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제목 : 제 5 도살장

◎ 지은이 : 커트 보니것

◎ 옮긴이 : 정영목

◎ 펴낸곳 : 문학동네

◎ 2021년 8월 10일 1판 14쇄, 280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작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뒤 드레스덴에서 폭격을 목격하고 그 이야기를 오랫동안 품고 있다가 23년이 흐른 뒤에야 쓸 수 있었노라고 전한다.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고들 한다. 나도 물론 앞으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전쟁 책을 끝냈다. 다음에 쓰는 책은 재미있을 것이다.

이번 것은 실패작이고, 실패작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금 기둥이 쓴 것이니까.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그 책은 이렇게 끝난다.

지지배배뱃?

37~38쪽

작가는 책을 쓰기 전에 자신의 기억이 올바른지 알기 위해 전우였던 오헤어를 찾아가고, 거기에서 책이나 영화가 전쟁을 부추기는 데 한몫한다고 생각한 그의 부인에게 '소년 십자군'이라는 제목을 붙이겠노라고 맹세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직 스물한 살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190센터미터 키에, 가슴과 어깨는 부엌 성냥갑같았다. 철모도 없고, 외투도 없고, 무기도 없고, 군화도 없었다. 아버지 장례식에 가려고 산, 목이 짧은 싸구려 민간인 구두를 신고 있었다. 굽 한쪽이 떨어져나간 탓에 몸이 위아래로, 위아래로 까닥였다 .'(50쪽)빌리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 이 책이 '드레스덴 폭격'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와 같은 종류의 책일 거라는 내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공상과학영화같은 느낌을 풍기며,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때문에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북』 생각도 났다.

빌리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서 자신을 붙잡아가서 동물원에서 자신을 알몸으로 전시를 했고 몬태나 와일드핵이라는 전직 영화배우와 짝을 지어주었노라고 했다. 트라팔마도어인들이 그에게 모든 순간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그 때문에 시간왜곡을 통해 여러 시간대, 여러 장소로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빌리는 미래와 과거를 끊임없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출생과 죽음을 여러 번 보았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그 사이의 모든 사건과 무작위로 만난다. 그렇게 말한다.'(39쪽)

작가는 어디 가고 빌리의 이야기만 나오는 걸까, 고민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작가가 등장해서 그가 탄 열차 옆 칸에 타고 있었다거나, 극장에 함께 있었다는 등의 카메오 출연을 하고 사라진다. 오랜만에 영국인들이 준 음식으로 배탈난 미국인 포로들을 그리면서 '빌리 옆의 한 미국인은 뇌만 빼고 전부 배설해버렸다고 울부짖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그것도 나가네, 그것마저 나가." 뇌 이야기였다. 그렇게 울부짖은 게 나였다. 바로 나. 이 책의 저자.'(160쪽) 바로 이렇게.

빌리가 태어나고 교육받고 검안사가 되고 결혼하여 부를 이루고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가 그린베레원이 되는 동안 그는 전쟁 속에 있다. 몸을 누일 공간 하나 없는 기차에 타고 있기도 하고, 발을 질질 끌며 총탄 속을 걷기도 하며, 전우인 위어리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광대옷을 입고 행진을 하기도 하며, 제5도살장에 갇히기도 하고, 드레스덴 공습 후 전우인 더비가 죽은 뒤 묻으려고 삽을 들고 있기도 하다.

빌리가 진짜로 트랄파마도어인들에게 붙잡혀 가서 시간여행을 하게 된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시간여행은 그가 전쟁에서 겪은 고통을 견디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보여진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표현한 것으로도.그래서 이 재미있는 책을 보면서 그저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 이 책에서 누군가가 죽을 때마다 등장하는 "뭐 그런 거지"라는 표현-총 106번 나온다고 한다'(272쪽) -해설 중에서- 이 부분을 해설에서는 체념적 수동성을 드러내는 말로 보인다고 했지만 내게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해야 하며, 죽음을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므로 전쟁따위는 이 죽음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거라는 말로 들렸다.

실제로 겪지 않는 우리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어렴풋이 전쟁을 이해할 뿐이다. 1·4 후퇴 때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신 우리 아버지나 충청도에서 피난을 가지 않고 전쟁을 겪어낸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도 그저 지나간 옛 이야기로 취급되고 냉정하게 말해서 뉴스에서 들리는 우크라이나 소식도 한 겹 너머 이야기다. 만약, 그것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가정만으로도 숨을 쉬기 어려우면서 '지금, 여기'가 아닌 것이 너무도 다행이라 그런 반응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전쟁이라는 낱말을 사어(死語)로 취급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반응을 얻을 게 뻔하면서도 여전히 들려오는 전쟁 소식에 한숨을 쉬며 던져보는 질문이다. 거리에 뒹구는 시체와 울부짖는 난민들, 폭격당해 폐허로 변한 도시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빠져나온 긴 터널을 떠올리고 그 전쟁 속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는 게 또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