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어가 품은 세계 -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
황선엽 지음 / 빛의서가 / 2024년 11월
평점 :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어원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시작은 지금 쓰는 한국어 기원에 대한 궁금증이었던 것 같다. 문자야 ‘훈민정음’이라는 기원이 아주 완벽하게 남아있지만(킹갓세종대왕★), 지금 쓰고 있는 우리 ‘말’은 정확히 어느 시대부터 시작되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여차저차 공부한 결과, 지금 우리말의 기원은 ‘신라어’라는 게 학계 정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우리말의 시작인, 중세 한국어 시작점이 삼국을 통일한 ‘신라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는 아마도 고구려+백제어와 신라어가 양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만 할 뿐, 자세한건 나도 모르니 패스!
여튼 이러한 한국어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지금 사용하는 단어 어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확장되어 종종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곤 하였다. 물론 주로 찾아봤던 어원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에 한정되었지만.
내가 궁금해서 찾아본 단어 중 하나를 꼽자면 ‘마누라’가 있다. ‘마누라’의 원형은 ‘마노라’이며, 15세기 조선에서 남/녀구분없이 윗사람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다가, 어느 시점에서 궁중 여성등에 한정한 존칭으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재는 자신의 부인을 칭하는 말로 변모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원래는 매우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을 부르는 존칭이었는데, 지금은 자기의 부인 또는 중년 여성을 낮춰부르는 단어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이런 식으로 단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미가 축소되거나 확장되기도 하고, 언중의 외면에 사라지기도 한다. 그 뿐인가? 필요에 의해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기도 하니, 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TMI가 길었지만, 이러한 이유로 나는 『단어가 품은 세계』라는 인문학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황소는 누런 소가 아닙니다
옛말로 ‘하다’는 ‘크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한쇼, 한새, 한숨, 한아비, 한어미 등의 단어가 만들어졌지요. 즉 한쇼란 의미적으로는 큰 소를 뜻하나, 결과적으로는 다 성장한 수소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고, 이 말이 변하여 황소란 어형이 된 것입니다. 황새 역시 같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큰 새라는 의미의 한새가 변화하여 황새가 되었습니다. 황새는 몸 전체가 흰색이고 다리는 붉은 색을 띄다보니 황새를 두고 누런 새라고 먼저 연상하는 경우는 잘 없지요. p 021
과거에 읽은 책 중에 ‘한’에 대한 어원을 읽은 적이 있다. ‘한’의 의미가 ‘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거기서 파생된 단어들이 한민족, 한겨레, 대한민국, 한어미, 한아비…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중 한어미나 한아비 같은 어떤 단어들은 시간이 흐르며 구개음화나 시간 흐름에 따른 교정등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단어로 변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황소 역시 ‘한(큰)’에서 파생된 한소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한소’는 다른 ‘한+’이 붙은 단어들과 달리, 단어가 변한게 아닌 의미가 변해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황소’ 라고 하면, 누런 소를 떠올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는 한자문화권이다보니, ‘황’이라는 글자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누를 황(黃)자’를 연상시켜서 발생한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황소’는 큰 소가 아닌 누런 소라는 의미가 대중화되었다.
이런 식으로 의미가 변해버린 단어는 생각보다 많다. 박목월 시인의 시를 동요로 만든 ‘얼룩 송아지’를 보자. 동요 가사속에 나오는 얼룩 소와 얼룩 송아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흰색 바탕의 흑색 무늬를 가진 젖소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동요 속에 나오는 얼룩소는 젖소가 아닌, 얼룩무늬 칡소다. 우리나라 토종 소인 칡소. 칡소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만행으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그로 인해 대중들 인식에서 칡소가 사라졌고, 자연스레 그 자리를 젖소가 대신하면서 ‘얼룩 소’는 젖소가 되어버렸다.
단어는 기성세대의 당혹감에도 불구하고 변화한다
공갈에서 공(恐)은 ‘두렵다’라는 뜻이고 갈(喝)은 ‘윽박지른다’라는 의미이니 한자 그대로의 의미로는 ‘공포를 느낄정도로 위협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런 의미로 쓰이던 단어가 어느 순간 단순히 거짓말이란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 때 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단어를 이렇게 쓰네’라고 느꼈을 당혹감과 거부감을 어느정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p 040
어떤 단어들은 기존 의미에서 축소되는 경우도 있다. 위의 ‘공갈’이 그렇고 ‘엽기’나 ‘마약’이 그렇다. 엽기와 마약의 사전적 의미 아래와 같다.
엽기: 비정상적이고 괴이한일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다님, 현재는 다소 이상하거나 특이한 것을 상징
마약: 향정신성 및 중독성이 있는 의약품(매우 위험!!!), 현재는 맛있는 음식 앞에 붙는 매우 긍정적인 형용사로 쓰이기 시작(마약김밥, 마약떡볶이)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엽기는 다소 이상하거나 특이한 것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입에 담아서도 안되는 불온한 단어 마약은 또 어떠한가? 마약김밥이나 마약떡볶이처럼 맛있거나 중독성 있는 음식 어두에 붙으면서,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추가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확장되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범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단어에 긍정적인 의미가 생기는 건 ‘경각심’이 해이해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런 건 지양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양복이 있기 전에는 한복이 없었습니다
양복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나서 한복이라는 개념도 등장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남녀 정장은 물론 청바지나 티셔츠, 코트 등을 포함하여 서양 복식이 일상화되면서 이들을 더 이상 양복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냥 옷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서양 복식을 의미하게 되고 전통 복식은 반드시 한복이라고 칭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양복은 더 이상 서양 복식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남성 정장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착하였어요. p 049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위의 사례가 바로 그런 사례다.
19세기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서양 문화와 우리나라 문화를 구분하기 위해 여러 단어들이 생겨났다. 기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옷은 치마/저고리/두루마기 였다. 헌데 서양 복식이 들어오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양복’과 ‘한복’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시간이 흘러 ‘양복’이 일상복이 되면서, ‘양복’의 의미는 축소되다가 이제는 단어자체가 사라지는 추세다. 반면에 ‘한복’은 그대로 한복이다. 이제는 일상복이 서양 복식이다보니, 우리나라 전통 옷을 구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로 양약과 한약이 있다. 서양 의학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의료란 침과 뜸, 약재를 사용한 이른바 ‘한의학’이 전부였다. 하지만 개항기 때 서양의학이 들어오고, 한의학을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시간이 흘러 서양의학이 일반적인 의학기술이 됨에 따라, 치료받는 환자 입장에서 어떠한 의료기술을 고를 지 판단하기 위해 ‘한의학’을 구분해야할 필요가 생겼다. 이 외에도 양약과 국악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조금 더 넓은 개념인 ‘동양’과 ‘서양’도 그렇다. 개항기, 그러니까 서세동점 시기에 유럽인들이 아시아 지역에 들어온다. 유럽인들은 자기들과 아시아를 구분하기 위한 단어를 만들었다. 아시아가 유럽에 동쪽에 있으니 ‘동양’이 되었고, 자연스레 유럽은 ‘서양’이 되었다.
양지질은 어쩌다 양치질이 되었을까?
양지는 단순히 버드나무 가지가 아니라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이 닦는데 쓰이는 도구’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불교문화로부터 유래한 것이지요. (…) 즉,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하였는 데 그 도구를 재료의 명칭인 양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를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야지질이라는 말이 이를 닦거나 헹구는 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고, 시간이 더 많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양지나 양지질이라는 말이 기원적으로 버드나무 가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p 078
위의 황소와 비슷한 사례다. 앞서 말했듯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어떠한 단어를 들었을 때, 자주 사용한 한자를 떠올린다. 때마침 ‘양지’는 이를 닦는 도구인데다가, 한자에 ‘이 치(齒)’가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양지’라는 단어를 ‘양치’라는 단어로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파생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이쑤시개의 일본 ‘요지’다. 사실 ‘양지’라는 한자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요지다. 위 책에서 말했듯 양지 문화는 불교 문화에서 유래된 것다보니, 불교 문화가 퍼져있는 나라에는 자연스레 이 문화가 있었다. 일본 역시 불교 문화권에 속하기에, 양지 문화가 있었다. 거기다 일본 역시 한자문화권이기도 했기에 ‘양지’라는 한자를 일본식으로 ‘요지’라고 읽었다. 문제는 일제강점기때 이 ‘요지’라는 단어가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꽤 오랫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쑤시개를 일본어 발음인 ‘요지’라고 불렀다. 지금이야 대다수가 이쑤시개라고 부르지만, 아직도 ‘요지’라는 단어를 쓰는 어르신들이 꽤 많다.
신라 시대 중엽 이전까지 널리 쓰이던 우리말 이름
신라시대 중엽 이전까지만 해도 이름은 모두 우리말식이었습니다. 김알지, 박혁거세, 이차돈, 거칠부 등 왕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이름은 모두 우리말이었습니다. 원효대사의 원효라는 이름도 으뜸 원, 새벽 효와 같이 한자로 쓰여 있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원효라고 읽지 않고 ‘이른 새벽’이라는 뜻의 우리말로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당나라와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한자 문화가 깊게 침투하면서 사람 이름도 성 한 자에 이름 두 자인 중국식으로 점차 바뀌었습니다. 이후 중국식 관행이 굳어지면서 한자 이름의 전통이 1300년 가량 이어져왔습니다. p 177
대다수의 사람들은 창씨개명이, 일제강점기 때 일어났던게 처음이라 생각한다. 틀렸다. 역사적으로 창씨개명은 최소 한 번 더 있었다. 우리나라 고대 국가 신라 때 다. 신라는 당나라와 교류를 하며, 이름을 중국식 성1자+이름2자로 짓기 시작했다.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 보통 이름이 4자였다. 그러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중국식 이름짓기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지속되었다. 일종의 중국식 한자 사대주의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한자 사대주의가 종료되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자 사대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공적 부문에서는 남아있는 순우리말 조차도 한자식으로 죄다 변경하였다. 예컨데 ‘노들나루’는 ‘노량진’이 되었고, ‘애오개’는 ‘아현’이 되었으며, ‘한밭’은 ‘대전’이 되었다. 이런식으로 순우리말로 남아있던 지명들이 죄다 한자식으로 변했다.
그러다 최근 십 여년 전후로 순우리말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순우리말로 짓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역별로 순우리말로 된 지명을 되살려 관광 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새로 지은 지하철역 이름도 순우리말로 지었다. 특히 이미 지하철역이 있는 지역에 새로운 지하철이 생겼을 때, 주로 순우리말로 역이름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노량진역’ 주변에 ‘노들섬역’을 만든다거나, ‘아현역’ 주변에 ‘애오개역’을 만들고, ‘신천역’ 주변에 ‘잠실새내역’을 만들고, ‘대치역’ 주변에 ‘한티역’을 만들고, ‘신사역’ 주변에 ‘새절역’을 만든 게 있다. 이 역들의 이름은 한자와 순우리말의 차이일뿐, 실상 의미가 같다. 다만 동일한 역이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순우리말을 차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역 이름을 만들 때 새로운 이름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진 것도 순우리말을 사용에 어느정도 기여한게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끝으로 추천 인문학책 리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