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제목 : 시대의 소음

◎ 지은이 : 줄리언 반스

◎ 옮긴이 : 송은주

◎ 펴낸곳 : 다산책방

◎ 2017년 5월 29일 초판1쇄, 269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이 책은 이름만 익히 아는 음악가, 1906년 9월 25일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 그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다.

파국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진짜 시발점은 그의 명성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의 오페라, 아니면 절대 무오류의 존재이므로 모든 것에 다 책임이 있는 사람,

스탈린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오케스트라의 배치처럼 단순한 것에서 촉발되었을 수도 있다.

32쪽

많은 이들처럼 윤년에 악운이 든다고 믿은 그에게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난 것도 1936년 윤년이었다. <므체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공연할 때 스탈린 동무와 정부 인사들 자리가 하필이면 타악기와 금관악기 바로 위였기 때문에 시끄러운 소리에 그들이 진저리를 쳤으며, 그에 아부하는 인사들이 <프라우다>지에 '꽥꽥 꿀꿀 으르렁대는'소리 운운하며 '소비에트 음악에 이러한 경향이 미칠 위험은 명백하다며 이렇게 교활한 재주로 장난치는 행위는 끝이 대단히 안 좋을 수 있다.'는 기사를 실었던 것이다.

매일밤 끌려갈 것에 대비해 짐을 싸고 옷을 다 입은 채 엘리베이터 옆에서 밤을 새우던 그는 결국 그를 지원하던 투하쳅스키 대원수가 반역 음모에 휘말리자 함께 죽음의 위기까지 몰렸다가 벼랑 끝에서 살아난다.

스탈린의 러시아에는 이 사이에 펜을 물고 작곡을 하는 작곡가 따위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두 가지 종류의 작곡가만 있게 될 것이다. 겁에 질린 채 살아 있는 작곡가들과, 죽은 작곡가들.

75쪽

스탈린이 오페라를 보러 갔던 또 다른 여행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의 오페라도 아니고 무라델리의 것이었지만 끝에 가서는, 실은 처음부터, 아무 상관이 없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윤년인 1948년이었다.

100쪽

무라델리가 하필이면 조지아인이었던 스탈린 앞에서 잘못된 역사를 그려냈고 무라델리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므첸스크의 백베스 부인>을 쓴 드미트리 드미트리에비치 쇼스타코비치 탓에 잘못된 길로 빠진 것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로인해 쇼스타코비치는 음악학교에서의 지위를 잃었고 당의 지시에 따른 작곡만을 할 것이라는 약속을 해야 했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135쪽

'모두들 항상 그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에게서 원했다. 그러나 그가 그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오직 음악뿐이었다.'(158쪽) 그런 그에게 러시아 연방 작곡가 조합 의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입당까지 하게 만들었고 자기 의지가 아닌 당의 입이 되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연설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스탈린상을 여섯 번, 레닌 훈장도 세 번 받았으나 끝없는 공포 속에서 살았던 그는 1976년이 오기 전에 죽기를 바랐다. 자유롭지 못한 예술가의 초상이다.

아침마다 그가 암송하던 옙투센코의 시 <경력> 중 한 대목에서 그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갈릴레오의 시대에, 한 동료 과학자

갈릴레오 못지않게 어리석었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먹여 살려야 할 대가족이 있었다.

(중략)

그러니 나는 내 일을 하련다

하나를 좇지 않음으로써.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젊은이는 아이러니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중략) 아이러니는 파괴자와

사보타주 주동자들의 언어로 통했기에, 그것을 쓰면 위험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는-어쩌면 가끔씩은, 그는 그러기를 바랐다.- 시대의 소음이 유리창을 박살낼 정도로 커질 때조차-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지킬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 음악, 그의 가족, 사랑. 사랑,

그의 가족, 음악. 중요도는 바뀔 수 있었다.

126~127쪽

'물론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는 있겠지만, 장담하건대 최악의 경우가 될 겁니다.' (21쪽) 쇼스타코비치가 좋아했던 고골의 소설 <코>에 나오는 이 구절은 작곡가의 지위를 박탈당하지 않았으나 예술의 자주성을 잃게 된 그의 인생 이야기 그 자체일 것이다. 예술을 정치 도구로 사용하는 비겁한 위정자들때문에 우리는 많은 예술가들을 잃었다. 우리에게도 넘치게 있지 않은가. 일제강점기, 목숨을 바쳐서 저항한 존경받을 인물들은 물론이고, 겁에 질려 어쩔 수 없이 동조한 이들과 직접 나서서 찬양을 바친 이들까지도.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면 우리에겐 훨씬 더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평이 어떻든, 실제 그의 삶이 어떻든 이 책에 나타난 그는 가엾은 예술인일 뿐이다. 꽤 흥미로운 책이긴 했으나 도돌이표를 찍어놓은 듯 반복되는 부분들이 -처음에는 이조차도 괜찮았으나 - 나를 지치게 하고 흥미를 떨어뜨려 별점이 조금 낮아졌다. 과감하게 쳐냈으면 좋았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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