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말랑말랑한 글을 쓰던 사람이었나? 기억에 가물거리는 그의 작품들. 어쨌거나 작가의 말을 읽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이 책과 발터 뫼르스의 작품 『엔젤과 크레테』 두 권을 들고 내려왔는데,이 책들을 고른 건 순전히 전철 안에서 읽던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때문이다. 이건 뭐지..하는 기분. 소설인 듯 보고서인 듯 역사기록물인 듯 영역을 잘 모르겠는 그 책 때문이다. 세상 맵고 짠 음식을 먹다보면 건강한 우유 한 잔이나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먹어줘야 하는 법이다.
배경은 강원도 청평, '오베르주 애비로드'라는 숙박시설이다. 유리 엄마 난주 씨가 운영하는 이곳에 '여섯 살이 될락말락한 다섯 살'인 유리와 그곳의 단골인 서령과 서령의 남편인 '아나운서 비슷한' 이륙, 미국에서 온 브루스와 그의 한국인 아내 정자가 모였다.
난주가 만들어내는 '돼지고기활활두루치기' 나 '곰취막뜯어먹은닭찜' 같은 음식을 마주 하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같기도 하다. 여섯 살치고는 너무 어른스러운(자신의 경험담이라며 첫소개팅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파두를 부르기도 한다.) 유리가 조금 거슬렸는데 나중에 유리의 친 엄마를 등장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해는 됐어도 너무 지나친 설정이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한국전에 참전해 '파드득나물 밥과 조껍데기 막걸리'를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받았지만 동료의 오발로 인해 마을 사람들을 죽인 이력이 있던 브루스는 용서를 빌 기회를 갖게 되고, 서령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륙과의 이별을 잘 받아들인다. 유리는 친 엄마와 함께 포르투갈로 떠나고 난주는 서령과 함께 그곳에 남았다.
끝까지 담담한 척 하던 난주가 눈물을 흘렸을 때는 나도 따라 울었지만 이야기는 딱 일본이 잘 만들어내는 따뜻한 영화와 비슷했다. 쉽게 읽히는 책이고 재미도 있고 약간의 감동도 있지만 나는 좀 더 묵직한 울림을 기대했기에 아쉬웠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도 달기만 한 것보다는 적당히 다른 맛이 섞여 있어야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