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인문학책 『채근담』은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아온, 시대가 증명하는 아주 유서깊은 인문고전 책이다. 어느정도로 유서깊은 책이냐면, 『채근담』의 저자 홍자성은 명나라 말기 문신이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대충 17세기 조선에 해당한다. 홍자성은 유교, 도교, 불교 등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는 모든 사상들을 융합하여, 이 책 『채근담』을 썼다. 쓰여진지가 벌써 기백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서로에게 추천하고 열광한다.


기백년전에 쓴 사람이 쓴 글이라면,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이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채근담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인간관계의 어려움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관계맺기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고, 저마다 개성이 다르며, 저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채근담』은 바로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삶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말, 마음을 거스르는 일들은 때론 우리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연마재가 됩니다.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며, 늘 기분 좋은 일만 겪는 삶은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자아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삶의 깊이만 얕아질 뿐입니다. 말 한마디에도 사건 하나에도 내면이 흔드릴 때, 그것을 되돌아보며 다듬는 과정이야말로 참된 수양입니다. 달콤함만 좇는 삶은 결국 인생을 망치는 독이 되고, 쓴맛을 견디는 삶은 결국 단단한 지혜를 남깁니다. p 032


참된 가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진짜 청렴한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는 청렴하다”라고 이름을 내세우는 순간, 그 마음속에는 이미 탐욕이 깃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능력은 조용히 발휘됩니다. 과도하게 기술을 자랑하고, 자신의 솜씨를 과시하려 드는 사람은 오히려 미숙함이 들통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과 능력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록되어야 합니다. 겸손한 실천이야말로 오래 남는 힘이며, 조용한 정직함이야말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진짜 능력입니다. p 091


우리는 살면서 ‘기분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좇으며 그 순간의 만족에 안도합니다. 그러나 그 즉각적인 쾌락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입에 좋은 음식도 지나치면 병이 되고, 마음에 드는 일도 지나치면 탈이 됩니다. 절제는 부족함이 아니라 넘침을 막아주는 방패입니다. 오래도록 자신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순간의 기쁨보다 지속될 평온을 선택해야 합니다. p 133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 깊이가 생기기 전까지 성급히 평가하거나 표명해서는 안됩니다. 선한 사람이라 해도 아직 신뢰가 단단히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드러내어 칭찬하면, 도리어 주변의 질시를 불러일으켜 그 사람을 해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악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도 섣불리 배척하거나 공격하면, 예상치 못한 보복이나 억울한 꼬리표를 감당해야할 수 있습니다. 진정 현명한 사람은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살피고, 행동보다 침묵의 무게를 아는 이입니다. 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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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삶을 키우는 나무의 지혜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박은진 옮김 / 아멜리에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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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식물을 키운다고 하면 엄마, 아빠를 떠올린다. 보통 식물 키우기는 중장년층에서 자주 보이는 취미였으니까. 그렇기에 아직은 청년층(?)에 속한 내가 식물을 많이 키운다고 하면, 놀랍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부쩍 주변에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것도 중장년이 아닌 청년층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들이 식물을 키우는건, 식물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현재 사회에 나온 2030세대는 과거 2030세대와 사뭇 다르다. 과거 2030세대는 취업이 쉬웠다. 분명 그때도 취업이 어려웠다고 하는 중장년층이 있을 것이다. 대게 이런 사람들은 요즘 젊은 것들은 나약하다며, 꼰대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만 먹고 속은 철부지 그자체인 가짜 어른들이다. 잘 생각해보자. 그때도 지금처럼 서울대에 가기 위에 경쟁이 치열했고, 대학가서는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를 위해 대학의 낭만은 포기한지 오래고, 기업들의 채용인원수가 지금만큼 적었는가? 심지어 현재는 과거에는 없었던 사회 문제들이 도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내집마련도 과거와 달리 어렵기 그지없다. 세상이 각박해지다못해 삭막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세상을 만든 건, 우리보고 나약하다고 한 말한 가짜어른들이다.


이렇게 삭막한 세상에서 살고있으니,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위로하고 조언해줄 참 어른이 별로 없으니, 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지! 결국 사람들은 위로를 받기 위해 식물을 선택했다. 왜? 문득 정신차려보니 식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산소를 내뿜어주며, 우리를 지켜주고 조용히 응원해주고 있었다. 이제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힐링 에세이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저자가 나무의 삶을 보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 나무에게 받은 위로를 알려주는 글이다. 





이 에세이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첫 페이지는, 놀랍게도 나태주 시인의 추천사로 시작한다. 나태주 시인이 누구인가! 다름아닌 자연물을 보며 시를 쓴, 풀꽃시인이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이 고달픈 건 꽃과 시와 나무를 멀리해서 입니다. 이 땅의 젊은 분들이 좀 더 일찍 나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배운다면, 보다 일찍이 그들의 마음과 영혼이 맑아지고 여유로워지며 그들의 인생 방향 자체가 바뀔 것으로 믿어집니다. 역시 좋은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주는 역할까지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 나태주 시인 추천의 글





틀 바깥에서, 창의적으로_ 유럽호랑가시나무

살다 보면 정공법을 대려놓고 살짝 비틀어 접근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가 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난 창의적 발상이 위기 상황을 뒤집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령 잎이 받는 햇빛의 양에 따라 빛을 흡수하는 세포의 수를 줄이거나 늘리며 섬세하게 조율한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유럽호랑가시나무는 오가는 동물들이 나뭇잎을 뜯어먹을 까 위쪽 잎보다 아래쪽 잎에 가시를 촘촘치 세워두는 기지를 발휘한다. p 044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_ 너도밤나무

마음 어딘가가 균형이 미묘하게 어긋난 듯하지만 그 이유를 콕 짚어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너도 밤나무는 사슴이 나뭇잎을 뜯어 먹으면 상처를 감지하고 잎에서 지독하게 떮은 맛을 내는 타닌을 잔뜩 분비한다. 하지만 단순히 바람에 잔가지 하나가 꺾인 것이라면 나무는 손상 부위를 감싸고 아물게 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만 분비한다. 그러니 우리도 너도밤나무처럼 가끔은 내 안의 부러진 잔가지들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p 072




폭풍을 견디는 법_ 산사나무

나무는 모진 바람에도 적응하고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다. 살아가며 힘든 시기를 피할 순 없지만 어떻게 헤쳐나갈지는 각자 하기 나름이다. 나무는 본디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산사나무처럼 강인한 존재들은 격렬한 바람을 온봄으로 맞아야 하는 탁 트인 곳에서는 곧게 자라기 어렵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몰아치는 강한 바람은 어린 가지의 끝부분을 상하게 하고, 결국 나무는 위로 성장하는 대신 바람을 덜 맞는 쪽으로 자라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산사나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바람을 등진 쪽의 줄기와 뿌리를 더욱 굵고 튼튼하게 키워 스스로 균형을 잡아간다. p 102



삶이 고단한 젊은이들이여, 나무를 통해 힐링하고 삶의 지혜를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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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쓸모 - 슬기로운 언어생활자를 위한 한자 교양 사전
박수밀 지음 / 여름의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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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한자의 중요성을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어렸을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역사더쿠이다보니, 남들보다 더 한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 유적지 답사를 다니다보면 한자로 쓰여진 현판, 비석 등을 만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데 서울 노원구 초안산 내시&궁녀 분묘군을 찾았을 때, 제단 또는 상석 등에 쓰여진 한자를 읽을 줄 알았기에 그 봉분이 어떤 성씨를 가진 내시의 묘인지, 혹은 궁녀의 묘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뿐인가? 파주에서 율곡선생 가족 묘원에 들어섰을 때도, 비문을 읽을 줄 알았기에 어떤 묘가 율곡선생의 묘인지, 또 어떤 묘가 신사임당의 묘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하다못해 서울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5대 궁을 찾을 때도 한자로 쓰여진 현판을 읽을 줄 알기에, 각 전각의 이름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건 기본이다.


내가 이렇게 한자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이유는, 그저 초등, 중등, 고등 전 학창시절에 걸쳐 주 1~2회 있었던 한문 시간을 즐겼기 때문이다. 코흘리개 초딩때부터 역사를 좋아한 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즐기고 좋아했던 건 아마도 ‘한자’에 담겨있는 원리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어떤 한자는 그 뜻을 담고 있는 외형을 그림화하여 단순하게 상형문자, 또 어떤 한자는 두 개 이상의 뜻을 가진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 만든 회의문자, 또 어떤 한자는 두 개 이상의 한자가 합쳐졌는데, 한쪽은 ‘발음’을 맡고 또 한 쪽은 ‘뜻’을 맡고 있는 형성문자. 이 얼마나 신기한 조합인지! 그래서 더 한자 공부에 몰두했던 것 같다. 뭐, 여기에 더해 꽤 오랫동안 일본 성우 덕질을 하며, 자연스레 습득한 일본어로 인해 한자 스킬이 한층 높아진건 안 비밀이다.


그렇게 어렸을 때 부터 한자를 즐기고, 공부하고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문해력이 높은 건 당연지사다. 거기에 부차적으로 따라온 게 있었으니 바로 자격시험! 올해 시험을 본 식물보호기사, 종자기사 시험에서 한자 덕을 솔찬히 보았다. 임업/농업 용어들을 보면 대체로 한자용어이다보니, 정의 외우는데 있어서 꽤나 많은 도움이 된것이다. 왜? 그냥 용어에 쓰인 한자 뜻풀이 그대로 쓰면 되니까 ㅋㅋㅋ 진짜 개꿀!!!


여튼 이렇게나 중요하고 재미있는 한자인데, 요즘 공교육에선 한자시간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예 안가르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공교육에서도 이럴진데, 가정에서라고 다를까? 그렇게 모두가 한자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하니,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다들 보면 요즘 아이들, 사회초년생들의 문해력 문제를 지적만 하는데 그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문해력이 왜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는지, 그 해결방법은 어디있는지를 찾을 생각들은 안하고 다들 문제만 제기하는 꼴이라니.


..................TMI는 여기까지!!!!!!!!!!!!!!!!!!!



그래서 오늘 리뷰하는 책이 무엇인고 하면! 앞서 그렇게 예찬한 한자에 관한 인문학책 『한자의 쓸모』다. 한자가 얼마나 중요한 문자인지, ‘한자’를 아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는지, 이 책에서 속속들이 알려준다.


인간에게 족보가 있듯 글자도 그 기원이 되는 뿌리가 있다. 뿌리를 잘 알면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넓힐 수 있다. 한자는 글자 하나마다 개별적인 뜻이 있으며 때로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런 까닭에 한 글자의 다름이 미묘한 차이를 빚고 때로는 천 리의 차이를 만든다. (…) 선조들은 한자를 문자 체계로 삼아왔기에 우리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려면 한자라는 도구를 이용해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결혼 문화, 죽음 문화, 의복 문화에서 김치, 우리 명절, 궁궐, 산과 강, 섬과 고개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에 담긴 한자의 속뜻을 살펴 우리의 정신사와 문화사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p 006


 



▶비슷하지만 다른 한자


절切도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흔히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안주 일절’이라고 쓴 글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안주 일체’라고 쓴 곳도 있다. 두 문구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실은 일절一切과 일체一切의 절과 체가 같은 한자라서 빚어진 오해다. 모두 한자로는 ‘一切’이라고 쓰는데, ‘切’에 ‘끊을 절’과 ‘모두 채’라는 두 가지 음과 뜻이 있는 것이다. (…) 곧 ‘안주 일체’란 모든 안주가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가게 주인이 안주가 전혀 없다고 쓸 리는 없을 터이니 ‘안주 일체’라고 써야 맞다. p 024


세世와 대代도 비슷한 듯 보이나 다른 뜻이다. 흔히 족보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는 박혁거세의 60세손이다” 라거나, “너의 3대조 할아버지는 ㅇㅇㅇ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세世와 대代는 같은 뜻으로 함께 쓰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서로 다르다. 대는 나를 기준으로 나를 빼고 윗대로 올라가는 것이고, 세는 시조의 출발이 되는 1세로 하여 차례로 내려가는 것이다. 곧 세는 시조를 중심으로 삼아 차례로 내려가는 것이고. 대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아버지, 할아버지 순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p 056




▶우리말의 뿌리


순라巡邏는 예전에 도둑이나 화재등을 경계하기 위해 궁중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는 군대였다. 이를 순라군巡邏軍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소속된 군졸을 순라巡邏라고 했다. 순은 돈다는 뜻이고 라는 순행한다는 뜻이니 순라는 순찰한다는 뜻이다. 또는 순경이라고도 했다. 순라가 술라로 발음되고 다시 지금의 술래가 되었다. p 089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을사조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했다. 을사조약은 1905년 을사년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다. 우리나라 백성들로서는 굉장히 분하고 억울한 날이었다. 그리하여 분위기나 기운이 몹시 어둡고 쓸쓸할 때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이 을사년乙巳年이 ‘을씨년’으로 바뀌어 뭔가 싸늘하고 스산한 기운이 돌면 ‘을씨년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p 089



어떤 일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때 ‘풍지박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풍지박살이란 말은 없다. 풍비박산風飛雹散이라고 해야 맞다. 풍비風飛는 바람에 날린다는 뜻이고 박산雹散은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곧 풍비박산은 바람에 날려 우박이 흩어진다는 뜻이다.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가거나 흩어지는 상황을 비유한 표현이다. p 091



혈혈단신孑孑單身을 홀홀단신으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을 때 ‘그는 가족을 두고 홀홀단신으로 멀리 떠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홀홀’이란 가볍게 날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혼자’라는 말을 떠올려 ‘홀홀’이라 생각하는 듯 한데, ‘혈혈’이라고 해야 한다. 혈혈의 혈은 외롭다는 뜻으로 의지할 곳 없이 외롭다는 말이다. p 093



분위기나 상황을 망칠 때 ‘산통 깨다.’라고 말한다. ”네가 실수하는 바람에 산통 깨졌어.”등과 같이 쓴다. 산통의 어원은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점치는 도구와 관련된 것이 있다. 점쟁이가 점을 칠 때는 젓가락처럼 생긴 가늘고 긴 산가지를 통에 넣어 흔든다. 이 산가지를 넣는 대나무로 만든 통을 산통이라고 부른다. 운세를 점치는 과정에서 점쟁이가 실수로 산통을 떨어뜨려 깨트리면 점을 칠 수가 없다.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잘 되어 가던 어떤 일을 망치게 되면 ‘산통을 깨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p 127




▶대비되는 뜻의 한자


동쪽은 근본이 되는 방향이다. 그리하야 집의 주인은 동쪽에 머물고 손님은 서쪽에 모시도록 했다. 이와 같은 의례는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다. 흔히 사위를 서방西房잉라고 불렀는데 백년손님인 사위를 서쪽 방에 머물케 한 데서 유래했다. 왕세자나 태자를 ‘동궁東宮마마’라고 불렀는데 장차 주인이 될 세자가 거처하는 궁을 궁궐 안의 동쪽에 둔 데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동국東國 혹은 해동海東으로 불렀다.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보았을 때 동쪽에 자리한 까닭이다. 해동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발해渤海의 동쪽 나라’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그 당시 고구려땅과 만주, 연해주를 포괄하는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p 164


출出은 ‘나가다, 나타나다’는 뜻이다. 집을 나가면 가출家出이고, 속세를 떠나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출가出家다. 여자가 다른 곳으로 시집가는 것도 출가出嫁라 하는데, 여기서 가嫁는 ‘시집간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지위가 오르거나 유명해지면 ‘출세出世했다’고 하는데 명성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본래 불교에서 나왔다. 출세본회라 하여 세상에 나타나 많은 사람을 교화시키고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 p 182




여기까지가 한자책이자 인문학책이자 교양책인 『한자의 쓸모』 맛보기! 한자라는 언어와 우리 삶에 녹아있는 생활문화, 거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한 스푼 더해진 책. 한자 공부용으로도, 인문학적 소양쌓기로도, 킬링 타임용으로도 그 어떤 방면으로도 활용도가 높은 책으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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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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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투비 역사더쿠로서 온갖 세계사책을 읽어보았다. 그저 시간순으로 쓴 일반적인 세계사(통사, 거시사)는 물론이오, 일부 지역에 한한 세계사 책도 읽어보았다. 그 뿐인가? 지도, 식물, 특정한 날, 약(drug), 전쟁, 경제, 기후, 범죄, 지리 등 수많은 테마를 주제로 쓴 세계사책도 읽어봤더랬다. 이제는 더이상 나올 테마별 세계사책이 없겠지? 싶었는데. 이야. 역시 역사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이번엔 ‘경계’를 주제로 한 세계사책이다. 책의 제목도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다.



‘경계’라는 단어를 네이버에 검색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명사로써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 세계사책은 각 국가를 구분하는 경계선, 국경을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일단 주제를 보았을때, 이 세계사책은 일반적인 통사의 흐름대로 쓰여지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들었다. 통사가 아니라는 말은 뭐다? 최소 단락단위로 끊어 읽을 수 있는 세계사책 이라는 이야기다.



보통 통사로 쓰여진 세계사책은 시간순으로 기록되다보니,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특정한 주제를 기준으로 쓰여진 미시사는, 그 주제에 한정하여 쓰여지기 때문에 단락별로 명확하게 끊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여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고, 흥미있는 단락만 골라서 읽을 수도 있다. 이는 시간이 금인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부분인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나위 없는 장점이다.



이 세계사책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경계, 즉 국경을 주제로 쓰여진 책이다. 고로 일반적인 거시사(통사)가 아니다. 거시사가 아니기에, 이 책의 시작도 일반적인 통사와 다르다. 으레 나오는 인류의 시작, 또는 사대문명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시간순으로 배열되지도 않는다. 저자는 책 제목에 썼듯 ‘경계’라는 큰 틀을 기준으로 하여 ‘유산, 역사, 외부효과’ 로 세부적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한다.



유산: 경계 자체가 유형 또는 무형의 ‘유산’이 된 중국(만리장성), 로마, 영국과 아일랜드(지도), 독일(철의 장막) 등을 이야기한다.


역사: 경계 자체가 커다란 역사적 사건을 불러일으킨 한반도 분단,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미국-캐나다 분쟁등을 이야기한다.


외부효과: 땅 위의 통제권이 아닌 다른 유형의 경계, 즉 날짜와 시간, 바다와 상공등의 경계에 영향을 미친 본초자오선, 국제날짜변경선, 남극의 영유권 분쟁등을 이야기한다.



나는 책을 읽기 전 항상 머릿말(또는 서문, 프롤로그)를 빠짐없이 읽는다. 머릿말은 항상 저자가 책을 집필한 뒤에 쓰는 기록이기에, 해당 책이 어떤 방향으로 쓰여지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그 뿐인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썼는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책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짧지만 작가와 독자에게 있어선 정말 중요한 글의 시작이다. 만약 머릿말을 읽었는데, 오히려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된다? 그럼 그 책은 덮어야한다. 특히 역사책은 머릿말의 중요도가 더 높다. 머릿말에서 보이는 저자의 자세에 따라, 역사를 대하는 저자의 자세를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저자의 역사 이해도가 어떤지까지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저자가 겸손한 자세로 머릿말(또는 프롤로그)를 쓴 역사책은 오랜만이다. 



이 책은 세계사 전체를 아우르지는 않는다. 수 세기 동안 지속된 역사는 물론이고, 아예 다루지 못한 문명도 있다. 이러한 공백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반영하기도 하며, 중복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는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영국인, 영국시민, 유럽인, 서구인, 백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이 내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나 자신의 편향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세상의 많은 문제가 나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려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결국 나의 시각에서 쓰인 역사이며, 나의 편견이 반영된 결과이다. 만약 내가 당신이 관심을 가진 특정한 국경이나 문명을 빠트렸다면, 그저 사과드릴 수 밖에 없다. p 013






역사는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야면 살아남는 분야다. 예컨데 우리가 선사시대, 역사시대로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기록’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일을 문자로 기록을 하여 후세에 남기면서 역사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숨어있는 ‘함정’이다. 어떠한 개인이 기록한 기록물은, 기록한 당사자의 가치관이 묻어나올 수 밖에 없다.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가치관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그 누구보다 역사가들에게 필요한건, 역사 앞에서의 겸손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역사가들이(또는 역사가라 지칭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쓴 기록이야말도 제대로된 역사라며 우후죽순으로 나오고있는 요즘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가들에게 제일 중요한 ‘겸손함’이라는 가치가 이제는 빛바랬구나 하고 씁쓸함만 느꼈더랬다.



그런데! 이 책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의 저자는 달랐다. 자신이 살아오며 정립된 가치관과 편향성을 최대한 극복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지극히 자신의 주관적인 시각에서 쓰여졌음을 인정하는 자세, 자신이 살아온 배경이 자신의 시각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 이게 바로 역사가들에게 제일 필요한 자세다. 하지만 내가 읽은 수많은 역사책 중 이런 자세를 가진 저자들이 얼마나 있었는가.....




만리장성은 그들이 보호하는 하나의 통일된 중국을 상징하는 역할은 여전하지만, 영원히 그 뒤에 숨어 있을 수는 없다. 성벽을 뚫은 것은 몽골과 만주족만이 아니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중국 항구에 군함을 대고 중국에 침입했다. 수천 년 전 초나라, 제나라, 그리고 17세기 명나라가 깨달았듯이, 외부인을 영원히 막아주는 국경은 없다. p 038



지도 위의 선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왜 다른 곳에 그려지지 않았는지 설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역사를 단순히 현재에 이르는 필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읽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유일한 가능성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 아주 사소한 몇 가지 요소만 달라졌다고 해도 결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컴브리아를 포함했을 수도 있고, 잉글랜드가 로디언 지역을 차지했을 수도 있으며, 웨일스는 완벽히 흡수됐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논의 자체가 어찌 보면 속임수일 수도 있다. 대브리튼 섬에는 세 개의 민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단 하나의 국가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대브리튼섬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줄여서 영국 혹은 UK다. p 073



몽골의 정복과 약탈이 끝난 후 교통과 교역이 훨씬 원활해졌고, 이 시기는 ‘평화로운 몽골’이라는 다소 아이러니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몽골은 무역의 원활한 흐름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도입했다. 여행자들에게 식량과 숙소를 제공하는 역참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오르토그’라는 무역조합을 공식적으로 지원하여 상인들이 자원을 공유하고 위험을 분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합은 일종의 보험과 같은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빌려주기도 했다. p 087



오늘날 약 6,000만 명의 미국인이 군사력으로 멕시코에서 정복한 땅에서 살고 있다. 한때는 미국인들이 경제적 기회를 찾아 멕시코로 건너갔지만, 이제 미국은 멕시코인들이 같은 이유로 국경을 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벽을 세우고 있다. 물론 이 장벽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p 137




외침을 막기위해 거대한 장벽을 쌓았지만, 실상은 온갖 유목민들에게 뚫리고, 바다를 통해 몰려들어온 유럽인에게 뚫린 만리장성, 잔학하기로는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까지 악명을 떨친 몽골 정복의 이면,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는 것을 막으려는 현재 트럼프 장벽과 좋게 말하면 멕시코 할양지이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미국이 삥뜯어낸 멕시코의 땅 텍사스. 경계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늘 추천하는 이 세계사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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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의 고독
양선미 지음 / 파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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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소설책은 『영이의 고독』. 오랜만에 읽는 한국 장편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역사장르가 가미된 글만 읽는 편이지만, 독서 편식은 좋지 않으므로! 취향이 아닌 책이라도 한 해에 5권 정도는 읽으려고 노력중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영이는 교실 한 켠에, 사무실 한 켠에 있을 법한 그런 여학생 또는 여성을 대변한다. 좋게말하면 착하고 온순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성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하며 소극적이다. 누군가 대신 나서서 자기를 꺼내주기를 원한다. 이러한 영이의 성격(또는 성향)은 그녀의 인생은, 흔히들 말하는 그저 그런 인생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바라던 행운이 들어왔음에도, 그간의 삶에서 배운거라곤 ‘주체적이지 못한 본인’이었기에 행운을 잡을 수 조차 없는 소극적인 여성으로 말이다.


현경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아이였다면, 영이 역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주변 상황에 지나치게 긴장하고 걱을 먹고 위축되는 아이였다. 물론 영이도 걱정했던 거소가 달리 자신에게서 의외의 재능이 발현될 수도 있나는 희망을 잠깐 품긴 했다. p 028



말을 하고 보니 논리가 그럴듯하다 싶었던지 아버지는 뻥튀기 튀기듯 화를 부풀렸고 종내에는 자신이 그날 직장을 때려치우고 대낮부터 술을 먹게 된 것도 어머니의 아둔함과 교양 없음과 무신경 때문이라고 핑계대기에 이르렀다. 지난번 실직 이후로 꼬박 1년 2개월을 무직으로 지낸 뒤 옜 동료의 소개로 다시 일을 시작한 지 고작 8개월 만에 다시 일을 하지 않겠다는, 혹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선언을 그런 식으로 한 것이었다. p 047




영이의 일생은 학창시절 사격부원, 중학교 졸업 후에는 주/야간이 나뉜 상고 학생, 상고 야간반으로 변경 후 낮에는 대학교 급사(사무보조원)을 했고, 이 후에는 경리, 그리고 요양보호사로 나뉜다. 청소년기 사격부원이 되었던 그저 키가 크다는 이유로 강제 차출이었다. 총소리를 무서워하고, 재능도 없었던 영이가 사격부원을 계속 했던건 ‘하고싶지 않다’는 의사표현을 할수 없었기 때문에. 사격부 내에서 각종 폭력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영이는 그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영이의 성인기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사무보조원, 경리, 요양보호사, 그녀가 종사한 직업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직군들은 고스펙 고임금은 커녕, 고난도의 능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소득기준으로 볼때는 하위에 속하는 직업군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에서 없으면 안되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사무보조원이 있어야만 사무실 행정이 원할하게 돌아가고, 경리가 있어야만 회사의 자금 흐름이 원할하게 돌아가며, 요양보호사가 있어야만 노년층의 일상을 지원해줄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직업군들은 꼭 필요로 하지만, 고된 일을 도맡아야 하며, 임금은 적고, 누군가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직업군인 것이다. 슬프게도 현재 이런 직업군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이며, 영이가 해당 직업을 가졌을 때와 비슷한 연령대다. 어찌보면 영이는 희생이 당연했고, 희생을 강요당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속에서 잊혀진 그 시절 여성을 집약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성인이 되자 영이는 조금 변했다. 소심하고 주눅 들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성정에 새로운 것들이 보태졌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염증, 불안, 절망, 상실 혹은 긴장과 비슷한 감정들이었다. 그것들은 원래 있던 것들과 뒤섞여 시시때때로 영이를 괴롭혔다. 낮에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으나 밤이 되면 미래에 대한 희망없음으로 인해 숨이 막히는 듯 했다. p 131



너는 어쩜 하나도 안 변했다. 깨순이도 영이를 신기해했다. 누군가 부르면 겁먹은 표정을 짓고, 늘 고개를 숙인 채 걷고 너무 작은 목소리로 예기하던 어릴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며 지금도 속이 상하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따지거나 불평하는 대신 눈물을 흘리며 눈만 껌벅이느냐고 물었다. p 177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불운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무보조원, 경리,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다들 영이처럼 살지는 않는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 언젠가 찾아올 행운을 모르고 놓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영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다 영이처럼 사는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난 이 소설을 다 읽은 이 시점에서도, 영이의 삶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하기가 어렵다. 내가 살아온 환경 조건이 영이와는 너무 달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난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에. 어쩌면 영이에게 공감 못하는 내 자신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끝맛이 쓴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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