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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스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 책제목 : 팅커스 tinkers
◎ 지은이 : 폴 하딩 Paul Harding
◎ 옮긴이 : 정영목
◎ 펴낸곳 : 문학동네
◎ 2022년 2월 14일 초판1쇄, 237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사람들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그가 걸어왔던 인생이 주르륵 펼쳐진다고 한다. 어떤 부분은 전체적인 형상만이, 또 어떤 부분은 아주 세밀하게 추억에 새겨진 그대로 떠올려질 것이다. 아직 그 앞에까지 안 가봐서 자세히 모르겠고 그걸 명확하게 고증해줄 이도 없는 시점에서는, 그냥 이렇게 상상으로 그쳐야하기에 작가들이 사후세계나 사후세계로 가는 길에 대한 궁금증을 그렇게도 많이 얘기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학생지도를 하고 퇴직한 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로 단체여행을 다니고 삼십 년 동안 시계를 수리했고 손자들의 응석을 받아주었고 파킨슨병에 걸렸고 당뇨병에 걸렸고 암에 걸렸고 거실 한가운데 놓인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25쪽) 건 주인공 조지. '조지 워싱턴 크로즈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 또한 죽음에 이른 여든의 노인 조지가 인생을 반추하는 이야기다. 천천히 처음부터 차근차근이 아니라 마구 뒤죽박죽인 상태로. 그러나 환각에 빠지기 시작한 건 조지만이 아니어서 독자도 환각에 빠진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된다.
분명 아픈 조지를 보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갑자기 수레에 잡동사니들을 싣고 장사를 다니던 조지의 아버지 하워드가 불쑥 튀어나오고, 간질발작을 일으킨 하워드 얘기구나 싶으면 횡설수설 엉망진창으로 설교를 하다 병원으로 끌려가 다시는 보지 못한 하워드의 목사 아버지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셋의 인생이 마구 겹쳐서 달리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누구의 인생 이야기를 보는 건지 헷갈릴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기억이 아닐까 생각하면 이것 또한 단점이 될 수는 없다. 조지와 조지의 하버지 하워드, 하워드의 아버지로 이어진 삼 대를 보고 있으면 언뜻 『백년동안의 고독』이 스쳐지나간다.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지만 굳이 접점을 찾자면 셋 다 그 속에 흐르는 피로 고통을 받았다는 점에서.
어린시절 병원에 끌려간 아버지를 그리워한 하워드는 자신의 간질발작으로 충격을 받은 조지가 가출하자 '네가 네 뒤에 끌고 다닐, 아마도 주로 나 때문에 끌고 다닐 슬픔과 씁쓸함과 원한의 자취는 신경쓰지 않기를, 그저 네가 이 춥고 좁은 구역의 테두리 너머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기를 .'(142쪽) 바라지만 조지는 멀리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병원에 넣으려는 아내의 계획을 알게 된 하워드는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멀리멀리 가고만다. '그의 절망은 아내가 그를 바보로, 쓸모없는 땜장이로, 2페니짜리 종교 잡지에서 엉터리 시를 베끼는 사람으로, 간질병 환자로 볼 뿐,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을 더 나은 무언가로 보려 할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왔다.' (151쪽) 비록 간질발작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지만 낭만적이었던 하워드가 집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해 살면서 두 번째 부인을 만나 약을 먹으며 간질발작을 줄이고, 첫 번째 부인과는 달리 명랑한 그녀와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 건 그래서 참 다행이다.
스스로에게 아버지 생각을 허락하지 않던 조지 워싱턴 크로즈비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기억한 것은 1953년 크리스마스 저녁식사였다. 두 딸, 부인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려던 그 순간 문을 두드린 건 열두 살 이후로 보지 못했던 아버지 하워드였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조지. 그래, 그래, 그러마. 잘 있어라.' 이런 아버지의 인사와 더불어 이 세상에도 하직을 고한 조지.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한 많은, 힘들었을 시간들은 그가 어찌 살아왔다는 설명속에서도 사라지고 없었는데 마침내 죽음에 이르러 다시 아버지와 재회하며 닫아둔 시간들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누워있는 조지에게 책을 읽어준 건 손자들 중 하나가 아니라 하워드나 하워드의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그가 평생 혐오하면서도 그리워했던 아버지. 조지가 시계를 수리했던 이유는 열두 살 이후 정지된 그 시간으로부터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사라진 그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조지가 죽은 뒤 그가 태엽을 감던 시계들도 조용해졌겠지만 조지의 시간은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속 쉼없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