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13
존 맥그리거 지음, 김현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수지 13』, 존 맥그리거 글, 김현우 옮김, 창비 펴냄


‘오,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 너는 고요히 누워 있구나. (343쪽)’

채석장과 공영농장, 황무지와 저수지가 둘러싸인 영국 작은 마을에서 놀러 왔던 여자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실종된 여자아이의 이름은 리베카 쇼였다. 나이는 열세 살. 마지막으로 눈에 띄었을 때는 후드 달린 흰색 상의와 진청색 방한 조끼, 검은색 진, 캔버스화 차림이었다. 키는 152센티미터, 짙은 금발의 직모를 어깨까지 기르고 있다. (13쪽)’

사람들은 수색대를 꾸리고 아이를 찾아 나선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은 1년이, 그리고 계속 세월은 흐른다. 새로운 장(章)이 시작될 때마다 긴장감이 흐르고 모든 것이 사건의 단서처럼 보인다. 특수학교 학생인 앤드루도 수상하고 학교 관리인 존스도 수상하다. 심지어는 정육점을 경영하는 마틴일까 했다가 엉덩이가 불편한 윌슨이나 어쩌나 한 번씩 등장하는 리처드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진행되는 일상에 끈을 놓지 않는 긴장감이 흐른다. 누군가 아프고, 대학교 시험을 보고, 아기가 태어나고, 연애사건으로 시끄럽다가, 마을 연극이 무대에 오르고, 바위 위에서 길 잃은 양을 데려오고, 소 젖을 짜는가 하면,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를 산책시킨다. 저수지 수위가 높아지거나 발파된 채석장 이야기가 나오거나 개가 킁킁거리고 돌아다니는 등의 작은 암시들을 홀린 듯 따라가다 보면 ‘응, 이거 별일 아니야.’ 하며 어느새 훌쩍 다음 장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러다가 슬쩍 뿌린 미끼들을 발견했다.

‘캐시는 넬슨을 찾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녀석이 낡은 운동복이나 방한 조끼처럼 보이는, 바느질 자리가 터져 보충재가 삐져나온 진청색 옷가지를 물어뜯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넬슨을 말리고는, 다시 리처드를 따라잡았다. (164쪽)’

이렇게 언뜻 여자아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가 하면, 리가 엄마에게 하는 말 중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번엔 반대로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다.

‘나는 할 수 있어. 언덕에 굴이 아주 많아, 광산이나 그런 거. 거기 숨으면 돼. 밤에만 나와 음식을 구하면서 말이야. 매번

다른 곳으로 나오면 아무도 모를 거야. 원하면 그 밑에서 몇 년이라도 살 수 있어.’(329쪽)

이야기는 사라진 여자아이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난 마을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 변천사를 보는 느낌이 강하다. 짧게 짧게 장면이 계속 바뀌어 가는 연극을 한 편 본 느낌이 들기도 한다. 13년에 걸친 이야기인지라 대를 이어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 외우기도 버겁다.

여전히 모두들 그 아이에 대한 꿈을 꿨다. --(중략) 어스름 무렵에 황무지에서 아이를 우연히 발견하고 부모에게 데려다주었다. 꿈속에서 여자아이의 부모는 감사하다고 짧게 인사를 했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중얼거렸다.(361~362쪽)

각자 바쁘게 자기 삶을 살지만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잊은 사람은 없다. 해결되기만을 바라며 부채를 짊어지듯 사건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이면 스물세 살이 됐을 것이다. 그녀가 너도밤나무를 오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차역에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롯가에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녀를 찾고 있었다, 모든 곳에서. 그녀가 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었고, 안전하게 차를 타고 떠났을 수도 있었다. 동굴에 빠졌을 수도 있었다. 부모들의 끔찍한 실수로 다쳤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떠나기로 선택했을 수도, 혹은 다른 선택은 없었을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알고 싶어했다.’ (295~296쪽)

아이를 잃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난 마을을 들여다보는 현미경 쪽을 택했기 때문에 훨씬 읽기에 수월했다. 그러면서도 범인이 나타나기를 원하며 작은 암시에 수도 없이 매달린 것은 나 역시 마을 사람들처럼 그런 짐에서 놓여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허무함을 느끼며 책을 덮는데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죽음이 곁에 있어도, 아니 죽음이 곁에 있기 때문에 삶이 더 치열한 거야.’

사건이 해결되어 다리 뻗고 잘 수 있기를 희망하는 독자를 끝까지 긴장감으로 몰아넣는 작가를 만난 것도 처음이다. 그러면서도 작가가 일부러 함정을 판다거나 얕은 수를 쓰는 걸로 보이지 않으니 이것 또한 엄청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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