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예술로 여행하기
함혜리 지음 / 파람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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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목적있는 여행을 추구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뼛속까지 J인 나는 주제를 정하고, 주제를 토대로 어디를 갈지 계획하고, 뭘 먹고, 어디서 잘지를 완벽하게 정해놔야 마음이 가벼워진다. 심지어 돌발상황을 대비한 대체안 두어개를 더 만들어둔다. 예컨데 휴관일이 아닌데 휴관한다거나. 실외장소인데 갑자기 비가 와서 보기가 어려워진다거나 뭐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이 여행책 『프랑스, 예수롤 여행하기』 저자도 그렇다. 나처럼 여행 목적이 명확하다. 내가 역사라면, 저자는 ‘예술’. 역사나 예술이나 인문학 하위분야이고, 예술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역사가 들어오고, 역사를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레 예술작품이 나온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내내 여러 곳에시, 저자와 취향이 겹쳐지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들 하지만 사진을 곁들여 글을 쓰면 그 순간의 감동이 더욱 오래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정을 짜면서 봐야 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 때 1차 자료 조사를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는 사진기에 담고 매일 저녁 다녀온 장소를 기록하면서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한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 글로 정리하면서 예술가에 대해서,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다시 공부하고 가져온 자료와 책을 찾아보게 된다. 이렇게 글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여행에 깊이가 생기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된다. 그리하여 내게 여행기를 쓰는 것은 또 다른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p 006


이 여행책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예술’ 여행이라는 관점하에 쓰여진 여행에세이다. 무엇보다 프랑스는 유밍한 미술관, 박물관이 즐비한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유명 미술관, 박물관 대다수가 프랑스 수도 파리에 있다. 파리가 괜히 세계 문화수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이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한 여행에세이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저자는 파리를 비롯하여 남프랑스까지 전부 섭렵했다. 거기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뿐만 아니라, 과거 예술 거장들의 흔적까지 아우르는 예술 여행 에세이다. 




파리

오랜 세월 공들여 가꾼 도시 파리는 아름답다. 잘 정비된 도로변으로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그 모든 길이 만나고 헤어지며 만들어지는 지점에는 광장이나 분수, 조각 같은 역사적 기념물이 있다. 겉만 조형적으로 아름답다고 하면 파리가 아니다. 파리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이 소장한 다양한 미술품은 인류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문화와 정신의 빛나는 결정체들이다. 세계의 문화수도라는 자부심 또한 무리가 아니다. p 015


13세기에 지어졌던 루브르궁은, 14세기 베르사유궁이이 지어진 뒤 왕실 소장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되었다. 이후 혁명기를 거쳐, 유럽 최초 근대적 박물관으로 개관했으니 여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루브르박물관의 시작이다. 루브르박물관의 심볼인 유리 피라미드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좌/우파 가리지않고 극심하게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조금 신기했다. 지금 피라미드 없는 루브르는 그야말로 앙꼬없는 찐빵이니까. 심지어 설치하고 있는 중에도 반대가 심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유리 피라미드를 제작하며 박물관을 확장한 결과, 루브르 입장객은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성공스런 리모델링이 아닌가!


루브르에 전시 작품들이나 시대적 구분은 워낙 방대하니 생략! 궁금한 사람들은 이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된다. 예술을 사랑하는 여행자 시점으로 쓴 만큼 정말 자세하게 서술되어있다. 


유리 피라미드에 이어 조금 놀랐던 이야기 하나 더 소개하자면, 바로 루브르 아부다비. 일종의 루브르 체인점이라고나 할까? 프랑스 정부와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협약하여, 아부다비에 설립된 루브르 아부다비점이다. 외관상으로 파리 본점이 역사과 기품이 담긴 고풍스러운 곳이라면, 아부다비 체인점은 모던한 현대 미술을 시각화한 느낌이랄까? 에술알못인 나지만 물을 이용한 외관은, 뭐랄까 원주의 뮤지엄 산 처럼 안도 다다오가 지은 건축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파리는 루브르 말고도 유명한 박물관이 정말 많다.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퐁피두 센터등이 그렇다. 그 뿐만인가? 파리를 대표하는 심볼로도 유명한 에펠탑이나 오페라 가르니에 건축물도 두말 하면 입아프다. 하지만 생략! 자세한 내용은 역시나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대신 내 눈을 사로 잡은 건 파리를 조성하는 거리였다. 생제르망에 있는 카페들. 외관부터 남다른 느낌의 이 카페들은, 알고보면 역사가 깊은 카페들이 태반이다. 특히 해밍웨이,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아르튀르 랭보, 기욤 아폴리네르 등 유명인들이 글을 쓰기 위해, 토론하기 위해, 커피 한잔 마시기 위해 들렀던 곳이다. 문학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러야할 성지라고나 할까?!



언젠가 파리에 가게된다면 생제르망 거리만큼은 꼭 거닐어보고 싶다. 저자가 이렇게 친절하게 산책코스까지 만들어줬으니, 응당 걸어줘야지!


아차! 몽마르트를 빼먹을 뻔 했다. 일명 화가의 거리인 몽마르트 언덕이다. 18 ~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복작복작했던 바로 그곳이다. 물론 지금은 다른 의미로 화가들이 복작복작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여기서 초상화를 그려온다지 아마..


몽마르트를 거쳐간 화가들을 나열해보자. 미알못이라도 한 두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마네, 폴 세잔, 에드가르 드가 등을 비롯하여, 나같은 미알못은 잘 모르지만 미잘알들은 잘 알고 있는 클리시 불르바르,  툴르즈 로트레크, 등이 있다.



파리 처럼 이렇다할 유명 미술관은 없지만(아! 몽마르트 박물관이 있긴 하다), 대신 인상파 화가들이 거닐었던 거리, 태어났던 집, n년 간 살았던 집 등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혹시라도 프랑스 여행계획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여행계획 짜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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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작하는 어반 스케치 - 한 권으로 배우는 드로잉 준비부터 완성까지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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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두 권의 드로잉 에세이를 읽었다. 그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단어가 바로 ‘어반스케치’다. 나에게는 생소한 미술 용어. 책을 읽으며, 대략 여행을 하며 그리는 그림, 즉 여행드로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잘못된 판단이라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어떻게? 오늘 읽은 『오늘 시작하는 어반 스케치』 라는 미술관련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앞서 읽은 두 권의 드로잉 에세이와 동일한 작가가 썼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과거 두 권은 여행을 하며 때때로 어반스케치를 했던 내용이라면, 오늘 읽은 『오늘 시작하는 어반 스케치』 는 말그대로 ‘어반 스케치’에 대한 실용서다. 



어반 스케치의 개념이 무엇인지, 여행 드로잉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반 스케치를 하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어반 스케치를 함에 있어서 주의할 사항이 무엇이 있는지 등등. 




여행드로잉과 결이 비슷하면서도 새롭게 많이 사용되고 있는 개념으로 ‘어반 스케치’가 있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며 그리는 그림으로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을 기록하듯 그리는 회화활동을 말한다. (…) 어반 스케치는 현장성을 중요시한다. 여기서 여행드로잉과 어반 스케치의 작은 차이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드로잉은 현장에서 그린 그림과 스튜디오에서 돌아와 그린 그림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라면, 어반 스케치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린 그림만을 가리킨다. p 025



크게 보면 어반 스케치가 여행드로잉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하위개념인 느낌이다. 하지만 여행 드로잉은 여행 이후에 진행되는 후속작업등도 포함되는 반면, 어반 스케치는 여행 중 현장에서 그리고 땡! 대충 개념이 잡혔다. 



저자는 어반 스케치를 함에 있어서 제일 기본적인 사항 8가지를 말한다. 어반 스케치에 필요한 도구는 사람에 따라 펜 또는 연필 하나로 끝날 수도 있고, 수채물감 풀 세트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정해진 건 없으며, 그저 여행을 할 때 챙길 수 있을 정도의 도구면 되는 것이다. 내가 지니는 여행가방이 작다면 펜 하나면 되고, 엄청 큰 배낭가방을 들고 다닌다면 수채물감 풀세트를 들고가면 된다.



1. 창작 도구 준비: 연필, 펜, 만년필, 수채물감, 붓, 스케치북 등

2. 선을 그을 수 있는 용기

3. 형태적 본질을 찾자

4. 오래된 건물을 그리자

5. 해칭의 이용

6. 풍경의 구성

7. 공간에 입체감을 더하자

8. 투시법 응용




도구를 챙겼다면, 종이를 펼치면 된다. 굳이 스케치북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종이면 되는 것이다. 어반 스케치는 어디까지나 여행의 현장감을 중시하는 그림이 아닌가! 스케치북을 챙길 수 없다면, 여행 티켓 여백에 그리면 되는 것이다.


다만 흰 여백을 보면 뭐 부터 그려야할 지 몰라서, 막연하게 겁부터 먹는 나같은 초보들이 있을 것이다. 건물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그러야할지, 그저 막막한 그 기분! 하지만 이 기분은 초보가 아닌 고수들도 느끼는 긴장감이라 한다. 그래서 저자는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게, 어반스케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스케치북을 펼쳐 하얗게 비워진 지면 위에 첫 선을 그을 때의 두려움과 막막함을 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음에도 그 순간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한 번에 긴 호흡의 선을 그릴 때면 그 공포감은 더 커진다. 긴 직선을 편하게 그리고 싶었다. (…) 건물을 그릴 때도 기본 성질을 이용한다면, 체계적으로 형태를 잡아갈 수 있다. 건물의 형태를 이루는 선분들의 출발점과 종착저믈 서로 비교해가며 크기와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p 040



건물기술과 외장재 발전으로 현대 건축물은 외관의 디테일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간소해졌다. 주변 건물의 외모가 깔끔하고 모던해지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마냥 반갑지는 않다.  표현할 외형적 특징이 줄어들어 다소 밋밋한 그림으로 마무리될 때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종종 한자리를 오래 지켜온 옛 건물들을 그린다. 그중에서도 완성했을 때 남다른 성취감을 주는 한옥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p 051

 


여행 중 다른 도구가 미처 준비되지 않아 스케치 도구로 사용한 펜 한자루 만으로 그림을 마무리해야 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때 사용되는 것이 해칭이다. 해칭은 선이나 점으로 평면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독특하고 조직적인 패턴을 말한다. p 060



말로만 가이드라인을 주느냐?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실습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직접 그려준다.





이 얼마나 친절한가. 이정도는 되야 나같은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육아로 인해 잠시 여행을 멈춘 나지만, 아이 낳기전만해도 주말엔 집에 붙어있던 적이 없었다. 이제와 후회되는게, 여행을 다니며 저자의 말 처럼 ‘어반 스케치’를 남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물론 사진은 많이 찍었다. 하지만 여행 장소에서 내가 느꼈던 현장감을 그대로 담는 건, 아무래도 기계로 찍는 사진보다 내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닐까?




아이가 좀 크고 같이 먼 곳까지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아이와 함께 어반 스케치를 해보는 것도 좋지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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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6월 25일 첫역사그림책 25
김미혜 지음, 최정인 그림, 하일식 감수 / 천개의바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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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는 나이로 4세가 된 우리 상전. 그림책 읽기를 정말 좋아한다. 상전이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마다, 매번 그림책 살 때 마다 고르고 또 고른 보람이 있다. 막 말이 트이기 시작했을 땐 사물이나 생태관련 짧막한 책을 읽어줬다면, 지금은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읽고 있다. 20페이지 내외, 페이지당 5~6줄의 글이 있는 그림책을. 예전엔 전래동화 같은 그림책을 좋아했다면, 요즘은 인성교육 관련 그림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고!


엄마는 자타공인 역사더쿠. 그래서 우리 상전도 역사더쿠의 길을 따라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리하야 유아가 읽을 만한 역사 그림책이 무엇이 있을까 검색 시작! 몇 개의 후보군 중에서 일단 ‘천개의바람’ 출판사에서 나오는 어린이첫역사책 시리즈 중 4권, 우선 구매해봤다. 물론! 이 네 권도 랜덤으로 고르지 않았다. 집필자의 역사관에 따라 왜곡이 심해질 수도 있는 ‘임진왜란, 개화기, 독립운동, 한국전쟁’ 에 대한 책을 골랐다. 우리 상전이 읽어야 할 역사책이니만큼, 정말 꼼꼼히 확인했다. 



​1. 한 쪽으로 편향된 내용 또는 왜곡이 없는지

2. 꼭 알아야 될 사실들이 정확하게 반영되어있는지

3. 아이들이 읽기 쉬운 글인지

4.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삽화인지




완전 성공이다. 네 권 모두 위 조건에 부합했다. 그에 더해 ‘이런 것 까지 알려주다니!!’ 라고 놀라웠던 지점마저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사 전공 교수님이 감수했다는 사실에 완전 감동(고대사 전공 교수님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우리 상전 첫 역사 그림책으로 합격이니만큼, 일단 내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역사적 사건 기준으로 차례차례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거기에 더해 왠만하면 상전 그림책은 리뷰를 잘 안하지만, 이 그림책들은 아주 만족했으니 천천히 리뷰해보려고 한다.




큰 강줄기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아기 수달 달이. 달이는 강가에서 해순 할머니를 만났다. 달이는 해순 할머니가 길이 막혀 북쪽으로 갈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길이 자유로운데 길이 막혀있다니! 해순 할머니는 달이에게 1950년 6월 25일, 그날에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에서 처음 놀랐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보통 아이들에게 6.25 전쟁을 이야기 할 때는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해~’ 라는 전개과정을 이야기한다. 이 책도 그러려니 했는데, 세상에! 놀랍게도 이 책은 배경부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가 끝났지만, 미군정으로 인해 일제강점기때 혼란이 수습되지 못했던 그 배경을! 물론 디테일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내용이었다. 아주 박수가 절로 나왔다.



결국 부산까지 빼앗길 위기에 놓였지.

그때 맥아더 장군이 국제 연합군을 이끌고

국군과 함께 인천으로 들어와 북한군을 공격했어.

바로 인천 상륙 작전이란다.



“그렇게 전쟁이 끝난 거예요?”​

“아니, 그렇지 않았어. 북한을 도우려고 중국이 어마어마한 군대를 보냈거든.”


“전쟁은 큰 상처를 남겼단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학교와 집은 불에 타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어.

엄마, 아빠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도 많았지.”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아버지는 만나셨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더구나”

“왜요? 전쟁에서 돌아가셨어요?“​

“글쎄다, 북에 살아 계시려나…….“

할머니가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해순 할머니는 그 기간동안 주인을 잃은 아버지의 구두를 소중하게 보관했다. 다시 만날 아버지에게 돌려주기 위해.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은 어느새 70여년이 흘렀다. 그 기간동안 남과 북은 갈라졌고, 가족들도 헤어져 만나지 못했다. 그저 말못하는 짐승들만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갈 뿐.



어린이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분단이 주는 고통과 아픔이, 성인에게까지 이렇게 잘 전달되다니. 우리 상전 첫 역사 그림책으로 손색이 없다.


그림책 뒷장에는 한국전쟁의 과정이 비교적 간략하지만 설명되어있다. 근데 간략하다고 무시하면 안된다.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참전, 휴전, 피난민 생활, 비무장 지대 등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을 전부 다루고 있다. 거기다 한국전쟁 관련 유적지 몇 군데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 



거제포로수용소 유적은 연합군이 만든, 북한+중공군 포로를 수용했던 수용소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언급하지 않았던 곳인데, 이렇게 어린이 그림책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여기서 또 한번 감동했다. 이 그림책은 한국전쟁에 대해 최대한 중립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자 했구나, 하고.



가짜뉴스와 역사왜곡이 판 치는 세상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올바른 역사책이다. 우리 상전 첫 역사책으로 이 그림책은 최고의 선택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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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세상의 중심으로 키워라 - 상처 주지 않고 자존감을 높이는 훈육 기술
마츠나가 노부후미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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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기 전까지 거들떠도 보지 않던 육아책. 아이 낳은 후로 스스로 찾게 되었다. 나도 엄마는 처음인지라, 엄마가 되기 위해서 육아책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한 권, 두 권 손 잡히는 데로 읽다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어떤 육아책은 ‘엄마’로서 내 정체성을 흔들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육아책을 읽다보며, 나름 육아책을 읽는 데 있어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는지 깨달았다. 모든 육아책이 다 정답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부 오답도 아니다. 내 상황에 맞춰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건 버리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읽은 육아책 『딸은 세상의 중심으로 키워라』는 나같은 딸맘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취할 게 생각보다 많은 책이다. 



다만 언뜻언뜻 저자의 가치관이 나와 약간 다른 부분들이 나와서, 조금은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예컨데 저자가 말하는 딸 육아가 중요한 이유가, 딸이 다음 세대를 낳는 ‘국가의 보물’이기 때문이라던가, 혹은 일도 잘하면서 육아도 잘 해내는 어른 여성이 되길 위함이라던가 하는 내용들 말이다. 하지만 이건 저자가 일본인 남성이기에 어쩔수 없는 부분인것 같긴 하다. 일본이 아무리 발전한 선진국이라 한들 여성을 보는 시각과 양성평등에 있어선 아직까지 후진국에 속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고로 언뜻 비치는 저자의 가치관만 배제하면, 이 육아책 『딸은 세상의 중심으로 키워라』는 전체적으로 딸맘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육아에 바빠서, 이 책 한 권을 전부 읽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목차를 보고, 본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먼저 읽어봐도 좋다. 이 책을 추천하는 제일 큰 이유 중 하나가, 원하는 부분을 골라서 읽을 수 있게 정리된 ‘목차’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출간된 후 17년간 40만부나 판매된, 일본 아마존 초장기 베스트셀러다. 한마디로 자녀교육 육아책으로써 이미 정평난 책이라는 것.



내 딸이 이렇게 컸으면 하는 딸맘의 모든 바람이 이 목차에 담겨있다. 내 딸은 현명하게 컸으면 좋겠고, 말을 조리있게 잘 했으면 좋겠고, 기본 예절습관이 몸에 베어있었으면 좋겠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고, 뭐든 엄마인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게 모든 엄마들의 바람이니까. 어쩌면 내 엄마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 모든게 다 어려운 바람이란 걸 안다. 나 역시 딸이었으니까. 엄마도 내게 욕심이 있었을테다. 다만 엄마의 욕심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더 많이 배워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한 사람 몫을 하고 사는 것. 보통의 엄마들이 바라는 욕심이었다. 내가 엄마의 욕심을 전부 이뤄준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름 좋은 직장에 다니며 한 사람 몫을 하고 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거다. 내 삶은 엄마의 욕심을 이뤄주기 위한게 아니라는 것. 엄마가 아닌, 나를 위해서 살다보니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데, 의도치않게 엄마의 욕심을 이뤄주는 결과가 되었을 뿐이다. 엄마의 욕심이 과하지 않았다는 것도 한 몫했고.



내 딸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이거다. 엄마인 내 욕심이 아닌, 본인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것. 그 과정에서 보다 현명했으면 좋겠고, 판단력이 좋았으면 좋겠고, 예의가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고, 상처를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이 좋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키우기 위한 힌트를 이 책에서 찾아보았다.







첫번째: 딸로 태어났어도 몰랐던 딸의 특성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있잖아요, 엄마’에서 시작되는 ‘수다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기술을 갈고 닦았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대화기술을 닦은 아이는 국어 실력이 금방 향상된다. ‘국어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언어로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자아이의 수다 능력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가끔 딸의 수다 능력을 무시하는 부모가 있다. (…) 설령 자신은 잘 떠들지 못하더라도 “응응, 그래서?” 라고 맞장구를 쳐서 딸이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게 ‘잘 들어주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p 027, ‘국어실력을 늘리는 수다법은 따로 있다.’



가정에서 존댓말을 쓰라고 강요하라는 뜻은 아니다. ‘재수 없다, 짜증 난다’ 같은 말만 쓰는 친구들과 사귀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는 점잖고 바르게 행동하지만 밖에 나가서는 나름대로 아이들과 어울릴 줄 알고, 학교에서는 친구들끼리 유행어로 말을 해도 집에 돌아오면 ‘다녀왔습니다’ 에서부터 ‘안녕히 주무세요’ 까지 올바른 말을 쓸 줄 아는 등 때와 장소에 맞게 말과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알면 된다. p 048, 예절바른 아이가 머리도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상황에서 아이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휴가를 갈 곳에서부터 커튼 색, 저녁 메뉴, 다음 날 입을 옷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아이에게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라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아이의 의견을 무조건 들어주면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하는 폭군이 될 수 있다. 이때 아이의 의견을 들으면서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왜냐하면…” 하고 설명한 다음, 다시 한번 “너는 어떠니?”하고 묻는 것이 좋다. p 054, ‘여자답게’보다 ‘현명하게’ 키워라






두번째: 즐기는 법을 아는 딸이 결국 성공한다



‘지식만 있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람’은 주위에서 고립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을 기회도 얻지 못한다. 어느새 아는 척만 하는 구제불능 인간이 되어버린다. 이는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이럴 위험은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있다. 부모가 고학력일수록 아이가 다양한 지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체험없이 얻은 지식을 떠벌리다가는 친구들에게 바보 취급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p 094, 지식만 쌓는다고 교양이 생기지는 않는다.



아이에게 무엇이든 흑백 논리에 맞추어 ‘좋다’ 아니면 ‘싫다’로 나누지 말고 다양한 것을 받아들이는 힘을 길러주자. 그 것은 내 딸을 ‘패배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교육이다. p 103, 딸 인생의 행복을 높여주는 포용력 훈련



아이 스스로 “ㅇㅇ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가능한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다고 느끼는 아이의 변화를 받아주는 것이다. “네가 하고 싶다고 한 일이니까 끝까지 해!” 라고 강요한 것은 하기 싫은 일만 하나 더 늘려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이들은 끈기와 집중력이 약하다. 변덕은 당연한 일 중 하나다. (…) 언제까지 아이의 응석을 받아줘야 하는지 고민이 깊은 것도 안다. 하지만 이도 다 한때다. 일단 아이에게 시켜보라. p 140, 좋아하는 일을 찾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세번째: 모두에게 사랑받는 딸로 키우는 비법


‘우리 아빠는 언제나 팬티 차림으로 맥주를 마시지만 책도 많이 읽고, 어떤 책이 재미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든지, ‘집에서 고장 난 물건은 언제나 아빠가 고친다’등 딸이 아빠가 멋있다고 생각하게 만들 일을 하라고 남편에게 귀띔하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머리가 좋아질 뿐만 아니라 아버지 자신의 인생도 틀림없이 윤택해질 것이다. p 164, 존경받는 아빠는 딸의 ‘남자 보는 눈’을 기른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은 건 반드시 가져야 한다’, ‘돈은 언제든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믿으면서 자란 아이는 갖고 싶은 건 금방 손에 넣는 버릇이 몸에 밴다. 이 버릇이 몸에 배면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없을 때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소중한 딸을 어리석은 아이로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쉽게 물건을 사주지 말고 용돈도 너무 많이 주지 않으면 된다.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으면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사준다. 조금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서 아이의 의욕을 끌어올리는 것도 좋다. p 177, ‘금전감각’을 낳는 ‘갖고 싶은 걸 참는 습관’



아들은 이렇게 키워라, 딸은 이렇게 키워라 어쩌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쌓아온 데이터에 따르면 아들과 딸을 키울 때 그 방법을 달리해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간혹 딸 같은 아들, 아들 같은 딸이라는 변수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아들과 딸 육아법을 구분해야 엄마도 편하고 자녀도 편한법이다. 



딸을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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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도 사람이고 딸도 사람이지만, 둘은 굳이 딸과 아들이라는 다른 몸을 입고서 어버이한테 찾아옵니다. 곰곰이 보면, 딸을 낳든 아들을 낳든, 두 어버이(어머니·아버지)가 ‘다르기에 하나인 같은 눈빛’으로 사랑을 속삭일 적에 비로소 아이를 낳습니다. 이미 태어난 아이는 혼자 돌볼 수 있지만, 아이를 낳으려면 혼자가 아닌 둘이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이란, 다른 둘을 하나인 사랑으로 새롭게 배우는 삶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두 어버이는 저마다 다른 눈이자 나란한 손길로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는 살림살이를 새로 배운다면, 아이들은 두 어버이를 저마다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고 곁에 두면서 새삼스레 삶·살림·사랑을 배우면서 자라지 싶어요.

기쁘게 하루를 짓는 오늘을 아이랑 곁님하고 나란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안의, 별사
정길연 지음 / 파람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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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의 나라 조선. 그런 조선을 개혁하고자 뜻있는 유학자들이 새로운 학풍을 제시한다. 경세치용, 실사구시, 이용후생을 기본으로 한 조선후기 ‘실학’이다. 실학파도 세부적으로는 경세치용학파, 이용후생학파로 나뉜다. 경세치용학파는 농업 중심의 개혁론이라면, 이용후생학파는 중/상업 중심의 개혁론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론 ‘실학파’라고 하면, 중/상업 개혁을 말한 이용후생학파, 즉 ‘북학파’를 떠올리곤 한다. ‘북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는 박지원을 비롯하여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이 있다. 국사 시간에 한번 쯤은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이렇게 북학파 이야기로 시작하는 건, 이 역사소설 『안의, 별사』 주인공이 바로 북학파의 영수였던 연암 박지원이기 때문이다. 연암은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을 연구하며 『열하일기』, 『허생전』 같은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실력도 매우 뛰어났던 그지만, 출세에는 뜻이 없었다. 



나라의 기강이 위에서부터 무너진 지 오래고, 지방관 역시 알량한 벼술자리나마 잃게 될까 제 몸부터 사린다. 아무도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도리어 모나지 않는 처세라 합리화한다. p 044


“공부가 과거를 보는 수단이 되는 걸 경계하라는 말이지. 사람 되기를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글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서 다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더라마는.” p 176



“우리 반남 박씨 집안은 누대에 걸쳐 청빈과 검소를 실천하며 부귀와 안일을 멀리해왔다. 이는 타고난 데다 가풍을 따른 것이다. 너희가 또 나를 보고 배울 것이니 나 또한 너희 앞일지라도 조심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너희가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부르기를 바라지만 어디까지나 아비로서의 인정일 뿐이다. 인정은 자칫 의를 그르친다. 내 바람은 두 가지다. 삿됨을 분별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 사대부 집안으로서 글 읽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 그 뿐이다.” p 176



연암이 살았던18세기 조선은, 위 소설속 내용으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할 만큼 양반네들은 부패했고 백성들의 삶이 궁핍했다. 백번 양보해 모두가 잘사는 나라는 아니더라도, 백성들이 배는 곯지않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어야 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욕심 채우기에 급급했다. 아무리 좋은 개혁안이 있다치더라도, 사농공상 및 유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모조리 차단되는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이다보니 연암은 더더욱 조정에 나갈 뜻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재야에 있기엔 연암의 학문이나 능력이 워낙 출중했기에,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늦게나마 출사길을 걷는다.



연암은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그 중 1792년 안의 현감을 지냈을 때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무릇 역사소설은 사실과 허구가 혼재하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설은 왜곡 논란에서 사뭇 자유롭다. 왜? 저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암 덕후였다. 연암에 대한 모든 것을 공부하며 그의 자취를 쫓았다. 그렇기에 저자는 소설을 쓰면서, 알려진 연암의 자취를 소설 속으로 무리없이 옮겨올 수 있었다. 다만 연암의 생애 중 비어있는 구간을 허구로 채웠는데, 그 허구가 바로 연암이 안의 현감을 지냈을 시기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적 허용을 빌어 무책임한 왜곡을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하여 소설적 허구를 반영함에 있어서도, 밝혀진 연암의 생애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반영했다. 따라서 허구적 장치는 안의면에서 만났던, 가상의 여인 ‘은용’과 그녀의 서사 정도다. 하지만 이 조차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게. 역시나 연암의 생애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만 활용되었다. 


특히 은용의 서사는 오히려 알려진 조선 후기 첩의 여식의 삶, 과부의 삶과 비교하면 비교적 담담하고 담백하게 서술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홀아비 였던 연암의 삶과 더욱 비교가 되어, 은용의 삶이 더 처절하고 기구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홀아비다. 아무도 내게 수절을 권면하지 않는다. 벗들도 집안사람들도 궁색히 여겨 볼 때마다 오히려 재혼을 권한다. 아내보다 내가 먼저 죽었다면 누구도 아내더러 개가를 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가한 여인의 자손과 첩실의 자손이 받을 부당한 대우는 차지하고서라도, 세상은 온통 여인에게만 부부간의 신의와 절개를 강요한다. 불공평하다 못해 해괴하다. 


유금과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성대중, 백동수, 이희경…. 나는 내 벗들이,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는 따돌림과 핍박을 당하며 살아온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저지르지 않는 죄목으로 대가를 치르며 살았고, 살아간다. 그들을 이 세상에 내보낸 그들의 아버지들조차 자식이 받는 불이익에 침묵한다. (…)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나의 적은 나의 마음이고, 욕망을 비우고자 하는 마음의 나의 것이다. 하므로 신독,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언행을 삼갈것, 이를 내 여생의 수행의 화두로 삼는다. p 330



그래서 은용이 ‘인연 없음’을 방패삼는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또한 은용과는 다르면서도 같은 연암의 도리가 마음을 울렸다. 그렇다. 이 소설은 연암과 은용의 ‘단심(丹心)’을 고스란히 담아낸 소설이다. 



국어사전은 ‘단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런 마음이라고. 연암과 은용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단심’만큼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대게 생각은 다 망상이요, 인연은 다 악연이다. 생각하는 데서 인연이 맺어지고, 인연이 맺어지면 사귀게 되고, 사귀면 친해지고, 친하면 정이 붙고, 정이 붙으면 마침내 이것이 원업이 되는 것이다. 죽음이 참혹하고 공교로우면 평생 서로 즐거워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데 마침내 재앙과 사망으로 인해 혹독한 고통이 뼈를 찔러댄다. 이것이 어찌 망상과 악연이 합쳐져서 원업이 된 게 아니겠는가. p 395, 애사


뜰을 이리저리 어정어정 걷다가 뛰기도 하고, 점잖게 걷기도 하고, 달그림자와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명륜당 뒤뜰의 오래된 나무는 우거져 하늘을 덮었고, 서늘한 이슬이 동글동글 맺혀 잎사귀마다 구슬을 머금었으며, 진주 같은 이슬은 달빛에 반짝인다. 애석하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밤, 이렇게 좋은 달빛에 함께 놀 사람이 없다니. p 444, 미혹


▶『안의 별사』에서 인용한 연암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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