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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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에도 난 인공지능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적이 없다. 어찌되었든 한 판은 이세돌 9단이 이겼으니, 아직까지 인간의 저력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먼저 온 미래』에 된통 당한 바둑계가 인간이 바둑을 버리고 AI의 바둑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고!



2026년 현재, 남들보다 한참 뒤늦게 나는 제미나이와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으며, 구글 노트북LM 이라는 신세계에 빠져있다. 



AI가 바둑의 기존 틀을 몇백 년을 앞서간 수법을 보여준 때가 있었어요. 알파고 마스터와 알파고 제로 사이였습니다. 알파고 리는 충격적인 실력이기는 해도 충격적인 수법까지는 아니었어요. 알파고 마스터부터는 인간 기사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충격적이라 할 만한 수법들을 보여줬습니다. 초반부터 그런 수법들을 보여서… 그때 제일 충격을 받았어요. 그 이후에 저는 AI를 통해서 계속 송장하고 그 수법들을 이해하고 흡수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어요. p 069, 신진서 9단 인터뷰



2023년부터 2024년까지 나는 그들을 만났고 “인공지능이 둘 수 없는 ‘인간의 바둑’이란 뭔가요?”라고 물었따. 뜻밖에도 7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인간의 바둑’이 뭔지 제대로 설명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바둑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도 ‘인간의 바둑’을 향한 노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대로 인간의 바둑을 버리고 인공지능처럼 두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었다. p 076




AI가 나오기 전까지만해도 바둑은 인간의 직관과 감각,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정석과 미학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알파고의 등장은 그 전제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인간이 쌓아 올린 바둑의 역사 위에, 전혀 다른 차원의 바둑이 출현한 것이다.



대국 이후 프로기사들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더 이상 ‘인간답게’ 두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처럼’ 두는 것. 젊은 기사들은 AI와 대국하고, AI의 기보를 외우며, 왜 그런 수가 나왔는지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인간 특유의 감각이나 미학, 개성은 점점 사라져간다.물론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천년 이상 켜켜이 쌓아올린 인간의 바둑이 사라진다는 우려, 특유의 미학을 지닌 바둑이 그저 계산 게임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등이 그렇다. 그러나 그런 비판조차 AI를 배제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이미 승리의 공식을 쥔 쪽이 AI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그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같은 고민은 실제로 그 분야에서 쓸 만한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까지만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모든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가 된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그 분야의 규칙 자체가 바뀌며, 그때부터 해야하는 고민은 ‘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된다. 어쨌든 경쟁은 다른 사람과 하는 거니까. p 079


나는 일단 인공지능이 어떤 업계에 도입되면, 그 업계 내부에서 인공지능을 옹호하는 집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업계 내부에 인공지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이후의 갈등 구도는 더 이상 ‘인공지능 대 인간’이 아니다. 3장에서 말한 대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전문가 대 다른 인공지능을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는 다른 많은 전문가 대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는 구세대 전문가’의 구도가 펼쳐진다. p 105




저자 장강명은 ‘AI와 바둑’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당시만해도 AI가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을 무너뜨린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으나,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을 무너뜨린 AI는 이후 전 세계 산업 전반적으로 퍼져나갔다. 바둑은 AI 영역 확장에 앞서, 운 나쁘게, 아니 어쩌면 오히려 운이 더 좋은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영역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노동도 AI를 탑재한 로봇이 대신하고, 글쓰기도 AI가 대신해주며, 그림도 AI가 그려주고, 음악도 AI가 만든다. 한 사업체를 좌지우지할 보고서 조차도 AI의 도움을 받는다. 바둑계처럼 AI를 모방하는건 기본이고, AI와 협업은 필수이며, 심지어는 AI가 메인으로 일을 진행하는 산업도 많다. 


인간의 영역인 바둑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AI 자신의 영향력을 새로운 영역으로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도착해버린 미래다. 효율, 합리성, 최적화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AI의 판단을 참고하고, 점점 그것을 표준으로 받아들이다보면 당장 50년 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바둑계에서는 인간의 바둑을 연구하던 구세대가 사라진 뒤, AI로 훈련한 젊은 기사들이 바둑계를 점령했을 때를 말했다. 이미 인간의 바둑이 아닌, AI의 바둑을 배운 인간들이 바둑계를 점령했을 그때 말이다. 그때는 AI와는 또 다른 형태의 최강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이 질문은 현재 AI와 함께 일하는 모든 영역에도 해당된다. 


AI 이후의 바둑이 결국 또 다른 바둑을 낳았듯, AI 이후의 인간 역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문제는 그 변화가 인간의 주도로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효율과 최적화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밀려난 결과일 것인가이다. 『먼저 온 미래』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AI의 시대를 살아가는 최초의 인간 세대이자, 동시에 그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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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 이일하 교수의 아주 특별한 식물학 에세이 지식 벽돌
이일하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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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식물 관련 책을 읽을 때는 약간 감성적인 부분이 앞서있었다. 대다수의 책들이 식물재배 실용서보다는 식물을 주제로한 ‘에세이’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에세이라고 하더라도, 식물이 주제인 만큼 식물 재배관련 정보가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정보의 수준은 꽤나 가벼운 쪽이었다. 에세이였으니까. 


오늘 리뷰하는 식물 에세이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그간 읽어온 책들과 조금 달랐다. 감성도 감성인데, 전문 지식이 담겨있는 실용도 잡았다. 어찌보면 에세이 형식을 차용한 실용서 느낌이기도 하다. 분명 술술 읽히는데, 머리에 남는 게 많다고 해야할까? 전문 지식이 방대하게 녹여져있는데도 술술 읽히고 이해도 쉬운 건 쉽지 않은데! 



이쯤에서 저자가 누군지 살펴보았다. 확인해보니 저자는 식물학과를 전공했으며, 현재는 생명과학 교수인 그야말로 찐 전문가다. 전공자이니 방대한 지식을 보유한 건 당연하다. 거기에 현재 교수이니 책도 많이 읽었으며, 쓰기도 많이 쓰셨을테다. 어쩐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내용인데, 가독성도 좋고 이해하기도 쉽더라니!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이제 막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사람, 또는 비전공자인데 임/농업관련 자격증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처음 읽어볼 책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몇 년만 더 빨리 출간되서, 내가 조금 더 빨리 읽어봤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난 최근 몇 년간 식물보호기사를 비롯하여 여러 농업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있어서, 비전공자이다보니 공부에 어려움이 컸다. 생소한 용어에 막히고, 식물이 사용하는 각 종 에너지들의 작용기법에 당황했고, 광합성이라고 해서 다 같은 광합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뿐인가? 생전 듣도보도 못한 식물의 질소대사는 하 머리가 팅 돌아갈 지경이었다.



헌데 이런 내용들이 이 책에선 이해하기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난 뒤 시험공부를 했다면, 분명 내 공부과정은 꽤나 쉬웠을 것이다. 진짜로. 백프로 확신한다. 




씨앗이 놓인 위치마다 빛의 세기, 수분, 온도 등 미세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환경에 맞게 서로 다른 생장을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환경 차이에 따라 같은 유전형이 서로 다른 표현형을 보이는 현상, 그것이 바로 식물의 생장 가소성입니다. p 032



‘춘화처리’는 식물이 온도를 인지하는 능력이 있어, 특히 긴 겨울의 저온을 경험한 뒤 꽃을 피우게 되는 생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적지 않은 식물들은 겨울의 추위를 겪지 않으면 봄에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겨울보리, 겨울밀, 그리고 월동형 배추가 있지요. p 081



춘화처리에 필요한 물리적 요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저온’, 다른 하나는 그 저온이 지속되는 ‘기간’입니다. 즉, 춘화처리는 단순한 저온 반응이 아니라, ‘긴 기다림’을 인식하는 과정인 셈이지요. 식물은 그저 조용히, 그러나 정교하게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p 086



식물은 빠르게 ‘움직이는’ 대신, 천천히 생장하면서 방향을 바꾸는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굴광성 입니다. 굴광성은 식물이 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굽어 자라는 생리적 반응을 말합니다. 시간이 걸릴 뿐, 이것 또한 명백한 식물의 운동이지요. p 130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농업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며 생소한 용어에 머리를 싸매 본 비전공자에게 친절하고 명쾌한 '개념 입문서'가, 반려식물을 키우며 그들의 언어가 궁금했던 식집사분들에게는 따뜻한 '교양서'가 되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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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청춘의 초상 - 조국의 독립에 바친 뜨거운 젊음,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찬란한 그 순간
장호철 지음 / 북피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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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는 일제강점기 관련 역사책들이 꽤 있다. 일제 수탈과 침략에 대한 역사와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의 역사. 결이 확연히 다른 두 역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상반되는 감정을 들게한다. 어느 쪽을 선호하고 읽느냐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잊지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 모든 역사를 절대 잊지않고 ‘기억’하고 기록하여, 우리 후손들이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할 것. 그리하여 우리에게 매우 당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격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인지하고, 우리에게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를 남겨준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역사책을 읽고 또 읽는 이유다.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누군가의 배우자였으며, 누군가의 부모였던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바라던건 내 후손들이 ‘우리나라’에서 ‘우리말’을 쓰며 ‘자유’롭게 살수 있는 것. 단지 그뿐이었다. 그 하나만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이 역사책은 독립운동가 26명에 대한 역사책이다. 독립운동이라는 특성상 자신을 드러내고 할 수 없기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아직까지도 후대가 확인하지 못한 무명의 독립운동가가 많다. 아직 발굴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을 찾는 일은 전문가들에게 맡기자. 우리는 발굴된, 그리고 아직 발굴되지 못한 모든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그들을 기억하자. 




김란사, 조선의 앞길에 등불을 켜다

안창호, 미국 최초의 한인촌을 세우다

김알렉산드라, 조선인 1호 볼셰비키 혁명가 아무르강에 혁명의 꽃으로 지다

장인환, 샌프란시스코에 울린 3발의 총성

안중근, 세 번의 “코레아 우라”

이재명, 을사오적을 처단하리라

김익상, 감시대상 12310번 의열단원의 슬픈 독립투쟁

유관순, 영웅도 신도 공주도 아니었던 10대 독립운동가의 순수

김상옥, 수백 일경과 벌인 전설의 총격전

나석주, 황해도를 뒤흔든 투사

김마리아, ‘대한독립’과 결혼한, 조선이 낳은 혁명 여걸

박자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일제의 압제와 싸우다

이봉창, ‘신일본인’에서 ‘독립투사’로

윤봉길, 중국 백만 대군이 못한 것을 해낸 스물 넷 청년

백정기, 함정수사에 걸려든 미완의 거사 상하이 ‘육삼정 의거’

윤동주, 마지막 여름방학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김규식, 영특한 소년 ‘좌우합작’과 ‘납북협상’을 주도하는 정치가가 되다

김구, 26년간 임시정부 이끈 민족주의자의 풍찬노숙의 역사

전명운, 미주 한인사회의 통합을 앞당기다

차마리사, 여성해방은 경제적 자립에서 시작된다

김원봉, ‘현상금 100만 원’의 사나이

주세죽, 단발머리의 모던 걸? ‘코레예바’의 사랑과 혁명!

연미당&엄항섭, 파수꾼으로 임정과 함께한 부부, 분단 조국에서 이산의 비극을 겪다

권기옥, 창공을 날아올라 일왕 궁궐 폭격을 꿈꾸다

정정화, 권문세가 셋째딸, 임정 밀사로 압록강을 건너다

장준하, 그해 여름, ‘돌베개’를 베겠노라 다짐하다




김알렉산드라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는데, 재판장은 “당신은 조선인이기 때문에 러시아 국사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 그러니 죄를 뉘우치면 석방하겠다.”라고 제안하지만, 그는 이를 간단히 거부하며 “적위군과 함께 이 전쟁에 참여한 수백 명의 조선인은 소비에트 권력을 방어하는 것이, 조선을 해방에 이르게 해줄 것을 알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1918년 9월 25일, 김알렉산드라는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유역 우초스 절벽에 섰다. 사형 집행관들은 포로들의 눈을 흰 수건으로 싸매고서 강변 바위 위에 세운 뒤 총살하고 그 시신을 강물에 던져넣었다. p 039


‘유관순 누나’, 친근하고 정겹게 부른 호칭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기실 이 호칭은 관행적인 남성 위주의 시각을 대변한다. 그가 스물 이전에 순국한 ‘소년’이었다고 한들 우리 사회에서 그를 ‘ㅇㅇㅇ형’이라 부를까. 더구나 ‘ㅇㅇㅇ오빠’는 언감생심이다. 호명의 주체로 여성을 상정하는 일도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공적 호칭으로 ‘유관순 언니’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장소천이나 박두진에게는 1902년생인 유관순이 ‘누나’임직하지만 이미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훨씬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누나’로 불리는 것은 그를 온전한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로 바라보는 걸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유관순 열사’라 부를 때 그는 ‘이준 열사’와 같은 위상의 공적 영역에 존재하는 인물이 된다는 점을 되새길 만하다. p 099


“대한독립과 결혼하였다”라는 진부한 표현마저 그의 삶을 아우르는 데 모자를 정도로 김마리아는 평생 독신으로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 여권 신장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다. 두 차례의 투옥 중에 여성으로서 치욕적인 고문을 받아 한쪽 가슴을 잃고 늘 안섶과 겉섶의 길이가 다른 특별한 저고리를 입어야 했던 사람이었다. p 124


독립유공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3%가 채 되지 않는 현실은 옥바라지와 경제활동, 양육까지 병행하며 항일투쟁에 참여한 여성들의 희생이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그늘에 가려진 부인들의 뼈를 깎는 희생은 남편에 부수되는 ‘내조’가 아니라 동등한 ‘투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아쉽다. 내로라하는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헌신은 바로 그들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p 142





#김알렉산드라. ‘한인 사회주의자 동맹’ 창당 및 한인무장부대를 조직하였고 출판사 ‘보문사’ 운영했다. 하지만 김알렉산드라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를 근거지로 두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광복 이후 오랜 시간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그 이름조차 금기시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한에서 그들은 그저 사회주의자였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우상화의 걸림돌이었으니까.


#유관순. 과거에는 유관순 열사 이름뒤에 따라오는 호칭은 늘 ‘누나’였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이름 뒤에 의사, 열사, 지사를 붙여 존경받아 마땅할 사람으로 인식하였지만, 유관순 열사만큼은 달랐다. 국가적 차원에서 유관순 열사는 ‘유관순 누나’ 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그 이름 뒤에 ‘열사’가 붙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김마리아. 2.8독립선언 대회에 참가했으나, 정작 2.8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조선 청년 대표 11명 중에는 여성이 없었다. 김마리아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등하게 독립운동을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했다. 여권 신장에 중요성을 깨닫고, 교육하며, 여성지도자들과 함께 대한대국부인회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아 임정으로 보내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일제에 잡힐 때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끔찍한 성고문을 당했다. 


#박지혜. 그녀의 남편은 단재 신채호다. 다들 신재호는 알지만 박지혜는 모른다. 비단 그녀뿐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 대다수는 남성이다. 왜일까? 이 역시 남성 위주 시각의 대표적인 폐해다. 


이들은 살아서 조국이 광복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살아서 독립을 보지 못했던 것이 어쩌면 이들에겐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의 ‘단합’과 ‘통일’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믿은 김규식은 해방 공간에서 일관된 태도로 좌우합작과 통합을 이루려고 애를 썼다. 1948년 1월, 유엔 한국위원단이 서울에 들어오자, 그는 남북협상에 들어갔다. 그해 2월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에 ‘극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권’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p 205


일제의 전시 동원 체제하에서 이화의 김활란은 일제에 협력하면서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했지만, 같은 시기에 근화여학교의 경영권을 잃은 차미리사는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울분을 삭이며 은거해야 했다. 해방 이후 김활란은 이승만과 손을 잡고 단독정부 수립 운동을 벌였지만, 차미리사는 남북협상을 주장하며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김구 진영에 합류했다. 해방 정국에서 단독 정부 설립을 반대하고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108인 중 유일한 여성이 차미리사였다. 일찍이 1907년에 의혈 투쟁을 주장한 바 있는 그는 해방 공간에서도 남북 분단을 반대한 유일한 여성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p 240


1944년에 임정의 군무부장에 취임한 김원봉은 1945년 12월 임시정부 환국 2진으로 귀국하였다. 1946년 6월에는 조선민족혁명당을 인민공화당으로 개칭하고 연합전선 구축에 노력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께 좌익 활동 혐의로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붙잡혀 가서 따귀를 맞는 등 수모를 겪고 밤낮을 통곡했다고 한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오직 조국 독립 일념으로 일제와 싸워온 투사인 그가 더러운 친일파 노덕술에게 당한 모욕감과 치욕은 쉽게 삭일 수 없는 것이었다. p 250






#김규식. 그의 독립운동 행보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좌우합작, 민족통합’이다. 임정에 민족혁명당을 참가시켜 좌우합작을 성공시킨 존재역시 김규식이었다. 해방 직후만 해도 김구선생은 반공 우파 노선을 확실히 했던 것에 반해, 김규식은 여운형과 함께 해방이후에도 꾸준히 좌우합작, 민족통합을 외쳤다(김구 선생이 좌우 합작을 외치게 된 건 나중일). 그의 바람대로 조국이 독립을 맞이했지만, 그가 원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두개의 나라로 쪼개졌다. 설상가상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김규식은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어 지병으로 사망했다. 김규식도 여타 독립운동가들처럼 남한에서 그 이름이 금기시 되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외치던 이승만의 정적이라는 이유가 첫번째고,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는 이유가 두번째였다.



#차미리사. 조국 독립을 꿈꿨던 덕성여대 설립자 차미리사와 일제 부역자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의 상반된 행보. 여성 교육의 선구자라는건 차미리사와 김활란이 같았지만, 차미리사는 독립운동을, 김활란은 친일행위를 했다. 광복 후에 차미리사는 김구 선생과 뜻을 함께했지만, 김활란은 여느 친일부역자들이 그렇듯 이승만과 함께했다. 



#김원봉.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자 의열단 창립자 약산 김원봉. 일제는 현상금 100만원을 내걸 정도로 김원봉을 무서워했고 두려워했다. 심지어 김원봉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좌우 상관없이 그 누구와도 협조했던, 유연한 민족주의자였다. 하지만 오랜시간 남과 북 모든 곳에서 그 이름이 금기시 되었다. 남한에서는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우상화 정책에 장애물이라는 이유로. 



#박차정. 김원봉의 부인 박차정 역시 의열단원이었으며, 아버지 김두봉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1939년 쿤룬산 전투에서 총상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박차정 역시 남편 김원봉과 같은 이유로 오랫동안 그 이름이 금기시 되었다. 남한에선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김원봉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은 생전에 조국 독립을 마주했다(박차정 제외).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조국 독립이 맞았는가? 아니다. 반쪽짜리 독립이었다. 조국은 둘로 쪼개졌고, 쪼개진 반쪽짜리 나라에서는 권력 우상화 정책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숙청되었다. 남한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그랬고, 북한 김일성이 그러했다. 남한에 남아있던 독립운동가들은 이승만 정권 때 ‘빨갱이’로 낙인찍히며 고문을 당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했다. 왜? 이승만 정권은 친미라는 이름아래 가려진 친일부역자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마저 대놓고 훼방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독립운동 과정의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고 또 기록하고, 후대에 전승해야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준 선대를 기리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멸문 지경까지 간 그들의 후손들을 도와야한다.


반대로 독립운동가를 핍박한 일제와 그들에게 부역한 반민족행위자들 역시 반드시 기억하여, 그들의 후손이 우리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없게, 반민족행위를 하면 대대손손 멸문을 당하는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을 배워야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독립운동사를 배우고, 기억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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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저주 - 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
루크 켐프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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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A와 B라는 국가(또는 문명, 도시)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두 나라는 붕괴되었다. 분명히 붕괴된 나라들이지만 A는 계속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A를 모방하는 크고 작은 국가들이 꾸준히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반면에 B는 잊혀졌다.


A는 설명이 필요 없는 로마 제국이고, B는 미시시피강 습지 한켠에 있던 카호키아다. 로마는 사라졌지만 살아남았고, 카호키아는 정말로 사라졌다. 똑같이 붕괴했음에도 한쪽은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이름으로 살아남고, 또 한쪽은 잊혀지는 것. 그 차이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역사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바로 루크 켐프의 『골리앗의 저주_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이 역사책은 상당한 두께의 벽돌책이라는 사실이다. 벽돌책 특성상 초반 흡입력이 없으면 완독이 어렵다. 나 역시 여러 벽돌책을 읽어보았지만 완독 여부는 초반 흡입력에서 갈렸다. 내 기준을 통과했던 책으로는 『사피엔스』, 『소련 붕괴의 순간』 등이 있는데, 이 책 역시 남다른 초반 흡입력을 자랑한다. 비유하자면 『사피엔스』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닮아있다.




앞서 언급한 로마제국과 카호키아. 대다수 사람은 로마를 알고 있지만 카호키아는 모른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카호키아라는 문명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똑같이 붕괴했음에도 로마는 끊임없이 소환되고, 카호키아는 잊혀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카호키아가 잊혀졌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이들에겐 무례한 말일지도 모른다. 카호키아가 개척한 미시시피 문화는 그곳 원주민들에게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카호키아를 모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1퍼센트의 역사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언어, 관습, 문화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조차 로마의 흔적(예: 상원 제도)을 심심찮게 채택했다. 즉 패권국들이 로마를 소비하고 모방했기에 로마는 '승자의 역사'로 계속 소환되었다. 반면 카호키아는 피지배층이 된 원주민의 문화였기에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상류층과 승자가 소비한 문화만 기억하는 역사의 편향성, 여기까지가 이 책의 서론이 던지는 강렬한 화두다.



하지만 서론은 시작에 불과하다. 

본편으로 들어가면 진짜 충격적인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위대했던 '골리앗'들은 왜 하나같이 무너졌는가?"




붕괴의 역사는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역사적 현상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에 있다. 과거는 대참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사람들이 대참사에 대한 회복력을 어떻게 입증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극히 위험한 곤경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붕괴를 관찰하다 보면, 어떻게 사회가 자멸로 이어지는 위협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다른 사회를 파괴할 수도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붕괴는 대규모 권력구조가 어떤 식으로 소멸되는지에 관한 문제일 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 타자의 소멸을 초래하는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p 025




저자인 루크 켐프는 300여 개가 넘는 제국과 정권의 역사적 사체를 해부하며, 거대하고 강력한 문명(골리앗)일수록 내부에서부터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골리앗의 저주'를 파헤친다.


문명을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 만든 자원 착취 구조, 소수 엘리트 계층의 권력 독점과 극단적 불평등, 그리고 복잡해진 사회 유지를 위해 드는 비용은 증가하는 반면 비용대비 효율은 점점 줄어드는 것. 문명이 거대해질수록 이 시스템들도 점점 거대해지고, 거대해진 만큼 아주 작은 외부 충격에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 것이다.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 자체가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을 숨을 끊을 수 있는 칼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이 이토록 소름돋는 경고를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다름아닌 '오늘날의 현대 사회'다.


과거 로마나 카호키아가 무너졌을 때, 민중들은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났다. 어떤 의미에서 문명의 붕괴는 대중에게 '해방'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전 지구가 단 하나의 연결망으로 묶인 '글로벌 골리앗'의 시대다. 에너지, 식량 공급망, IT 네트워크가 한순간에 마비된다면 자급자족 능력을 상실한 우리는 생존조차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경험했다. 코로나 펜대믹, 러시아vs우크라이나 전쟁, 미국vs이란 전쟁 등으로 에너지 공급망이 마비되고, 물류가 마비되는 것을 보았다.



서론의 '카호키아와 로마' 이야기로 지적 호기심을 극도로 끌어올린 이 책은, 본론에 이르러 인류가 걸어온 오만의 역사를 뒤흔들고, 결말에 이르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문명의 시한폭탄을 직시하게 만든다.


혹여나 벽돌책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 거대하고 복잡한 문명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얼음판 위에 서 있는지 깨닫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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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
박성욱 지음 / 파람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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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돌아가는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늘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를 고민한다. 파람북에서 출간된 박성욱 작가의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바로 그 고민의 출발점을 뒤흔드는 책이다. 저자는 동양고전의 지혜를 빌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고질적인 불안과 고립감의 원인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책은 우리가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단한 자기다움을 회복하여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묻는다. 소유와 경쟁 대신 공존과 상생을, 고립 대신 따뜻한 연결을 제안하는 이 책은, 쉼 없이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가장 깊은 근원을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존재에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그 이름은 한결같이 지속되는 이름은 아니다. 『도덕경』 1장


한결같이 지속되는 본질은, 바라는 바가 없으면 그 묘함을 볼 수 있지만, 바라는 바가 있으면 바라는대로 보이게 된다. 『도덕경』 1장


있음과 없음이라는 것은 생겨남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어려움과 쉬움은 이루어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며, 긴 것과 짧은 것은 형태를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높음과 낮음은 기울어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며, 음악과 소리는 조화로움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고, 앞과 뒤는 따라감을 기준으로 나눈 모습이다. 『도덕경』 2장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은 이름을 짓고, 기준을 정하고, 무언가를 규정하고 분류하는 일에 언제나 진심이었다. 무언가를 명확히 규정해야만 사회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생활 규범이 되었고, 신분 체계나 사회적 지위가 되기도 했다. 형태가 무엇이든 이러한 ‘개념화’와 ‘분류’ 덕분에 인류는 혼란을 줄이고 사회 질서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확실히 대상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행동의 기준을 정하는 행위는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이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주어진 이름과 기준에만 맞춰 살아가야 할까? 편리를 위해 만든 ‘이름’이라는 틀은, 역설적으로 대상의 본질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당장 나의 삶만 보아도 그렇다. 딸을 키우는 나는 사회로부터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표가 나라는 존재의 전부를 규정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해 ‘ㅇㅇㅇ 매니저’라는 명함을 내미는 직장인이다. 그뿐인가. 친정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내 어머니의 ‘딸’이라는 이름표로 갈아입는다. 이처럼 상황마다 나를 지칭하는 파편적인 이름표들만으로 나의 본질을 온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름은 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그 존재의 역할을 단편적으로 고정해 버린다. 그리고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 고정관념이라는 부정적인 반대급부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극에 갇히는 순간,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할 때 우리는 이유 없는 불안감이나 죄책감마저 느끼게 된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한결같이 지속되는 이름은 없다"고 통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은 여러 이름을 동시에 지니며 다양한 역할을 하지만, 특정 이름에 갇히는 순간 그 존재의 다채로움과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진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이라는 이름표가 개인의 모든 면을 규정하고, 심지어 그 역할을 벗어날 때 불안감이나 죄책감마저 느끼게 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름에 잡혀 대상에 대한 선입관이 생기거나, 의도나 욕망이 개입되면 이름과 대상을 동일시하는 잘못이 일어날 수 있다.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인 이름 때문에, 오히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 050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해 개념을 정의하고 만들어낸다. 개념화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단순화하고 구조화하는 인식의 도구인 것이다. ‘아름답다’, ‘선하다’, ‘크다’, ‘작다’와 같은 표현들 모두 존재를 이해하고 분류하기 위한 인식의 도구들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개념화가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흐리고 왜곡하는 결과를 자주 보게 된다. 단순화된 그 틀이 때로는 존재의 본래 모습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개념은 분류를 낳고, 분류는 차이를 만든다. 이렇게 생긴 차이를 불필요한 평가와 차별로 일어가는 일이 쉽게 일어난다. ‘도덕경’에서는 개념과 분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 059



비단 이름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개념화’하는 일 역시 서늘한 부작용을 낳는다. 개념은 분류를 낳고, 분류는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떠한 것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이면에는 ‘추함’이 동시에 생겨난다. 어떤 행동을 ‘선하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와 반대되는 행동은 고스란히 ‘악’이 된다.



일단 사회적으로 개념이 합의되고 규정되면, "과연 그것이 진짜 아름다운가? 착한 행동이 맞나?"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는 이런 규정들은 사실 그 당대의 관념과 욕망에 의해 결정된 것들이 대다수다. 노자의 말대로 '바라는 바(의도와 욕망)'가 개입되어 세상을 보기 때문에, 본질이 왜곡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개념과 규정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맥락이 완전히 달라지곤 한다. 멀게는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재판에 대한 당대의 찬사가 후대에 이르러 가장 잔혹한 악행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가깝게는 과거의 기준에 묶여 현재 우리의 삶을 억죄고 있는 오래된 법 조항이나 규제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대에는 질서를 위한 최선이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낡은 틀이 되어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을 짓누를 뿐이다.



인문학책 『나는 살아가는 사람인가』는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삶은 짓밟고 올라서는 경쟁이나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을 축적하는 소유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이라고 말이다.



수많은 이름표에 갇혀 세상이 나눈 이분법적 기준에 헐떡이며 '살아지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그 틀을 깨고 나와 단단해진 자기다움으로 세상과 따뜻하게 연결되어 '살아가는' 삶을 살 것인가. 내 가슴에 붙은 수많은 명함과 이름표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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