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신년선물을 받았다. 선물의 정체는 최두석님의 시집 『두루미의 잠』.

시집을 펼쳐 목차를 보는데, 시 제목들이 전부 자연친화적이다! 그래도 시집 몇 권을 읽어봤던 나인데, 이렇게 자연친화적인 소재로만 쓰여진 시집은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자연을 사랑하는 나이기에, 시 제목 속 동식물들을 보며 머리속에 찬찬히 떠올려봤다. 시 속 동식물들 대다수가 머리속에 떠오르는 거보니, 역시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나보다!

그러다 문득 이 시집을 선물해준 지인이 떠올랐다. 제주에서 많은 꽃과 나무 그리고 반려묘를 키우는 그녀는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녀에게 책 선물을 몇번 보내기도 했었다. 그녀가 창가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며 시집을 읽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언제고 제주에 가면 꼭 만나러가야지!


동박새

나이 들어 몇 해 동안

동백꽃 피는 철이면

오래된 동백숲 순례하며

동박새를 찾는데

보이지 않네

젊은 날 연인과 함께

동백꽃 보러 갔을 때

우연히 만나 잘 보았는데

일부러 다시 찾으려 하니

보이지 않네

매화 꿀 빨거나

산초 열매 쪼는

동박새는 간혹 보이는데

동백꽃 꿀 빠는 모습은 보이지 않네

동백꽃 아무리 잘 피어도

동박새 없으니 허전하네

생의 찬란했던

빛나는 눈동자의 순간은

가뭇없이 사라졌네.

뜸부기

뜸 뜸 뜸 뜸 뜸

논바닥에 깔리듯이 저음으로 우는

뚬부기를 찾는다

수컷 뜸부기는 벼포기 사이로 고개 내밀어

붉은 이마판을 살짝 보여주고는

또다시 숨어서 운다

암컷 뜸부기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농촌에 흔하여

김매다 알을 꺼내먹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뜸부기

뜸부기야, 어디 숨었니?

동틀 무렵 임진강변에 나와

뜸부기와 숨바꼭질 한다

숨바꼭질이라도 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시집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제목만 봤을 땐 그저 자연친화적인 시라 생각했다. 시인이 자연을 벗삼아, 자연을 노닐며 쓴 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인이 자연을 벗삼아 쓴 시는 맞지만, 그 속에는 자연과 함께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있었다. 어린날 보았던 자연과 사뭇 달라진 지금을 보며, 그때의 그 자연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더 나아가 자연을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갈등과 문제를 재생시키고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시인이 시 속에 담은, 바라고 바라던 자연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보기 어렵다. 유즘말로 유니콘같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시인이 바라는 그런 자연이 올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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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채소 먹는 기쁨


오늘 마음을 채운 에세이 『제철 채소 먹는 기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채소’다. 그동안 우리 식탁 위에서 늘 조연에 머물렀던 채소들이 이 책 안에서는 당당히 주연으로 우뚝 선다.


부끄럽게도 나는 채소로 만든 음식은 늘 ‘밑반찬’이나 메인 메뉴를 돋보이게 하는 ‘곁들임’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식탁의 중심은 으레 육류나 생선이 차지해야 하며, 채소는 그들의 느끼함을 잡아주거나 영양 균형을 맞춰주는 보조적인 식재료라 여겼다. 심지어 ‘김치찌개’처럼 이름부터 채소가 주인공인 음식조차, 그 안에는 반드시 돼지고기 같은 육고기가 들어가야만 제대로 된 맛이 난다고 맹신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정고메 작가는 그런 나의 해묵은 고정관념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저자는 채소가 만년 조연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거부한다. 그녀는 채소가 식탁의 명실상부한 주연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했고, 누구도 선뜻 시도하지 않았던 창의적인 조리법들을 고안해 냈다. 낯선 식재료의 조합을 실험하고 직접 맛보며 완성한 레시피들을 블로그에 공유하기 시작하자, 온라인상의 독자들은 열광했다. 하나둘 그녀의 요리를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무대 구석에 밀려나 있던 채소들이 드디어 식탁 중앙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책 속에서 보여주는 채소들의 무궁무진한 변주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향긋한 깻잎 하나만으로도 근사한 냉파스타를 뚝딱 만들어내고, 봄의 전령사인 냉이에 두부와 당근을 곁들여 단단한 풍미의 냉이김밥을 완성한다. 뿐만 아니다. 토마토는 평범한 라볶이의 품격을 높이는 핵심 재료가 되고, 고기 없이도 김치찌개와 김치스튜의 감칠맛을 폭발시키는 최고의 식재료로 재탄생한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끼니가 아니라, 제철의 에너지를 머금은 채소 본연의 맛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읽는 것만으로도 미각이 살아나는 기분을 선사한다. 그저 냉장고 구석에서 시들어가던 밑반찬용 식재료라고 치부했던 채소들이, 작가의 손끝에서 얼마나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요리로 변모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식탁 위에서 조연의 삶에 익숙해진 채소들에게 미안해지는 시간. 오늘부터 나 역시 나의 주방에서 채소들을 주연으로 데뷔시켜보고 싶다는 기분 좋은 설렘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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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천하는 세계사책은 『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세계 여러 나라의 ‘수도’를 살펴본다. 이 세계사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된다. ‘수도’의 역사=‘나라’의 역사라는 사실을. 


수도는 이동하는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권력’의 흐름을 기준으로 써내려간다. 누가 왕이 되었는지, 왕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등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라의 수도를 결정하는 것 역시 권력을 지닌 왕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다. 그렇게 수도는 권력에 반응하며, 권력에 따라 이동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나라의 수도들은 대부분 왕정시대에 설정되었다. 그렇다면 왕정시대에 수도를 어떻게 결정했는가? 단순하다. 최고 권력을 가진 왕이 거처하는 궁궐 위치에 따라 정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사로 예를 들자면, 고려는 정궁이 있던 개경이 수도였고, 조선은 정궁(경복궁)이 있던 한성(현 서울)이 수도였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프랑스 수도는 파리지만, 역대 프랑스 왕들은 거처를 수시로 이동했다. 좋은 말로 하면 권력 분산을 막기위한 전국 순회라고 하겠다. 반대로 순회하지 않고 정착한 프랑스 왕 루이16세때는 어땠을까? 물론 수도는 파리였다. 하지만 루이16세는 안전을 이유로 파리가 아닌, 베르사유 궁에 정착했다. 결과적으로 오랜시간 프랑스 파리는 ‘왕이 없는 수도’ 였다.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도시 ‘수도’



한국은 서울, 일본은 도쿄, 프랑스는 파리 등 보통 수도는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핵심도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간혹 수도로 오인받을 정도로 유명한 핵심도시가 여럿 있는 나라도 있다. 예컨데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DC지만, 어떤 사람들은 뉴욕을 미국의 수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여, 이 책 저자는 수도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중핵 수도: 역사적으로 불변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심도시이자 핵심도시다. 로마, 파리, 런던 등이 해당된다.


-신중핵 수도: 중핵 수도가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새로운 도시가 급부상하며 수도 자리를 꿰찬 경우다. 인도의 뉴델리가 대표적이다. 인도가 영국령이었을 무렵 수도는 콜카타였다. 영국은 인도를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해 델리로 수도를 옮겼으나, 영 마뜩치가 않아서 델리 외곽에 신도시를 지어 수도로 삼았으니 바로 뉴델리다. 


-이중핵 수도: 한 나라에 수도를 차지하기 위해 경합을 벌였던 두 개의 도시가 있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일본을 양끌이하는 도쿄와 교토, 러시아를 양끌이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가 있다.


-다중핵 수도: 한 나라에 수도와 맞먹는 핵심도시가 다수인 경우다. 독일은 긴 역사동안 여러 도시들이 돌아가며 수도가 되며 많은 핵심도시가 생겼다. 스위스도 수도 베른을 포함하여 취리히, 제네바 같은 여러 중핵도시들이 있다. 




이 책이 두께가 얇은 편은 아니라, 선뜻 읽기를 주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달라진다. 원하는 내용만 골라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보통 세계사책은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다보니 중간만 골라서 읽기가 어렵지만, 이 책은 아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시간대 순서로 구성되지 않았다. 대륙별로, 나라별로 구성되어있다. 언제든 원하는 나라 이야기만 골라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번외로 실린 한국의 수도 서울 이야기까지. 가볍게 읽을만한 세계사책 입문서로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TMI이긴 한데, 번외편 한국의 수도 서울 이야기에 내 눈에 확 들어온 소제목이 있었다. 다름 아닌 ‘수도를 버리고 떠난 군주’ 이야기.


저자는 수도를 버리고 떠난 군주 두 명을 이야기한다. 선조와 인조.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양을 버렸고, 약 30여년 뒤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한양을 버렸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대 명제를 불과 30여년반에 증명한 것이다.  할아버지 선조와 손자 인조. 그들은 수도만 버린게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백성까지 버렸다. 


저자는 두 명을 거론했지만, 사실 조선에서 수도를 버린 군주는 한 명 더있다. 바로 고종이다. 혹자는 ‘고종이 한양을 떠난 적이 있었나?’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을 떠난적이 없었다. 다만, 한약에 위치한 러시아 관할 건물로 떠났을뿐이다. 아관파천이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이야기해보면, 고종은 아관파천을 비롯하여 미관파천, 영관파천까지 7회에 걸쳐서 타국가 관할 건물로 도망갔다. 그가 파천을 감행했던건 단 하나였다. 자신의 안전과 권력 유지를 위해. 


역사의 반복이 조선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왕정시대가 종식되고 공화정시대에 이르러서도 수도를 버린 나라의 대표가 다시 나타났다. 언제? 한국전쟁 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선조, 인조, 고종보다 더했다. 겉으로는 수도 서울은 안전하니 서울을 지키라고 방송을하고, 본인은 몰래 부산으로 도망갔다. 그 뿐인가, 혹시나 자기 안전에 위협이 될까봐 한강철교를 폭파하여 자국민을 한강에 수장시켰다.



TMI는...여기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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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좋아하지만, 늘 비문학을 읽었다. 분명 본투비 문과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왜이렇게 어려운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순수문학이 나와는 영 안맞는다. 참 이상하다. 장르문학은 진짜 후르륵 읽히는데, 순수문학 쪽으로 들어가기만 하면...세상에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장르문학이나 순수문학이나, 그저 이야기인데! 



매번 순수문학과 친해져보려고 시집도 읽고, 소설도 꾸준히 읽고 있다. 이 장편소설 『럼과 라즈베리』 역시 그런 일환이다. 특히 이 소설의 중점은 주인공인 호영의 ‘성장소설’이기에, 읽고 이해하기 쉬울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작가의 아방가르드한 문체와, 처음 접하는 소설의 구성, 그리고 소설의 중심축인 ‘소리’에 대한 진행은 날 더 어지럽게 했다. 



하지만 이 소설책 『럼과 라즈베리』는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그야말로 ‘탐닉’할게 많은 완벽한 소설이다. 하나하나 뜯어가며, 분석하는 맛이 있어보였다. 그것도 아주 다분히! 심지어 소설 속에 녹아있는 ‘소리’와 철학은 아는 사람에겐 정말 최고의 작품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건 정말 순수문학알못인 내가 봐도 보였다. 그저 나에게 생소하고 어려웠을뿐(한강작가 문학도 어려웠던 1인, 장르문학이 좋아여...).







순수문학알못인 나는 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고나서야 이 소설이 대사와 구성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백프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주인공 호영이 불안정했던 어린시절 속에 갇혀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으나, 영화학원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어린시절 친구 채영과 재회하며 치유되가는 모습은 언뜻 언뜻 보였다. 다시말하지만 순수문학 알못이다보니, 영와학원 사람들과의 대화 및 채영과의 대화는... 치유의 과정인가? 갸우뚱...한 부분도 있긴했다. 



“네가 이야기하던 주파수 말이야. 그건 결국 감정을 신호화하는 거야. 각기 다른 주파수가 사람 마음을 건드리지. 금방 나는 네 얼굴에서, 눈 깜빡임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거든.” p 025, 채영아빠



“얘야, 네 안에서 번지는 네 소리를 들어야 해.”


“네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이거든. 네가 들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주파수 같은 거야.” p 101, 호영 할아버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조용한 곳을 찾는게 아니었다. 내 걸음은 늘, 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나아가곤 했다. 이번에는 재래시장이었다. 없는 것 빼곤 다 있다는 곳, 특히 명절 대목장의 골목은 발 디딜틈 없이 빽빽했다. p 177, 호영



“기억은 이미지일 뿐이야.”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없어.”


“바다에서 파도 보듯 생각해 봐. 파도는 계속 겹쳐지고 밀려오잖아. 딱 하나만 떼어낼 수는 없어. 그건 불가능해. 다 연결돼 있으니까. 사람 일도 마찬가지야. 넌,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 p 218, 채영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혹시 몰라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이런 책 소개 문구가 있었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공감하게 될 성장소설’ 이라고! 아, 내가 이 책을 어려워한 이유가 있었구나^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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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강 작가의 소설을 몇 편 읽어보았다. 한 권 한 권 읽을 때 마다 느낀건, ‘아, 한강 작가랑 나는 도무지 맞지 않는구나-’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 작가이니, 아직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겠지하는 마음에 한강 작가가 썼던 유일한 그림책 한 권과, 한강 작가 시집 한 권을 구매해서 읽었다. 하, 역시 나랑은 미묘하게 안맞는다^_T 특히나 한강 작가 그림책은 우리 상전이 거들떠도 보지않는다. 그엄마의 그딸인가?


뭐 여튼, 사긴 샀고, 읽긴 읽었으니 흔적은 남겨야 하므로! 한강 작가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리뷰를 남겨본다. 뭐 딱히 리뷰랄 것도 없긴하다. 시집 말미에 있는 해설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잘 안되고 내 마음을 울리지 않는걸 보면 역시나 한강 작가와 나는 잘 안맞는걸로^_T. 고로 이 시집은 지인에게 선물하는 걸로 결정! 탕탕!


그냥 이대로 끝내기엔 뭐해서, 시집에서 발췌한 3편을 옮겨 적어본다.




괜찮아_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 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오이도_한강



내 젊은 날은 다 거기 있었네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목선 두 척.


이름붙일 수 없는 날들이 모두 밀려와


나를 쓸어안도록


버려두었네


그토록 오래 물었떤 말들은 부표로 뜨고


시리게


물살은 빛나고


무수한 대답을 방죽으로 때려 안겨주던 파도,


너무 많은 사랑이라


읽을 수 없었네 내 안엔


너무 더운 핏줄들이었네 날들이여,


덧없이


나들이여


내 어리석은 날


캄캄한 날들은 다 거기 있었네


그곳으로 한데 흘러 춤추고 있었네






저녁의 소묘5_ 한강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집들을 그었다



(살아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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