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으로 만나는 역사 신라왕릉 - 한 권으로 읽은 신라왕릉
김희태 지음 / 휴앤스토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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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블로그 이웃이신 김희태님의 신간이 나왔다. 책 주제는 무려 ‘신라왕릉’. 희태님 블로그에서 신라왕릉에 대한 답사 이야기를 봐왔고, 작년 이맘때 경주 신라왕릉 답사 당시 희태님의 신라왕릉 답사기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고로 이 책의 완성도는 어마무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심지어 신라왕릉 답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배웠던 당대의 역사와 학교에서는 잘 가르치지 않는 역사, 신라왕릉과 관련한 또 다른 역사 유적지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주제는 어디까지나 #신라왕릉 이지만, 책 자체로 보면 신라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명실상부한 신라 역사책이다. 우리 뿡뿡이가 책을 읽을 나이가 되면, 신라역사에 대한 첫번째 역사책은 이 책 『왕릉으로 만나는 역사: 신라왕릉』으로 결정했다고나 할까?





학교 수학여행 이런 것을 제외하고, 내 스스로 경주 여행을 간 것은 두 번(2015년, 2021년)이다. 그리고 그 두 번의 경주여행에서 나는 꽤 많은 신라왕릉 및 고분을 보고왔다. 워낙 역사를 좋아하고, 어디를 가든 역사유적지를 위주로 찾아다니는 나였기에(특히 무덤투어를 사랑함), 신라왕릉 및 고분군을 찾아다닌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2015년 당시에 보았던 신라왕릉과 2021년에 보았던 신라왕릉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정확히는 신라왕릉을 바라보던 내 시선의 차이였다. 2015년에는 ‘아, 여기가 ○○왕릉이구나’ 였다면, 2021년에는 ‘여긴 전칭왕릉이군, 저긴 확실한 왕릉이군’ 이라는 점일까?



앞선 두 번의 신라왕릉 답사에서 내 시선의 차이가 달라진 이유는 아무래도 박종인 기자님 영향이 컸다. 박종인 기자님 덕분에 조선 후기 양반들의 무분별한 족보찾기 열풍으로 정확한 근거 없이 신라왕릉이 비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이 책의 저자이신 희태님의 신라왕릉 답사기를 보면서, 피장자가 확실한 신라왕릉 여부와 그 이유, 피장자가 불확실한 이유등에 대해 알게되었다. 



>>내가 보고 온 신라왕릉: 오릉(1대 혁거세-알영부인, 2대 남해, 3대 유리, 5대 파사), 탈해왕릉(4대), 지마왕릉(6대), 미추왕릉(13대), 선덕여왕릉(27대, 확실), 무열왕릉(29대, 확실), 문무대왕릉(30대, 확실), 신문왕릉(31대), 원성왕릉(38대, 확실), 정강왕릉(50대), 경순왕릉(56대, 확실/연천 소재)



>>내가 보고 온 신라고분/묘: 대릉원(천마총, 황남대총), 서악동고분군, 인왕동고분군, 김유신묘, 김인문묘, 김양묘, 노동동고분군, 노서동고분군(봉황대, 서봉총, 금관총)



와, 이렇게보니 나도 경주에서 꽤 많은 무덤투어를 했나보다(연천에 있는 경순왕릉 제외ㅋ). 피장자가 확실하거나 불확실한 것을 떠나서, 신라왕 56명의 왕릉중 14기를 보고 왔으니 오우!.....였는데 이제보니 25%밖에 못봤다(고분제외). 하하하하. 그래도 앞으로 경주를 세네번만 더 가면 신라왕릉 답사 올클 가능할 듯 하다



#신라왕계보

(박)혁거세거서간 → (박)남해차차웅 → (박)유리이사금 - (석)탈해이사금 - (박)파사이사금 - (박)지마이사금 - (박)일성이사금 - (박)아달라이사금 - (석)벌휴이사금 - (석)내해이사금 - (석)조분이사금 - (석)첨해이사금 - (김)미추이사금 - (석)유례이사금 - (석)기림이사금 - (석)흘해이사금 → (김)내물마립간 - 실성마립간 - 눌지마립간 - 자비마립간 - 소지마립간 - 지증왕 - 법흥왕 - 진흥왕 - 진지왕 - 진평왕 - 선덕여왕 - 진덕여왕 → 무열왕 - 문무왕 - 신문왕 - 효소왕 - 성덕왕 - 효성왕 - 경덕왕 - 혜공왕 - 선덕왕 - 원성왕 - 소성왕 - 애장왕 - 헌덕왕 - 흥덕왕 - 희강왕 - 민애왕 - 신무왕 - 문성왕 - 헌인왕 - 경문왕 - 헌강왕 - 정강왕 - 진성여왕 - 효공왕 - (박)신덕왕 - (박)경명왕 - (박)경애왕 - (김)경순왕



#신라왕 호칭변화

※거서간: 진한 말로 임금 또는 존귀한 사람을 칭함. ‘간’자는 우두머리를 뜻하는 유목민족의 ‘칸’과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음

※차차웅: 『삼국사기』에 따르면 차차웅은 무당을 부르는 신라의 방언이며, 거서간과 동격의 의미라고 함. 신라가 제정일치 사회라는 것을 보여줌

※이사금: 이가 많이 난 사람 혹은 연장자

※마립간: 『삼국사기』에 따르면 마립은 ‘말뚝’ 즉 궐로서 함조를 뜻하며, 함조는 자리를 정한다는 뜻. 즉 왕궐의 주인인 왕을 말함.

※왕: 중국식 왕 호칭


신라왕은 조선이나, 고려 등의 한반도에 있던 다른 국가와는 좀 다른 면이 있다. 대표적인게 바로 성씨. 무려 세개의 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뭐, 세개의 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을 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내물왕때부터 경주 김씨가 신라왕위를 세습했다(초대왕은 박씨인데?!). 뿐만 아니라 신라는 왕을 지칭하는 호칭도 조금 달랐다. 지증왕이 중국식 왕호인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뭐, 거서간이나 마립간은 초원의 유목민족의 리더를 ‘칸’이라고 부르니 이해가 가는데(신라 출토유물은 유목민족 유물과 궤를 같이함), 차차웅과 이사금은 아직까지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니 ‘아 그렇구나!’하는 것 뿐.



여튼 이렇게 신라왕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은 알고, 책을 읽어보자!



▶신라왕릉 이야기

현재까지 알려진 신라왕릉은 총 37기로, 연천에 위치한 경순왕릉을 제외하면 36기가 경주에 있다. 이 가운데 비석의 이수와 비편 등의 금석문을 통해 무열왕릉, 흥덕왕릉은 무덤주인이 명확한 왕릉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문헌에 기록된 장지 기록과 신라왕릉의 발전과정등의 교차분석을 통해 확인된 선덕여왕릉, 문무왕릉, 성덕왕릉, 원성왕릉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밖에 다른 왕릉들은 근거가 명확하지 않거나 전칭왕릉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유는 신라가 망한 뒤 관리의 부재 속에 사실상 방치되다가, 자연스럽게 실전되는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p 048



조선 후기에 접어들수록 신라왕릉의 비정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이근직은 ‘족보 문화의 성행과 종중으로 대표되는 동족집단의 등장이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능묘에 대한 무리한 비정으로 나타났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에도 왕릉 비정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화계 유의건은 「나릉진안설」을 통해 ‘왕릉의 위치를 비정하는 데 문자 기록에 근거하지 않고, 무지한 촌노인의 말에 의존했다’며 비판했다. 경주를 찾았던 김정희 역시 「신라진흥왕릉고」를 통해 ‘진흥왕릉은 선도산 고분군이 아닌 서악동 고분군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p 049



오릉은 조선 초기만 해도 혁거세의 능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4명의 왕과 1명의 왕비가 묻힌 것으로 알려져 시기마다 오릉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남해차차웅, 유리이사금, 파사이사금의 공통된 장지 사릉원을 혁거세의 장지 사릉과 같은 장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승과는 별개로 오릉이 누구의 무덤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이근직은 오릉을 적석목곽분으로 추정했다. 적석목곽분이 맞을 경우, 해당 시기의 무덤 양식인 목관묘와는 차이가 있기에 진위와 관련한 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은 오릉의 무덤양식과 출토 유물 분석을 통해 보다 명확한 진위여부가 밝혀질 것으로 판단된다. p 074



탈해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산17번지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장지 기록에는 성의 북쪽 양정 언덕이라고 적혀있다. 반면 『삼국유사』에는 문무왕의 꿈에 탈해이사금이 나타나 자신의 왕릉을 파내, 뼈로 소상을 만들 것을 이야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소상을 토함산에 두라는 말에, 문무왕이 소천구에 있던 탈해왕릉을 파내어 뼈를 모아 만든 소상을 토함산 사당에 모셨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토함산에서 탈해의 사당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기에, 탈해왕릉은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고 보는것이 옳다. p 078



현재 전 황복사지 동편에 있는 폐고분지는 임시로 정비되어 있는데, 출토된 갑석과 지대석, 탱석과 면석, 미완성 석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폐고분지를 효성왕의 가릉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신라왕릉의 십이지신상 비교를 통해 현 경덕왕릉보다 앞선 시기의 왕릉으로 보고 있고, 미완성 석재를 통해 최초 왕릉을 조성하던 중 어떠한 이유로 인해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효성왕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효성왕은 742년 5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시신을 법류사 남쪽에서 화장한 뒤 동해바다에 산골한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p 176


역대 신라왕은 56명인데, 알려진 신라왕릉이 37기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조선후기 족보찾기 열풍으로 양반네들이 무분별하게 ○○왕릉이라고 지정했으니, 당연히 모든 왕릉을 다 지정했을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신기하군. 그나저나 조금 놀랐던 사실은, 몇몇 신라왕들은 죽은 뒤에 화장을 한 것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화장을 한 왕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것이다. 거기다 왕릉을 조성하다가 중간에 중단된 폐고분지까지 남아있을 줄이야. 경주여행을 하기 전, 나름대로 사전조사를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초면인 문화재가 이렇게 많으니 원. 이렇게도 경주에는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하는 유적/사적지가 많다. 경주를 얼마나 많이가야, 대충이라도 다 보고 왔다고 할 수 있을까^_T.



다시금 이야기하는 조선후기 족보찾기 열풍. 이는 후대에, 그러니까 바로 지금! 신라왕릉에 대한 인식에 대해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경주 김씨, 석씨, 박씨 종친들이 땅을 겟챠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신라왕릉을 비정한게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예컨데 현재 탈해왕릉으로 알려진 무덤의 묘제는 신라 후기 묘제인 석실분이다. 하지만 탈해왕이 재위하던 초기 신라의 묘제는 목관다. 묘제부터 이미 탈해왕릉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선인들이 탈해왕릉이라고 했으니, 지금까지 그게 쭉 이어져와서 지금까지도 그곳은 탈해왕릉이다. 거기다 탈해는 경주 석씨의 시조인지라, 시조를 중요시하는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석씨 시조 탈해를 기리는 사당 숭신전까지 건립했다.



분명 대부분의 신라왕릉들의 묘제가, 현재 명명된 ○○왕이 살던 시기의 묘제와는 확연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문헌에 기록된 기록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조선후기 족보찾기 열풍의 영향은 아주 무서울따름이다. 역시 뿌리를 중요시하는 (어긋나버린)유교국가 답달까.




 



▶신라왕릉에서 만나는 신라사

실크로드를 따라 여러 이국적인 유물이 신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황금보검 이외에도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봉수형 유리병과 유리잔이 주목된다. 재미있는 것은 카자흐스탄 카라아가치지역에서 출토된 유리잔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리잔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이는 실크로드를 통해 유리잔이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원성왕릉의 호인상처럼 서역인을 닮은 토용과 터번을 쓴 형태의 토우가 발견되는 등, 이국적인 유물을 통해 실크로드로 세계와 교류했던 신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p 188~189



839년, 왕위에 오른 그 해에 신무왕은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성왕은 장보고의 딸을 두 번째 왕비로 삼고자 했지만, 신하들의 반대에 그 뜻을 접어야 했다. 이후 신라 조정과 장보고 간의 갈등이 표면화 된 것으로 보이는데, 846년 장보고가 청해진에서 반란을 일으킨 기록이 그 증거이다. (중략) 청해진이 있었던 장도에는 토성의 흔적과 건물지, 당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책의 흔적이 잘 남아있다. p 200



『삼국유사』에는 더 상세한 기록이 확인되는데, 헌강왕이 순행했던 장소가 개운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으로 놀러 왔던 헌강왕이 갑작스럽게 낀 구름과 안개 때문에 길을 잃었다고 한다. 이 현상이 동해용의 조화라는 이야기를 들은 헌강왕은 용을 위해 절을 지을 것을 명했는데, 이 절이 바로 망해사다. 그러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고 하여 개운포라 불리게 되었다. 이 때 사찰을 지어준 헌강왕을 위해 동해의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는데, 그 아들 중 하나가 바로 처용이다. p 312


이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봤을 때는, 신라 역사도 있겠지만 말그대로 신라왕릉 답사기가 주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책을 읽고보니 이 책은 신라왕릉으로 신라의 역사를 풀어내고 있었다. 내물왕릉 편에는 충신 박제상의 이야기와 박제상과 관련된 사적지가, 법흥왕릉편에는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 공인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차돈 무덤 추정지와 사당터 등이, 진흥왕릉편에는 백제와의 전투 및 가야정복, 가야금으로 유명한 우륵의 귀순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성왕릉의 호인상에 주목하며, 경주 도로공사 중 발견된 황금보검과 함께 신라가 실크로드를 통해 바다건너 국가와도 교역을 했던 글로벌 국가였다던지, 신무왕과 문성왕 때 해상왕 장보고가 어떻게 신라 조정에 들어가게 되고, 어떻게 죽었는지라던가 말이다. 



진심 이 책은 우리가 알아야 할 신라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하지만 역덕들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보았거나, 혹은 다큐로 보았던 신라의 숨겨진 이야기도 다룬다.




 



▶신라의 숨겨진 이야기

신라는 진한에서 시작되었다. 한원에 인용된 『괄지지』에 따르면 신라는 금성(서라벌)을 도읍으로 하는데, 본래 삼한의 옛 땅이라고 했다. 당시 경주에는 사로국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조선의 유민들이 육부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중략) 『삼국유사』에는 신모가 혁거세의 어머니로 등장하는데, 김부식이 송나라를 방문했을 때 우신관에 있던 신모의 상을 봤다고 한다. 당시 관반학사 왕보가 말하기를, ‘신모는 중국 황제의 딸로 진한으로 건너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해동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해동의 시조는 혁거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p 053~054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성모사가 서악의 선도산에 있다고 했다. 성모는 혁거세의 어머니로 사소 혹은 신모등으로 불렸다. 현 선도산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 옆에 자리한 성모사는 사소의 사당으로, 뒤쪽 바위에는 성모구기 각자가 새겨져있다. 이 밖에 성모사에서 350m 떨어진 봉우리에 성모유허지가 있는데, 관련 장소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 p 063



웅진성으로 피신한 의자왕은 웅진방령 예식의 배반과 함께 붙잡혀 항복했고, 8월 2일에는 나당군사동맹의 승전 주연에서 술을 따르는 모욕을 감내해야했다.(중략) 한편 백제의 멸망을 지켜본 무열왕은 661년 6월에 세상을 떠났고 뒤를 이어 태자인 법민이 왕위에 오르게된다. 이가 바로 문무왕이다. 문무왕은 무열왕에게 태종의 묘호를 올렸다. p 142



문무왕릉비는 신라 김씨의 기원을 투후에서 찾고 있어 주목된다. 투후를 언급한 금석문은 「대당고김씨부인묘지명」에서도 확인되는데, 비문에서 언급된 투후는 흉노족 출신의 김일제를 뜻한다. 또한 비문에는 태조 성한왕이 등장하는데, 투후와 성한왕 사이에는 ‘투후제천지윤전칠엽’이 새겨져 있다. 유득공은 ‘투후제천지윤전칠엽’을 세차를 서술한 것으로 인식했다. 이 경우 투후로부터 7대를 전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에 비문의 문맥을 고려하면 신라 김씨의 기원은 투후가 기준점이 된다. 그랬기에 앞선 김정희의 『해동비고』와 유득공의 『고운당필기』에서 신라 김씨가 김일제에서 시작한 것인지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중략) 금석문의 기록처럼 신라 김씨가 실제 흉노족의 후예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나,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도 가능하다. 예컨데 강인욱은 ‘신라 김씨가 흉노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언급한 것은 지배 구조의 확립에 따른 관점에서 시조를 윤색한 측면’이라고 강조한다. 즉,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에서 출자한 지배 구조가 있는 반면, 신라 김씨의 경우 지배 구조가 확립되지 않았기에 새로운 의미의 선민의식을 확립하기 위한것으로 보고 있다. p 157~158



난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 육촌장 그 중에서도 최소벌도리공 손에 길러졌다고 배웠다(그리고 지금도 학교에선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듯). 이렇게 배운게 당연한거였기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물론 설화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같은 느낌이었달까? 뭐 그렇게 나는 컸고, 이 책 저 책을 읽어보던 어느날  한국의 여신들에 대한 책을 읽다가, 신라의 여신인 성도산성모의 설화를 읽게 되었다. 어라, 이게 왠걸? 성도산성모가 박혁거세의 어머니란다. 비슷한 설화로 가야의 김수로왕을 낳았다는 정견모주 설화도 있다. 



뭐 여튼 이런 이야기는 조금 마이너한 부분이다보니 학교에서는 당연히 가르쳐주지 않고, 일반적인 역사 교양서에도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관심이 있지 않는 이상 평생 알지못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까지도 이 책에 담겨있다. 뿐만인가? 과거 KBS에서 유인촌의 역사스페셜을 시작으로 한창 역사다큐를 방영해주었을때 나왔던, 역시나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이야기들도 이 책에 담겨있었다.


(과거 KBS 역사다큐 시리즈: 유인촌 역사스페셜 - 고두심 역사스페셜 - 한국사전 - 역사추적 - 한상권 역사스페셜)



난 유인촌 역사스페셜부터 한상권 아나운서의 역사스페셜까지, KBS 역사다큐 시리즈는 쭉 시청했던 사람이다(영상파일도 전부 보관중♡). 당시 몇몇 방송들은 나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었다. 예컨데 의자왕이 내부의 배신으로 인해 당나라로 끌려갔다던가, 문무왕릉비에 흉노족을 시조로 서술했다던가, 대마도로 끌려갔던 조선의 공주가 있던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내용들은 당연히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으니, 궁금해도 더 알수가 없는 노릇이었었다. 다 크고 나서야 다른 역사책들을 보면서 ‘아! 이런 내용이 더 있구나!’ 하며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달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은 그런 부분들까지도 전부 언급하고 있다. 어째서 저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까지 말이다. 이 책을 한 15년만 빨리 읽었어도................내가 여러 책들을 전전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너낌적인 너낌. 허허허허.허허허.




 


 



정말 장점 수두룩한 이 책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바로 주석이다. 희태님은 머릿말에서 최대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다루고자 했고, 부정확한 오류를 담지 않기 위해 각종 문화재와 문헌자료, 연구자들의 학술자료들을 참고했다고 했다. 그 흔적들이 바로 저 주석들이다. 난 책을 읽을 때 주석이 달려있으면, 하나하나 다 읽어보는 편인데, 와. 희태님이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고심하고 또 고심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책 한권 들고, 경주 답사를 다시가야겠네?! 아.. 근데 뿡뿡이가 어느정도 클때까진 힘든가...........하 ㅠㅠ 뿡뿡아 빨리 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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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이 필요할까 - 장재인 시선 집
장재인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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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이자 싱어송 라이터 장재인. 그녀의 이름은 들어봤으나, 그녀의 노래는 나에겐 좀 생소하다. 아니 애초에 노래를 안듣고 산지가 너무 오랜세월인지라. 진짜 어쩌다 드라마 한번 꽂히면, 드라마 OST 정도나 들을 뿐, 그 외의 노래들은 나에겐 매우 어려운 분야다. 그래도..... 내가 읽은 에세이의 저자인만큼, 노래 한곡 정도는 들어본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필모를 열씸히 검색 검색 또 검색. 그러다 아는 노래 한 곡을 발견했다. 내가 정말 애정하는 드라마 『킬미힐미』의 OST ‘환청’. 이 드라마를 보면서, OST가 드라마와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에 엄지척!을 했었는데, 지금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들어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이 책에 깔려있던 그녀의 오랜 사유와 아픔이 저 노래 한곡에 담겨있는건 아닐런지, 하고 말이다.




나쁜 와중에도 찾아보면 하나쯤 좋은 게 있다며. 나에게 시작이 되어준 그 기회의 빛은 어디서 온 걸까. 그건 이 잠들기 중의 하루 훔쳐보기에 있었다. 하루를 훑다 보면 내가 좋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내 생각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해주는 촉매제들이 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것들을 마주한 일. 그것이 시너지가 되어 내 눈을 뜨게 해줬다. 하루하루를 훑어보며 나 역시 그들처럼 좋아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나의 하루들, 그 안을 이뤄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 역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p 031



시간이 꽤 흐른 요즘에 이십 대의 내 모습을 돌아보니, 그 날의 나에겐 매일 운동한 만큼 보기 좋은 건강함이 있었다. 이제는 보이건만, 왜 이전에는 온갖 부정적인 말이 앞선 모자란 ‘나’였을까? 왜 그런 ‘나’로 두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던 걸까? 그런 못난 형용사들은 단어 모양 그대로(이 단어들은 생긴 모양부터가 모나지 않았나!) 인간관계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아주 오래 나를 아픔 속에 내버려 두었다. p 038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십대란 상처와 아픔만 떠오르는 시간이다. 물론 그 상처와 아픔의 깊이는 각자 다르겠지만 말이다. 저자에게도 이십대는 상처와 아픔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상처와 아픔뿐인 이십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른인 지금과는 또 다른 긍정적인 ‘내’가 있었다. 그저 이십대였던 내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아마 서른이 된 수 많은 사람들이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당장 나역시도 그러하니 말이다. 이십대를 살았던 과거의 ‘나’는 매일이 힘들었고, 왜 나는 또래처럼 놀지도 못하고 회사에 치여 사는건지, 이놈의 회사는 왜이렇게 꼰대조직문화가 심한건지 매일매일을 힘들어했다. 헌데 서른이 넘어간 지금의 내가, 이십대의 나를 돌아보니 내가 생각한것 만큼 그렇게 힘든 삶도 아니었던거다. 오히려 취업이 잘 안되는 시기에 운 좋게, 어린나이에 대기업에 입사했고, 그저 또래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저 남들보다 어린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일종의 직장생활 첫경험으로 힘들었을 뿐이지, 오히려 취업이 된 것을 감사해야했던 부분이었다. 뿐만인가? 어느 조직이든 꼰대문화는 살아있다. 내가 그걸 몰랐을 뿐이다. 심지어 힘들어하는 내 옆에는 언제나 항상 내 편인 (구)남친(현 신랑)이 나에게 응원과 용기를 복돋아주었다. 그저 보는 시각만 조금 달리했으면 되었던것 뿐인데, 이십대였던 나는 어린 맘에 그러지 못했던 것 뿐이다.



그래도 이십대 후반에 진입하면서 조금은 달라졌다. 그저 내가 살기 위해서 보는 ‘시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나를 힘들게 하던 모든 일들이 꽤나 하찮게 보였다. 이런 하찮은 일로 왜 전전긍긍하며 살았는지. 덕분에 나의 삼십대는 이십대였던 나와는 달리 여유가 생겼다. 





 


엄마와 나는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잘못한 이로 만들고, 나쁜 아이로 만드는 엄마의 화법에 고등학교 1학년이 됐을 무렵엔 엄마를 향한 모든 기대와 애정을 놔버렸었다.(‘어머니’라고 부르며 완벽하게 감정을 절단시킨 채, 마치 타인인것처럼 예를 갖춰 대했다. 그 어떤 마음과 기대도 없는 채로.) 나는 정말로 스물 세 살 이전까지 단 한번도 화를 내본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된 엄마의 화법에서 부당한 것에 대해 나의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을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다. p 058



엄마는 미래에 다가올 우리를 향한 편견(그 시절엔 더욱 심했던)과 한부모 가정이란 타이틀을 자식들에게 주고 싶지 않아 아픔 속 인내를 택했다. 우리는 괜찮았는데. 지금도 말이지. 그런 타이틀은 하나도 두렵지 않아. 그렇기에 나는 반드시 둘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드시 둘이어야 올바르게 자라고, 감정이 잘 채워진다 생각하지 않는다. p 097



내가 뭘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정말 그것만을 알기 위해 하루를 보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고 자꾸만 돌아가려는 관성도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완화되는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방금 감은 머리를 역시나 말리지 않은 채 타자를 두드리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보단 내가 뭘 싫어하는지 아는 게 더 명확하지 않을까?’ p 112



아무래도 예비맘이 된 이후로 육아와 관련된 매체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은 문제행동이 많은 아이들의 원인은 부모라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아이의 성장과정이 달라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물론 아이들의 기질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제일 중요한건 부모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부모는 그닥 좋은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런 부모밑에서 잘 커준 저자가 대단하다고 칭찬받아야 할 정도랄까? 내 아이가 고학년 선배들에게 괴롭힘을 받았는데, 내 엄마가 내편이 아닌 ‘니가 잘못한거 아니야?’라고 말했다면 나 역시도 저자처럼 부모의 애정을 포기했을 것이다. 오히려 저자처럼 성장하기보다는, 엇나갔을지도. 물론 저자의 엄마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는 점은 참작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 아이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것은............ 저자의 결핍은 아마 여기서 시작된게 아닐까?



어린날의 슬픔과 아픔, 결핍은 성인이 되어서도, 한 사람을 잠식하고 힘들게 하는데, 그 시작이 부모라는 점은 더더욱 본인을 옭아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저자는 부모를 사랑한다. 나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선, 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반드시 치유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서 그래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치유하는 과정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정말 존경스럽고 멋지다. 



그래도 저자는....한번 오은영 박사님과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T_T;




 


당시 스물셋, 만 스물하나의 나는 산부인과를 가본 적이 없었다. 굳이 가야 할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고 분명 나도 꺼리는 마음이 있었을 거다. 나는 산부인과 검사를 하기로 마음 먹고 병원에서 검사를 신청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내가 임신 중단을 했다는 루머가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짧고 간단하고 누구나 하는 기본 검사가 왜 그런 형태로 발전한거지? 대응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소문이 이런 식으로 나는 거구나 하고. p 218



여성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병원이 있으니, 바로 산부인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린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들어가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의 경우는 대중에게 노출된 가수였기에, 그 시선이 아주 황당한 루머로 이어지기도 했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 산부인과 가는 것을 너무나 꺼려했다. 생리통이 그렇게 심하고, 심지어 기절까지 했던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산부인과라는 곳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의문점이 생겼다. ‘산부인과는 여성이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일생을 찾아야하는 병원인데 왜 어린 여성이, 미혼여성이 가면 안되는 듯한 시선으로 보는걸까?’ 하고 말이다. 물론 난 그 이후부터는 문제만 생기면 산부인과에 들락날락 하곤했다. 내가 아프다는데 뭐 어쩔꺼야?



오히려 어린 여자아이가, 미혼 여성이 산부인과를 가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그런 시선을 만든 이 사회가 비정상일뿐이다. 



저런 비정상적인 시선들은 사회 곳곳에 깔려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건지, 아니면 쓰잘데없는 오지랖이 넓은건지.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그런 관심과 오지랖이 들이 한데모여, 부정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옛날에 비하면 나아진 편이라고는 하지만, 도찐개찐이라고 해야할까.



이 책을 다 읽고보니 저자가 어떤 삶을 걸어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앞으로 ‘환청’이라는 노래를 듣게되면, 그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OST가 아니라, 가수 장재인의 노래라는 사실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아마 장재인이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저 노래를 저렇게까지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다만, 앞으로 장재인의 음악이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잠긴게 아니라, 조금씩이나마 흩어져, 그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음악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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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 우리는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리는 것뿐인데
아방(신혜원)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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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임산부가 되고 보니,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조차 힘들어서 이제 독서는 언감생심이다T_T. 그럼에도 1주일에 한 권은 읽어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저 노력일 뿐. 하. 앉아있는것도 힘들고, 누워있는 것도 힘들다보니 이런 에세이조차도 읽는데 오랜시간이 걸렸다는게 함정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꿋꿋하게 다 읽었다는 나에게 박수를!!




오늘 리뷰를 올리는 이 에세이 『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는 표지 삽화부터 톡톡튀는 것이, 꼭 이 시대의 청춘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저자 필명이 ‘아방’인데. 혹시 아방가르드의 그 아방일까? 뭔가 책 곳곳에 실려있는 톡톡튀는 삽화들도 그렇고 말이다. 이런게 바로 아방가드르하다는 뭐 그런 너낌적인 너낌인가! 물론 난 아방가르드의 정확한 정의는 모르지만, 하하하.하하하ㅏ...하하.



확실한건, 저자는 청춘을 그림에 바친, 10여년 째 그림을 그리고, 그림 수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은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명화(?) 라던가, 그런쪽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흔하디 흔한 일러스트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뭐랄까, 독창적인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물론....난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상권이 말을 들으니 알 것 같다. 왜 스친 미술학원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그럴 거면 안 가는게 낫겠다고 생각한 건지. 하고 싶은 대로 못 해서였다. 그냥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건데 이래라저래라 잔말이 많았다.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게 내버려 두질 않았다. 못 그려도 즐겁게 그리던 마음이 꼬맹이 시절 동네 미술학원과 학교를 거치면서 쪼그라들었다. 노란색 돌멩이를 보고 멋지다고 말해주는 이는 왜 없었을까? 태어났을 때는 모두가 예술가라 했것만 이런 확경 덕에 예술성을 더 발휘하지 못하고 무난하게 자란 것이다. p 024



누군가 전화로 “수업은 작업실 같은 데서 하나요?”라고 물으면 “홍대 술집이요”라고 말할 때 너무 재밌었다. “술집이요?” 하고 한 번 더 되물으면 자신 있게 “네, 술집이요!” 하고 다시 대답할 때 나는 굉장히 도도하고 자신감 넘쳤다. 가끔 대관이 어려울 때는 멤버 아버지 회사에 딸린 직원 휴게 공간, 멤버가 다니던 피자 회사의 가맹점, 멤버 집에서 경영하던 디자인 카페에서 수업을 한 적도 있다. 덕분에 아주 다양한 곳에서 수업을 진행해보았고 장소마다의 장단점과 특징을 살려 멤버들과 소통하는 경험도 늘었다. p 058



확실히 이 에세이에 실려있는 저자의 그림들을 보면 ‘다르다!’ 라는 느낌이 든다. 기존에 보던 일러스트와는 다른 느낌이랄까? 



간혹 인★ 돋보기를 보다보면 수많은 일러스트와 일상툰들이 많이 뜨는데, 분명 그리는 사람이 다르므로, 일러스트도 다른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적이 많았다. 다들 같은 학원(?)에서 배웠던건가 싶은 생각도 들기도 했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거나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제 3자의 입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다 똑같은건지(?) 그림을 그리는 저자의 눈에도 다 똑같아보였나보다. 



생각해보면, 어렸을적 내가 다니던 미술학원도 획일적인 미술수업을 했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혹은 당신이 그린 풍경화를 보며 따라 그리라고 한다. 그 풍경화를 보며 그린 내 그림과 당시 학원에 있던 다른 애들이 그린 풍경화는, 분명 서로 다른 사람이 그린 다른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같은 느낌이 들었더랬다. 같은 풍경화를 보며 그려서 그런건지, 아니면 당시 미술수업을 하던 선생님의 지도방식이 획일적이었던건지. 어릴때부터 나름 오래다니던 미술학원이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학원을 다니면서 그림 그리기에 대한 내 마음은 점점더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그림그리기에서 멀어지며, 그렇게 오래다니던 미술학원을 때려쳤고, 반대로 내 마음가는대로 할 수 있는 공예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후 각종 공예를 섭렵한건 더 나중의 일.



반면에 획일적인 미술수업(?)을 거부하던 저자는 그림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의 그림 철학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오롯이 자신만의 그림, 누군가의 그림과 비교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갈 수 있도록 오픈형(?) 미술수업까지 시작! 만약 내가 저자에게 미술수업을 받았다면, 그림그리기라는 취미를 그렇게 단칼에 버리지는 않았을텐데^_T...



모든 그림은 장점이 있다. 못 그리는 게 아니고 장점을 발견하지 못한 거다. 자기 그림의 장점을. 하도 사람들 그림을 많이 봐서 그런지 남의 그림의 무수한 장점과 특징은 잘도 알아낸다. 문제는 내 그림의 장점을 찾는게 어렵다. 아니 왠만큼 뭔지 알고는 있으나 수시로 잊어버린다. 다 그런가 보다. 내 건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p 073



근래 내가 들은 수백 마디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해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다. 최근에 만난 친구들은 사진작가, 대기업 디자이너, 도시공학 박사, 영상 디자이너, 출판사 직원의 신분으로 다양하게 살아가는 30대다. 요즘 우리의 대화는 “뭐 먹고 살지?”로 시작해서 “그러니까 뭐 먹고 살지?”를 거쳐 “그래서 뭐 먹고 살지?”로 똑같이 끝난다. 뭐 하면서 먹고 살지? p 106



- 다음은 2020년 2월의 메모.


걸핏하면 길을 잃는다.


아니면 길을 자주 찾기 때문에 그만큼 자주 잃어버리는 걸까.


아니면 너무 많은 갈래의 길을 가졌나.


아니면 이 길에 대한 확신이 두텁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사실 길이 아니고 왜 가야하는지 이유를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애초에 길이 없었던 걸까. p 107



내 그림의 장점 찾기. 다시말하면 ‘나의’ 장점 찾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특히나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사는 요즘 2030 청춘들은 더더욱. 계속 포기하는 일이 늘어나다보니, 장점은 커녕 자기의 단점만 더 크게 보이고, 단점만 보다보니 자존감이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 슬프지만 이게바로 현실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에 계속 빠져있다보면, 삶은 더더욱 우울해지고 피폐해지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렇기에 더더욱 나만의 장점을 찾아야한다.



매일 나의 장점을 한가지씩 적어보거나, 매일 내가 잘한 행동을 하나씩 칭찬하거나, 뭐 이런식으로. 그렇게 매일을 반복하다보면 적어도 힘든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 스스로를 인정하다보면, 그토록 찾아해메던 길이 내 앞에 나타나지는 않을까?




 


지금까지 한 가지를 착실하게 해온 이유는 그만두고 다른 걸 할 용기가 없다는 것 외에 하나 더 있었다. 열정이 남아있어서다. 그림에 10년간 정성을 쏟고 기꺼이 소중한 것을 내어주며, 무언가를 아끼지 않았던 건 열정 때문이었다. 열정이란게 있기 때문에 시간과 돈의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열정은 청춘을 대표하는,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빨간색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하는 작은 불씨, 최소한의 연료랄까? p 143



한 가지를 10년간 해왔다는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나는 한 회사를 무려 12년간을 다녔다. 아니, 아직도 다니는 중이다. 내 적성에 맞는 일도 아니었고, 이렇게 오래할 생각도 없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년을 근무할 수 있었던건 무엇이었을까. 아마 나 역시도 이 일을 너무 오래해서 다른 걸 할 용기가 안났던게 첫번째고, 나름의 대기업이라 남들보다도 더 빠르게 돈을 모을 수 있다는게 두번째일 것이다. 일에대한 열정은 없었지만, 그 일에 대한 보상으로 들어오는 월급을 모으는 열정이 있었고, 빠르게 돈을 모아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정 때문이다.



조금 슬픈 사실은..... 이렇게 12년간 착실히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내 20대는 회사생활을 제외하면 남는게 없다는 것. 또래들이 놀러다닐 때 조차도 나는 회사에 있었으니까! 물론 그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 덕분에 나는 또래보다도 빠르게 집도, 차도, 결혼도 모든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30대가 된 지금은 아이를 잘 키워야한다는 새로운 열정의 씨앗이 움텄기 때문에, 아마 난...... 이 회사를 또 10여년은 계속 다닐 것 만같은 불안한 예감이 드는건 왜일까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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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쓰는 날들 - 어느 에세이스트의 기록: 애정, 글, 시간, 힘을 쓰다
유수진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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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읽은 에세이들은 대부분 여행을 주제로 한 것이 많았다. 여행에세이에 질려가는 와중에, 간만에 잔잔하게 흘러가는 에세이를 읽었다. 얼마전에 출간된 에세이 『나답게 쓰는 날들』 이다. 저자 스스로도 본인을 ‘에세이스트’라 칭하는, 이 책에 실려있는 글들은 그야말로 ‘에세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글이었다. 





살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일상이 저자에겐 글을 쓰는데 있어서 특별한 주제나 다름 없었다. 나역시도 문득, 내 일상을 글로 써내려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진 않았지만, 나 따위가 무슨 글을 쓰겠냐는 생각이 들어 얼른 접었더랬다. 헌데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굳이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나를 위해 나만의 글을 쓰는 정도라면... 지금이라도 한 편씩 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의 ‘이미지’라는 건, 사실 연예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자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도 조금 더 두드러졌으면 하는 모습과 덜 두드러졌으면 하는 모습이 있기 마련이니까. 문제는 이 이미지라는 게 주로 우리 스스로에 의해 씌워진다는 것이다. p 036



사람마다 가질 수 있는 캐릭터가 여러 개임을 인정하면, 우리의 일상은 조금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강한 사람을 지향하지만, 원래 강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약하디 약한 사람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p 038



가끔 주변에서 ‘너 답지 않아’ 라는 소리를 들으면,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한다. ‘나 다운게 대체 뭐지?’ 나는 3n년을 살면서도 지금까지 나 다운게 무엇인지, 나라는 인간은 어떤 인간인지 정의를 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나를 모르는데, 왜 주변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보고 ‘나 답지 않다’고 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생판 남인 그들은 나를 그렇게 잘 안단말인가? 하지만 실상은, 그들 역시 나를 잘 모른다. 그저 그들은 나를 보면서, 본인들이 보고 싶은 ‘이미지’에 나를 끼워맞추고 있을 뿐이다. 본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람에겐 단 한가지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로봇이 아닌이상에야, 이런 모습도 있는가 하면, 저런 모습도 있다. 하지만 꼭 사람들은 어떠한 성향에 자신을, 또는 타인을 맞추려고 한다. 그에 부응하기 위해 mbti같은 각종 성향테스트가 유행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성향테스트가 정말 정확했다면, 우리가 인간관계를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저 한 사람에 대해, 본인이 정한 틀에 맞추지 말고, 이 사람에겐 이런 면모가 있구나, 저 사람에겐 저런 면모가 있구나- 하고 인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정도까지만 해도 세상사는데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최근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이 긴 글을 읽지 못하고, 어휘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가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주로 짧게 편집된 영상들을 자주 보다 보니, 계속 해서 짧은 콘텐츠만 소비하고 있음을 느낀다. 문해력은 단순히 긴 글을 잘 읽고 못 읽고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에 대해 스스로 가치 판단하는 역량과 자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비판할 수 있는 역량 등 무수히 많은 문제를 포함한다. 문해력은 곧 나의 삶을 살아가는 능력이다. 나는 그래서 청소년들이 꼭 글을 쓰면 좋겠다. p 090



내가 이 에세이를 읽기 전에 읽고 있던 책이 있었다. 조만간 리뷰 예정인, EBS에서 출간한 『당신의 문해력』 이란 책이다. 그 책을 읽으며, 요즘 학생들이, 아니 학생을 포함하여 2030 젊은 세대들의 문해력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놀랐던지. 젊은 세대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 심각한 수준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뭐, 잘 생각해보면 내 블로그에도 간혹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니 문해력이 없는 사람들의 덧글이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내 포스팅에 아주 분명하고 자세하게 내용을 적어놨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내용을 물어보는 댓글을 다는 핑프들이 종종 나타났다. 그러니까, 이 핑프들은 긴 글은 읽기 싫으니, 덧글로 한줄 요약해달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블로그 포스팅 글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그것조차 읽기 싫어하는 것을 보면 참- 심지어 이런 핑프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요즘 세대들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해력에 대해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추후 관련 포스팅을 할 예정이므로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취업 준비생 시절에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로 찾은 게 독서였다.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 책은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있고, 직장인이 된 후로 돈이 드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서도 독서를 멈출 수 없었다. 독서의 진짜 매력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p 126



취미는 그저 시간을 때우거나 즐겁기만 한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무엇인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푹 빠질 수 있다는 건, 작가 사사기 쓰네오의 말처럼 ‘어떠한 일의 무게를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취미를 갖는다는 건, 점점 더 깊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p 128



저자의 말처럼 ‘독서’는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이다. 더 나아가서, 독서는 위에서 언급한 ‘문해력’을 기르는데 최적의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고, 또다시 문해력 이야기!..........는 여기서 패스하고!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취미를 찾아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에서 ‘ㅇㅇ키트’ 같이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을 구매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아졌다. 뭐, 그런 키트조차도 스스로 구입한거니, 직접 찾아낸 취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솔직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보통 저렇게 손쉽게 취미생활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고싶다는 이유로 여러 장르의 취미생활을 구입하곤 한다. 그게 과연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취미생활’이라는 정의가 바뀌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일까. 



나도 분명 나이대로 보면 요즘 젊은세대라 할 수 있는데, 참 이상하게도...... 내가 아닌 또래나, 어린 사람들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끝나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나는 우리가 다시 가까워지기 전에 우려되는 것들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일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굳이 남의 몸을 세게 밀치며 접촉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몸이 밀려나 분해도 ‘사람이 많으면 그럴 수도 있는거 아니에요?’ 라고 한다면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몸을 밀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저 사람의 몸과 닿지 않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그전에도 부딪히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p 137



난 개인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꽤 반겼던 사람이다. 워낙에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다보니, 더더욱 그랬다. 실제로 보면 코로나 이전에는 정말 필요 이상으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본인이 가까워지고 싶다면, 가까워지고픈 그 사람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하거나, 양해를 구해야하는데 그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그들이 굳이 가까워지려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다. ‘그러고 싶으니까’. 이런 모습들을 보면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이, 아이들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진 지금, 저런 몰상식한 어른들이 다시 나올까 두렵다. 



요즘 아이들이 읽는 책 중에는 사람간의 적당한 거리(경계선)에 대한 동화책도 많다고 한다. 이런 경계선 동화책은 아이들이 아니라, 머리만 커버린 요즘 어른들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서른이 넘어가고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알고 지낸 사람들이 꽤 많이 쌓였다. 그러면서 때로는 내가 가진 명함이나 전화번호의 수가 열심히 살았다는 징표 같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 친구 목록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관계의 총량이 가득찼다는 생각이 들었다. p 141



이 구절을 읽고, 내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살펴보았다. 우와, 사람 참 많다. 근데 태반이 회사 또는 거래처 사람이다. 정말 지우고 싶은 사람들이지만, 회사생활을 하는 한 지울수 없기 때문에 계속 가지고 가는 친구목록인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좁은 인간관계를 지향한다. 친구라고 칭하는 사람도 진짜 소수의 인원밖에 없다. 이름만 아는 사람은 친구라 생각하지 않기에, 주기적으로 연락처에서 지우곤 한다. 가족에 대해서도 예외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난 내 엄마아빠에게도 그런데, 다른 친척들에게는 어떻겠는가. 심지어 누군가가 내 연락처를 남에게 함부로 알려주는게 싫다. 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즉,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관계의 총량은 정말 좁다. 많이 쳐줘봐야 서른명 내외? 



1n년간  회사생활을 해왔지만, 퇴사를 한다면 1순위로 해야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서른명 내외의 사람들에게만 내 번호를 알려주는 것! 다만 언제쯤 이뤄질지는....잘........^_T.....



내가 항상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은 취업 준비생 시절부터였다. 1일 1이력서를 제출해야 내일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잠들 수 있기 때문에 1일 1이력서는 내 나름의 규칙이었다. 채용공고를 찾지 못한 날이면 심한  우울감을 느꼈고,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 게으름이라는 벌레에 물릴까 봐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인 덕분에, 결국 취직도 하고 많은 프로젝트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조차 내려놓고 공활한 가을 하늘을 즐길 줄 아는 여유도 필요하다. p 207



항상 움직여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나에게도 있었다. 다만 저자랑 이유는 조금 다르다. 그저 학교 졸업후 운 좋게 나름 대기업인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여 쉼없이 1n년간 달려오면서, 그 1n년간 학습된 강박관념이었다. 남들은 청춘이라는 20대 초반부터 난 이 회사에 얽매였고, 30대가 된 지금까지도 얽매여있다. 물론 이 사실이 싫다는 건 아니다. 덕분에 또래보다 내집마련도 월등히 빨랐고, 내가 원하는 삶을 더 빠르게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까지 계속 쉼없이 달려오다보니,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잊었다. 뭐.. 잊은건지, 처음부터 몰랐던 건지는 알수 없지만.



회사에서 휴직을 한 후, 난생 처음으로 길고 긴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휴직 전까지만해도 빨리 휴직 당일이 되길 바랐것만, 막상 쉬기 시작하니- 집에서 난 무엇을 해야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내 생체리듬은 오랜기간 회사생활로 인해 새벽같이 눈을 뜨는데, 그때부터 잠잘때까지 난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약간의 우울감(?)까지 왔고, 그렇게 한달을 버티고 나서야, 그때서야 온전히 ‘쉼’과 ‘여유’를 받아들였다. 



굳이 아무것도 안해도, 내가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저 가만히 있고, 주위 환경을 둘러보고, 창 밖 하늘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한달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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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잘 있습니다 - 엄지사진관이 기록한 일상의 순간들
엄지사진관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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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제주살이 에세이 「제주는 잘 있습니다」. 서울을 떠나 제주에 터를 잡은 저자가, 제주에서 살면서 써내려간 에세이다. 처음에는 제주여행 에세이인가? 싶었다. 제주 여행 에세이도 여러권 읽어봤기에, ‘제주’라는 단어만 보고 지레짐작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책은 ‘제주’보다는 ‘있습니다’에 방점을 찍은 책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제주도민이 제주에 살면서,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혹은 여행자로서 제주에 왔을 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한줄 한줄 써내려간 에세이다.



가끔 내가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되면, 자연스레 이방인의 입장으로써 그 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가끔은 이방인이 아닌, 그 곳에 살던 원주민의 삶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욕구를 조금이나마 충족해준다. 읽다보면 제주 한달살기도 고려해보고 싶을정도로!


 



나는 줄곧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제주에 처음 입도해서 지내는 동안 내 기분은 자주 태도가 되었다. 전보다 더욱 예민해져 때로는 나조차 나의 예민함이 어려웠다. 제주와 서울의 시간은 상이하게 흘러간다. 천성이 부지런하다 못해 일하다 죽을 팔자인지 나는 느리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나태함을 견디지 못했다. 고요함에 적응하며 이제는 오후 7시 10분이면 집에 들어오는 일상을 보낸다. p 054



누군가는 나의 표면만 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이미 나는 충분히 혼자만의 새벽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타인에게 하나하나 노출하지 않을 뿐이라는 말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는다. 어설픈 조언이라면 가슴에 새기고 상처받지 말고 적당히 흘러 듣는 편이 좋다. 이제 ‘그냥 너나 잘하세요’ 하고 넘길 수 있는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p 199



여행지로써의 제주는, 하루하루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가야할 곳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지가 아닌, 내가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제주는 전혀 달랐다. 간혹 TV에서 제주에 사는 연예인들이 하는 말,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제주. 그 여유를 저자가 느끼고 있었다. 물론 서울살이 하다가 제주로 건너갔을 때, 그 여유에 적응을 못했다고 한다.



문득 (산전)육아휴직을 하고 반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돌아봤다. 나 역시 저자처럼 부지런하다못해 일할 팔자로 태어나서,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서 1n년간을 쉼없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회사를 오래 쉬어본 적이라고는 결혼할 당시 신혼여행갔을 때? 물론 어디까지나 회사를 오래 쉬었던거지, 당시엔 신혼여행을 즐기느라 역시나 여유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길다면 긴 (기간한정;;)여유가 생긴 것이다.



휴직을 시작하고 첫 한달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오랜기간 회사생활에 맞춰진 내 몸뚱아리는 아침 6시만 되면 눈을 떴고, 눈을 뜬 그 시간부터가 고난이었다. 1n년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회사 출근을 하며, 바쁘게 살아오면서 짬나는 시간이라곤 커피마시는 시간밖에 없던 나였으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니 시간은 더디게 가고, 더디게 가는 시간동안 나는 뭘 해야할지 모르겠고. 그때서야 깨달은 사실은, 나는 제대로 쉬는 법을 몰랐고, 나에게 찾아온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몰랐던 거다. 그걸 깨닫는 순간 우울증 비스무리한게 오기도 했다.



휴직하고 두달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여유를 즐기는 방법은 아직 찾지를 못했다. 다만, 긴긴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지 시간대별로 계획표를 짠 덕분에, 내 하루를 체감하는 시간이 꽤나 짧아졌다. 다만 여유도 즐길 줄 알아야한다는 생각에, 각 계획 사이사이에 쉬는시간 20~30분씩 조금 길게 넣었다. 난 천성이 무언가를 하고,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계획표를  짜서 루틴을 만들고 나니, 휴직 후 한달이 지나서부터는 우울증이 무엇인가? 아주 루틴대로 하루하루 잘 돌아가는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던데, 놀랍게도 머문 자리가 아름답지 않은 경우도 많이 목격된다. 쓰레기통이 드문 것도 단점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21년 여름에 이호테우 해변이 쓰레기 무단 투기로 인해 쑥대밭이 된 모습을 소셜 미디어로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지나온 자리를 돌아봤을 때 뿌듯함을 느낄 이들이 늘기를. 혹은 누군가가 더럽힌 자리에 들어설 때 느낀 불쾌함을 상상해보기를. 배려라는 생각보다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p 063


제주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다. 그만큼 사람들도 많이 찾아간다. 나 역시도 제주를 수차례 방문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좋지 않은 광경이 목격되기도 한다. 나같은 여행자 눈에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그런 광경이, 제주에 사는 저자에게는 자주 보였으리라.



본디 제주는 자연경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인데, 그런 곳에 쓰레기를 그냥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생각보다 많다. 나 어릴때는 쓰레기 불법투기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 보면 거의 대다수가 그렇다. 비단 제주 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 여기저기를 봐도 그렇다. 어쩌면 다들 그렇게 자기 편한 생각밖에 못하는지.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자기가 챙겨오는게 당연한거라 생각하는 내가 우스워질 정도로 말이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인성교육의 부재인가 싶기도 하다. 더 슬픈건.... 앞으로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다. 쓰레기를 아무대나 버리는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은 그게 당연한 것이라 배울테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마음 맞는 사람보다 맞지 않는 사람이 더 선명히 보이고, 나를 지키기 위해 사소한 부분에서도 까탈을 부리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혼자가 좋을지라도, 대체로 홀로 시간을 보내더라도 우리는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친구나 사람의 소중함을 오롯이 혼자가 된 이후 제대로 깨달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구나. 사람으로 버텨가는 것이구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마다의 위로를 건네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생긴다. p 161


정말 인간관계는 어렵다. 난 그런 인간관계에 넌덜머리가 났던 사람인지라, 내가 마음을 준,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몇 안된다. 같은 학교 나왔다고 전부다 친구는 아니지 않나? 그저 동창, 지인일 뿐이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몇몇의 친구를 제외하곤, 허울뿐인 동창이나 지인은 싹 정리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편하던지!



개인적으로는 가족이라 일컫는 친인척 관계에도 굳이 얽매여야하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다. 우리 할머니 세대까지만해도 사촌에 육촌, 부둥부둥했겠지만, 아니 부모세대까지도 그랬겠지만 내 세대는 아니다. 일년에 한번도 볼까말까한 사이인데, 그저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좋게봐줘야 한다는 사실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행실이 별로인데도 말이다. 


다만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니, 그저 내 옆에 내가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만 있으면 무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않을까? 




“왜 제주에 오셨어요?”, “요즘 즐거운 일은 뭐에요?”, “제주를 왜 좋아하세요?”

숱한 여행을 다녔지만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게. 나 왜왔더라. 사실 그냥 이유가 없는 것이 이유이기도 했다. 

“이유가 없어요.”

“어쩌면 모든 일은 이유는 없어도 연관은 있을 거에요.” p 171


“취미가 있으세요?”

“저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합니다.”

“얼마나요? 얼마나 오래 찍었어요? 정말 좋아해요?”

“네?”

그 길을 걸으며 연달아 받게 된 질문들은 하나같이 당황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모호하고 감성적인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고, 하루에 백장 정도 사진을 찍을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다는 정량적인 수치를 몯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진’에 관한 나의 진심이 궁금해 던지는 질문이었다. 개인적인 호불호가 지극히 약한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좋아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에 관한 진심을 묻는 듯 하여 나도 모르게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p 129


저자의 일화를 보고, 누군가 나에게 ‘진심’을 물어본 적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와, 놀랍게도 없는 듯?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내가 왜 역사를 좋아하는지, 내가 왜 책을 좋아하는지 등을. 아- 근데 막상 생각해보니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대체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걸까? 뭔가 계기가 있었을법한데 말이다.



심지어 나는 한번 좋아하면 꽤 오랜시간을 붙들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것들까지 좋아하고 심지어 공부도 한다.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십수년간을 좋아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에서 파생된게 내 취미가 되고, 그 취미도 또 십수년간 이어진다. 요즘같이 클릭 한번으로 다양한 취미를 살 수 있는, 취미부자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흔치 않는 모습이긴 하다. 



뭐, 그래도 어쩌겠나. 좋아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좋아하는걸?





그나저나! 한동안 가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언제나 가고 싶은 여행지 제주는.............언제나처럼 잘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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