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여우사냥
권영석 지음 / 파람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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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역사소설 『작전명 여우사냥』은 일제가 민비를 암살한 사건, 을미사변에 대한 소설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임진택 연출가님 말씀처럼 읽는 내내, 꼭 2025년이 1895년의 옷을 입은 채 이야기가 진행되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님은 이런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을미사변’이라는 주제를 채택하고 이렇게 소설을 쓴게 아닐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인 을미사변을 주제로한 소설이기에 당연히 실존인물들이 대거 나온다. 하지만 소설을 끌고 가는건, 민비 호위대장을 맡은 가상인물 ‘이명재 ’다. 이 인물은 동시간대에 살고 있는 개화파 성향을 다분히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가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실존 인물이었던 것마냥 현실성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또한 실제 사건의 흐름 속에 비어있는 공간을 이명재를 끼워넣음으로서, 소설로나마 비어있는 퍼즐을 맞추며 완벽하게 만들었다.




이명재는 사실 ‘친일’, ‘친러’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외교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 아닌가. 어느 나라든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유길준과 중전 민씨가 말하는 ‘친일’과 ‘친러’는 그런 외교가 아니었다. 자주성을 결여한 사대주의에 가까웠다. 그는 믿었다. 나라를 구하고 바꿔나가고자 한다면 백성과 함께 자주적인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고. p 084



제목인 『작전명 여우사냥』은 일제가 민비를 암살할 때 사용한 실제 작전명이다. 




을미사변에 대한 내 생각을 잠시 말해보면, 1895년 을미사변은 일본이 민비에게 준 ‘면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고, 우리 조상들이 ‘조국’을 잃게한 일제. 그런 극악무도한 일제가 민비를 암살했으니, 백성들 입장에선 민비가 아닌 극악무도한 ‘일제’만 보일 수 밖에 없다. 고종과 민비에게는 이만한 면죄부가 또 어디있을까?



소설은 얼핏 보면 고종과 민비, 그 수족들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근데 조금 다르다. 읽으면서 미묘한 균열이 느껴졌다. 저자는 모든 탐욕과 죄악을 민비에게 부여하고, 고종은 그저 민비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만 그렸기 때문이다. 민비가 쎈 여성이었다한들, 고종의 탐욕 역시 민비에 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죄를 ‘민비’에 떠넘기고, 고종은 그저 ‘무능’이라는 단어 하나로 포장된 느낌이 참 별로였달까. 분명 고종과 민비는 공동정범인데, 소설 속 이미지는 민비가 주범이고 고종이 종범인 느낌이다.



굳이 추측하자면 고종과 민비를 통해, 2025년 내란을 주도한 윤석열과 그 뒤에 있었던 김건희를 떠올리게끔 하고자 의도한 소설적 장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굳이 이미 폐기된 ‘무능한 고종’같은 이미지를 다시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비슷한 예로 고종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얼토당토한 이미지도 한때 유명했었다. 그나마 요즘은 고종의 탐욕과 망상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왔는지, 널리 알려져있어서 다행이랄까.



늘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고종과 민비 그리고 민씨척족들의 부정부패는 정말 끊임없었다. 이 소설 시작부터 언급되는 ‘진령군’도 그렇다. 고종과 민비가 무당 진령군에게 가져다 바친 국고가 얼마이며,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서양, 일본에 철도부설권 및 산림채굴권 등 각종 이권을 헐값에 팔아넘긴건 또 얼마인가. 동학군을 토벌하라고 지시한건 대체 누구란말인가. 



동학군을 몰아내기위해 창고에 있던 개틀링건을 꺼내어 사용하게 한 것도 고종이고, 동학군을 몰아내겠다고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한것도 고종이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면, 청과 맺은 조약에 따라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는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동학군을 몰아내기 위해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한 사람도 고종이다. 고종에게 동학군은 자신이 지켜야할 백성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역도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단연코 고종은 동학군을 토벌하려고 했지, 살리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중에선 고종이 동학군을 살리고자 묘사한 장면이 있다보니 어디까지를 소설적 허용으로 봐야할지 애매하다.



단연코 고종과 민비는 조선 백성 손으로 끌어냈어야 했고, 당연히 조선 백성 손에 처결되었어야 할 망국의 원흉이었다. 



‘어찌 일국의 왕비를 이토록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분노가 치밀었다. 위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중전 민씨의 시신을 끌어당겼다. 그렇게 중전의 머리가 지하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살리기 위해 팠던 지하통로가, 이제 시신을 옮기는 통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p 273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만 했던 부패한 민비를 일제가 암살했다는 사실이. 우리는 암살당한 왕비를 동정하는게 아니라, 부패한 왕비를 몰아낼 정당한 권리를 빼앗아 간 일제에 분노해아한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부패한 왕비라는 사실을 떠나서 타국의 왕비를 잔혹하게 죽인 일제에 분노하는 것까지,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을미사변에 대해, 오랜시간동안 앞서 말한 분노가 아니라, ‘암살당안 가련한 왕비’에 대한 동정 여론을 호소했다. 왜? 정당한 분노를 가질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민비의 악행은 숨기고 ‘일제’와 ‘잔인함’에 초첨을 맞춰, 민비를 그저 가련한 피해자로 만든 역대 정부의 영향이 컸다. 



그렇게 정당한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어줍잖은 동정심은 많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대표적인게 바로 역사왜곡이다. ‘명성황후’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 및 뮤지컬에서 만들어진 “내가! 조선에 국모다!!” 라고 말하는 그 이미지 말이다. 지금이야 여러 역사학자들을 통해 고종과 민비의 탐욕과 욕심에 찌든 행보가 많이 밝혀졌고, 공교육에서도 일면 다루고 있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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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
안진흥 지음 / 지오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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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책은 역사책 『삼국유사』 속에 등장하는 식물 이야기다. 과거에 『삼국시대 꽃 이야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기에, 우리나라 고대 기록에 나타난 식물 이야기는 꽤 알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책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이야기』 를 냉큼 집어서 읽었다. 



확실히 과거에 읽었던 책과 비슷한 내용도 많긴 하지만, 책을 쓴 사람이 다르기에 책 속 흐름도 다르다. 앞선 책을 쓴 사람이 원예학자인 반면, 이 책은 식물유전학자가 쓴 책이다보니, 같은 사료를 보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관점’ 차이가 확실하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이것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 마늘, 쑥



용맹스런 호랑이보다는 인내심이 많은 곰이 인간이 되어 단군왕검을 탄생시킨 건국신화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어려운 역경을 지혜롭게 견뎌내고 우리의 찬찬한 문화를 일구어낸 한 민족의 특성을 담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약초를 택하지 않고 흔하게 자라는 쑥을 신성시 하여 신화에 등장한 것은 평범하고 보편적인 것을 존중하는 우리 민족의 서 민적 사상과 일치한다. p 020



마늘은 이집트가 원산지로 1~12세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추정한다. 중국 명나라 약초학서 『본초강목』에 의하면 마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외국에서 들어온 것을 대산이라고 하고 원래의 마늘을 소산이라고 했다. 따라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마늘은 대산이 아니고 지금은 전해지지않는 토종 마늘이거나 야생 마늘일 것이다. 한반도에 자라는 마늘과 유사한 야생식물로 달래와 산마늘, 산부추 등이 있다. p 020



조선시대 학자 최새진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산(蒜)을 달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달래는 저장성이 적고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없다는 특성 상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이라는 주장에서 힘이 좀 약하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산(蒜)이 산마늘이라는 주장은 고조선의 지리적 위치라던가 저장성 등을 고려했을때 꽤 유력한 설로 꼽힌다. 단군신화 속 ‘마늘’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식물이다. 산마늘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산마늘의 다른 이름은 ‘명이나물’ 이다. 



짱아찌로도 유명한 명이나물은 울릉도가 유명한데, 실제 명이나물은 울릉도를 포함하여 강원도 북부, 함경도 등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고조선이 존재했던 위치를 보면 현재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함경도 ~ 북한과 인접한 중국지역 일대다. 명이나물이 재배되는 지역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북반구 시베리아까지 아우르는 유라시아 민족은 산마을을 ‘곰마늘’이라 불러왔다. 여기에 TMI 하나 더 추가하자면, 고고학적으로 시베리아와 우리나라는 유사한 부분이 정말 많다.



 단군신화의 주체인 곰과 호랑이, 즉 곰 토템을 믿는 부족과 호랑이 토템을 믿는 부족, 그리고 환인으로 대표되는 하늘을 믿는 집단에 대한 부분에서도 할 이야기가 좀 있긴 하나, 이 책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으니 생략!





대나무는 합친후에야 소리가 나게 되어있으니 - 대나무


동해의 섬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 왔다. 섬에 있는 거북처럼 생긴 산 위에 대나무가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친다고 신하가 신문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바다의 용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대나무는 합친 후에야 소리가 나게 되어있으니, 성왕께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용이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한마음이 되어 이런 큰 보물을 왕께 바치도록 한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왕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왜적의 침략을 막았다고 전한다. p 059



신라를 침략하던 일왕은 만파식적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고자 사신을 보내 금 50냥을 내고 피리를 보고자 하였다. 거절을 당하자 다음 해에 금 1,000냥을 보내면서 다시 보기를 청했다. 원성왕은 만파식적을 보여주지 않고 금을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전해 내려오는 만파식적을 잃어버렸다가 원성왕이 얻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하는 것으로 보아 8세기 후반까지 왕실에 보관되어 있던 피리인 것 같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용이 바친 옥적이 왕에게 보배로 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p 060




‘대나무’하면 보통 사군자 속 ‘절개, 지조’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다보나 자연스레 조선시대를 떠올리고 하는데, 사실상 사군자 속 대나무의 이미지는 꽤 오래전부터 형성되었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집필하면서, 이차돈 순국에 대해 이미 그의 절개를 대나무와 잣나무에 비교하기도 했다. 



『삼국유사』 속 대나무는 지조, 절개 뿐만 아니라 국력 강화를 위한 요소로도 차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傳 미추왕릉의 대나무 군사 설화와 신문왕 때 만들어진 대나무피리 만파식적 기사다. 



신라 11대 유례왕 때 이서국 사람들이 신라에 침입했는데, 이때 한 군대가 홀연히 나타나 신라군을 도와서 싸웠다. 이들은 귀에 대나무잎 귀고리를 달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후 이들은 홀연히 사라졌는데, 그들의 자취가 끝나는 지점인 미추왕릉 능침에 대나무잎이 수천장 쌓여있었다고 한다. 이게 바로 傳 미추왕릉 대나무 군사 설화다.



신라 31대 신문왕은 아비 문무왕이 이룬 삼국통일을 물려받은 왕이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경주에는 문무왕릉 수증릉, 감은사 등 문무왕 전설이 깃든 곳이 남아있다. 여기에 더 하나가 있으니 바로 대나무피리 만파식적 이야기다. 불기만 하면 온갖 파란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대나무 피리, 만파식적. 전설로 치부하기엔 『삼국유사』 속 기록에 꽤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왕실 보물로 어느 기간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미 신라시대부터 대나무에 국력강화, 국방에 대한 이미지 형성되었다. 근데 놀랍게도! 현재 우리나라 군대 영관급 계급장이 대나무잎 모양이라고 하니, 대나무에 국방에 대한 이미지가 당연하다는 것을 나만 몰랐나보다.




 


모랑의 집 매화를 먼저 꽃피웠네 - 매화


신라의 금교와 계림은 겨울 같은 날을 보내며 봄의 신이 와서 불교가 꽃피는 시기를 기다리는 상황을 일연은 찬시로 표현하고 있다. 금교는 아도가 미추왕의 허락을 받아 지은 불사가 있는 곳으로 추정한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 대신 매화가 등장한 것이 흥미롭다. 연꽃이 여름에 피니 봄철에 가장 먼저 꽃피는 매화를 불법으로 선택하였을 것이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쓰촨성으로 알려졌으며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대무신왕 24년에 매화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초기나 그 전에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p 182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선비들이 매화를 귀하게 여긴 것은 함부로 자라지 않는 희소함, 아름답게 늙어 가는 모습, 살찌지 않은 자제, 꽃봉오리의 자태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의 매화 그림은 단순한 미와 여백을 추구한 특징이 있다. 완벽하기 않고 기교를 부리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던 조선 사람의 정서가 깃들어있다. p 183



매화는 식용 매화와 관상용 매화로 나뉘는데 예전에는 관상용 매화를 주로 심었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꽃의 매력은 꽃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향기 때문이다. 순천 선암사에는 수령 350~650년으로 추정되는 홍매와 백매 50여 그루가 이른 봄에 꽃핀다. 그 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는 화엄사의 화엄매, 백양사의 고불매, 오죽헌의 율곡매가 있다. 이름이 지어진 매화도 있다. 고려 말 우왕 때 정당문학이란 벼슬을 지낸 강희백이 산청 단속사에서 지내며 과거 공부를 하던 소년 시절에 심었다는 매화를 정당매라고 부르며 후손들이 돌봐왔다. 100여 년이 지나 ㄴ훗날 강회백의 증손인 강귀손이 그 매화를 살피러 갔더니 이미 고사하여 그 곁에 매화를 다시 심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매화는 여러 차례 죽고 다시 심기며 정당매라는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p 185



사찰에 갈때마다 늘 의아했던 점이 있었다. 분명 부처님을 대표하는 꽃은 ‘연꽃’인데, 왜 사찰에는 항상 매화나무가 있을까? 왜 사찰의 꽃은 항상 매화일까? 였다. 심지어 봄만되면 매화명소로 손꼽히는 곳들 또한 대다수가 사찰기도 하고. 그런데 그 시작이 바로 삼국유사였다니!



삼국유사에는 승려 아도가 신라에 불법을 전하는 기사가 있는데, 여기에 매화가 등장한다. 참고로 아도가 신라에 불법을 전할 때는,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가 전래되고 약 백년 뒤의 일이다. 하지만 이때도 신라에서 불교는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불교가 신라에서 자리잡는 시기는 아도가 불법을 전하는 시점에서 1백년이 더 지난, 법흥왕 재위기 이차돈의 순교 때의 일.



즉 불교가 신라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는 고관대작들에게 핍박받는 등 서슬퍼런 겨울날을 지나고 있었다. 아도화상은 신라에 자리를 잡은 불교에 따스한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봄을 알리는 전령인 ‘매화’를 차용한 것이다. 그렇게 아도화상에게서 시작된 ‘불법=매화’라는 규칙은 이후 승려들에게 되물림되어, 새로 생기는 사찰마다 매화가 심겨졌다. 흔히들 말하는 ‘천년고찰’에 유서깊은 명품 매화가 있는 이유다.



여기에 조금 더 생각해봤다.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라 조선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꽃이다. 조선은 불교를 억압하고 배척하던 유학의 나라였으며, 실제로 꽤 많은 유학자들이 승려들을 쫓아내고, 사찰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천년고찰들과 그 속에 자라난 유서깊은 매화들. 어쩌면 이 매화들이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유학자들에게서 사찰을 지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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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하게 만들 것인가 - 공부에 무관심한 아이를 위한 4가지 유형별 학습 가이드
제니 앤더슨.레베카 윈스럽 지음, 고영태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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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만해도 내가 읽은 육아책 이라고는 영유아 뇌발달, 그림책, 0~3세 육아 이런 책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점점 육아책 장르가 자녀 학습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내년이면 아이가 유치원에 가야하고, 또 눈 깜빡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초등학교 입학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내가 맹자 어미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학교만큼은 이 동네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서 이사를 가야하나 싶은 생각을 하곤 한다. 근데 또 경제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사라는 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거기다 환경만 생각해서는 안되는게, 이사 여부와 상관 없이 아이가 학업을 못따라갈 수도 있기에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는 요즘이다. 결국 제일 중요한건 내 아이가 학업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 인데, 이게 자녀교육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일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렇다면!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모두가 포기하는 사태가 오기전에, 떡잎인 지금부터 차근차근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주자. 자기주도 학습이 몸에 벤 아이는 환경이 어찌되었든간에 상관없이,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늘 리뷰하는 『어떻게 공부하게 만들 것인가』는 자녀가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방송인 정은표의 육아법이 떠올랐다. 정은표 아들이 서울대 간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정은표 부부는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킨적이 없고, 심지어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적도 없다는 것. 그야말로 아이들을 방목하여 키웠는데,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서울대에 떡하니 붙었다. 



정은표는 자녀 자기주도 학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졸업 전 까지 스스로 학습하는 훈련을 했고, 실제로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여기서 말하는 스스로 학습하는 훈련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날 정해진 학습 양을 아이가 스스로 부모에게 말하고, 아이가 직접 정한 기한내에 학습하도록 하며, 다 한 뒤에는 마음 껏 놀게끔 두는 것. 그것 뿐이었다. 



정은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이의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부모가 감독관이 아닌 길잡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아이 성향에 맞는 동기부여 방법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내 아이를 자기주도 학습이 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여기를 주목!!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라


내 아이는 문제아가 아니다. 그저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부모는 학습 감독자가 아니라, 바람직한 성장으로 이끌어주는 코치다


아이 성향과 현실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 위 네가지 사항을 인지했다면, 이제 자녀의 성향에 따른 동기부여 방식을 깨우쳐야 한다. 


마지 못해 떠밀려가는 수동형: 배우는 즐거움을 알려주자


오로지 성적만 보고 날려나가는 목표지향형: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의 피드백을 해주자


온몸으로 거부하며 저항하는 회피형: 작은 성공 경험을 만들어주자


하나에 빠지면 몰두하는 몰입형: 내적 동기를 지켜주는 환경을 조성하자




수동형은 설렁설렁 학교에 다니면서 최소한의 공부만으로도 아주 가끔 좋은 성적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학습에 온전히 참여하거나 몰입하지 못한다. 많은 아이가 수동적인 자세로 오랜시간을 보낸다. 교단에서 유명한 한 교장은 이런 학생들을 교실에서 보이지 않는 ‘중간층’이라고 불렀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강한 성취욕을 가진 학생들 사이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목표지향형은 참여 면에서는 정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동기가 확실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 몇 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하니만 이들은 무너지기 쉽다. 이들에게 성취는 오로지 성적을 의미한다. 끊임없는 칭찬에 익숙한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


회피형은 자신이 지닌 힘을 이용해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학교가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들은 학습을 회피하거나 방해하고 숙제를 거부하며 수업을 빼먹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다. 


몰입형은 네 가지 유형 가운데 실질적인 정점에 있다. 몰입형 하이들은 회복탄력성이 있고 성공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키운다. 이들은 목표를 달성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그 과정에서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도 좌절하지 않는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사고할 수 있들 정도로 자신감이 있고 학교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며 창의성을 발휘한다. 몰입형 아이들은 학습에 몰입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힘들게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의미를 찾는다.


 - 『어떻게 공부하게 만들 것인가』 中




갓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순수한 도화지와 같다. 하여 부모가 말하는 것은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적절하게 응용하고, 사용한다. 고로 어려서부터 자기주도적 학습을 꾸준히 해온다면, 잠깐의 일탈이 있을지언정 아이든 다시금 본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이 사실을 생각치 못하고,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돌변하고 만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만해도 아이가 좋아하는 거라면 미술, 음악, 체육, 과학탐구, 숲 체험등 원하는걸 모두 하게해주다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단방에 끊어버린다. 그리고는 학교 학업 성취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 마냥 학습 기술에 모든 시간을 사용하게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관심분야에 대한 창의적인 탐구활동 기회를 잃어버린다.



창의적인 탐구활동은 자기주도 학습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학업에 정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모든 기회를 끊어버리니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지루해지고, 더 나아가서는 학교 자체가 재미없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공부, 학교, 학습 그 모든 것과 멀어진다. 이 모든게 부모, 선생, 학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교육에서 소외당하고 싶은 아이는 없다. 그래서 공부가 너무 쉽거나 어려워서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주변 사람들과 가치관이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즉, 배움에 관심이 없어진다. 학습에 대한 무관심이 정체성으로 변할 때 아이들의 잠재력과 기회가 단절된다. 아이들은 교과 과목과 기술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관한 배움의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린다. p 018



좋은 학습에 관한 원리와 실천은 참여라고 한다. 그리고 참여는 교육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가운데 하나다. 참여는 단순한 투지나 의지력이 아니라 세계에 관한 깊고 진정한 관심을 촉발하는 감정, 사고, 행동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아이들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지치지 않고 활력을 얻으며 능동적 학습자가 된다. (…) 참여도가 높은 학생들은 자기 인식과 내재적 동기 등이 남다르다. 이들은 외적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내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성취하는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p 019



자기 주도력은 학습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장 잘 배울 수 있을까? 무엇이 나의 집중력을 방해하는가? 나에게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자기 주도력을 키운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누가 조언해줄 수 있을까? 내 앞에 있는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누가 또는 무엇이 도움이 될까? 자기 주도력이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가지고 있기에 학교에서 억압받는다고 느낄 가능성이 적다. 이들은 도움을 요청하거나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낸다. p 057



내 아이가 자기주도 학습을 실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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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삶을 키우는 나무의 지혜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박은진 옮김 / 아멜리에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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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식물을 키운다고 하면 엄마, 아빠를 떠올린다. 보통 식물 키우기는 중장년층에서 자주 보이는 취미였으니까. 그렇기에 아직은 청년층(?)에 속한 내가 식물을 많이 키운다고 하면, 놀랍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부쩍 주변에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것도 중장년이 아닌 청년층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들이 식물을 키우는건, 식물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현재 사회에 나온 2030세대는 과거 2030세대와 사뭇 다르다. 과거 2030세대는 취업이 쉬웠다. 분명 그때도 취업이 어려웠다고 하는 중장년층이 있을 것이다. 대게 이런 사람들은 요즘 젊은 것들은 나약하다며, 꼰대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만 먹고 속은 철부지 그자체인 가짜 어른들이다. 잘 생각해보자. 그때도 지금처럼 서울대에 가기 위에 경쟁이 치열했고, 대학가서는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를 위해 대학의 낭만은 포기한지 오래고, 기업들의 채용인원수가 지금만큼 적었는가? 심지어 현재는 과거에는 없었던 사회 문제들이 도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내집마련도 과거와 달리 어렵기 그지없다. 세상이 각박해지다못해 삭막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세상을 만든 건, 우리보고 나약하다고 한 말한 가짜어른들이다.


이렇게 삭막한 세상에서 살고있으니,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위로하고 조언해줄 참 어른이 별로 없으니, 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지! 결국 사람들은 위로를 받기 위해 식물을 선택했다. 왜? 문득 정신차려보니 식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산소를 내뿜어주며, 우리를 지켜주고 조용히 응원해주고 있었다. 이제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힐링 에세이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저자가 나무의 삶을 보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 나무에게 받은 위로를 알려주는 글이다. 





이 에세이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첫 페이지는, 놀랍게도 나태주 시인의 추천사로 시작한다. 나태주 시인이 누구인가! 다름아닌 자연물을 보며 시를 쓴, 풀꽃시인이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이 고달픈 건 꽃과 시와 나무를 멀리해서 입니다. 이 땅의 젊은 분들이 좀 더 일찍 나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배운다면, 보다 일찍이 그들의 마음과 영혼이 맑아지고 여유로워지며 그들의 인생 방향 자체가 바뀔 것으로 믿어집니다. 역시 좋은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주는 역할까지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 나태주 시인 추천의 글





틀 바깥에서, 창의적으로_ 유럽호랑가시나무

살다 보면 정공법을 대려놓고 살짝 비틀어 접근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가 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난 창의적 발상이 위기 상황을 뒤집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령 잎이 받는 햇빛의 양에 따라 빛을 흡수하는 세포의 수를 줄이거나 늘리며 섬세하게 조율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유럽호랑가시나무는 오가는 동물들이 나뭇잎을 뜯어먹을 까 위쪽 잎보다 아래쪽 잎에 가시를 촘촘치 세워두는 기지를 발휘한다. p 044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_ 너도밤나무

마음 어딘가가 균형이 미묘하게 어긋난 듯하지만 그 이유를 콕 짚어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너도 밤나무는 사슴이 나뭇잎을 뜯어 먹으면 상처를 감지하고 잎에서 지독하게 떮은 맛을 내는 타닌을 잔뜩 분비한다. 하지만 단순히 바람에 잔가지 하나가 꺾인 것이라면 나무는 손상 부위를 감싸고 아물게 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만 분비한다. 그러니 우리도 너도밤나무처럼 가끔은 내 안의 부러진 잔가지들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p 072




폭풍을 견디는 법_ 산사나무

나무는 모진 바람에도 적응하고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다. 살아가며 힘든 시기를 피할 순 없지만 어떻게 헤쳐나갈지는 각자 하기 나름이다. 나무는 본디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산사나무처럼 강인한 존재들은 격렬한 바람을 온봄으로 맞아야 하는 탁 트인 곳에서는 곧게 자라기 어렵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몰아치는 강한 바람은 어린 가지의 끝부분을 상하게 하고, 결국 나무는 위로 성장하는 대신 바람을 덜 맞는 쪽으로 자라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산사나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바람을 등진 쪽의 줄기와 뿌리를 더욱 굵고 튼튼하게 키워 스스로 균형을 잡아간다. p 102



삶이 고단한 젊은이들이여, 나무를 통해 힐링하고 삶의 지혜를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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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쓸모 - 슬기로운 언어생활자를 위한 한자 교양 사전
박수밀 지음 / 여름의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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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한자의 중요성을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어렸을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역사더쿠이다보니, 남들보다 더 한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 유적지 답사를 다니다보면 한자로 쓰여진 현판, 비석 등을 만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데 서울 노원구 초안산 내시&궁녀 분묘군을 찾았을 때, 제단 또는 상석 등에 쓰여진 한자를 읽을 줄 알았기에 그 봉분이 어떤 성씨를 가진 내시의 묘인지, 혹은 궁녀의 묘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뿐인가? 파주에서 율곡선생 가족 묘원에 들어섰을 때도, 비문을 읽을 줄 알았기에 어떤 묘가 율곡선생의 묘인지, 또 어떤 묘가 신사임당의 묘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하다못해 서울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5대 궁을 찾을 때도 한자로 쓰여진 현판을 읽을 줄 알기에, 각 전각의 이름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건 기본이다.


내가 이렇게 한자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이유는, 그저 초등, 중등, 고등 전 학창시절에 걸쳐 주 1~2회 있었던 한문 시간을 즐겼기 때문이다. 코흘리개 초딩때부터 역사를 좋아한 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즐기고 좋아했던 건 아마도 ‘한자’에 담겨있는 원리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어떤 한자는 그 뜻을 담고 있는 외형을 그림화하여 단순하게 상형문자, 또 어떤 한자는 두 개 이상의 뜻을 가진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 만든 회의문자, 또 어떤 한자는 두 개 이상의 한자가 합쳐졌는데, 한쪽은 ‘발음’을 맡고 또 한 쪽은 ‘뜻’을 맡고 있는 형성문자. 이 얼마나 신기한 조합인지! 그래서 더 한자 공부에 몰두했던 것 같다. 뭐, 여기에 더해 꽤 오랫동안 일본 성우 덕질을 하며, 자연스레 습득한 일본어로 인해 한자 스킬이 한층 높아진건 안 비밀이다.


그렇게 어렸을 때 부터 한자를 즐기고, 공부하고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문해력이 높은 건 당연지사다. 거기에 부차적으로 따라온 게 있었으니 바로 자격시험! 올해 시험을 본 식물보호기사, 종자기사 시험에서 한자 덕을 솔찬히 보았다. 임업/농업 용어들을 보면 대체로 한자용어이다보니, 정의 외우는데 있어서 꽤나 많은 도움이 된것이다. 왜? 그냥 용어에 쓰인 한자 뜻풀이 그대로 쓰면 되니까 ㅋㅋㅋ 진짜 개꿀!!!


여튼 이렇게나 중요하고 재미있는 한자인데, 요즘 공교육에선 한자시간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예 안가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공교육에서도 이럴진데, 가정에서라고 다를까? 그렇게 모두가 한자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하니,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다들 보면 요즘 아이들, 사회초년생들의 문해력 문제를 지적만 하는데 그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문해력이 왜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는지, 그 해결방법은 어디있는지를 찾을 생각들은 안하고 다들 문제만 제기하는 꼴이라니.


..................TMI는 여기까지!!!!!!!!!!!!!!!!!!!



그래서 오늘 리뷰하는 책이 무엇인고 하면! 앞서 그렇게 예찬한 한자에 관한 인문학책 『한자의 쓸모』다. 한자가 얼마나 중요한 문자인지, ‘한자’를 아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는지, 이 책에서 속속들이 알려준다.


인간에게 족보가 있듯 글자도 그 기원이 되는 뿌리가 있다. 뿌리를 잘 알면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넓힐 수 있다. 한자는 글자 하나마다 개별적인 뜻이 있으며 때로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런 까닭에 한 글자의 다름이 미묘한 차이를 빚고 때로는 천 리의 차이를 만든다. (…) 선조들은 한자를 문자 체계로 삼아왔기에 우리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려면 한자라는 도구를 이용해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결혼 문화, 죽음 문화, 의복 문화에서 김치, 우리 명절, 궁궐, 산과 강, 섬과 고개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에 담긴 한자의 속뜻을 살펴 우리의 정신사와 문화사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p 006


 



▶비슷하지만 다른 한자


절切도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흔히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안주 일절’이라고 쓴 글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안주 일체’라고 쓴 곳도 있다. 두 문구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실은 일절一切과 일체一切의 절과 체가 같은 한자라서 빚어진 오해다. 모두 한자로는 ‘一切’이라고 쓰는데, ‘切’에 ‘끊을 절’과 ‘모두 채’라는 두 가지 음과 뜻이 있는 것이다. (…) 곧 ‘안주 일체’란 모든 안주가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가게 주인이 안주가 전혀 없다고 쓸 리는 없을 터이니 ‘안주 일체’라고 써야 맞다. p 024


세世와 대代도 비슷한 듯 보이나 다른 뜻이다. 흔히 족보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는 박혁거세의 60세손이다” 라거나, “너의 3대조 할아버지는 ㅇㅇㅇ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세世와 대代는 같은 뜻으로 함께 쓰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서로 다르다. 대는 나를 기준으로 나를 빼고 윗대로 올라가는 것이고, 세는 시조의 출발이 되는 1세로 하여 차례로 내려가는 것이다. 곧 세는 시조를 중심으로 삼아 차례로 내려가는 것이고. 대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아버지, 할아버지 순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p 056




▶우리말의 뿌리


순라巡邏는 예전에 도둑이나 화재등을 경계하기 위해 궁중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는 군대였다. 이를 순라군巡邏軍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소속된 군졸을 순라巡邏라고 했다. 순은 돈다는 뜻이고 라는 순행한다는 뜻이니 순라는 순찰한다는 뜻이다. 또는 순경이라고도 했다. 순라가 술라로 발음되고 다시 지금의 술래가 되었다. p 089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을사조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했다. 을사조약은 1905년 을사년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다. 우리나라 백성들로서는 굉장히 분하고 억울한 날이었다. 그리하여 분위기나 기운이 몹시 어둡고 쓸쓸할 때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이 을사년乙巳年이 ‘을씨년’으로 바뀌어 뭔가 싸늘하고 스산한 기운이 돌면 ‘을씨년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p 089



어떤 일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때 ‘풍지박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풍지박살이란 말은 없다. 풍비박산風飛雹散이라고 해야 맞다. 풍비風飛는 바람에 날린다는 뜻이고 박산雹散은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곧 풍비박산은 바람에 날려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거나 흩어지는 상황을 비유한 표현이다. p 091



혈혈단신孑孑單身을 홀홀단신으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을 때 ‘그는 가족을 두고 홀홀단신으로 멀리 떠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홀홀’이란 가볍게 날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혼자’라는 말을 떠올려 ‘홀홀’이라 생각하는 듯 한데, ‘혈혈’이라고 해야 한다. 혈혈의 혈은 외롭다는 뜻으로 의지할 곳 없이 외롭다는 말이다. p 093



분위기나 상황을 망칠 때 ‘산통 깨다.’라고 말한다. ”네가 실수하는 바람에 산통 깨졌어.”등과 같이 쓴다. 산통의 어원은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점치는 도구와 관련된 것이 있다. 점쟁이가 점을 칠 때는 젓가락처럼 생긴 가늘고 긴 산가지를 통에 넣어 흔든다. 이 산가지를 넣는 대나무로 만든 통을 산통이라고 부른다. 운세를 점치는 과정에서 점쟁이가 실수로 산통을 떨어뜨려 깨트리면 점을 칠 수가 없다.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잘 되어 가던 어떤 일을 망치게 되면 ‘산통을 깨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p 127




▶대비되는 뜻의 한자


동쪽은 근본이 되는 방향이다. 그리하야 집의 주인은 동쪽에 머물고 손님은 서쪽에 모시도록 했다. 이와 같은 의례는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다. 흔히 사위를 서방西房잉라고 불렀는데 백년손님인 사위를 서쪽 방에 머물케 한 데서 유래했다. 왕세자나 태자를 ‘동궁東宮마마’라고 불렀는데 장차 주인이 될 세자가 거처하는 궁을 궁궐 안의 동쪽에 둔 데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동국東國 혹은 해동海東으로 불렀다.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보았을 때 동쪽에 자리한 까닭이다. 해동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발해渤海의 동쪽 나라’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그 당시 고구려땅과 만주, 연해주를 포괄하는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p 164


출出은 ‘나가다, 나타나다’는 뜻이다. 집을 나가면 가출家出이고,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출가出家다. 여자가 다른 곳으로 시집가는 것도 출가出嫁라 하는데, 여기서 가嫁는 ‘시집간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지위가 오르거나 유명해지면 ‘출세出世했다’고 하는데 명성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본래 불교에서 나왔다. 출세본회라 하여 세상에 나타나 많은 사람을 교화시키고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 p 182




여기까지가 한자책이자 인문학책이자 교양책인 『한자의 쓸모』 맛보기! 한자라는 언어와 우리 삶에 녹아있는 생활문화, 거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한 스푼 더해진 책. 한자 공부용으로도, 인문학적 소양쌓기로도, 킬링 타임용으로도 그 어떤 방면으로도 활용도가 높은 책으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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