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생공부 - 천하를 움직인 심리전략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나관중 원작 / PASCAL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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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인문학책 『삼국지 인생공부』는 ‘삼국지’ 등장인물을 통해 그들을 재조명하고, 그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배워야할 점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이제 막 사회를 나온 20대 사회초년생부터 시작해서, 이제 막 회사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30대, 관리자가 되어 부하직원을 거느리는 40대 이상까지 모두에게 추천하는 인문학책이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 주의사항이 있다. 


이 책은 제목부터 ‘삼국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저자가 인용한 삼국지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아닌, 나관중이 집필한 소설 《삼국지연의》다. 뭐, 그럴 수밖에 없다. 정사 《삼국지》는 말그대로 역사책인 반면에, 《삼국지연의》는 기존 삼국지를 토대로 인물들에 입체감을 불어넣어 집필한 역사소설이니까. 심지어 《삼국지연의》 속 인물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주옥같은 명대사가 즐비하는 건 물론이오(여기서 파생한 사자성어가 몇 개인가), 영화로도 만들정도로 극적인 전투장면이 몇 개인가! 그렇다보니 제 2, 3의 컨텐츠를 만드는 원본으로는 《삼국지연의》 만한게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점만 잘 이해하고, 이 책 『삼국지 인생공부』를 읽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여나 역사 속에서도 정말 그랬을거라고 생각하는건, 명백한 역사왜곡이니 말이다(흔한 역사더쿠의 우려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인물상이 있다. 오로지 기회만 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을 우선시 하는 사람도 있고, 내편이든 아니든 나에게 도움만 된다면 무엇이든 사용하는 실용주의자도 있다. 또 한 쪽에서는 사람의 됨됨이를 우선시하고, 도덕성을 중시하며, 사람간의 신뢰와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삼국지연의》 속에는 이 모든 인물 군상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속에서 내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다름아닌 이 책을 읽는 본인의 몫이다.



여포는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무장 중 한 명이었지만, 끊임없이 주인을 배신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엔 동탁을 배신하고, 이후 왕윤을 배신하며, 결국 조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조조는 그의 무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배신의 전적이 많았던 그를 끝까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포가 포로로 잡혔을 때, 조조의 부하들이 “그의 무예가 뛰어나니 부하로 삼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건의했지만, 조조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자는 절대 내 곁에 둘 수 없다.” p 054


숫한 게임 속에서도 만능캐로 그려지는 여포. 그토록 능력이 출중한 여포였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자기 성공을 위해선 끊임없이 배신을 했던 위인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기회주의자’다. 오죽하면 인재라면 적군이라도 포섭하는 실용주의자 조조마저도, 여포에게는 일절 기회를 주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단죄(또는 단절)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회사생활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그나마 여포는 능력이라도 출중했기에 여기저기서 쓰임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기회주의자들은 능력조차 없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한다. 흔히 말하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족속들이 여기에 속한다. 능력없이 라인타기로 관리자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조직은 희망이 없다.


최근 십 년 간 팀/부서 또는 회사가 발전할 희망이 없어서, 미래가 불투명하여 퇴사를 선택하는 유능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렇게 인재가 떠나가는 이유를 대다수가 알고 있다. 아이러니한건 꼭 조직의 장이나, 의사결정권자들만 그 이유를 모른다. 왜? 그들은 앞서 말했듯, 대게 능력보다는 기회를 엿보며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날 마속은 처형되었고, 제갈량은 아무 말 없이 그의 무덤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다’라는 의미의 고사성어 ‘읍참마속(원칙과 대의를 위해 사적인 정을 버리거 엄격한 결정을 내린다)’이 유래되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신하들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 “진정한 관계란, 감정으로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법과 원칙을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결국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p 086



삼국지를 통틀어 유비는 민심을 얻는 데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군주였습니다. 조조는 강력한 군사력과 행정 능력을 바탕으로 북방을 통일했습니다. 그는 능력주의를 강조하며 신하들에게 기회를 제공했고, 실용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잔혹한 통치자’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며, 그의 정책은 백성들에게 강한 압박을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유비는 특정한 지역적 기반 없이 떠돌이 신세로 시작했음에도 도덕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며 군주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유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민심’이었습니다. 그의 세력은 명문 가문의 후광이나 강력한 무력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신뢰와 충성심을 바탕으로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군주들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p 075 ~ 076



제갈량은 한동안 유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유비가 단순한 야심가가 아니라, 직접 눈보라를 헤치고 자신의 초가집을 찾아와 거듭 진심으로 호소하는 정성과 인품을 갖춘 진정한 군주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유비가 자신을 얻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왔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침내 제갈량은 길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이제야 천하를 도울 때가 온 것 같습니다.” p 139


능력과 실용을 중시하는 조조의 리더쉽과, 도덕성과 신뢰, 윤리를 중시하는 유비의 리더쉽. 어떤 리더쉽이 더 좋은가? 행여나 《삼국지연의》 처럼 유비에게 몰표하는 그런 만행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대에 따라서 바라든 리더상은 조조일 수도 있고, 유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일 좋은건 조조와 유비의 리더십이 절충되는 것이다. 유비의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능력과 실용을 찾는 리더야 말로 더할나위 없는, 누구나가 바라는 리더다. 


하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리더들은 말로는 유비를 따라한다고 하지만, 늘 조조의 리더십을 따라간다. 부하직원의 실수를 꼬투리잡아 끝까지 책임을 묻는 리더와 담당자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고, 부하직원에게 다시한번 신뢰를 보이며 다시금 기회를 주는 리더. 과거에는 전자에 속한 리더도 많았으나, 최근 십 년간 후자에 속한 리더들이 넘쳐났다. 더한 리더들은 책임 묻는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이 타 팀/부서에게 공격을 당하든 말든 방관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조조, 유비를 언급하기 조차 미안해질정도다. 


다시 말하지만 제일 좋은 리더쉽은 조조와 유비의 리더쉽이 절충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제갈량처럼 세워진 ‘원칙’을 준수하고, 지키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리더쉽의 시작이다.


장료는 합비 전투에서 손권의 대군을 상대로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습 작전을 감행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조운은 장판파 전투에서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여 주군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최선의 선택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p 190


앞서 리더쉽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엔 조직원의 책임과 의무다. 조운의 장판파전투는 그야말로 조직원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일화다.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다닌 회사에 입사한 20대를 보다보면 혀를 차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내가 본 20대 대다수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만을 행사하고자 했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는 다할 생각조차 없었다. 오히려 본인이 왜 해야하는지를 반문한다. 거디다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열을 이야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비단 이런문제가 내가 다니는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회사 커뮤니티를 보면 내가 겪은 상황과 동일한 현상이 넘쳐난다.


가뜩이나 무능한 리더도 힘든데, 책임과 의무는 개나줘버린 20대 신입사원들. 조직에서 허리역할을 하는 조직원들만 죽어나가는 상황이랄까. 맘같아서는 인간관계고 나발이고 당장 그만두고 싶은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럴 수도 없고, 하. 나는 오늘도 로또 1등을 바라며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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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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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책장에서 내 눈에 띄는 역사책 한권을 들고 출근했다. 저자는 가끔 역사/문화재 기사로 종종 보았던 배한철 기자. 기사로도 자주 접해서 아는데, 배한철 기자님이 쓴 글은 보통 읽기가 수월하고, 글맛이 있다. 한국사 역사책 입문서로 강력 추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사놓고 무려 5년간 까먹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미안하기도 했고^_T(책에게).



이 역사책 제목은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이다. 




1963년 대구 현풍읍 유가면의 속칭 ‘팔장군묘’를 불법으로 파헤친 도굴꾼 일당이 경찰에 일망타진된다. 검찰에 송치된 범인들은 검찰 심문에서 “1961년 10월 고령에서 대가야의 순금관을 파냈다”고 자백했다. 이어 “서울의 장물업자를 통해 이를 110만 원에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팔았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리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138호 고령 금관(대가야 금관)이다. p 049


* 유물을 산 이병철 전 회장은 선의에 의한 취득으로 판결, 소유권 인정.


‘ㅇㅇ가야’도 가야 이후 신라, 고려의 행정구역명에 ‘가야’를 붙인 것에 불과하다. 가야인이 전혀 알지 못하는 국명인 것이다. 가야 각국은 가락국(금관가야), 가라국(대가야), 아라국(아라가야) 처럼 쓰는 것이 맞다. 임나는 《일본서기》가 고대 일본의 가야 지배를 꾸미기 위해 사용한 명칭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임나는 존재했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도 “고구려가 임나의 종발성을 항복시켰다”고 나온다. p 055



가야는 고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연맹국가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등을 비롯해 최소 12개 이상의 가야 연맹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칭찬하고 싶다. 그 사람은 최소 국사시간에 졸지 않고 집중했던 사람이니까! 보통 공교육에선 가야 연맹체를 6가야라고 가르쳤다(지금도 그런지는 잘..). 대표적으로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이후 확인된 옛 문헌들과, 발굴된 문화재들을 확인한 결과 ‘가야’라는 이름을 가진 연맹국가는 최소 12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예컨데 《삼국유사》에는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 5 가야가 나오고, 《본조사략》에서는 ‘금관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 비화가야’ 다른 이름을 가진 5가야가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금관가야, 대가야’ 정도만 기술되고 있습니다. 또한 악성 우륵의 가야금 12곡은, 각 곡마다 가야 연맹국가를 지칭한다는 말도 있다. (가야 관련 문헌들: 《삼국유사》, 《삼국지》,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


보통 ‘가야’라고 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연맹체제로 있다가 각 국에게 멸망&흡수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가야 연맹체 중 대가야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16대 왕까지 존속했고 유일하게 중국와 외교관계를 맺는 등 고대국가로 발전하였고, 특유의 제철 기술은 주변국을 비롯해 바다 건너 일본에서까지 와서 철정을 사갈정도였다. 


캐면 캘수록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는 가야. 미스터리한 국가 가야. 가야사가 지금까지 홀대되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해답을 찾으려면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일본부’를 확인하고자, 한반도에서 가야 관련 유적 발굴등을 앞다투어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가야’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일본서기》를 인정한다는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인식은 광복 이후에도 동일했다. 그러다보니 가야사는 우리 역사에서 잊혀졌다. 덩달아 동시대에 있던 고구려/백제/신라와는 달리 가야는 힘없는 연맹국가로 그려졌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그려진다.



“(신라 임금의)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중국 순임금)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 제천지윤이 7대를 전하여 (…)”


682년 건립된 문무대왕릉비문에 새겨진 김씨의 기원이다. 비문에서 언급한 ‘투후’라는 표현에 주목해보자. 투후는 중국 《한서》 <김일제전>에 등장하는 제후의 직책이다. 《한서》의 주인공인 김일제(기원전 135~85)는 흉도 휴도왕의 아들이었지만, 한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포로가 됐다. 이후 그는 한나라 무제를 섬겨 김씨 성을 받았고, 무제의 아들 소제에게도 충성해 투후에 올랐다. 문무왕릉비는 김씨 왕조가 고대 유라시아의 강자였던 흉노의 왕손이라는 놀아운 이야기를 전한다. p 155


신라는 무덤도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으로, 평지에 목곽을 만들고 그 안에 관을 넣은 뒤 사람 머리만 한 당돌을 쌓아 봉문을 올렸다. 카자흐스탄 이시크의 기원전 5~4세기 쿠르간(무덤 유적)도 이 양식이다. 4세기 후반 백제와 고구려의 무덤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정상부에 시신을 안치하는 ‘적석총(돌무지무덤)’으로 신라무덤과는 차이가 있다. p 158



저자는 신라 김씨와 흉노족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석씨, 박씨를 제치고 권력을 진 김씨들이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김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도구로서 북방 통치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것이라고 말이다. 


나도 신라 김씨와 흉노족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선 포스팅을 몇 번 했었다. 워낙 특이한 케이스니까. 한반도 남쪽 끝에 있는 신라와 대륙을 지나 북부 초원에 있는 유목국가. 거리가 거리인 만큼 공통점이 없는게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두 나라간에는 신기하리 만큼 닮은게 많았다. 금관문화(나뭇가지/사슴뿔 모양), 황금문화(금관, 금궤 등)를 비롯하여, 자작나무 껍질로 생필품을 만들고(관모, 말다래 등), 초승달 문양을 사용한다거나(천마총 말다래), 적석목곽분으로 분류되는 무덤 양식 등 말이다. 


심지어 두 나라(민족..?)은 서로 간에 쉽게 갈수 있는 지역도 아니거니와, 북부 초원과 신라 사이에 여러 국가들이 죽치고 있었다. 만약 문화적 교류라고 한다면, 맞닿아있는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문화적 유물들이 발굴되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사실. 오로지 북방 초원 유목 문화와 신라에서만 발견되니, 미스테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문무대왕릉비에 대놓고 난 흉노의 후예요! 라는 내용이 있으니 두 나라간의 깊은 연관성을 생각해볼 수 밖에 없다. 하다못해 흉노 김씨의 직접적인 후손은 아닐지라도, 흉노 문화와 익숙한 북방계열 후손은 맞다거나 뭐 그런?


만약 저자의 말처럼 김씨 일족이 굳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표방하고자, 유목민족의 문화를 도입했다면? 황금문화정도야 이해가 되는데, 자작나무 생필품 문화만큼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자, 생각해보자. 자작나무는 서늘한 북방에서 자라는 나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경주 날씨는 어떠한가? 한반도 남부지방으로 대표되는, 아주 따뜻한 기온의 도시다. 고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즉 신라가 있던 경주 땅에서 자작나무는 자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자작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인제를 비롯한 강원도 북부다. 물론 강원도까지 신라 땅인적이 있었으니, 같은 나라에서 옮기는 게 뭐가 문제인가!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는 지금처럼 물류 이동이 쉽지 않았기에, 근거리 이동도 험난했다. 하물며 400km나 떨어진 인제와 경주다. 고작 나무껍질을 운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렸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그 뿐인가? 위험요소가 큰 만큼 제반비용과 노동력도 제곱으로 소요된다. 그 많은 위험요소를 뚫고 경주까지 자작나무 껍질이 도착했다고 가정했을때, 이 재료를 구할 비용은 얼마나 컸을지는 누구나 상상이 가능하다. 


그렇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산 재료로, 민간에서 사용할 생필품을 만든다? 음. 어렵지않을까. 금관이나 황금문화는 어느정도 이해한다고 쳐도, 자작나무 껍질 생필품 제작 등은 신라 김씨 일가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유목 문화를 도입했다고 하기엔, 상승하는 비용이 너무 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옛부터 이런 재료를 사용하는 문화가 남아있지 않고서야, 굳이 갑자기..? 아, 아닌가. 오히려 명품일수록 수요가 높은 특성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해보면? 어라, 얼추 가능할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신라에서 출토된 자작나무 껍질 유물들 면면이 약간 귀족 또는 왕족 계층에서 사용하는 생필품이었으니까.



역사적으로 충주는 남쪽에서 한강으로 진출하는 길목이자, 반대로 북쪽에서 한강을 통해 남쪽을 공략하는 전략 요충지였다. 삼한시대 마한과 백제는 충주를 주요 근거지로 삼았고, 고구려 장수왕은 이곳을 정복하여 국원성이라 불렀다. 신라가 차지한 뒤로는 충주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진흥왕은 이곳을 신라의 행정구역 9주 5소경 중 국원소경으로 승격시키고 경주의 귀족들을 이주시켰다. 경주에 이은 제2의 수도로 기능했던 것이다. p 164


일부 학자들은 쇠를 잘 다뤘던 김씨 족단이 처음에는 철이 풍부한 충주를 지배했다가 이후 남하해 영주 등을 거쳐 경주에 정착하고, 결국엔 신라의 왕좌를 차지했다는 ‘충주 김씨의 경주 이주설’을 주장한다. 3세기 백제 고이왕은 마한 연맹의 우두머리 국가였던 목지국을 멸망시키면서 경기 남부, 충남 북부를 차지했고, 여세를 몰아 충주까지 압박해왔다. 이를 계기로 김씨 족단이 남쪽으로 이주했을 수 있다. (…) 만약 김씨가 충주에 기반을 둔 족단이었다면 신라 초기 대 백제전의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김씨가 신라의 권력을 차지한 후, 혁거세로 시작되는 경주 왕들의 재위 연대를 기준으로 김씨 족단의 충주 시절 동향을 부기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했을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고대 역사 기술의 보편적 경향이기도 하다. 물론 충주 김씨의 경주 이주설은 가설에 불과하다. 신라 5대 파사 이사금의 부인과 6대 지마 이사금의 부인이 김씨이다. 김씨 왕비가 배출됐다는 것은 이미 김씨 족단이 이 시기에 신라의 정치 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p 166



충주를 가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충주의 랜드마크 ‘중앙탑’을. 중앙탑 전설은 워낙 유명하니 각설하고. 내가 궁금했던 건 석탑은 있는데, 왜 절터가 없는가? 였다. 보통 석탑은 탑 주변에 조성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불교국가를 표방했던 통일신라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중앙탑 주변에는 절터가 없다. 국가에서 여러차례 조사했지만, 사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절이 존재했었다는 기록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미스테리함에 n년 전 난 굳이 충주까지가서 중앙탑을 보고 왔다. 늘 석탑은 절과 함께라는 고정관념을 가졌던 사람이기에, 강변에 거대한 석탑이 있는 모습은 사뭇 부조화스러운 느낌도 들었었다. 물론 중앙탑이 절과 완전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앙탑 설화에 따르면, 대충 옆 동네 절에 있던 석탑을 풍수 등의 이유로 옮겨왔다는 내용이다. 중앙탑 전설은 두 남자가 신라의 끝과 끝에서 걸어오다가 마주친 지점에서 세웠다는 전설만 알고 있었는데, 이 외의 전설이 더 있었다는 사실에 살짝 놀라긴했다.


뭐, 중앙탑 건립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신라는 중앙탑이 세워져있던 충주를 매우 중요시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교과서적인 부분만 알았기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왠걸! ‘충주 김씨 경주 이주설’이 있었다니. 이 시점에서 다시 떠오른게 경주 김씨와 북방 유목민족의 연관성이다. 신라와 북방 초원은 지리상으론 멀어도 너무 멀고, 그 사이에 장애물이 많기에 어떻게 동 떨어진 지역에서 동일한 문화가 발견되는가가 의아했는데, 그 사이에 충주를 끼워넣으니 조금 달라졌다.


충주는 신라 뿐만 아니라, 고구려/백제에게도 중요한 지역이었다. 충주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만 봐도,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하며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역사적으로 부여에서 갈라져나왔다. 부여는 북방 초원 문화를 대표하는 고대 국가이다. 충주를 차지하려고 했던 백제는 어떠한가.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라져나왔지만, 후기에 ‘남부여’로 국호를 바꿀정도로 부여를 계승했다는 정체성을 확고히한 나라다. 


무엇보다 신라는 충주를 제2의 수도로 삼을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충주 금릉동 유적 발굴 당시 북방 유목 문화 동일한 양상의 유물들이 발굴된 것을 미루어 볼 때, 북방의 유목문화가 경주에서 발견된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그 유목문화가 흉노계 황금문화와 동일한가! 라고 할 때는 선뜻 대답할 수 없긴하다. 하지만 황금이란게 권력을 상징하다보니, 김씨 일족이 왕권을 잡기 전과 후에 달라질 수는 있지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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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신화여행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남수 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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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때 간만에 밤새 드라마 몰아보기를 했다. 어떤 드라마인고 하면,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김은숙 작가의 신작 《다 이루어질 지니》. 물론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생략한다. 그저 드라마 세계관을 보고 조금 놀랐다. 익숙한 한국신화가 아닌, 이슬람신화를 차용하다니! 느낌적인 느낌상 아랍 수출(?)을 위함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여타 드라마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주제를 택한 행보에 대해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만, 아무래도 이슬람 신화 자체가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그렇고, 작가 본인에게도 그렇고 꽤 이질적이다보니 신화 자체를 가볍게 차용한 면에서는 조금 아쉬웠달까? 신화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드라마 완성도도 좀.. 음. 뭐 그래도 김우빈 지니는 옳았다!!!!!!


여튼간에! 오랜만에 이슬람 신화를 배경삼은 드라마를 보고나니, 괜시리 신화 책을 읽고 싶은게 아닌가! 그래서 책장을 좀 훑어보았다. 이왕이면 김우빈 지니를 더 오래 끌어안기 위해(?), 이슬람을 비롯한 중동지역 신화를 좀 봐볼까 하고 책을 골랐다.


그렇게 책장 속에서 꺼낸 신화책은 『세계신화여행』.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이 기억도 잘 안나니 읽기에 딱 좋지 않은가! 다만 여기서 함정. 대체적으로 어느 나라든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 - 영웅 이야기 - 역사 이야기’ 순으로 시작된다. 내가 읽고 싶은건 이블리스 같은!!! 신들의 이야기였는데, 이 책속의 신화는 주로 영웅 신화가 대부분. 물론 일본 건국신인 이자나기, 이자나미 신처럼 신들의 이야기도 있긴한데, 그건 내가 원하는게 아니라고!!!


고로 이 책  『세계신화여행』은 세계 각국의 영웅 서사시를 토대로 독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주는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이 책 속에서 그나마 이슬람쪽 신화는 투르크계열 <알퍼므쉬> 파트가 있는데, 역시나 영웅 서사시다. 이슬람과 연관있는 페르시아 서사시 <샤나메> 역시 영웅 서시시! 


아아, 생각해보니 내가 이슬람 신화책을 따로 산 적은 없던것 같기는 하다. 한국, 중국, 일본, 게세르, 북유럽, 그리스/로마 신화책 다 있는데 이슬람이 없다니!!! 이렇게 된 거, 간만에 신화책 하나 더 사야겠다. TMI 끝!!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신화여행』 책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신화는 ‘성스러운 신화’ 와 ‘세속적인 신화’로 나눌 수 있다. 성스러운 신화는 으레 말하는 영웅이야기, 건국신화 등을 말하며, 세속 신화로는 여러 지역에서 구비 전승되는 신화다. 특히 우리나라 건국 신화 중 <단군신화>는 고조선 건국 이전에, 한민족 정통성을 내세우는 신화이기도 하다. 비슷한 예로 고대 페르시아 왕조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한 신화로는 <샤나메>가 있다. 


페르시아 대 서사시<샤나메>. 페르시아가 어디인가 헷갈리는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페르시아는 현재 ‘이란’이다. 즉 <샤나메>는 10세기 페르시아 후손인 이란왕조가 후원하여 완성된, 이란인들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한 신화다. 여기서 반전, <샤나메>가 집필될 당시에는 이미 이란은 아랍(튀르크) 민족에게 정복을 당한 후이며, 이란 내에 아랍문화가 성행한 뒤였다.


아랍 정복 후 이란에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었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심지어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랍 종교인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정치에 입문조차 어려웠다. 이렇게 페르시아 문화가 점차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페르시아 대서사시 <샤나메>가 만들어졌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페르시아가 아랍을 정복하고, 나라를 건설하는 것. 당연히 페르시아는 주인공, 아랍인은 악당이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페르시아계 사만 왕조가 멸망한 뒤, 튀르크계 사즈니 왕조의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배경하에 집필된 페르시아 대서사시 #샤나메 내용 중에 뱀의 왕 자하크를 물리친 잠쉬둔(페리둔) 이야기가 있는데, 약 백 년 뒤에 이를 각색한 신화가 나왔다. 바로 #쿠쉬나메 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샤나메>는 몰라도 <쿠쉬나메>를 들어본 사람은 있을 것이다. 혹은 경북 경주시민들은 분명히!! <쿠쉬나메>를 들어봤을 것이다. 경주에 사는데 <쿠쉬나메>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 그렇다면 #바실라 라는 말은 들어봤을 것이다.



쿠시나메의 ‘쿠쉬’는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나메’는 이야기라는 뜻이죠. 그래서 쿠쉬나메는 ‘쿠쉬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샤’는 이란 어로 왕입니다. 그래서 샤나메는 왕의 이야기라는 뜻이죠. 쿠쉬나메에서는 신라를 ‘바실라’라고 표기하는데, ‘바’는 고대 페르시아 어로 ‘좋은’ 이라는 뜻이에요. 즉, 좋은 신라라는 의미지요. 신라 관련 부분은 샤나메에는 없는데, 쿠쉬나메에서 신라관련 부분이 더해진거에요. p 171


내가 왜 콕 집어서 ‘경주’를 이야기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쿠쉬나메> 에 ‘신라’가 나온다. 신라가 어떤 나라인가. 경주를 수도로 한, 우리나라 고대국가 중 하나가 아닌가. <쿠쉬나메> 줄거리는 이렇다.



651년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면서, 페르시아 왕세자 아비틴은 이슬람을 피해 당나라로 망명했다. 당나라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또 한번 망명을 감행하여 도착한 곳이 바로 신라. 신라왕 타이후르*는 아비틴을 환영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당나라 군대가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와 페르시아 연합군이 당나라 군대를 막아낸다. (이하 생략) 아비틴은 신라 공주 프라랑과 결혼한다. 어느날! 아비틴 꿈에 신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페르시아로 돌아가서 아랍 폭군 자하크를 물리치라는 계시를 한다. 그렇게 아비틴은 결혼한 신라공주 프라랑과 함께 페르시아(이란)로 돌아간다. 페르시아에 도착한 신라 공주 프라랑이 아들 페리둔을 낳는다. 아비틴은 폭군 자하크에게 잡혀 처형을 당한다. 장성한 페리둔은 아버지 원수를 갚고, 페르시아(이란)의 영웅이 된다. 페레둔은 이 소식을 외조부인 신라왕 타이후르에게 알렸지만, 이미 타이후르는 사망하였고, 왕이 된 타이후르의 아들인 가람이 이 소식을 받게된다. 이후 이란의 페리둔과 신라의 가람은 대를 이어가며 우호관계를 유지한다. *타이후르: 무열왕or문무왕으로 추정.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 당시 신라는 무열왕~문무왕 시대. 



그나저나 <쿠쉬나메>가 참 아이러니한게, 분명 책 제목으로 봤을 때 주인공인 ‘쿠쉬’가 영웅일 것 같은데 사실상 쿠쉬는 악역이다. 아랍왕 자하크의 동생인 쿠쉬가 중국왕이 되고, 그 중국왕 쿠쉬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이름도 쿠쉬. 결론적으로 쿠쉬는 악역이고, 아비틴 아들 페리둔이 아랍왕 자하크를 물리치고 페르시아 재건! 근데 왜 제목은 쿠쉬나메일까.............참 의문이다.


뭐 제목이야 그렇다치고. 세간에는 쿠쉬나메에 나오는 ‘바실라’가 진짜 신라가 맞는지 의혹이 일기도 했다. 왜일까? 쿠쉬나메는 신라를 섬나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어라? 신라는 한반도 동쪽에 위치한, 심지어 양옆으로 국경은 백제와 고구려가 있는데? 바실라가 정말 신라 맞아? 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나라인데, 섬나라라니!  의혹을 제기할만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래서 아랍 중세문헌을 찾아보니, 신라는 아랍의 중세 시대에 이미 알려져 있었어요. 서양인들이 한국을 알게 된 것은 구한말 쯤 근대화가 일어나기 직전이에요. 아랍에 한국이란 존재가 알려진 것이 서양보다 굉장히 앞섰습니다.  AD 851년이란 말이죠. 이런 사실은 아랍의 학자들이 지리서를 발간한 데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거기에보면 851년 신라를 섬으로 표현하죠. p 176


그 외에도 알 마스오디의 <황금초원과 보석광>, 알 바루니의 <마스오디 법칙서>, 알 까즈위니의 <피조물의 기적과 존재물의 기이> 등등에서 신라를 “중국이라는 나라 변방 끝에 있는 섬나라”로 표기했죠. 아래의 지도는 알 이디리시라는 아랍인이 쓴 <천축횡단 갈망자의 산책>이라는 책에 삽입되어 있는 지도예요. 이 지도의 왼쪽에 원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 신라에요. 섬나라로 표기되어 있죠? 지도를 뒤집어서 보면 큰 대륙이 중국이고, 그 밑에 섬나라로 그려진 것이 신라입니다. 그래서 바실라가 일본이 아니라 신라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p 177



쿠쉬나메에서 신라를 묘사한 내용을 보면, 신라인들은 가옥을 비단과 금실로 수높은 천으로 당장하며, 식사 때는 금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한다고 적혀 있어요. 비단이라든지 금이 많다는 내용이 투영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리학자 알 이디리시의 책에서도 금이 굉장히 흔한 나라로 묘사되어 있어요. p 179



여기서 잊지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쿠쉬나메> 집필 목적은 <샤나메>가 이슬람 정복 시기에 페르시아(이란)인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이유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페르시아 문화가 사라지고, 아랍문화권이 성행한 이란의 실제 역사와 다를수밖에 없다. 이해가 어렵다면, 우리나라 고전문학인 <박씨전>을 생각하면 된다. 박씨전 역시 병자호란을 이겨내고자 한 대체역사물이지 않은가.


뭐, 이유야 어찌되었든 현재 <쿠쉬나메>는 경주시에서 관광 컨텐츠로 아주 알차게 써먹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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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 심리학 - 타고난 기질과 성격으로 해석하는 당신 마음의 심리적 DNA
조연주 지음 / 북스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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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천 책은 심리학책 『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 심리학』 이다. 애 낳기전에는 들어보지도, 들을 일도 없었던 단어 ‘기질’. 애 낳고 나서는 아주 귀에 못밖히게 듣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왜? 요즘 육아 방식은 옛날과 달리 아이 기질에 맞는 육아라고 하니까. 금쪽이에서도 단골멘트가 있지 않은가. “엄마와 아이 기질이 너무 달라요!” 라는 오박사님 멘트!!


기질은 사전적 의미로 기력과 체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정한 유형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주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이다. 쉽게 말해 타고난 성질, 즉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생물학적 기반에서 비롯된다. 천성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상황에 대한 조절 능력과 정서적 반응의 유전적 개인차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p 024


기질은 한 사람의 행동을 특징짓는 정서적 표현과 반응양식으로 성격 발달의 기초가 된다. 이는 100% 유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스턴대학교 교수이자 심리학 및 뇌과학 박사 사우디노의 <행동 유전학과 아이의 기질>에서 쌍둥이 및 입양 연구는 공통된 가족 환경이 기질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작다는 것을 일관되게 발견했다. 기질에 대한 상관관계가 유전적으로 무관한 입양 형제 자매의 경우 거의 닮지 않았지만, 유전적으로 관련된 형제자매의 경우 기질이 약 20% 정도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가정에서 자란다고 가족 구성원들이 기질적으로 모두 닮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p 031


아이들 기질은 대체로 빠르게 적응하는 순한 기질, 고집이 세고 창의력, 호기심, 모험심이 강한 까다로운 기질, 새로운 사람이나 환경을 만나면 뒤로 물러서고 낯선 상황에 서서히 익숙해지는 느린 기질로 나뉘는데, 대부분은 이 특성이 혼합된 복합 기질을 갖는다. p 034


임신 전후로 금쪽이를 자주 보게 되면서 제발 내 아이만큼은 나와 비슷한 기질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왠만하면 아이 성향에 맞추겠지만, 그래도 나와 상극이면 서로 너무 힘들게 뻔하니까! 무엇보다 ‘기질’이라는게 부모, 자식간에도 정반대일 수 있다는 사실을 n년 간 보아온 금쪽이에서 증명해왔고, 전세계 심리학자나 뇌과학자들도 오랫동안 연구하여 확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은 씨처럼 가족이나 사회적 환경이 지나치게 규범적이고 통제적이면 자극추구 기질은 겉으로 드러나지 못한 채 내부에서 축적된다. 억눌린 자극욕구는 결국 조절되지 않는 방식으로 튀어나오며, 이때 그 표현은 당사자에게도 당황스러울 만큼 크고 예측 불가능하다. 특히 어린 시절, 통제와 억압을 자주 경험한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거나 탐색할 기회를 얻지 못해 충동 조절 능력이 충분히 자라지 못한다. p 055


지영씨 남편이 높게 나왔던 자극추구 성향은 새롭고 신기한 자극에 끌리면서 행동히 활성화되는 유전적 경향성을 말한다. 기질적으로 자극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도을 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자극추구 성향이 높으면 모두 외도를 하는 건 아니지만, 충동성도 높고 반사회적인 기질까지 있었던 지영 씨의 남편은 이런 부분들이 외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얼핏 정상적이고 차분해 보일 수 있으나 상대의 감정에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상대에게 자신이 끼친 해악의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배우자로서 충실하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에 무책임한 모습으로 비윤리적인 문제행동에 대해 죄책감이 없다. p 072



옛날 같았으면 유독 부모와 다른 성향이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넌 누굴닮아서 그러냐!” 라는 식으로, 오히려 더 아이를 통제하고 억압했다. 지금이야 이게 잘못된 육아법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과거에는 알길이 없었기에 다들 그랬다. 그게 맞는 육아라 생각했고, 그럼에도 아이가 엇나가면 버티던 부모도 결국은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자녀를 포기하는 부모가 많은데, 그 시절이라고 없었을까. 심지어 그 시절엔 다자녀 가정이 많았고, 가정마다 유독 재능있는 자녀들이 한 둘씩은 꼭 있었다. 그러다보니 부모 입맛을 따라가지 못한 자녀들은 결국 소외되거나, 혹은 부모가 원하는대로 크는 대신 아이 속이 곪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진정한 ‘어른’이 되었을까? 아니다. 위 정은 씨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자신의 욕구를 끊임없이 눌러가며 자라온 탓에, 결국 욕구 조절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 결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발행동을 하는 상황이 잦아졌다. 다 큰 어른이라면 하지 않을 그런 돌발행동들은, 사회생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건 당연지사다.



그뿐인가? 지영씨 남편과 지영씨 일화도 그렇다. 알고보니 반사회적 성향이 다분했던 지영 씨 남편. 그는 자신의 행동이 배우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공감을 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지영 씨는 이런 남편의 모든 행동을 실수라고 하며, 끊임없이 안고가고자 했다. 우선 서로간의 기질이 달라, 그 간극이 큰 것도 한 몫했지만 필시 지영 씨는 자라면서 부모에게 통제되는 삶을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아이의 기질을 무시한 채, 통제 및 억압으로 일관된 육아를 하게 된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 정은 씨 같이 욕구조절을 못하는 어른이 되거나, 반대로 지영 씨 처럼 자신의 모든 행동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잘못된 일에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춘기 시기를 ‘미운 네 살’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많은 부모가 아이의 변화에 당황한다. 어제까지 순하던 아이가 갑자기 고집을 부리고, 사소한 일에도 울고 떼를 쓰며, “싫어!”, “내가 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심리학에서는 이 시기를 자아의식이 싹트고, 독립된 존재로 사회와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 시기, 즉 일춘기로 본다. 이 시기의 아이는 세상을 탐색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식하고,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나아가 자신의 욕구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며 세상과 본격적으로 부딪힌다. p 038



아이의 울음, 몸짓, 낯가림, 시선 회피 같은 작은 신호는 모두 기질이 사회와 처음 만날 때의 표현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사회적으로 되도록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기질 그대로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관계와 지지의 언어다. p 041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미운 네 살’은 아이의 기질과 외부 환경 반응성이 뚜렷해지는 시기다. 다시 말하면 아이의 기질과 외부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시기라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고, 우는 것은 외부 자극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아이만의 표현인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나이 대의 이런 행동을, 자율성과 수치심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시기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행동들은 자율성을 향한 건강한 발달욕구이며, 오히려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을 더 경계해야 한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미운 네 살’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와 내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정말 가슴 속에 참을 인을 수 십, 수 백 번 새기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내 자식을 괜찮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니까! 언젠가는 조금 편해지는 날이 오겠지- 를 갈망하며 오늘 하루도 참는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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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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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는다. 라디오에서 한 기자가 #젠지스테어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 듣는 단어! 알고보니 요즘 온라인상에서 논란중인 Z세대의 무표정 응시현상을 말하는 거란다. 기자는 이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소통방식의 변화와 코로나 펜대믹을 들었다. 


라떼는…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예전 같았으면 서로 전화로 약속장소를 잡고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이 정말 많았다. 대부분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게 어려울 경우 유선 통화로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런 직접 소통이 대폭 축소되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대부분 SNS를 이용하여 텍스트 소통, 비대면 소통을 주로 한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이런 경향이 증가세에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비대면 기조가 확연히 증가하며, 오히려 대면소통을 어려워할 정도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젠지스테어 논란에 서있는 Z세대는 한창 바깥 세상에 대해 공부하고 교류해야할 청소년기에 코로나 팬데믹을 맞닦뜨렸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흡수했어야할 그 시기를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비대면으로만 배웠고, 그 결과가 지금 논란이 되는 ‘젠지스테어’ 인 것이다. Z세대에서 논란이 되는게 비단 젠지스테어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초년생인 Z세대들은 취업시장에서도 여러 이슈를 불러왔다. 예컨데 회전문 취업이라던가, 의무와 책임은 무시하고 권리만 챙기려는 행동들이 그렇다. 물론 일부의 문제겠지만, 적어도 내가 회사에서 본 대다수의 Z세대들은 그러하였다. 그렇게 젠지스테어 하나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현생이 바빠 잊고 있었는데 오늘 읽은 책 덕분에 다시금 Z세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책 제목은 『경험의 멸종』. 생각해보니 그렇다. 대면에서 비대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화하면서 사라진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경험’이다. 결국 사회 현상까지 되어버린 Z세대 문제점의 시초는 ‘경험’ 부족이었다.




다윈의 이런 독특한 연구에 동력이 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의 몸짓과 표정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까?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서로를 ‘읽을’ 수 있게 진화했을까? 누군가가 안심시키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왜 고개를 끄덕일까? 친구의 나쁜 소식을 들을 때 왜 친구의 찌푸린 표정을 따라하는 것일까? 다윈은 신체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이 대단히 중요한 연결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다윈은 인간의 표정이 인간에 대한 이해의 기초를 이루며, 표정을 해독하는 것은 우리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훨씬 전부터 진화 과정에서 얻은 기술이라고 믿었다. p 052


사회학자 조너선 터너는 이렇게 말헀다. “인간은 영장류이고(진화한 유인원일 뿐이다) 이 사실은 인간의 행동과 상호작용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상호작용은 생물학을 초월하지 않으며, 생물학에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 자세, 몸짓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반면 기호와 글을 통한 의사소통은 우리 진화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달한 것이다. 동굴벽화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면 전체 진화 역사에서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시기다. p 057



대면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다름아닌 타인의 ‘표정읽기’에 있다. 사람들은 문자를 사용하여, 언어로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체언어’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신체언어는 문자언어보다 더 유서깊은, 대단히 오래되고 역사 깊은 의사소통 수단인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대화를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거나, 실소를 터트리는 등 얼굴 표정에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감정표현은 어린아이를 키울 때 더욱 중요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을 보며, 감정표현과 공감을 배우고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감정표현의 발달은 신체언어의 발달 뿐만 아니아, 인간관계를 맺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타인과 만남에 있어서, 그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는 것 만큼 중요한게 없기 때문이다. 신체언어는 뜻하지 않는 이해충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표정이 신뢰의 척도가 아닐 수는 있지만 우리가 매개된 의사소통을 선호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능력에 영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컴퓨터 매개 의사 소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문자나 이메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신체적 신호가 사라지면 우리가 새로운 도구에 적응하기 위해 행동을 바꾼다는 것을 발견했다. 코넬대학교의 제프 행콕 교슈는 컴퓨터 매개 의사소통이 더 능란한 거짓말쟁이르 만든다면서 “동기 향상 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상대방을 마주한 상태라면 미세한 경련이나 수상한 눈의 움직임으로 진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망성일게 된다. 행콕은 화면을 매개로 의사소통을 할 경우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동기가 더 커지고 거짓말이 성공할 확율도 더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p 061



얼굴을 직접 마주할 때 주고맏는 표정과 몸짓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중요하다. 미주신경계는 인간관계를 위한 생물학적 시스템의 일부다. 공감의 원동력이 되는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 신경계는 사용하지 않으면 능력이 저하된다. “기본적 생물학적 능력인 대면 상호작용은 정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결국 사라진다.” 프레드릭슨의 말이다. p 063


이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확인한 나스는 아이들이 대면 상호작용을 화면 매개 상호작용으로 대체하는 것은 “정서적, 발달적 측면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이들은 감정에 대해 배워야 하며, 그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진짜 상대방의 눈을 봐야 한다.” 그는 페이스타임, 스카이프 같은 영상 채팅 서비스는 대면 상호작용과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안 멀티태스킹을 하는 경우가 많고 화면 상의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스는 경고한다. “대면 의사소통을 피한다면 꼭 배워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으 ㄹ배우지 못하게 된다. …… 사회적 기술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감정에 대해 배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말할 수 없이 중요하며, 어린이와 가족 사이에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이다.” p 077


하지만 앞서 말했든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서 인건비 절감 및 자동화라는 명목하에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기계 또는 AI가 차지했다. 하다못해 식당에서 메뉴 주문도 키오스크로 하고, 공항이나 호텔 체크인도 키오스크 또는 휴대폰이나 태블릿PC로 진행한다. 이러한 추세는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나는 내 딸을 어떻게 가르쳐야할까. 그나마 다행인건 내 딸이 코로나팬데믹 이후 세대라는 점이다.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그 때와는 다르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언제 어디서는 사람들간의 표정을 보고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랜기간 비대면 생활로 인한 부작용이 이슈화 되어, 비대면으로 진행된 많은 부문이 다시 대면으로 바뀌고,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의 Z세대 문제는 어쩌면 코로나팬데믹을 살아온 세대만의 일시적인 문제가 아닐까? 전 세대를 통틀어 봤을때, 그저 딱 청소년기를 코로나 팬데믹으로 보낸 일부 세대 말이다. 결론은 뭐, 내 딸은 훗날 사회에 나갔을 때,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줘야겠다는 ...뭐 그런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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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투 2025-11-18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인데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밟힙니다. p.53에 나온 다윈의 초상화는 모자를 쓴 다윈이 아니라 쥐고 있는 모습입니다. p.131에서 소로가 지적하는 것은 산업노동자의 처우 악화를 지적하며 ˝우리가 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기차가 우리 위를 달린다˝로 기술이 주는 편리함보다 희생을 지적합니다. 번역을 보면 편리함을 강조하네요. 마무리 편집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