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
박진한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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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역사책, 일본사 교양서적으로 『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는 일종의 역사기행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가는 해외여행지가 일본인 만큼, 일본을 가기전에 가는 곳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적 지식을 챙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컨데 일본 내에서 도쿄 야스쿠니 신사의 상징성이라던가, 후쿠오카 쿠시다 신사의 상징성. 반대로 교토 유력 관광지(거대 신사나 사찰)가 실은 한반도계 도래인이 조성했다는 사실 뭐 그런거! 이런 역사적 지식을 알고 있다면 조금 더 풍성한 일본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 물론! 이 포스팅을 쓰는 본인은 일본여행 목적이 늘 한일관계유적지 답사였다.




현재 일왕가의 선조라 불리는 야마토 왕조는 7세기 무렵 수립되었다. 바다 건나 한반도는 통일신라, 대륙은 수-당 통일제국. 이런 국제 변화에 대응하고자 일 왕실에서 ‘천황’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중앙집권적 왕권강화를 시작한다. 예컨데 일본 역사서인 《고사기》, 《일본서기》 등도 이 시기에 왕실 주도로 집필되었다. 이 역사서들은 천황제의 이데올로기 확립 및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집필되었기에, 허위와 과장이 넘쳐난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찾기 위해서는, 당대에 집필된 중국 역사서나 한반도 역사서를 교차검증이 필수다.



이 책은 야마토 정권이 도읍을 정한 아스카 시대부터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당시 야마토 정권은 어느 한 곳에 도읍을 정하지 않고 현재의 나라현 일대를 전전하며 새 왕이 즉위할 때마다 새 궁을 짓고 처소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이처럼 군주가 권좌에 오를 때 마다 새 궁을 지어 처소를 옮기는 관행을 ‘역대천궁’이라고 부른다. 언어학자 중에는 궁을 지칭하는 ‘미야’와 장소를 말하는 ‘도코로’의 ‘코’를 합친 ‘미야코’가 도읍을 뜻하게 된 것은 계속해서 궁을 옮기는 역대천궁의 전통에 따라 궁이 있는 곳을 도읍으로 부르던 언어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p 026



‘역대천궁’의 관행이 남아있던 당시 천황가가 아스카로 천궁한뒤, 1세기 동안 그 자리를 지켰던 이유는 아스카가 ’소가 씨’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소가 씨는 백제계 도래인이으로 추정되며 딸들을 천황가에 시집보내고, 외손들을 천황으로 옹립하는 등 야마토 정권을 좌지우지 하던 강력한 호족이었다.



일본 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동시간대 역사서인 《수서》에 따르면 수문제는 견수사에게 왜의 정치가 후진적이라고 힐난했다. 이러한 《수서》에 실린 기사로부터 3년이 지난 뒤, 왜는 쇼토쿠 태자를 중심으로 한 ‘관위12계’, ‘17조 헌법’등 정치개혁을 단행한다. 견수사 보고에 따라, 진행된 정치개혁으로 추정된다. 물론 《일본서기》에는 《수서》에 적힌 수 문제의 힐난은 적혀있지 않다. 이유는 앞서 말한 역사서 편찬 목적 때문이다. 천황 권위를 높이기 위해 집필된 역사서인데, 수 문제의 일왕가 비난을 적는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가 씨를 멸망케 한 잇시의 변은 야마토 조정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살해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본 고교쿠 여왕은 정변을 주도한 동생 고토쿠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잇시의 변 당시 또 한 명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나카노오에 왕자가 소가 씨를 대신해 야마토 조정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새로 즉위한 고토쿠 대왕은 나카노오에 왕자 드으이 도움을 받아 일련의 정치 개혁을 안행했다. 먼저 ‘다이카’의 연호를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개신에 관한 조’를 내려 호족 세력이 보유한 인민과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국가로 이양하는 대신 이들에게 식봉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공지공민’에 관한 원칙을 표명했다. p 044




고토쿠는 아스카를 벗어나 나니와(현재의 오사카)로 천도했다. 이 과정에서 고토쿠와 나카노우에 황자의 의견이 엇갈렸고, 나카노우에 황자는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함께 아스카로 돌아간다. 결과적으로 고토쿠는 갑작스레 사망하고, 왕위는 나카노우에 황자의 모친이자 전 천황인 고교쿠 여왕에게 다시 돌아간다. 그렇게 다시 아스카로 천궁하였는데, 다시 아스카를 떠나는 일이 발생했으니 다름아닌 백제 멸망이다.



당시 한반도에선 나당연합군 전선이 고구려와 백제를 몰아내고 있었다. 백제 멸망시점이 바로 고교쿠 여왕이 재차 왕위에 올랐던 시기다. 백제와 친밀했던 천황가는, 백제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한반도로 파견했다. 결론만 말하면, 백촌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백제 부흥군이 처참하게 패배했다. 천황가는 혹시나 나당연합군이 일본까지 처들어올까 두려워하며, 한반도와 인접한 지역에 산성을 쌓고, 아스카보다 조금 더 내륙에 있는 지역으로 천궁한다.



여기서 질문! 고대 천황들이 도읍으로 정했던 아스카는 고대도시인가?


아스카가 고대도시가 맞는지를 논하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도읍과 고대도시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왕궁만 있어도 도읍이 성립할 수 있으나, 고대 도시는 다르다. 고대 도시가 되기 위해선 도시적인 경관과 함께 강력한 왕권이이야 말로 제일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아스카 시대 일왕들은 여러 호족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며, 왕권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스카는 일본 고대국가의 ‘도성’이지만, ‘고대 도시’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헤이조경은 율령국가의 수도로 7대에 걸쳐 784년까지 불교와 함꼐 번성을 누렸다. 그 사이에 쇼무 천황은 역병과 내란을 피해 일시적으로 구니경, 나니와경, 시가라키경으로 거처를 옮긴 적도 있다. 그렇다고 천도를 단행하지는 않았다. 율령제가 정착하면서 관인의 숫자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이전처럼 간단히 천도를 시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8세기 후반 새로이 천황에 즉위한 간무는 조정의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천도를 지시했다. 비대해진 사원세력을 정리하고 후지와라 씨와 같은 귀족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도를 선언한 것이다. 여러 우여곡적을 겪은 끝에 결국 794년 지금의 교토에 해당하는 헤이안경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헤이안경으로 천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헤이조경 일대는 다시 논밭으로 되돌아갔다. 심지어 궁궐 터의 위치조차 잊혔다. p 096




백촌강 전투 이후 왕실은 후지와라 경으로 천도한다. 후지와라 경은 중국의 도성제에 기반하여 조성된 도성되었다. 이미 동아시가 각국에선 도성제를 갖추고 있었기에, 어찌보면 조금은 늦은 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지와라 경이 도성 역할을 한 건 고작 16년. 그 이후엔 헤이조경으로 천궁한다. 헤이조경이 도성 역할을 한 건 백 년이 채 안된다. 이후로 우리가 잘 아는 헤이안 시대, 교토 천년의 시대가 열린다(후지와라 경, 헤이조 경이 몰락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건 생략).




후지와라경에서 헤이조경으로, 다시 나가오카경을 거쳐 헤이안경으로 천도가 거듭되면서 야마토에 본거지를 둔 호족들은 고향에 대한 유대감이 점점 약해졌다. 그 결과 야마토를 떠나 헤이안경으로 아예 이주를 결정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야마토뿐 아니라 멀리 북쪽과 서쪽의 변경에 사는 지방 호족 또한 이주했다. 이처럼 고향을 떠나 헤이안경으로 이주한 지방 호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독립성을 상실하고 천황 권력에 귀속된 궁정 귀족이 되었다. p 114




헤이안경은 모든 면에서 이전 도성들과 비교했을 때, 일본 도성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천황의 권위도 그동안의 부침을 벗어나 정점에 이르렀고, 행정 등 정무도 자리가 잡힌 뒤였다. 점점 천황은 행정 실무에서 손을 떼고, 권위의 존재로 군림하게 된다. 자연스레 천황을 대신해 현실정치를 주관하는 대리인이 나오게 되는데, 바로 ‘섭정’과 ‘관백’이다. 훗날 외척인 후지와라 가문이 ‘섭정’을 차지하며 권력을 좌지우지 하게 되고, 더 오랜시간 뒤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관백’을 차지하여 권력을 차지하는 등 섭정과 관백은 천황보다 더 앞에 있는 실질적인 권력가들이 차지하는 자리가 되어버린다.




여러 도시 문제 가운데 당시 사람들을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든 것은 배설물의 처리였다. 한 사람당 하루에 배출하는 분뇨의 양을 대략 0.5리터 정도로 추산해, 헤이안 경의 인구를 10만 명으로 어림잡으면 연간 분뇨배출량은 1만 8,250킬로리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 일본에서 사람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비료로 만들어 농사에 재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이후 중세부터였다고 한다. 따라서 인분의 활용법을 알지 못했던 헤이안 시대는 흐르는 강물에 배설물을 투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처리방식이었다. 귀족들은 대로 옆에 흐르는 도랑에서 물길을 끌어와 측간을 거쳐 다시 도랑으로 흘려보냈다. 오늘날의 수세식 화장실과 유사한 처리 방식이지만 문제는 대로 옆 도랑으로 흘려보낸 용변이 쌓여 물길을 막거나 사람들이 통행하는 도로로 흘러넘쳐 악취를 풍기기 일쑤였다는 점이다. p 129



각종 배설물 처리와 더불어 헤이안경에 거주하는 이들을 괴롭힌 또다른 문제는 빈번히 발생하는 자연재해였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천도 직후인 9세기에 발생한 지진 가운데 진도 6이상의 강진만 하더라고 모두 6차례 확인된다. 이 가운데 887년에 발생한 ‘난카이 대지진’은 수많은 민가와 관청에 피해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건물이 무너져 압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 헤이안경은 목조 건축물이 대부분이어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에 따라 화재 역시 지진 못징낳게 커다란 피해를 일으켰다. 대화재로 천황의 거처인 다이리가 소실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p 130




앞선 도읍이었던 후지와라경 역시 배수시스템과 공중 위생문제로 폐도가 되었기에, 헤이안경 역시 발전이 없었다면 폐도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헤이안경은 폐도는 커녕 도읍으로써 천년동안이나 존속한 것으로 미루어볼때, 도시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교토 도시문제 해결에 앞장선 사람들로는 도래인 하타씨 일족을 들 수 있다. 6세기에 이미 거대 집단이 된 도래인 하타씨는 열도 곳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중 하타씨 거대세력 일부가 교토에 자리를 잡았다. 하타씨는 토목(제방공사), 광산, 농업, 염전, 양잠, 양조등 도시개발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기술을 지닌 집단이었다. 이런 하타씨가 교토에 자리잡고 제방공사(대언천 제방), 경제기반 발달(농/광/상업 등)등을 이끌며 교토 도시개발에 앞장섰던 것이다.




리뷰는 여기까지!  앞서 말하긴 했지만 일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은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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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지 마, 인생 안 끝났어 - 인생 9할을 웃음으로 버틴 순자엄마의 65년 인생 내공 에세이
순자엄마(임순자)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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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에세이 『까불지 마, 인생 안 끝났어』는 유명 유튜버가 쓴 에세이다. 그냥 유튜버가 아니다. 자녀 출가시키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순자엄마다. 물론 난 유튜브라고 해봐야 자격증시험 무료강의정도만 보는 터라, 유명한 유튜버라고 해도 잘 모른다. 근데 순자엄마 채널이 백만 구독자가 넘었다고 하니, 진짜 유명한 유튜버인가보다. 그 유명세 8할은 순자 엄마 65년 인생 내공이 아닐까!



65세 순자엄마. 딱 우리 부모님 세대다. 요즘에 비하면 한없이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가계를 위해 쉼없이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출가시키기까지. 오롯지 가족만을 위해 달려오며,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는지 눈에 선하다.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고생끝! 인생 2막이 시작된다. 옛날처럼 아이 키우기위해 앞만 달릴 필요 없이, 뒤를 돌아도 보고, 쉬엄쉬엄 걷기도 하면서 오롯이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는 순자엄마다.



그런 순자엄마가 젊은이와, 본인 처럼 인생의 제 2막을 앞두고 있는 중년들을 위해 용기를 주고자 책을 썼다.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도전인데, 순자엄마는 그렇게 또 도전했다. 책을 읽을 우리들을 위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이 말 싫어하지? 근데 사람이 말이야, 고생도 좀 해보고 그래야 끈기라는게 생겨. 뭘 하나 해야곘다고 마음먹으면 죽어라 파는 연습을 해봐야돼. 회사 몇 달 다니고 힘들다고 그만두고, 몇 년 일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만두고 그럼 못써. 난 못배운 사람이니까 내 말이 다 맞다고는 못하겠지만, 인생 선배로서 말하자면 그렇게 옮겨 다니다가는 마음도 흔들리고 중심도 안잡힌다고 생각해. 뭔가 하나는 끝까지 해봐야, 그 힘으로 사회생활도 잘하고 결혼생활도 잘하고, 인생에서 밀려드는 별별 풍파에도 안 휘청거릴 수 있어. p 022



어느 순간부터는 남 부러워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좋은 날이 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젊은이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남하고 너무 비교하지 마. 인스타랑 유튜브도 조금만 보고, 친구 연봉 자꾸 물어보지 말고, 지금 사는 집이 몇 평이냐고도 물어보지도 마. 자꾸 그러면 지치는건 결국 자기 자신뿐이야. 친구랑 인생을 바꿔살지도 못하는데 그런 생각 자꾸 해봤자 뭔 소용이냐고. 남 따라가지 말고, 그냥 지금 내가 가야되는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면 돼. 천천히 가도 결국 좋은 날은 오니께. p 037



포기해도 된다는 말이 주저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야. 안 될 일에서 될 일로 갈아타란 소리지. 과거는 과거고, 웃으면서 계속 앞으로 넘어가는 게 인생이야. p 059



요즘엔 다들 나보다 많이 배웠잖어. 머리로만 직업에 귀천은 없다, 모든 노동은 똑같이 값지다, 이러면 뭐하냐고. 막상 그런 일 하라 그러면 부끄럽다고 안 해버리는데. 친구들은 서울에 있는 대기업 직원에, 공무원에, 사짜 직업인데, 나만 힘 쓰는 일 하려니까 막 어디 숨고 싶고 그렇지? 인생이 망한 것 같고, 쓸모도 없는 인간이라도 된 것 같고, 그치? 몸 쓰는 일이 부끄러운 게 아니고 할 일 없다고 누워서 부모 돈이나 까먹는 신세가 더 부끄거운 줄 알아야 돼. 세상 천지에 널리고 널린게 일인데, 핑계는. p 063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조언이고, 또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잔소리다. 그 차이는 듣는 이의 기분에 따라 나뉜다. 듣는 이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조언이 되고, 반대로 듣는 이가 간섭과 지적으로 느끼면 잔소리다. 순자엄마가 하는 말은 그야말로 조언 그 자체다.



힘들어서 안하고, 조금만 하다가 포기하고, 부모 집에서 얹혀살고…. 요즘 20대에서 자주 보이고, 심지어는 사회문제로 부각된 행동들이다. 국민학교 졸업과 함께 궂은 일 마다않고 쉼없이 달려온 순자엄마는 이런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뭐라도 하나 뚝심있게 해야, 근성도 생기고 마음의 근육도 붙고 그러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뭐만 하면 포기만 하니. 뭐 엄밀히 따지만 자녀를 그런식으로 키운 부모에게 원죄가 있다지만, 어쩌겠는가. 다 큰 자녀에게 부모가 한 소리 하면 잔소리로 넘어가는 것을.



하지만 자녀들이 즐겨보는 유튜버 순자엄마가 말하면 다르다. 부디 이런 2030들이 순자엄마의 조언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랄뿐이다.







젊었을 때는 몰라. 내가 다른 사람이랑 경쟁하면서 뒤처지는 느낌이 들면 싫지. 달리기에서 누가 1등 하냐, 2등 하냐 그게 엄청 중요하잖아. 살아보면 등수는 하나도 안 중요해. 돈이 많으면 뭐해. 건강 상하면 돈도 다 필요없고, 자식 농사 망하면 걱정 근심이 한가득이야. 돈이 많든 적든, 대학을 다왔떤 안 나왔든 나한테 행복한 일이 뭔지 알아야 돼. 아침에 일어나서 맛있는 밥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친구들이랑 같이 운동 가고, 하하호호 웃고 떠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인생에 대단한 일이 생겨야 행복이 찾아온다고 생각하지만, 평범한 일상만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도 없어. 그리고 인생 참 길다. 60 넘으면 죽을 날 만 바라보고 살 것 같지? 아즉 한창이야. p 132



촌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다 지금 이순간에만 집중해서 그래. 도시처럼 번잡하게 살다 보면 그런 걸 못느껴. 근데 여기선 그냥 그날그날 해야 할 일 열심히 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가고 몸도 피곤하니까 잠도 잘 오고 그런다니께. 난 이제 테레비 보면서도 ‘저 사람처럼 살아야지’ 싶은 사람도 없더라고. 뭐 가끔 배울점이 있는 사람들은 있지. 그럼 나도 똑같이 따라해보면서 좀 더 발전해야겠다 생각하고, 그게 다야. p 137



살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흐린 날이 있지? 그럴 때는 꼭 밖에 나가. 아무리 날씨가 흐리고 마음이 무거워도, 그냥 신발 신고 밖으로 나가서 30분이라도 걷다 와봐. 우울증이 있으면 집에서 마냥 누워만 있고 싶다며? 내가 이 나이까지 살면서 그런 날이 왜 없었겠어. 젊었을 적에는 허구한날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가 자책하고, 어떤 때는 고된 농사일 좀 그만 헀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지. 날씨가 우중중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흐리게 두지마. 비가 오면 그 소리를 듣고, 눈이 오면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냥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야. p 142



에세이 전반부가 20대를 위한 조언이라면, 후반부는 도전을 망설이는 중년을 위한 조언이다. 중년이라고 해도 순자엄마에겐 그저 젊은이로밖에 안보이겠지만. 순자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어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좋은 날이 있으면 우울한 날도 있는 거라고. 60먹은 본인도 도전과 실패를 반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살만하지 않느냐고. 순자엄마는 이렇게 자신의 도전과 실패를 담담히 이야기하며, 그럼에도 포기보단 도전하는게 낫다고 말하며 도전을 망설이는 중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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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 유산균부터 바이러스 치료제까지 지금 필요한 약슐랭 가이드
박한슬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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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를 다니다보니, 회사 독서통신을 통해 약에 대한 책을 자주 읽었다. 이 책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도 그 중 하나다. 지금까지 읽어본 제약 관련 책들은 대게 약의 역사 또는 발견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 책은 결이 조금 다르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말 그대로 ‘약술랭가이드’!



이 약을 먹어도 되는건지, 계속해서 먹어도 문제는 없는건지, 백신이나 항생제등을 꼭 사용해야하는건지, 우리가 의사 또는 약사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그런 질문들을, 속시원하게 설명해준다. 거기다 저자가 말하는 15가지 약들은 일상생활에서 뗄레야 뗄수 없는 약들이다보니, 읽는 내내 집중도 최강이었다.



대표적으로 우리 상전한테 꾸준히 챙겨주는 프로바이오틱스, 친정 아빠가 주기적으로 바르는 무좀약, 내 삶에서 뗄레야 뗄수 없는 진통제와 알러지성 비염치료제, 이 땅에 태어나면 무조건 맞게되는 백신이나, 아프면 처방받는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 등. 일상생활에서 너무 친숙한 약들이다. 근데, 친숙함과는 별개로 내용 자체는 잘 알지 못한다는게 모순이랄까.



15가지 약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프롤로그도 꼭 읽어봐야한다. 


지금까지 난 약을 하루에 세 번 먹는 이유는 약사가 그렇게 하라고 했고, 거기다 뭐 약효 지속시간도 있을 것이고, 약을 제때 챙겨먹을 수 있도록 제때 먹는 밥에 결부시켰거니 뭐 이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생각보다 하루 세 번 약 먹기는 꽤 중요했다.


약을 하루에 세 번 먹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정말로 ‘약효’ 때문이었다. 근데 여기서 밑줄쫙!! 약 먹는 걸 건너뛰어도 안되고, 건너뛰었다고 두개를 한꺼번에 먹어도 안된다. 약 지속시간에 따라 정확하게 먹는게 제일 중요하다.


‘약효’는 약이 몸속에서 일정 농도 이상을 유지해야 나타난다. 약의 농도가 너무 낮으면 효과가 없고, 너무 높으면 독성이 나타난다. 약을 먹어서 약이 소화기관을 지나 혈액으로 흡수되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약효를 내기 위한 최소 농도인 최소 유효 농도에 도달한다. 보통 약 복용 후 늦어도 30분이내에 진행된다. 시간이 흐르면 약의 농도가 최소 유효 농도까지 떨어지며 약효가 사라는데, 약효가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혈액 중 약의 농도가 최소 유효 농도 이하로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다음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을 세 번 먹으라고 하는 이유다.


다만 약에 따라 소실속도가 다르다보니 하루 세 번 먹어야하는 약도 있지만, 하루에 두 번 먹는 약도 있고, 반대로 하루에 네 번 먹어야 하는 약도 있다. 전부 약효 지속시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프로바이오틱스


프로바이오틱스는 적정량을 섭취했을 때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되는, 살아 있는 미생물입니다. 일종의 먹는 세균 보충제인 셈인데요. 공식적인 정의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프로바이오틱스로 인정받으려면 한 가지 특성을 더 갖춰야 합니다. 몸에 들어온 미생물이 일시적이건 영구적이건 체내에 자리를 잡고 성장해야한다는 거죠. p 020



실제로 최근 한 연구에서 알러지 질환을 앓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에게 출생 후 2년간 락토바실러스 람노서스 HN001 균주를 포함한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였더니, 아기였을 때는 물론 11세까지 아토피 발생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처럼 프로바이오틱스를 이용해 면역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면서, 원인을 알기 힘들었던 각종 면역 관련 난치병에 대한 치료법을 프로바이오틱스에서 찾으려는 노력도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장에 염증이 생기는 염증성 장 질환이나, 항생제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망에 이를 정도의 심각한 설사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 질환과 마이크로바이옴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사람들도 있죠. p 022



과거와 달리 현대인들의 식단에 오르는 메뉴를 보면 비만과 성인병을 불러오는 가공식품 및 기름진 음식들이 많아졌다. 이런 식습관으로 인해 이른바 ‘비만세균’이 장을 장악하며, 몸에 염증반응을 일으키고, 당뇨병의 원인인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는 등 건강에 적신호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비만세균을 없애는 방법은(전멸은 힘들겠지만), 그것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꿔야하는 건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장내 유익균인 ‘프로바이오틱스’를 늘리는 것이다. 물론 건강한 식단과 같이해야 더 좋다. 



프로바이오틱스를 선택할 때는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살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제약회사들은 어떤 종의 어떤 균주가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제 임상 시험을 통해 밝혀내고, 순수하게 그 균주만 배양한 제품을 내놓습니다. 반면에 일부 업체의 제품은 그런 효과를 전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락토바실러스 람노서스 GG’와 같은 균주 이름을 전혀 명시하지 않고, ‘유산균 몇억 마리’라는 아무런 의미없는 수치만 강조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럼 어떤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어야 나름의 효과를 받을 수 있을까요? p 027




그럼 어떤 프로바이오틱스를 선택해야하는가!!! ‘유산균 몇억마리!’라는 문구만 거르면 일단 중간은 간다. 여기서 또하나. 간혹 프리바이오틱스를 프로바이오틱스로 오인하고 먹는 경우가 있는데, 프리바이오틱스는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다. 프로바이오틱스랑 프리바이오틱스를 같이먹어야지, 프리바이오틱스만 먹는건 딱히 의미가 없다. 뭐 이미 장내 유익균이 많다면 모를까? 



이 책에는 각 증상에 대해 유요한 프로바이오틱스 균주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려준다. 


알러지성 비염완화: 락토바실러스 가세리/파라카세이 등


아토피 예방 완화: 락토바실러스 루테리/살리바리우스 등


노년층의 면역력 강화: 비피도박테리움 락티스


혈중 콜레스테롤 혹은 중성지방 감소: 비피도박테리움 롱검, 락토바실러스 루테리 등


과체중 완화 혹은 체중감량: 락토바실러스 가세리


항생제에 의한 설사 완화: 사카로마이세스 보울라디, 락토바일러스 카제이/람노서스 등




나랑 신랑은 유산균을 안먹은지 오래되긴 했지만, 우리 상전만큼은 꾸준히 유산균을 챙겨준다. 근데 어떤 균주들이 있는지 생각해본적이 없네? 책 읽은 김에 상전이 먹는 비오B타 베베골드 균주를 찾아봤다. 메인 균주가 락토바실러스 루테리, 락토바실러스 가쎄리! 이 둘이 제일 보편적인 균주인가보다.



겸사겸사 상전이 항생제 처방받을때마다 같이 처방되는 유산균인 비오플 성분도 검색! 사카로마이세스 보울라디. 오, 항생제에 의한 설사완화 기능. 역시 다 이유가 있는거였어!  



위에 옮겨적은 것 외에도 질환에 대한 균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사람은 책을 읽어보길! 균주가 너모 많아서 다 적기 어렵^_T







진통제


당연한 말이지만, 진통제가 질병자체를 치료하는 약은 아닙니다. 그럼 진통제는 어떻게 통증을 없애주는 걸까요? 타이레놀이나 게보린, 이지엔 같은 제품들은 COX효소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앞서 COX가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들고, 프라스타글란딘이 통증과 발열을 일으킨다고 말씀드렸죠. 다행히도 프로스타글란딘의 수명은 30초 정도로 매우 짧습니다. 진통제는 COX 효소의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새로운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막아주어, 우리의 고통을 줄여주죠. 진통제의 원리는 이렇듯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그렇다보니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은 무척 다양해도 효과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p 107



이렇게 고마운 진통제에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고용량의 진통제를 오래 복용한 사람들에게서 속 쓰림이나 심하면 위궤양 같은 증상이 발생했던 겁니다. 연구 결과 이런 위장 관계 부작용은 COX때문이었습니다. COX가 통증을 유발하는 물질만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소화기간을 소화액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물질을 만드는 과정에도 관여했던 겁니다. 진통제를 복용하면 통증을 유발하는 물질뿐만 아니라 소화기관을 보호해 주는 물질도 억제됩니다. 감기나 몸살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으면 진통제와 함께 다양한 약이 처방되는데, 이 중에는 위 보호제 성분도 같이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되도록 식사 후에 진통제를 먹으라는 약사의 권유도 소화기관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p 108



마약성 진통제를 이용하면 환상통뿐만 아니라 극심힌 고통을 일으키는 삼차 신경병증이나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암 환자들이 겪는 암성통증, 수술 후 통증 등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혹시나 마약성분이라는 점 때문에 의존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의료진이 투여량을 결정하니까요. 다만 마약성 진통제가 작용하는 수용체가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곳 말고 다른 곳에도 있어,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성은 있습니다. p 110



살면서 진통제 안먹어본 사람이 있을까? 살면서 두통, 치통, 생리통(여성 한정)이 심해질 때 필수인 진통제! 그뿐인가? 아이키우는 부모라면 아세트아미노펜, 이부브로펜 계열 해열제 2종은 상시 보유해야한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 솔직히 진통제가 어떤식으로 통증에 반응하는지, 부작용은 얼마나 있는지 그런건 잘 모르다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진통제에 대한 새로운 지식 +1, +1, +1 …. 역시 약은 알고 먹어야한다...!



아세트아미노펜이 분해되는 과정이 알코올에 의해 방해를 받으면 NAPQI라는 간독성이 강한 물질이 간에 축적됩니다. 처음에는 메스꺼움과 식욕부진 같은 가벼운 증상이 나타나지만, 간의 손상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극심한 구토와 복통이 시작됩니다. 심해지면 황달과 함께 의식이 혼미해지는 증상이 나타나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아예 간이 괴사하여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무시무시한 상황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p 113



자자 이번엔 알콜을 사랑하는 성인들 주목! 약사가 타이레놀이나 감기약을 먹을 땐 왜 술을 먹지 말라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알쓰제외ㅋ)



타이레놀 및 각종 진통제, 감기약 등 일상적으로 먹는 약에는 들어있는 아세트 아미노펜 성분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알콜에 방해를 받으면, 간에 독성물질이 축적된다. 만약 숙취로 인한 두통이 너무 심해서 나는 꼭 진통제를 먹어야겠다! 고 생각한다면,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이 아닌 이부브로펜 계열 진통제를 먹으면 된다. 다만 이부브로펜 계열은 속쓰림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으니 이는 감수해야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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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원 기행 - 역사와 인물, 교유의 문화공간
김종길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오늘 읽은 인문학책은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만 있던 『한국 정원 기행』이다. 늘 답사를 표방한 여행을 추구하던 나인지라, 옛 정원 또는 별서도 찾아다니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한 곳, 두 곳, 답사하는 곳이 늘어나다보니 정원에 대해 제대로된 이해가 필요하지 싶어서 구입했던 책이다. 이 책 속에 나와있는 정원은 50여 곳. 그 중에서 내가 가봤던 곳이 16곳이다. 


이중 경복궁, 창덕궁, 석파정, 청암정, 궁남지, 포석정, 수성동 등 대다수는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갔지만 식영정이나 명재고택, 방화수류정은 정원에 대한 이해도가 꽤 부족한 상태였다. 특히 식영정은 담양에 들렸다가 우연하게 방문하게 되었으며, 방화수류정은 그저 화성에 딸린 저수지정도로, 명재고택 정원은 뭐 다른 사대부 고택에 으레 있는 그런 정원이라는 정도가 끝이었다. 그러다보니 식영정에 갔을 땐 휴대폰을 들어서 열심히 검색! 명재고택 갔을 때도 검색! 거의 그 자리에서 검색하며 배경지식을 탐구하느라 정작 정원은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고나 할까?


진작에 우리나라 정원에 대한 인문학책 『한국 정원 기행』을 읽었더라면, 적어도 검색하는 시간보다 정원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달까.



최근 우리 옛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원’ 대신 ‘원림’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고 있다. 그 주장의 근거로 정원이라는 용엉가 일본에서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원이라는 단어는 일본인들이 19세기 후반에 만들어낸 말로 일제강점기때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치 않다. 엄밀히 따지자면 원림 또한 중국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p 014



우리 옛 문헌엔 정원이 어떻게 표현됐을까. 가원, 임원, 임천, 원림, 구원, 원정, 정원, 화원, 원 등이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원림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였고, 그 다음이 정원이었고, 다른 이름으로도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소쇄원처럼 ‘원’을 붙여 쓰거나 서식지처럼 정원의 주된 구성 요소를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어느 특정 용어로 통일해서 사용하지는 않았다. (…) 게다가 우리 정원에서 별서 정원의 경우 원림으로 불리는게 타당하지만 주택 정원이나 별당 정원은 원림과 분명 다른 요소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p 016



한국 정원에는 허, 원경, 취경, 다경, 읍경, 환경 등의 다섯 가지 경관 처리 기법이 있다. 비어(허) 있는 누정에서 멀리 있는 경치를 조망하고(원경), 주변 경관을 누정에 모으고(취경), 먼 곳의 다양한 경관을 누정으로 모으거나 누정에서 다양한 경관을 보거나(다경), 누정 속으로 자연 경관을 끌어들이고(읍경), 누정 주위에 자연 경관이 병풍츠럼 둘러(환경) 있게 한다. p 027



이 책에선 정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비롯하여, 역사 속에서 정원을 누가, 왜, 어떤식으로 조성하였는지, 또 어떤 이름으로 불리웠는지를 쉽게 설명해준다. 거기에 더해 세부적으로는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정원을 소개하며, 그 정원을 어떻게 관람하고 향유할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책 속에 있는 정원 중 내가 직접 가봤던 정원 두 곳을 이 포스팅에 담아본다.




서울 석파정


흥선대원군이 탐이 나서 빼앗을 정도로 김홍근의 정원은 서울 제일의 명원이었다. 여기서 말한 김홍근의 별원이 지금의 석파정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흥선대원군과 김흥근의 질긴 악연을 엿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은 왜 이곳을 빼앗았고 김홍근은 어찌해서 빼앗길 수 밖에 없었을까. 그 내막을 좀 더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조선 말기에 세도정치를 일삼았다고 알고 있는 안동 김씨, 그중 ‘장동 김씨’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p 119



정조 재위시절 자하동 일대에 살던 안동 김씨 중 당대를 주름잡던 5명을 자하동 김씨, 줄여서 장동 김씨라 불렀다. 장동 김씨 중 한명인 몽와 김창집의 후손이 바로 김흥근이다. 김흥근과 흥선대원군이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었다. 고종을 옹립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사이는 좋았다. 그러나 고종이 재위한 뒤에도 흥선대원군이 계속해서 정사에 참여하자, 이를 대놓고 마음에 안들어하면서 서로 척을 지게 되었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김흥근이 소유한 땅을 빼앗기 시작했다. 김흥근은 자신의 별서인 ‘삼계동정사’ 만큼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대동하는 방법으로 빼앗고 만다. 빼앗은 ‘삼계동정사’는 ‘석파정’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이 정원의 앞산과 뒷산이 모두 바위이기에 붙인 이름이다. 대원군의 호인 ‘석파’ 역시 석파정에서 유래됐다.


조금더 과거로 올라가보자. 석파정 이전에 삼계동정사, 삼계동정사 이전에는 ‘소운암’이었다. 소운암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오재 조정만의 별장이었다. 오재 조정만은 노론의 거두 송시열의 수재자였다. 이 별장을 김흥근이 인수하여 ‘삼계동정사’가 되었고, 이를 흥선대원군이 빼앗아 ‘석파정’이 되었다. 



석파정은 인왕산 기슭 계곡에 있다. 19세기 말 격동의 시대에 왕과 왕실 사람들, 세도가들이 찾았던 비밀의 정원이었다. 예전의 석파정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석파정도> 병풍을 보면 석파정이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계류를 바라보며 들어앉은 사랑채, 안채, 별채 등은 당시 상류 계층의 정원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p 126



사랑채 옆에는 별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에 없다.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사들여 1958년에 자기 집 뒤뜰 바위 언덕으로 건물을 옮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석파랑’이라는 한정식집의 부속 건물로 쓰이고 있다. p 127



석파정을 대표하는 상징 공간은 계곡 깊숙이 숨어있는 정자이다.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계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점점 깊어지는 계곡 한가운데에 들어앉은 아름다운 정자 하나를 볼 수 있다. 정자의 이름은 ‘유수성중관풍루’, 그 뜻은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쯤으로 풀이하면 될까. 가을날 온통 붉은 단풍에 둘러쌓인 이 정자를 바라보다 넑을 잃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p 128



n년전 가을, 엄마와 함께 석파정에 갔었다. 사계절 내 아름다운 석파정이지만, 단풍이 물드는 가을의 석파정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특히 계곡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정자에 올라서서, 단풍구경을 한다면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봉화 청암정


권벌이 청암정을 조성할 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청암정을 처음 지었을 때에는 온돌방이었고 둘레에 연못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온돌방에 불을 지피자 바위가 소리내어 울었다. 이를 괴이하게 여겼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고승이 “이 바위는 거북형상인데 방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 불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거북이를 태울 수 있는 아궁이를 막고 거북이가 물에서 살 수 있도록 바위 주변을 사방으로 파내어 연못을 만들고 물을 채웠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한다. p 264



처음 정원에 들어서면 연못 좌우로 풍경을 훑어보고 충재 쪽마루에 걸터앉게 된다. 충재는 선비의 공간인 만큼 단아하고 간결하다. 권벌은 평소 충재에 기거했는데, 평생 《근사록》을 즐겨봐서 충재에 ‘근사재’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잠시 충재에 걸터앉아 정원 안 풍경을 감상했다면 이제 연못을 건널 차례다. 연못에는 돌다리가 놓여있고 돌다리를 건너면 거북바위이고, 바위 위 돌계단을 오르면 정자 청암정에 이른다. 거북바위를 중심으로 삽아을 빙 둘러서 판 연못으로 인해 평범했던 바위 공간은 현실 세계인 인간의 땅과 구분되는 이상 세계인 무릉도원이 됐다. p 267



청암정은 봉암 닭실마을에 있는 정자다. 기묘사화 때 파직되어 귀향한 충재 권벌이 세웠다. 권벌은 귀향 후 안동이 아닌 봉화 닭실마을에 터를 잡았는데, 닭실마을이 권벌의 외가가 있는 곳이자, 어머니 파평 윤씨 묘소가 있던 곳이었다. 내가 청암정에 관심을 갖게 된건 사극에서 종종 그 풍광이 나오면서였다. 그래서 안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봉화 닭실마을에 들렀고, 운 좋게 충재 권벌선생의 후손을 만나 연못 돌다리를 건너 청암정 내부까지 들어가는 귀한 경험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운이 좋았던건지!



훗날 내 딸과 다시금 청암정에 들르게되면 그때 딸에게 자랑해야지. 엄마는 여기 돌다리도 건너봤다고! (※원래 청암정 내부관람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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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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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그알 시청경력 1n년차라 왠만한 사건사고는 그 어떤 타격감 없이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던 나다.  그알 시청경력이 몇 년 차인데! 이런거에 놀라고 호들갑떨어? 라고 생각했다. 하, 근데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을 몽창 흘렸다. 그것도 회사에서! 날 오열하게 한 사건들은 ‘아이’였다. 정말로 오로지 성인들만 관련된 사건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피해자, 가해자 또는 그 사이에 있는 또 다른 구성원이 중 하나가 성인이 아닌 ‘아이’가 들어가니까 와. 정신적 타격감이 너무 거셌다.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이게 참 와닿는게 너무 달랐다.



내가 그 아이들을 후원한 것은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지원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이 함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주면 좋겠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그저 엄청난 슬픔과 파괴 속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가장 먼저 본 우리 모두가 그 아이들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p 084




우리가 감히 유가족의 마음이 되어볼 수는 없다. 황망하게 떠난 가족이 얼마나 그리울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뜨거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무언가 몸을 움직여 행할 필요도 없고, 나의 시간이나 돈을 쏟을 필요도 없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가장 마지막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p 188




하교한 아이가 집에 오자 엄마가 죽어있었다. 아빠에게 전화했고, 아빠는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는 그 날 자신이 보았던 상황을 경찰에 진술했다. 진술 속에서 아빠가 범인이라는 정황증거가 나왔다. 실제로 엄마를 죽인건 아빠였다. 이 아이는 엄마가 죽었는데, 엄마를 죽인 사람이 자신이 아빠고, 그 아빠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결정적인 증거가 자신의 진술이었다. 또 다른 가정에선 엄마가 아빠에게 맞아 죽고, 아빠는 자살해서 아이만 혼자 남았다. 다문화가정이라 국내에 친인척이라곤 고모 뿐이었다. 




이 아이들은 법에서 말한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기엔, 이 아이들에게 남겨진 고통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을 사랑해주던 부모가 모두 사라졌을때, 엄마를 죽인 사람이 아빠였을때, 이 모든 진실을 감당하기엔 이 아이들이 너무나 어렸다. 무엇보다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인데, 그 부모가 사라졌다. 이 아이들은 험한 세상을 부모라는 보호막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대다수는 나라에서 어련히 잘 돌봐주겠지-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예상외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호 교수님은 남은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후원자가 자신의 부모를 부검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면, 아이들은 다시금 슬픈 과거를 떠올릴지도 모르기에,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줄 지도 모르기에, 익명으로 후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선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지만, ‘개인’은 가능하다. 이호 교수님처럼 개인적으로 후원할 수도 있고, 단체를 통해 후원할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런 아이들을 발견하게거든, 손을 내밀어주자.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부모는 아닐지언정, 그래도 자기를 걱정하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아이야


여섯 살이잖니


두 손으로 셈하기에도


네 개나 남은 나이인데


엄마와 3더하기 3은 6


아직 읽곱 여덟


셈하는 놀이도 끝나지 않았는데


하룻밤만 잔다더니 여직 그곳에서 놀고 있니


너의 향긋한 냄새는


너의 침대 배갯잎에도


너의 꼬꼬마 인형의 때묻은 뺨에도


그리고 지난번 소풍에 찍었던


사진 속의 네 미소에도 남아 있는데


너의 보송보송한 얼굴과


너의 고운 음성은


어디에 두었니


왜 그리 꼭꼭 숨었니


아이야, 천사의 나갯짓을 하고


오늘 밤 또 내일 밤


잠 못들어 뒤척이는 엄마 곁에


향긋한 너의 향기 뿌리며 오지 않겠니


내 그때라도 너의 보들보들한 뺨에 내 얼굴을 비비고


너의 은행잎 같은 손을 내 눈에 대어


흐르는 눈물을 막아보련만


오늘도 이 엄마는


너를 안았던 가슴이 너무 허전해


너를 부르며 피를 토한다


보고 싶은 내 아이야


귀여운 우리 아기야 


_ 박경란 「아이야, 너는 어디에」 中





「아이야, 너는 어디에」 이 시는 씨랜드 화재 후 아이를 잃은 부모를 보며 한 시인이 쓴 시다. 씨랜드 화재 이후 이렇게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 이후로도 수많은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크고작은 일이 되풀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 배가 침몰할 당시만 해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왜? 배가 가라앉는데 꽤나 시간이 흘렀고, 침몰하는 배 주변에 해경을 비롯해 많은 배들이 와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299명이 사망했다. 그중 대다수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이었다. 이 학생들이 사망한 이유는 단순했다. 어른들이 곧 구해줄거라는 믿음과 ‘가만히있으라’던 선내방송을 따랐을 뿐이다. 이 방송을 따르지 않고 자발적으로 뛰쳐나온 소수의 사람들(대다수가 성인)만 이 참사에서 살아남았다.




세월호 참사, 씨랜드 화재의 공통점. 바로 인재다. 관련자들의 사리사욕으로 시스템에 결함이 생겼고, 그 결함들이 쌓이고 쌓이다 발생한 인재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아낀다는 이유로 건축물을 지을 때 자재를 빼먹는 등 부실공사를 일삼거나, 적재용량의 몇 배를 더 실어서 운반하는 등 불법행위를 자행한다. 이런 불법적인 행태에 대해선 숨기거나 허위로 관청에 신고하고, 허위 신고를 잡아낼 기관들은 탁상머리에 앉아서 현황조사는 하지도 않은 채 허가를 내준다. 이런 시스템적 결함들이 쌓이고 쌓여 대형 참사라는 참담한 결과를 불러온다. 만약 저 시스템 안에서 단 한명이라도 올바른 사고로 악순환을 끊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인재는 매년 지속되고 있다. 오송지하차도 참사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가 그랬으며, 각종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산재사망사건들이 그렇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발생된다는 건, 아직 이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정말 이런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죽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우리는 사실 얼마나 위험에 가까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네카가 말했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을 고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는 사인 없이 죽어간 2만 8천 명 속에 있다. 우리 옆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사람들, 죽어간 사람들 속에 우리 사회의 불완전함이 있다. p 047



부검을 하면서 언제나 결과에 대한 처벌과 책임에만 몰두하는 게 답답했다. ‘그 전에 원인을 먼저 파악하고 제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어디선가는 여전히 삐걱대는 시스템 속에서 누군가가 또 죽음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예방법의학을 만들자고 주장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길목에 작은 걸림돌 하나라도 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p 103



도덕적 선택의 아이러니에 놓였을 때 우리는 칸트의 정언명력을 떠올려야 한다. 칸트는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를 통하여 보편적인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라고 말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과연 모든 사람이 선의의 거짓말을 허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의 신뢰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p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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