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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한강 지음 / 창비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체로 단편들의 경향은 비슷하다.
장편이 아파트 단지와 그 주변 전체를 배경으로 삼아
온갖 복잡한 집안들을 1000여 채씩 두루 돌아본다고 하면
단편은 한 집을 망원렌즈로 잡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흔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것 같으면서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어 입김을 불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큰일이 아닌데도
내 입장에서는 호들갑을 떨게 되는 그런 일들이
단편이 가진 힘이다.
그래서 내 악몽을 들킨 듯 거북한 마음이 들게도 만드는 것이다.
이 책 <내 여자의 열매>는 8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기 부처'와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이 두 편은
문학잡지를 열심히 읽을 즈음에 이미 만나봤던 작품이라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으며
(작품의 경향이나 완성도는 제쳐 두고라도)
나머지 작품들은 읽는 동안 작가가 누구였지?
표지를 다시 한 번 쳐다봐야 했다.
왜 단편들은 다 비슷해보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일 수도 있다.
남의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서 비슷한 상황을
이미 내가 간접으로 겪은 탓이다.
문장이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어도 내겐 독특한 게 제일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아주 형편없다는 얘긴 아니다.
내가 어릴 때 이런 작품들을 좋아했던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겐 좋은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다.
다만, 내가 단편을 싫어하기 때문에 활짝 웃을 수 없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