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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모험
신순화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11월
평점 :
난 명실공히 식집사다. 지금은 육아를 하느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화분을 많이 줄였지만, 아직 우리집에는 초록이들이 곳곳에 있다. 내가 식집사를 자처할 때 만해도 우리 신랑은 초록이들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벗뜨... 식집사의 기본인 먹뱉(ㅋㅋ)으로 발아한 사과나무와 동네공원에서 씨앗 줍줍해서 발아한 자귀나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신랑도 초록이에게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신랑은 늘어나는 초록이들에게 무한 애정을 쏟았지만, 정말 슬프게도...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초록별로 가는 친구들을 왕왕 마주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작은 화분속에 사는 아기 사과나무와 아기 자귀나무는 잘 버텨주었다. 식집사로써 사는 기간이 점차 늘어가면서,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고 초록별로 보내는 식물들도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죽어가던 초록이들을 살리기도!
하지만... 아무리 집에서 초록이들을 잘 키운다 한들, 화분 속에서는 한계가 있다. 집 안에서, 좁은 화분 안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예민하다. 반면에 밖에서, 노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무난하다.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수돗물을 주면 썩 좋아하진 않는다. 어떤 애들은 수돗물의 염소성분을 한 이파리에 몰빵해서, 그 잎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비료도 주기적으로 챙겨줘야하고, 실내 화분에서 생기는 벌레들과도 싸워야 한다. 하지만 노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다르다. 수돗물을 줘도 문제없다. 비료? 굳이 안줘도 알아서 잘 자란다. 모든 식집사들은 알고 있다. 노지가 최고의 화분이라는 것을!!
그래서인가...언젠가부터 신랑과 나는 전원주택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내가 키우는 아기 사과나무와 아기 자귀나무가 우리집 마당에서 자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조그만 화분에서 자라는 다른 초록이들에게도 노지라는 최고의 화분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리집 초록이들이 잘 클 수 있는 마당있는 전원주택. 그게 나와 신랑의 ‘언젠간 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원주택의 삶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 희망사항이 되었다. 다름아닌 언젠가 걷고, 뛰게 될 우리 집 상전(!) 뿡뿡이를 위해서. 이따금씩 신랑이랑 전원주택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만... 전원주택의 삶이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벌레라던가 쓰레기 처리, 냉난방, 잔디관리 기타 등등. 그래서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선배들의 조언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에세이 「집이라는 모험」을 만났다. 우리처럼 아파트에 살다가 호기롭게 아파트를 등지고 마당있는, 그것도 엄청난 텃밭 부지를 품고있는 전원주택에서 살기를 선택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그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호기심 많고 놀기 좋아하고 활동적인 아들을 땅만 밟으면 날개를 단 듯 신이 났다. 아이는 흙과 동물, 그리고 벌레를 사랑했다. 놀이터에서도 그네보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를 관찰하는 걸 더 좋아했다. (…) 땅으로 내려가고 싶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다 있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p 011
저자가 마당있는 전원주택을 택한 이유는 내가 전원주택을 희망하는 이유와 비슷했다. 다만 나는 아직도 여러 현실적인 이유를 핑계로 고민하는 반면, 저자는 바로 GO !!! 편리한 아파트를 버리고, 주변의 편의시설들을 버리고 전원주택을 택한 이 가족들의 삶은 어땠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훗날 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니까.
이사 오기 전까지 살던 아파트는 전철역도 가깝고 비교적 최근에 지어서 여러모로 쾌적하고 편했다. 남편은 그 집을 만족스러워했다. 내가 느닷없이 이 집을 보고 이사를 조르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생각할 필요도 없다던 사람이다. 일 년이라도 좋으니 이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며칠을 간절하고 절절하게 부탁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마침내 져주었다.
“당신이 좋으면 난 그걸로 됐어…” p 022
이 집은 오래 비어 있었다. 바닥 난방을 한다고 단번에 따뜻해질 수 없었다. 이사를 오기 전에 집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어디로 바람이 제일 많이 새어 들어오는지, 어디를 어떻게 손봐야 한기가 덜 스미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이사를 왔다. (…) 모든 문제를 찬찬히 파악해서 대비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 함께 모여 각자의 체온으로 서로를 덥혀주는 겨울밤에 우린 이불 속에서 재미난 얘기들을 많이 나눴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제 몸을 꼭 붙이고 잠들었다. 굴속의 토끼들처럼, 엄마 곰 품안에 있는 아기 곰들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 겨울을 났다. 추위라는 모험은 호되고 힘겨웠지만 가족이 함께 통과하면서 추위와 사이좋게 어울리는 법을 찾아냈다. 우리가 받은 첫 선물이었다. p 026~027
역시나. 전원주택의 제일 큰 걱정인 냉난방 문제가 제일 먼저였나보다. 한 겨울에 따수운 아파트를 등지고, 추운 전원주택에서의 삶이라. 헌데 그마저도 이 가족들에겐 선물이 되었다. 아파트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서로의 온기를, 추운 전원주택에 와서야 누리게 되었던거다. 엄마곰 품속의 아기곰들이라니. 상상만해도 웃음이 난다. 서로 한데 모여 부둥켜않고, 잠들때까지 조잘조잘거리는 모습. 저녁만 되면 서로 자기 방에 들어가버리는 아파트에서의 삶과는 다른, 가슴 땃땃한 풍경이다. 전원주택은 춥지만 그 안에 있는 가족들의 마음은 땃땃하기 그지없다.
이사를 한 지 닷새 만에 시가 식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 모두 지방에서 먼 길을 온 터라 당연히 일박 이일이었다. 좋은 아파트를 버리고 외진 곳에 있는 주택으로 이사했으니 어떤 집인지 궁금할 것 같아 서둘러 마련한 자리였다. 시어머님은 잠을 설쳐가며 밤새 벽난로에 불을 지피셨다.
“흠… 안팎에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 p 053
이 집에서는 어떤 일을 겪을 지 몰랐다. 그래서 뭐든, 어떤 일이든 우선 신기하고 새로웠다. 조심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움츠리고 아이들을 단속하기보다는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하고 눈과 마음을 빛내며 창밖을 보곤 했다. (…) 이 집에서는 나날이 모험이었다. 모든 날이 다른 색채와 느낌으로 다가와 놀랍고 뿌듯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모험이 넘치는 집에 산다는 것, 눈을 뜨면 여전히 설레고 놀랍고 두근거리는 일이 기다린다는 것,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다. p 057~058
아파트와는 달리 전원주택은 안팍으로 어린 아이들에게는 위험요소가 확실히 많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위험요소들은 호기심 천국인 아이들에게는 새롭고 신기한 모험이자 놀이고, 교육이다.
요즘 아이들은 해가 뜨면 교육기관을 뺑뺑돌다가, 늦은 오후나 저녁에 집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뛰어다녀야 할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심지어 그 놀이터 조차도 아이들 다치지말라고, 모래밭이 사라진지 오래다. 나 어릴땐 매일같이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여있었다. 모래밭 놀이터라 모래를 맨날 파고, 뛰어다니고 막 그러면서 놀았던 기억이있다. 분명 그때는 당연했던 모래밭 놀이터가 지금은 사라지고, 바닥이 고무로 포장된 안전한 놀이터가 되었다. 더 안전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없다. 발이 푹푹 들어가는 모래밭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놀이자 또 하나의 교육이다. 거기에 의도치않은 면역력 증진은 덤이다. 하지만 안전한 고무바닥은 집안에 있는 놀이매트와 다를게 없으니, 우리 아이들이 굳이 놀이터에 나갈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지를 않으니, 그만큼 활동성은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니 정신력도...휴.
난 우리 뿡뿡이가 모래밭, 흙밭을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의 놀이터는 전부 고무매트 시공이다. 이게 지금의 내가 전원주택을 원하는 제일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집을 계약할 때 주인 어르신은 텃밭 농사도 꼭 지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집 주변이 다 밭인데 놀리고 묵히면 땅도 집도 금방 망가진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그래야죠, 맞장구를 쳤다. 텃밭 가꾸는 게 꿈이었다고, 염려하지 말라고 목에 힘을 주었다. 주인은 미심쩍어 했다. ‘어린애 셋에, 더구나 막내는 아직 돌도 안 지났다면서 이 애들을 데리고 큰 집 건사하는 일만 해도 벅찰텐데 농사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자신 있다며 방긋 웃었다. p 105
수확은 변변찮았지만 십이 년간 비닐과 농약, 비료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어온 점은 스스로 칭찬하고 있다. 유난히 우리 밭에 벌레와 동물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거다. (…) 우리가 돌보고 우리를 키워온 땅, 이곳을 떠나도 내 몸은 봄이 오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던 일을 기억하고 또 어딘가에 무엇을 심을 생각에 들뜨지 않을까? 바라건대 어디에 살든 심고 가꾸고 돌보는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다. p 110
마당 있는 집으로 와 농사를 짓게 되면서 내게도 첫물의 맛이 생겼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얼었던 땅이 녹고 온갖 초록 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땅거죽은 단단하지만 샆으로 떠서 뒤집으면 고슬고슬하게 풀어진다. 그 땅을 일궈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땅에서 뾰족한 순들이 솟아 나올 때, 시들하던 모종이 이윽고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마침내 새 잎을 밀어 올릴 때면 쿵쿵 가슴이 뛴다. 어서 자라라, 빨리 자라라 노래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 된다. p 135
밭일이 너무 많아서 고단하고 지친 나머지 이제 농사를 때려치울까 싶다가도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첫물의 맛을 기다리게 된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분명 먹었을 텐데 첫물의 맛은 언제나 오나벽하게 새롭고 감동적이다. (…) 살아 있어 해마다 새봄을 맞고 첫맛을 보는 일은 얼마나 멋지고 귀한가. 모든 것이 얼어붙언 찬 겨울에도 땅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새 맛을 알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힘든 날을 견디게 한다. 어쩌면 이번 봄의 나도 지난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지 모른다. 첫물의 맛처럼 내 안에서도 쉼 없이 처음 솟아나는 무엇이 있기를 바란다. p 137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은 두번째 이유는 바로 이거다. 베란다 속 화분 따위가 아니라 무려 ‘노지’에서 텃밭을 꾸릴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초록이들을 원없이 가꿀 수 있다는 것. 베란다 온실&텃밭에서 키우는 초록이들에게 유료햇빛도 쐬어주고, 물도 잘 챙겨주고 비료도 꾸준히 챙겨준다 한들, 노지에서 자라는 애들을 이길 수 없다. 맛도, 크기도, 그 위용도...정말 다르다. 이태리산, 독일산, 국내산 각종 화분을 골라도 결국 최고의 화분은 ‘노지’다.
다만 두려운 점은 있다. 생각보다 시민의식이 떨어진 사람들이 많다보니, 남의 텃밭에 들어가서 작물을 터는 상황을 자주 보았다. 뿐만인가? 대문 안에 있는 화단, 텃밭까지도 기어들어와서 파가는 경우도 보았다. 대문열고 들어와서 튤립, 수선화 알뿌리만 쏙쏙 파내갔다는 이야기에는 진짜 혀를 내둘렀다. 이쯤되면 시골이고 도심이고 상관없이, 남의 화단&텃밭을 탐내는 도둑놈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 만은 확실하다. 이게 바로 전원주택은 커녕, 넘쳐나는 주말농장 조차도 선뜻 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말 전원주택의 삶은 아파트와는 달리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아, 단점이라기 보다는 정확하게 말하면 ‘불편함’이라고 해야겠지. 그 불편함 때문에 나는 편리한 아파트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이유가 아주 명확하게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알고서도 전원주택을 택한 저자를 보자니, 못할 것도 없지않나 싶다. 전원주택의 불편함은 그냥 내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전원주택의 삶은 불편함을 상쇄할 만큼 얻는게 많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