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제목 :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Bewilderment

◎ 지은이 : 리처드 파워스 Richard Powers

◎ 옮긴이 : 이수현

◎ 펴낸곳 : (주)알에이치코리아

◎ 2022년 6월 17일 1판 2쇄, 399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몰이 중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이야기인데, 뻔한 연애 이야기나 재벌가 이야기에 질려버린 우리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왠지 현실에서 보기 힘든 순수한 어른과 '권선징악'이 실현되는 걸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드라마다.

<굿 닥터>에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거치면서 자폐 스펙트럼(그중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인물에 게 관심이 쏠린 것이 사실이다. 로빈 또한 어떤 면에서는 그런 인물로 보이기는 한다. '딱 맞춘 것처럼 유행을 잘도 알고 이 책이 내게 왔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특별하며 갓 아홉 살이 된, 이 세상과 잘 맞지 않지만, 영화는 한 번만 봐도 모든 장면을 읊을수 있고, 기억하는 내용을 끝없이 되풀이해서 말하고, 세세한 부분을 반복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책을 한 권 다 읽으면 바로 처음부터 다시 읽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제력을 잃고 폭발했지만 그만큼 쉽게 기쁨에 사로잡히는 로빈과 아내를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우주생물학자 시오가 주인공이다.

NGO활동가답게 주머니쥐를 피하려다 사고로 죽은 아내이자 엄마인 얼리사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 로빈은 학교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아빠인 시오도 로빈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아이는 엄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엄마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부쩍 생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천문학과 유년기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어마어마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항해다. 둘 다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사실들을 찾으려 한다. 둘 다 엉뚱한 이론을 만들고 가능성이 무한히

증식하도록 놓아둔다. 둘 다 몇 주마다 초라해진다.

둘 다 모르기 때문에 움직인다. 둘 다 시간 때문에 혼란해진다. 둘 다 언제까지나 시작점이다.

99쪽

엄마를 꼭 닮아 동물들이, 식물들이, 곤충들이 사라지는 걸 가슴 아파하는 아이. 동물을 사랑해서 채식을 선택한 아이 로빈을 다루는 건 쉽지 않다.

결국 시오는 로빈의 사회화를 위해 약물 대신 아내의 옛 애인이었던 마틴에게 부탁해 디코디드 뉴로피드백이라는 기술을 사용하기로 한다. 타인의 감정 지문을 그대로 경험하도록 훈련하는 기술인데, 덕분에 로빈은 마틴이 간직하고 있었던 엄마 얼리사의 감정지문을 경험한다. 로빈은 그 과정을 통해 다른 아이로 거듭난다. 공감능력과 지적 능력까지 향상되고 그림 그리는 실력까지 일취월장. 다른사람과의 교류도 힘들어하지 않은 아이가 되지만 시오는 왠지 아들을 잃은 것만 같다.

놀라운 효과를 연구 성과로 발표하는 마틴. 그로 인해 로빈은 유명세까지 타게 된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다. -멕시코만 도처에 일어난 여름 홍수가 3000만 명이 마시는 식수를 오염시키고, 남부에 간염과 살모넬라균을 퍼뜨렸다. 열기가 플레인스 지역을 괴롭혔고 서부에서는 노인들이 죽어 갔다. 샌버너디노에서 화재가 났고, 나중에는 카슨시티에도 번졌다. 플레인스에 속한 주마다 무장 군인들이 시내를 순찰하며 불특정 외국인 침입자들을 찾고 있다는 X가설이라는 게 돌았다. 한편, 신종 검은 녹병 때문에 중국의 황토 고원 전역에서 밀농사가 실패했다. 7월 하순에는 댈러스에서 있었던 '트루 아메리카' 시위가 인종 폭동으로 번졌다. (221쪽)

산불이 난다고 국유림을 베어버린다는 대통령. 독재자가 따로 없다. 결국 시오의 망원경 계획도 날아가고 마틴의 연구도 중단되자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없게 된 로빈은 퇴행한다. 광우병으로 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벽에 머리를 찧으며 함께 고통을 받는 로빈.

아들을 위해 스모키산맥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 시오는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을 강에 사는 생물들을 위해 무너뜨린다. 로빈은 개울 한가운데 쌓인 돌탑마저 없애고 싶어했으나 시오는 이제 막 눈이 녹은 참이라 물이 너무 차가우니 나중에 다시 와서 없애자고 말린다. 그러나 한밤중에 일어난 로빈이 기어이 그 돌탑을 무너뜨리려고 혼자 물에 들어갔다가 죽고만다. 무기력해진 시오에게 마틴은 위험을 감수하며 로빈이 기록한 두뇌 지문에 접속하게 해준다. 마침내 아들과 아들의 안에 남아있던 아내 얼리사까지 만난 시오는 행복하다.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이 밟으면 자국이 나기 마련이다. 마음이 여행하는 길도 그러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에서. (150쪽) 소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인상이 이 문장과 닮았다. 로빈과 시오의 일상, 시오가 로빈에게 들려주는 다른 행성 이야기가 오가는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이 어렵다. 이런 모호함은 로빈이 얼리사의 감정 지문을 따라 가는 것과 흡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음을 여행하는 길이라는 표현이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남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로빈의 말은 작은 따옴표로, 나머지 인물들의 말은 큰 따옴표로 표기를 해둔 것도 특별했다. 처음에는 로빈이 수어로 말을 하나보다, 했으나 나중엔 이것이 식물이나 동물들과 교감하듯 텔레파시로 생각을 전달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옮긴이 이수현의 이력을 보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로 번역을 시작했대서 반갑고, 이 사람이 번역한 걸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캐넌의 세계』, 『멋진 징조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를 번역했대서 또 반가웠다.

'그래서 다들 멸종해 버리는 거야. 모두가 나중에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124쪽)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멸종 동물 그림을 그리기 원하는 로빈이 반대하는 아빠에게 던진 말이다. 지금 우리는 기후 변화에 따른 이 비극을 이야기로만 읽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이 되어 닥칠 날도 멀지 않았을 것이다. 로빈의 말처럼 나중에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늦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죠.

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