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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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

◎ 지은이 : 이디스 워턴 Edith Wharton

◎ 옮긴이 : 손영미

◎ 펴낸곳 : 문학동네

◎ 2022년 1월 28일 초판발행, 430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이디스 워턴 - 1862년 미국 뉴욕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럽 각지에서 머물며 유년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의 서재를 드나들며 문학적 재능을 키우나 1885년 결혼 전까지 창작 활동은 거의 불가능했다. 1890년 단편소설을 문예지에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환락의 집』 『이선 프롬』 『암초』 『여름』 등 다수의 소설과 역사, 미술, 건축에 대한 다양한 글을 집필했다. 1920년 출간한 『순수의 시대』로 이듬해 여성 작가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1937년 프랑스에서 타계했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이선 프롬』이었고 그 뒤를 이어 『석류의 씨』와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지만 1920년대라서 가능한 찬사와 수상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이 되려나? 개인적으로는 『이선 프롬』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400쪽에 이르는 분량이지만 이야기는 간단하다. 뉴욕 상류층 사교계에서 1등 신랑감으로 꼽히는 뉴런드 아처. 그에게는 메이라는 여인이 있건만 오페라를 보러 간 곳에 나타난 메이의 사촌 엘런 올레스카 백작부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자신의 마음을 누르고자 서둘러 약혼을 발표하지만 그는 이미 엘런에게 푹 빠진 상태. 메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뒤에서는 가족들과 합심해 엘런을 뉴욕에서 쫓아버리고 아처를 붙잡아 앉히는 데 성공한다. 수십 년을 보낸 아처가 메이가 죽은 뒤 아들과 함께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엘런과 만날 기회가 생기지만 그대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냈고, 삶은 보람 있는 일들로 가득했다.

아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처는 자기가 무엇을 놓쳤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인생의 꽃이었다. 하지만 이제 너무도 까마득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그 때문에 불평한다면 마치 복권에서 일등을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것과 비슷할 듯 했다. ---(중략) 그녀는 그가 놓친 모든 것을 모아놓은 환영이었다.

385쪽

쉰일곱이 된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 박물관에서 그림을 보며 '생각해보니 정말 무미건조한 삶이었다'(396쪽)고 회상한다.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올렌스카 부인을 그대로 떠나보낸 것을 아쉬워하지만 그는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실제로 한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손에 가득 쥔 것을 놓지 않고는 다른 것을 가질 수 없는 법인데도.

메이는 청순한 외모 뒤에 숨어 모든 일을 계획했고, 아처는 세간의 이목이 두려워 엘런을 외면했다. 엘런은 비록 남들이 볼 때는 이상한 인물이었으나 자신의 자유를 위해 재산이나 지위 등 모든 것을 버렸고 아처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아처의 바람대로 행동했다. 우리가 곧잘 '그때는 다들 참 순수했는데.'라고 과거를 회상하듯 아처의 회상이 바로 '순수의 시대'가 된 건 아닐까. 그속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인물은 엘렌이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인생의 꽃'을 놓쳤음을 깨닫지만 엘런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음에도 '현실의 마지막 그림자가 스러질까 두려워 그 벤치에 그대로 앉아.'(401쪽) 있다가 돌아오는 아처는 끝까지 겁쟁이며, 자신이 가진 것을 놓을 줄 모르는 욕심쟁이다. 그녀를 잊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그에게 엘런은 환상 속 인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높이 띄워놓고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그런 인물. 작품이 무슨 죄가 있을까마는 주인공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 책을 좋아할 수가 없다. 아처가 엘런을 만나러 올라갔다면, 거기 올라가서 사죄의말이라도 했다면 달라졌으려나?

나는 '인생의 꽃'을 아직 놓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한 송이가 아니라 꽃 한 다발이 내 인생의 꽃이었며 그 중 몇 송이를 놓쳤다고 해도 아직 또 몇 송이쯤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기왕이면 향기 좋은 놈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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