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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잘 있습니다 - 엄지사진관이 기록한 일상의 순간들
엄지사진관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3월
평점 :
오늘 읽은 책은 제주살이 에세이 「제주는 잘 있습니다」. 서울을 떠나 제주에 터를 잡은 저자가, 제주에서 살면서 써내려간 에세이다. 처음에는 제주여행 에세이인가? 싶었다. 제주 여행 에세이도 여러권 읽어봤기에, ‘제주’라는 단어만 보고 지레짐작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책은 ‘제주’보다는 ‘있습니다’에 방점을 찍은 책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제주도민이 제주에 살면서,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혹은 여행자로서 제주에 왔을 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한줄 한줄 써내려간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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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되면, 자연스레 이방인의 입장으로써 그 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가끔은 이방인이 아닌, 그 곳에 살던 원주민의 삶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욕구를 조금이나마 충족해준다. 읽다보면 제주 한달살기도 고려해보고 싶을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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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제주에 처음 입도해서 지내는 동안 내 기분은 자주 태도가 되었다. 전보다 더욱 예민해져 때로는 나조차 나의 예민함이 어려웠다. 제주와 서울의 시간은 상이하게 흘러간다. 천성이 부지런하다 못해 일하다 죽을 팔자인지 나는 느리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나태함을 견디지 못했다. 고요함에 적응하며 이제는 오후 7시 10분이면 집에 들어오는 일상을 보낸다. p 054
누군가는 나의 표면만 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이미 나는 충분히 혼자만의 새벽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타인에게 하나하나 노출하지 않을 뿐이라는 말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는다. 어설픈 조언이라면 가슴에 새기고 상처받지 말고 적당히 흘러 듣는 편이 좋다. 이제 ‘그냥 너나 잘하세요’ 하고 넘길 수 있는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p 199
여행지로써의 제주는, 하루하루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가야할 곳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지가 아닌, 내가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제주는 전혀 달랐다. 간혹 TV에서 제주에 사는 연예인들이 하는 말,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제주. 그 여유를 저자가 느끼고 있었다. 물론 서울살이 하다가 제주로 건너갔을 때, 그 여유에 적응을 못했다고 한다.
문득 (산전)육아휴직을 하고 반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돌아봤다. 나 역시 저자처럼 부지런하다못해 일할 팔자로 태어나서,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서 1n년간을 쉼없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회사를 오래 쉬어본 적이라고는 결혼할 당시 신혼여행갔을 때? 물론 어디까지나 회사를 오래 쉬었던거지, 당시엔 신혼여행을 즐기느라 역시나 여유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길다면 긴 (기간한정;;)여유가 생긴 것이다.
휴직을 시작하고 첫 한달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오랜기간 회사생활에 맞춰진 내 몸뚱아리는 아침 6시만 되면 눈을 떴고, 눈을 뜬 그 시간부터가 고난이었다. 1n년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회사 출근을 하며, 바쁘게 살아오면서 짬나는 시간이라곤 커피마시는 시간밖에 없던 나였으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니 시간은 더디게 가고, 더디게 가는 시간동안 나는 뭘 해야할지 모르겠고. 그때서야 깨달은 사실은, 나는 제대로 쉬는 법을 몰랐고, 나에게 찾아온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몰랐던 거다. 그걸 깨닫는 순간 우울증 비스무리한게 오기도 했다.
휴직하고 두달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여유를 즐기는 방법은 아직 찾지를 못했다. 다만, 긴긴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지 시간대별로 계획표를 짠 덕분에, 내 하루를 체감하는 시간이 꽤나 짧아졌다. 다만 여유도 즐길 줄 알아야한다는 생각에, 각 계획 사이사이에 쉬는시간 20~30분씩 조금 길게 넣었다. 난 천성이 무언가를 하고,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계획표를 짜서 루틴을 만들고 나니, 휴직 후 한달이 지나서부터는 우울증이 무엇인가? 아주 루틴대로 하루하루 잘 돌아가는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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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던데, 놀랍게도 머문 자리가 아름답지 않은 경우도 많이 목격된다. 쓰레기통이 드문 것도 단점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21년 여름에 이호테우 해변이 쓰레기 무단 투기로 인해 쑥대밭이 된 모습을 소셜 미디어로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지나온 자리를 돌아봤을 때 뿌듯함을 느낄 이들이 늘기를. 혹은 누군가가 더럽힌 자리에 들어설 때 느낀 불쾌함을 상상해보기를. 배려라는 생각보다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p 063
제주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다. 그만큼 사람들도 많이 찾아간다. 나 역시도 제주를 수차례 방문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좋지 않은 광경이 목격되기도 한다. 나같은 여행자 눈에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그런 광경이, 제주에 사는 저자에게는 자주 보였으리라.
본디 제주는 자연경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인데, 그런 곳에 쓰레기를 그냥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생각보다 많다. 나 어릴때는 쓰레기 불법투기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 보면 거의 대다수가 그렇다. 비단 제주 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 여기저기를 봐도 그렇다. 어쩌면 다들 그렇게 자기 편한 생각밖에 못하는지.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자기가 챙겨오는게 당연한거라 생각하는 내가 우스워질 정도로 말이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인성교육의 부재인가 싶기도 하다. 더 슬픈건.... 앞으로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다. 쓰레기를 아무대나 버리는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은 그게 당연한 것이라 배울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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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마음 맞는 사람보다 맞지 않는 사람이 더 선명히 보이고, 나를 지키기 위해 사소한 부분에서도 까탈을 부리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혼자가 좋을지라도, 대체로 홀로 시간을 보내더라도 우리는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친구나 사람의 소중함을 오롯이 혼자가 된 이후 제대로 깨달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구나. 사람으로 버텨가는 것이구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마다의 위로를 건네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생긴다. p 161
정말 인간관계는 어렵다. 난 그런 인간관계에 넌덜머리가 났던 사람인지라, 내가 마음을 준,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몇 안된다. 같은 학교 나왔다고 전부다 친구는 아니지 않나? 그저 동창, 지인일 뿐이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몇몇의 친구를 제외하곤, 허울뿐인 동창이나 지인은 싹 정리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편하던지!
개인적으로는 가족이라 일컫는 친인척 관계에도 굳이 얽매여야하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다. 우리 할머니 세대까지만해도 사촌에 육촌, 부둥부둥했겠지만, 아니 부모세대까지도 그랬겠지만 내 세대는 아니다. 일년에 한번도 볼까말까한 사이인데, 그저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좋게봐줘야 한다는 사실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행실이 별로인데도 말이다.
다만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니, 그저 내 옆에 내가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만 있으면 무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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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주에 오셨어요?”, “요즘 즐거운 일은 뭐에요?”, “제주를 왜 좋아하세요?”
숱한 여행을 다녔지만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게. 나 왜왔더라. 사실 그냥 이유가 없는 것이 이유이기도 했다.
“이유가 없어요.”
“어쩌면 모든 일은 이유는 없어도 연관은 있을 거에요.” p 171
“취미가 있으세요?”
“저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합니다.”
“얼마나요? 얼마나 오래 찍었어요? 정말 좋아해요?”
“네?”
그 길을 걸으며 연달아 받게 된 질문들은 하나같이 당황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모호하고 감성적인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고, 하루에 백장 정도 사진을 찍을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다는 정량적인 수치를 몯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진’에 관한 나의 진심이 궁금해 던지는 질문이었다. 개인적인 호불호가 지극히 약한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좋아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에 관한 진심을 묻는 듯 하여 나도 모르게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p 129
저자의 일화를 보고, 누군가 나에게 ‘진심’을 물어본 적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와, 놀랍게도 없는 듯?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내가 왜 역사를 좋아하는지, 내가 왜 책을 좋아하는지 등을. 아- 근데 막상 생각해보니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대체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걸까? 뭔가 계기가 있었을법한데 말이다.
심지어 나는 한번 좋아하면 꽤 오랜시간을 붙들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것들까지 좋아하고 심지어 공부도 한다.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십수년간을 좋아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에서 파생된게 내 취미가 되고, 그 취미도 또 십수년간 이어진다. 요즘같이 클릭 한번으로 다양한 취미를 살 수 있는, 취미부자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흔치 않는 모습이긴 하다.
뭐, 그래도 어쩌겠나. 좋아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좋아하는걸?
그나저나! 한동안 가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언제나 가고 싶은 여행지 제주는.............언제나처럼 잘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