴진다. 인간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그 말이.

작가는 향모를 심고, 돌보고, 뽑고, 땋고, 태우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그 안에 자신들 (인디언 원주민들, 작가는 포타와토미족 출신이다.)이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고 그들 부족이 갈라지고 말과 문화를 잃어버리게 된 과정과 배경을, 그들의 문화를 답습하고 이어가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천천히, 가만가만히 말해준다. 더불어 발전이 가져온 파괴와 환경오염의 현장, 그것을 회복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을 이야기하고 방법을 제시한다.

-선물의 본질은 관계들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선물 경제의 바탕에 놓인 화폐는 호혜성이다. 서구적 사유에서는 사유지를 '권리'로 이해하지만 선물 경제에서는 재산에 '책임'이 결부된다. (52쪽)

-솔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바위에 떨어지는 물소리, 동고비가 나무줄기 두드리는 소리, 줄무늬다람쥐가 땅파는 소리, 너도밤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 귓가의 모기소리 - 내가 아닌 소리, 표현할 언어가 없는 소리, 우리가 결코 외롭지 않음을 알려주는 언어 없는 존재들의 소리를. 우리 엄마의 심장 박동 이후로 나의 첫 언어는 '이 소리들'이었다. (79쪽)

-우리는 매일 선물 세례를 받지만, 이 선물들은 우리에게 가지라고 준 것이 아니다. 선물의 생명은 움직임에, 공유된 숨의 들이쉼과 내쉼에 있다. 우리의 할 일은 선물을 전달하는 것이요, 우리가 우주에 내놓은 것이 언제나 돌아올 것임을 믿는 것이며 거기에 기쁨이 있다. (159쪽)

-감사는 충만의 윤리를 계발하지만, 경제는 공허를 필요로 한다. 감사 연설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우리에게 있음을 일깨운다. 감사는 만족을 찾기 위해 쇼핑하라고 등을 떠밀지 않는다. 감사는 상품이 아니라 선물로 다가오기에 경제 전체의 토대를 뒤엎는다. 감사는 땅에게도 사람에게도 좋은 치료약이다. (169쪽) 이를테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어머니 대지님에게 감사합니다. 당신 위를 걸을 때 우리의 발을 떠받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태초부터 그랬듯 지금도 우리를 보살펴주심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우리의 어머니에게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드립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땅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추천할 만한 한 가지가 무엇이냐고 종종 내게 묻는다. 그때마다 내 답은 한결같다."텃밭을 가꾸세요." 텃밭은 대지의 건강에도 좋고 사람의 건강에도 좋다. 텃밭의 힘은 출입구 안에 머물지 않는다. 땅 한 조각과 관계를 맺으면 그 자체가 씨앗이 된다. (189쪽)

-식물은 숨 쉬는 모든 존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식물은 보편 언어로 가르친다. 그 언어는 '식량'이다. (191쪽)

-일부 원주민 언어에서는 식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우리를 보살피는 이들'로 번역된다.식물은 적응adapt하고 사람은 적용adopt한다. (336쪽)

-언어가 죽으면 사라지는 것은 말만이 아니다. 언어는 다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 깃드는 장소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이다. (379쪽)

-식물은 땅의 문화와 소유권 변화를 반영한다. (383쪽)

-향모가 어머니 대지님에게서 자란 최초의 식물이며 그래서 우리는 향모가 어머니의 머리카락인 양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려고 향모를 땋는다는 사실을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들은 조각난 문화적 지형을 통과하여 내게 오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칼라일에서 도둑맞았다. (386쪽)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유 재산의 강박 때문에 외로운 구석으로 추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 세상에 하나뿐인 삶을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일시적인 위안은 되지만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는 물건을 더 많이 사들이는 데 쓰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추방까지도 달게 받아들였다. 그것이 윈디고의 방식이다. 우리가 속여 소유가 우리의 허기를 채워줄 거라 믿도록 하는 것. 우리가 정작 갈망하는 것은 속함인데. (450쪽)

-사람들은 집단적 피해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모르지 않는다. 채굴 경제의 대가를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는다. 그들은 낙담하고 침묵한다. 얼마나 침묵하느냐면, 그들이 먹고 숨 쉬고 자녀들을 위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은 최대 관심사 열 가지에 들지도 못한다. (479쪽)

-식물은 최초의 복원생태학자다. 그들은 자신의 선물을 이용하여 땅을 치유하고 우리에게 길을 보여준다. (485쪽)

-나는 과학의 '드러냄'에 뿌리 내리고 토박이 세계관에 기반한 이야기의 렌즈를 길잡이로 삼는 세상을 꿈꾼다. 물질과 영혼에 고루 목소리를 부여하는 이야기 말이다. (504쪽)

-무지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게 한다. (518쪽)

로빈은 식물생태학자면서 작가다. 단순히 생태만을 이야기했다면 아주 지루했을 이 이야기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작가 덕에 살아났다. 찬장을 열고 '6월을 담아 포동포동해진 그대 베리, 이젠 나의 2월 식료품 저장고에 들어있군요. 그리고 카리브해 고향을 멀리 떠나온 그대 설탕,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229쪽)' 라고 말하는 그녀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녀의 학생으로 캠프에 참가해 숲속에서 며칠씩 지내며 관찰하고 배우고, 자연에서 먹을 거리와 잠자리를 얻는 귀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정복자들에 의해 빼앗겼던 토박이 말, 서툴지만 조금씩 잃었던 그 말을 배우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방식을 답습하며 문화 부흥 운동을 하고 있는 그들이 하는 말을 우리도 들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르니까.

-대지가 우리에게 내어준 모든 것에 감사하면 우리를 따라다니는 윈디고에 맞설 용기가 생긴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지를 파괴하여 탐욕스러운 자들의 주머니를 불리는 경제에 참여하기를 거부할 용기, 생명에 반하는 게 아니라 생명과 한편이 되는 경제를 요구할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글로 쓰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힘들다. (551쪽)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들었던 이것도.

받드는 거둠의 지침

자신을 보살피는 이들의 방식을 알라.

그러면 그들을 보살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소개하라.

생명을 청하러 온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라.

취하기 전에 허락을 구하라. 대답을 받아들이라.

결코 처음 것을 취하지 말라. 결코 마지막 것을 취하지 말라.

필요한 것만 취하라. 주어진 것만 취하라.

결코 절반 이상 취하지 말라. 남들을 위해 일부를 남겨두라.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수확하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용하라.

취한 것을 결코 허비하지 말라. 나누라. 받은 것에 감사하라.

자신이 취한 것의 대가를 선물을 주라.

자신을 떠받치는 이들을 떠받치라.

그러면 대지가 영원하리라.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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