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추천하는 세계사책은 『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세계 여러 나라의 ‘수도’를 살펴본다. 이 세계사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된다. ‘수도’의 역사=‘나라’의 역사라는 사실을. 


수도는 이동하는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권력’의 흐름을 기준으로 써내려간다. 누가 왕이 되었는지, 왕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등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라의 수도를 결정하는 것 역시 권력을 지닌 왕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게 수도는 권력에 반응하며, 권력에 따라 이동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나라의 수도들은 대부분 왕정시대에 설정되었다. 그렇다면 왕정시대에 수도를 어떻게 결정했는가? 단순하다. 최고 권력을 가진 왕이 거처하는 궁궐 위치에 따라 정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사로 예를 들자면, 고려는 정궁이 있던 개경이 수도였고, 조선은 정궁(경복궁)이 있던 한성(현 서울)이 수도였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프랑스 수도는 파리지만, 역대 프랑스 왕들은 거처를 수시로 이동했다. 좋은 말로 하면 권력 분산을 막기위한 전국 순회라고 하겠다. 반대로 순회하지 않고 정착한 프랑스 왕 루이16세때는 어땠을까? 물론 수도는 파리였다. 하지만 루이16세는 안전을 이유로 파리가 아닌, 베르사유 궁에 정착했다. 결과적으로 오랜시간 프랑스 파리는 ‘왕이 없는 수도’ 였다.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도시 ‘수도’



한국은 서울, 일본은 도쿄, 프랑스는 파리 등 보통 수도는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핵심도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간혹 수도로 오인받을 정도로 유명한 핵심도시가 여럿 있는 나라도 있다. 예컨데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DC지만, 어떤 사람들은 뉴욕을 미국의 수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여, 이 책 저자는 수도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중핵 수도: 역사적으로 불변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심도시이자 핵심도시다. 로마, 파리, 런던 등이 해당된다.


-신중핵 수도: 중핵 수도가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새로운 도시가 급부상하며 수도 자리를 꿰찬 경우다. 인도의 뉴델리가 대표적이다. 인도가 영국령이었을 무렵 수도는 콜카타였다. 영국은 인도를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해 델리로 수도를 옮겼으나, 영 마뜩치가 않아서 델리 외곽에 신도시를 지어 수도로 삼았으니 바로 뉴델리다. 


-이중핵 수도: 한 나라에 수도를 차지하기 위해 경합을 벌였던 두 개의 도시가 있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일본을 양끌이하는 도쿄와 교토, 러시아를 양끌이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가 있다.


-다중핵 수도: 한 나라에 수도와 맞먹는 핵심도시가 다수인 경우다. 독일은 긴 역사동안 여러 도시들이 돌아가며 수도가 되며 많은 핵심도시가 생겼다. 스위스도 수도 베른을 포함하여 취리히, 제네바 같은 여러 중핵도시들이 있다. 




이 책이 두께가 얇은 편은 아니라, 선뜻 읽기를 주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달라진다. 원하는 내용만 골라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보통 세계사책은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다보니 중간만 골라서 읽기가 어렵지만, 이 책은 아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시간대 순서로 구성되지 않았다. 대륙별로, 나라별로 구성되어있다. 언제든 원하는 나라 이야기만 골라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번외로 실린 한국의 수도 서울 이야기까지. 가볍게 읽을만한 세계사책 입문서로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TMI이긴 한데, 번외편 한국의 수도 서울 이야기에 내 눈에 확 들어온 소제목이 있었다. 다름 아닌 ‘수도를 버리고 떠난 군주’ 이야기.


저자는 수도를 버리고 떠난 군주 두 명을 이야기한다. 선조와 인조.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양을 버렸고, 약 30여년 뒤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한양을 버렸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대 명제를 불과 30여년반에 증명한 것이다.  할아버지 선조와 손자 인조. 그들은 수도만 버린게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백성까지 버렸다. 


저자는 두 명을 거론했지만, 사실 조선에서 수도를 버린 군주는 한 명 더있다. 바로 고종이다. 혹자는 ‘고종이 한양을 떠난 적이 있었나?’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을 떠난적이 없었다. 다만, 한약에 위치한 러시아 관할 건물로 떠났을뿐이다. 아관파천이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이야기해보면, 고종은 아관파천을 비롯하여 미관파천, 영관파천까지 7회에 걸쳐서 타국가 관할 건물로 도망갔다. 그가 파천을 감행했던건 단 하나였다. 자신의 안전과 권력 유지를 위해. 


역사의 반복이 조선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왕정시대가 종식되고 공화정시대에 이르러서도 수도를 버린 나라의 대표가 다시 나타났다. 언제? 한국전쟁 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선조, 인조, 고종보다 더했다. 겉으로는 수도 서울은 안전하니 서울을 지키라고 방송을하고, 본인은 몰래 부산으로 도망갔다. 그 뿐인가, 혹시나 자기 안전에 위협이 될까봐 한강철교를 폭파하여 자국민을 한강에 수장시켰다.



TMI는...여기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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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좋아하지만, 늘 비문학을 읽었다. 분명 본투비 문과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왜이렇게 어려운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순수문학이 나와는 영 안맞는다. 참 이상하다. 장르문학은 진짜 후르륵 읽히는데, 순수문학 쪽으로 들어가기만 하면...세상에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장르문학이나 순수문학이나, 그저 이야기인데! 



매번 순수문학과 친해져보려고 시집도 읽고, 소설도 꾸준히 읽고 있다. 이 장편소설 『럼과 라즈베리』 역시 그런 일환이다. 특히 이 소설의 중점은 주인공인 호영의 ‘성장소설’이기에, 읽고 이해하기 쉬울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작가의 아방가르드한 문체와, 처음 접하는 소설의 구성, 그리고 소설의 중심축인 ‘소리’에 대한 진행은 날 더 어지럽게 했다. 



하지만 이 소설책 『럼과 라즈베리』는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그야말로 ‘탐닉’할게 많은 완벽한 소설이다. 하나하나 뜯어가며, 분석하는 맛이 있어보였다. 그것도 아주 다분히! 심지어 소설 속에 녹아있는 ‘소리’와 철학은 아는 사람에겐 정말 최고의 작품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건 정말 순수문학알못인 내가 봐도 보였다. 그저 나에게 생소하고 어려웠을뿐(한강작가 문학도 어려웠던 1인, 장르문학이 좋아여...).







순수문학알못인 나는 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고나서야 이 소설이 대사와 구성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백프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주인공 호영이 불안정했던 어린시절 속에 갇혀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으나, 영화학원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어린시절 친구 채영과 재회하며 치유되가는 모습은 언뜻 언뜻 보였다. 다시말하지만 순수문학 알못이다보니, 영와학원 사람들과의 대화 및 채영과의 대화는... 치유의 과정인가? 갸우뚱...한 부분도 있긴했다. 



“네가 이야기하던 주파수 말이야. 그건 결국 감정을 신호화하는 거야. 각기 다른 주파수가 사람 마음을 건드리지. 금방 나는 네 얼굴에서, 눈 깜빡임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거든.” p 025, 채영아빠



“얘야, 네 안에서 번지는 네 소리를 들어야 해.”


“네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이거든. 네가 들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주파수 같은 거야.” p 101, 호영 할아버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조용한 곳을 찾는게 아니었다. 내 걸음은 늘, 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나아가곤 했다. 이번에는 재래시장이었다. 없는 것 빼곤 다 있다는 곳, 특히 명절 대목장의 골목은 발 디딜틈 없이 빽빽했다. p 177, 호영



“기억은 이미지일 뿐이야.”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없어.”


“바다에서 파도 보듯 생각해 봐. 파도는 계속 겹쳐지고 밀려오잖아. 딱 하나만 떼어낼 수는 없어. 그건 불가능해. 다 연결돼 있으니까. 사람 일도 마찬가지야. 넌,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 p 218, 채영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혹시 몰라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이런 책 소개 문구가 있었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공감하게 될 성장소설’ 이라고! 아, 내가 이 책을 어려워한 이유가 있었구나^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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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강 작가의 소설을 몇 편 읽어보았다. 한 권 한 권 읽을 때 마다 느낀건, ‘아, 한강 작가랑 나는 도무지 맞지 않는구나-’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 작가이니, 아직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겠지하는 마음에 한강 작가가 썼던 유일한 그림책 한 권과, 한강 작가 시집 한 권을 구매해서 읽었다. 하, 역시 나랑은 미묘하게 안맞는다^_T 특히나 한강 작가 그림책은 우리 상전이 거들떠도 보지않는다. 그엄마의 그딸인가?


뭐 여튼, 사긴 샀고, 읽긴 읽었으니 흔적은 남겨야 하므로! 한강 작가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리뷰를 남겨본다. 뭐 딱히 리뷰랄 것도 없긴하다. 시집 말미에 있는 해설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잘 안되고 내 마음을 울리지 않는걸 보면 역시나 한강 작가와 나는 잘 안맞는걸로^_T. 고로 이 시집은 지인에게 선물하는 걸로 결정! 탕탕!


그냥 이대로 끝내기엔 뭐해서, 시집에서 발췌한 3편을 옮겨 적어본다.




괜찮아_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 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오이도_한강



내 젊은 날은 다 거기 있었네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목선 두 척.


이름붙일 수 없는 날들이 모두 밀려와


나를 쓸어안도록


버려두었네


그토록 오래 물었떤 말들은 부표로 뜨고


시리게


물살은 빛나고


무수한 대답을 방죽으로 때려 안겨주던 파도,


너무 많은 사랑이라


읽을 수 없었네 내 안엔


너무 더운 핏줄들이었네 날들이여,


덧없이


나들이여


내 어리석은 날


캄캄한 날들은 다 거기 있었네


그곳으로 한데 흘러 춤추고 있었네






저녁의 소묘5_ 한강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집들을 그었다



(살아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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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하는 『일본어 명카피 필사노트』는 지식을 탐구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문장을 쓰기 위한 노트다. 여기서 함정 하나! 우리말을 쓰기 위한 필사노트가 아니다. ‘일본어’다. 일본 TV광고, 지면광고 등에서 흘러나왔던 카피문구다. 


아이 낳기 전만해도 나에게 있어서 일본어는 제 2의 모국어...비스무리한 언어였다. 꽤 오랫동안 일본성우 덕질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본어 능력이 생겼으며, 역시나 아주 자연스럽게 일본어 공인 어학시험도 고득점! 여기에 기세를 더해 관광통역사 자격증까지 취득! 일본성우 덕질 자체는 학교 졸업과 함께 끝났지만, 일본어는 능력은 남았다보니 그 능력을 여기저기 써먹기도 솔찬히 써먹었다. 


본투비 역사더쿠라 한일고대사 관련 일본 원서도 쉽게 읽을 수 있었고(개꿀), 답사를 위한 일본 여행다닐 때도 편했다. 그뿐인가? 회사에서 일본 논문 번역도 몇 년을 했다(강제 재능기부, 육아휴직하며 해방!!). 맘먹고 일본어 공부를 한건 아니었지만, 늘상 집에서 TV를 틀면 우리나라 뉴스를 보거나, 또는 NHK 방송만 틀어놓다보니 진짜 나에게 있어서 일본어는 제 2의...모국어 비스므리한 뭐 그런 언어였다. 


근데 뭐 이것도 옛날이야기. 아이낳고 화면매체를 안보고, 일본 라디오를 안듣고, 일본을 안가고, 원서도 못읽고...그렇게 n년의 시간이 지나니, 내가 일본어를 할줄 아는건 맞나 싶은 생각이 막 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 타밍에 『일본어 명카피 필사노트』를 손에 쥐었다. 



보통 카피문구는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어머 세상에! 놀랍게도 이정도 수준은 읽는데 하등 문제가 없었다. 세상에!! 폼 안죽었어!!!!!!!!!!!!!! 라고 하기엔 꽤 쉬운 일본어기긴 하지만...하하하. 읽다보니 기세도 오르고! 이참에 진짜 필사도 해보자 싶어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책 제목에 『필사노트』가 들어가는데 필사를 위한 수첩을 꺼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맞는 지적이다. 이 책에는 필사를 할 수 있는 지면이 매 페이지마다 있다. 하지만 난.... 책에 메모, 낙서, 끄적이기 기타등등을 절대 하지 않는 사람! 그렇기에 수첩을 꺼내어 필사했다.


일본어 읽기나 번역이 아닌, 일본어를 직접 써본적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세상에나! 7년전이다. 2018년에 관통사 실기 준비를 위해 모범답안 외우기 위해 미친듯이 쓰면서 외웠던 그 때! 그 때 이후로 처음써보는 일본어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내 글씨체는 악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쓰는 것 자체에는 어색함이 없는거보니 아직 폼 안죽었나보다.




이렇게 된거 슬슬 일본어 기세좀 올려서 JPT나 다시봐볼까...싶은 생각이 드는건 내 욕심인가...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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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한국사 (20만 부 기념 광복에디션) - 5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이해되는 최소한의 교양 수업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2025년 8월 15일 광복절. 어느새 우리나라가 광복이 된지 80주년이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육아로 인해 답사를 못했지만, 과거에는 이 기간 전후로 독립운동 유적지 또는 독립운동 답사를 다니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답사는 어렵기에, 광복절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한다.


오늘 리뷰하는 역사책은 큰별쌤이 쓴 『최소한의 한국사』. 


제목에서도 보이듯 이 역사책은 한국사 전체를 아우르는 ‘통사’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한국사 개념잡기에 딱 좋은 역사책이다. 하지만 광복절 주간인 만큼! 오늘 리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그 중에서도 광복절을 왜 기념해야하는 지를 알수 있는 ‘개항기~ 일제강점기’에 대한 부분만 써보려 한다.


한국사 책을 읽을 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 평가에 대한 변화다. 과거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칠 때는 한국사의 ‘빛과 영광’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했다. 공과 과가 있을 때는 공에 대한 치적은 높이 평가하는 반면에 과오에 대한 부분은 축소하여 가르치거나 혹은 생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1대 황제 고종이다. 



내가 공교육을 받았던 시대만해도 고종은 ‘개혁군주’ 였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인물로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고, 그렇게 믿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스스로 여러 사료와 역사책을 읽고, 많은 유적지를 다니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고종이 상상이상으로 못난 리더였고, 그로 인해 나라가 망국행 급행열차에 탑승했다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생각보다 오랜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교양서로 나온 역사책들은 조금 다르다. 고종의 과오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립협회 강제 해산을 시킨 주체가 바로 고종이라는 점과, 자기의 안위를 위해 서양 여러나라에 많은 이권을 팔아먹은 것, 무당 진령군에 국고에 있는 모든 재원을 털어 바친 일 등을 말이다. 


나는 공교육을 벗어난 이후에야 깨우친 사실을, 이제는 공교육에서도 가르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더불어 이제는 역사의 과오를 숨기지 않고, 명백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어쩌면 서애 류성룡이 애타게 부르짓던 ‘징비’를 이제야 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렇게 역사의 과오를 밝히기 시작하니,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매국노들이 들끓게 되었다는 사실!



안으로는 왕권 강화와 민생안정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를 밀고나간 것이 10년간 이어진 흥선대원군의 개혁 내용입니다. 공과 과가 분명히 있지요. 흥선대원군은 개혁에 최선을 다했지만, 미래지향적인 국가를 바라기보다는 과거 왕조의 영광을 꿈꿨습니다. 이것이 흥선대원군의 한계였습니다. p 265


독립협회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고종은 불편해졌지요. 급진적인 개혁 방안을 황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결국 고종은 독립협회를 해산하고, 백성들의 집회를 금지했습니다. 독립협회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고종은 마지막 남은 카드조차 불태워버린거에요. 나라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에요. p 281


손발이 묶인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결국 국권을 상실했어요. 우리는 8월 15일 광복절만 기억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시작이었던 8월 29일도 함께 기억해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날 대한제국은 한국강제병합조약으로 일본 제국에 병합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일병합’ 등의 표현을 사용했으나 우리는 무력에 의해 강제로 당한 일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래서 경술국치라고 합니다.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는 뜻이에요. p 283


8월 15일 광복절. 공휴일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날이다. 광복절이 무슨날 인지 모르는 국민은 없다고 생각한다(부디 없기를). 헌데, 우리가 광복을 애타게 부르짖게 된 그 날, 광복을 부르짖게 만들었던, 나라가 사라졌던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바로 이 날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대한/조선/한국/한 등 우리를 지칭하던 그 모든 이름을 잃어버렸다. 



한일병탄이 성공했던 이유는, 일제가 차근차근 국권 침탈을 진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가 강압으로 빼앗아간 권리도 있었고, 고종이 자신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넘긴 권리도 있었으며, 일제에 아부하기 위해 친일파가 넘긴 권리들도 있었다. 



20세기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한 항일의병들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가 <미스터 션샤인> 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영국인 종군기자가 의병들을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와요. 기자는 의병들에게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의병들은 이렇게 답해요. 우리는 용감하지만 무기가 너무 부족하다고, 이렇게 싸우다 죽을 것을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노예가 되어서 사느니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겠다고 하지요. 실제로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른 의병들이 목숨을 내놓고 일본에 맞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p 286



왕을 비롯하여 돈과 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이 일제에 아부하던 그 때, 한 쪽에선 일제에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과 권력을 가졌고, 일제에 아부하면 더 큰 부를 가질 수도 있었던 사람들과 나라가 해준 게 하나 없지만, 조국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목숨을 받쳤던 백성들이.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역사는 그들을 ‘항일의병’이라 불렀다.


큰별쌤이 말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에 나왔던 영국인 종군기자와 의병들은, 경기도 양평에서 있었던 지평의병을 차용한 장면이다. 당시 영국인 종군기자 맥캔지는 지평리에 주둔하던 의병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무이한 항일의병 사진이다. 이 사진들은 『지평의병 지평리전투 기념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지평리 의병을 인터뷰했던 맥캔지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비겁하지도 않고, 자기 운명에 대해 무심하지도 않다”고.



항일 의병에 대해 좀더 첨언하자면, 전기 의병인 ‘을미의병’과 후기 의병인 ‘정미의병’으로 나뉜다. ‘을미의병’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으로 인해 창의되었으며, 항일의병보다는 척사의병에 가까운 성격을 띈다. 정미의병은 1907년 정미7늑약으로 인해 창의된 의병으로, 본격적인 항일의병의 시작이다. 




전라도 지역에는 임병찬이 이끌던 독립의군부가 있었고, 경상도 지역에는 박상진이 이끌던 대한광복회가 있었어요. 박상진이라는 인물은 이력이 특이한데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엘리트를 앞세워 나라를 통치하려 했어요. 그러니 직업이 판사라면 분명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런 길을 택한 사람도 많았고요. 하지만 박상진은 미련 없이 사표를 낸 뒤 “내가 앉을 자리는 판사의 자리가 아니라 이제 피고의 자리다” 라는 믿음 아래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에 자신이 했던 말처럼 일본인 판사의 앞에 서서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지요. p 290 



엄밀히 따지면 최재형은 조국으로 부터 받은 것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항상 배고품에 떨어야 했어요. 그럼에도 조국을 위해 자신이 번 돈을 전부 써버렸습니다. 한국인 마을에 회사를 차려 사람들을 고용하고, 학교를 수십 개 세웠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들은 최재형 덕분에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어요. 안중근을 후원한 사람도 최재형이에요. 우리는 안중근 의사만 기억하지만, 그 활동 자금이 다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누군가는 총을 사주고, 체류 비용을 내주고, 변호사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요. 그 ‘누군가’가 바로 최재형인 겁니다. 그러니 일본이 가만두지 않았겠지요. 그때 최재형도 살해당하고 말았어요. 그곳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은 훗날 스탈인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되지요. p 292



연해주 지역에 최재형이 있었다면 북간도 지역에는 김약연이 있었어요. 김약연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1910년대까지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면서 특히 교육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김약연이 세운 학교의 이름이 명동학교인데, 밝을 명, 동녘 동 자를 써서 ‘동쪽을 밝히다’라는 뜻이지요. 즉, 명동학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어두워진 우리나라를 밝힐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었지요. 명동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말하기와 글쓰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글을 쓸 때는 문장에 반드시 ‘독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했어요. 독립이라는 교육 목표가 확실하다 보니까 일제가 이 학교를 굉장히 괴롭혔어요. p 293



서간도 지역에서 활약한 인물은 이회영 집안의 여섯 형제입니다. 이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였어요. 그중에서도 둘째인 이석영의 재산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섯 형제는 자신들의 가진 땅을 전부 팔고, 가보로 내려오는 책까지 싹 처분한 다음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서간도에 와서 신흥강습소를 세웠지요.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군을 배출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던 신흥강습소는 나중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합니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고 재정도 열악해지면서 결국 폐교되지만,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의 서곡을 울리게 되었지요. p 294



당신이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몇이나 되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중근, 김구, 유관순, 안창호 같은 매우 친숙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말한다. 물론 이 분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손들만큼은 독립된 국가에서 살 수 있도록, 독립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이들이 한둘이 아닐 진데, 그 많은 이들의 이름을 유명한 몇몇 독립운동가의 이름 안에 가둬둔다는 사실이.


그렇기에 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독립운동 역사를 공부하고, 우리가 아는 이름보다 더 많은 이름들이 후손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한동안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남긴 어록과 과거에 올렸던 독립운동가 서평을 끝으로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삭풍은 칼보다 날카로워 나의 살을 에이는데


살은 깍이어도 오히려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차라리 슬프지 않다.


그러나 이미 내 전택을 빼앗고 


또 다시 나의 처자를 해치려 하니


내 머리는 자를 수 있겠지만


무릎 꿇어 종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석주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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