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리뷰하는 『일본어 명카피 필사노트』는 지식을 탐구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문장을 쓰기 위한 노트다. 여기서 함정 하나! 우리말을 쓰기 위한 필사노트가 아니다. ‘일본어’다. 일본 TV광고, 지면광고 등에서 흘러나왔던 카피문구다. 


아이 낳기 전만해도 나에게 있어서 일본어는 제 2의 모국어...비스무리한 언어였다. 꽤 오랫동안 일본성우 덕질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본어 능력이 생겼으며, 역시나 아주 자연스럽게 일본어 공인 어학시험도 고득점! 여기에 기세를 더해 관광통역사 자격증까지 취득! 일본성우 덕질 자체는 학교 졸업과 함께 끝났지만, 일본어는 능력은 남았다보니 그 능력을 여기저기 써먹기도 솔찬히 써먹었다. 


본투비 역사더쿠라 한일고대사 관련 일본 원서도 쉽게 읽을 수 있었고(개꿀), 답사를 위한 일본 여행다닐 때도 편했다. 그뿐인가? 회사에서 일본 논문 번역도 몇 년을 했다(강제 재능기부, 육아휴직하며 해방!!). 맘먹고 일본어 공부를 한건 아니었지만, 늘상 집에서 TV를 틀면 우리나라 뉴스를 보거나, 또는 NHK 방송만 틀어놓다보니 진짜 나에게 있어서 일본어는 제 2의...모국어 비스므리한 뭐 그런 언어였다. 


근데 뭐 이것도 옛날이야기. 아이낳고 화면매체를 안보고, 일본 라디오를 안듣고, 일본을 안가고, 원서도 못읽고...그렇게 n년의 시간이 지나니, 내가 일본어를 할줄 아는건 맞나 싶은 생각이 막 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 타밍에 『일본어 명카피 필사노트』를 손에 쥐었다. 



보통 카피문구는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어머 세상에! 놀랍게도 이정도 수준은 읽는데 하등 문제가 없었다. 세상에!! 폼 안죽었어!!!!!!!!!!!!!! 라고 하기엔 꽤 쉬운 일본어기긴 하지만...하하하. 읽다보니 기세도 오르고! 이참에 진짜 필사도 해보자 싶어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책 제목에 『필사노트』가 들어가는데 필사를 위한 수첩을 꺼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맞는 지적이다. 이 책에는 필사를 할 수 있는 지면이 매 페이지마다 있다. 하지만 난.... 책에 메모, 낙서, 끄적이기 기타등등을 절대 하지 않는 사람! 그렇기에 수첩을 꺼내어 필사했다.


일본어 읽기나 번역이 아닌, 일본어를 직접 써본적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세상에나! 7년전이다. 2018년에 관통사 실기 준비를 위해 모범답안 외우기 위해 미친듯이 쓰면서 외웠던 그 때! 그 때 이후로 처음써보는 일본어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내 글씨체는 악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쓰는 것 자체에는 어색함이 없는거보니 아직 폼 안죽었나보다.




이렇게 된거 슬슬 일본어 기세좀 올려서 JPT나 다시봐볼까...싶은 생각이 드는건 내 욕심인가...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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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한국사 (20만 부 기념 광복에디션) - 5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이해되는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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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5일 광복절. 어느새 우리나라가 광복이 된지 80주년이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육아로 인해 답사를 못했지만, 과거에는 이 기간 전후로 독립운동 유적지 또는 독립운동 답사를 다니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답사는 어렵기에, 광복절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한다.


오늘 리뷰하는 역사책은 큰별쌤이 쓴 『최소한의 한국사』. 


제목에서도 보이듯 이 역사책은 한국사 전체를 아우르는 ‘통사’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한국사 개념잡기에 딱 좋은 역사책이다. 하지만 광복절 주간인 만큼! 오늘 리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그 중에서도 광복절을 왜 기념해야하는 지를 알수 있는 ‘개항기~ 일제강점기’에 대한 부분만 써보려 한다.


한국사 책을 읽을 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 평가에 대한 변화다. 과거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칠 때는 한국사의 ‘빛과 영광’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했다. 공과 과가 있을 때는 공에 대한 치적은 높이 평가하는 반면에 과오에 대한 부분은 축소하여 가르치거나 혹은 생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1대 황제 고종이다. 



내가 공교육을 받았던 시대만해도 고종은 ‘개혁군주’ 였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인물로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고, 그렇게 믿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스스로 여러 사료와 역사책을 읽고, 많은 유적지를 다니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고종이 상상이상으로 못난 리더였고, 그로 인해 나라가 망국행 급행열차에 탑승했다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생각보다 오랜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교양서로 나온 역사책들은 조금 다르다. 고종의 과오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립협회 강제 해산을 시킨 주체가 바로 고종이라는 점과, 자기의 안위를 위해 서양 여러나라에 많은 이권을 팔아먹은 것, 무당 진령군에 국고에 있는 모든 재원을 털어 바친 일 등을 말이다. 


나는 공교육을 벗어난 이후에야 깨우친 사실을, 이제는 공교육에서도 가르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더불어 이제는 역사의 과오를 숨기지 않고, 명백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어쩌면 서애 류성룡이 애타게 부르짓던 ‘징비’를 이제야 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렇게 역사의 과오를 밝히기 시작하니,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매국노들이 들끓게 되었다는 사실!



안으로는 왕권 강화와 민생안정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를 밀고나간 것이 10년간 이어진 흥선대원군의 개혁 내용입니다. 공과 과가 분명히 있지요. 흥선대원군은 개혁에 최선을 다했지만, 미래지향적인 국가를 바라기보다는 과거 왕조의 영광을 꿈꿨습니다. 이것이 흥선대원군의 한계였습니다. p 265


독립협회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고종은 불편해졌지요. 급진적인 개혁 방안을 황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결국 고종은 독립협회를 해산하고, 백성들의 집회를 금지했습니다. 독립협회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고종은 마지막 남은 카드조차 불태워버린거에요. 나라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에요. p 281


손발이 묶인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결국 국권을 상실했어요. 우리는 8월 15일 광복절만 기억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시작이었던 8월 29일도 함께 기억해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날 대한제국은 한국강제병합조약으로 일본 제국에 병합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일병합’ 등의 표현을 사용했으나 우리는 무력에 의해 강제로 당한 일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래서 경술국치라고 합니다.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는 뜻이에요. p 283


8월 15일 광복절. 공휴일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날이다. 광복절이 무슨날 인지 모르는 국민은 없다고 생각한다(부디 없기를). 헌데, 우리가 광복을 애타게 부르짖게 된 그 날, 광복을 부르짖게 만들었던, 나라가 사라졌던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바로 이 날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대한/조선/한국/한 등 우리를 지칭하던 그 모든 이름을 잃어버렸다. 



한일병탄이 성공했던 이유는, 일제가 차근차근 국권 침탈을 진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가 강압으로 빼앗아간 권리도 있었고, 고종이 자신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넘긴 권리도 있었으며, 일제에 아부하기 위해 친일파가 넘긴 권리들도 있었다. 



20세기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한 항일의병들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가 <미스터 션샤인> 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영국인 종군기자가 의병들을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와요. 기자는 의병들에게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의병들은 이렇게 답해요. 우리는 용감하지만 무기가 너무 부족하다고, 이렇게 싸우다 죽을 것을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노예가 되어서 사느니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겠다고 하지요. 실제로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른 의병들이 목숨을 내놓고 일본에 맞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p 286



왕을 비롯하여 돈과 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이 일제에 아부하던 그 때, 한 쪽에선 일제에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과 권력을 가졌고, 일제에 아부하면 더 큰 부를 가질 수도 있었던 사람들과 나라가 해준 게 하나 없지만, 조국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목숨을 받쳤던 백성들이.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역사는 그들을 ‘항일의병’이라 불렀다.


큰별쌤이 말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에 나왔던 영국인 종군기자와 의병들은, 경기도 양평에서 있었던 지평의병을 차용한 장면이다. 당시 영국인 종군기자 맥캔지는 지평리에 주둔하던 의병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무이한 항일의병 사진이다. 이 사진들은 『지평의병 지평리전투 기념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지평리 의병을 인터뷰했던 맥캔지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비겁하지도 않고, 자기 운명에 대해 무심하지도 않다”고.



항일 의병에 대해 좀더 첨언하자면, 전기 의병인 ‘을미의병’과 후기 의병인 ‘정미의병’으로 나뉜다. ‘을미의병’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으로 인해 창의되었으며, 항일의병보다는 척사의병에 가까운 성격을 띈다. 정미의병은 1907년 정미7늑약으로 인해 창의된 의병으로, 본격적인 항일의병의 시작이다. 




전라도 지역에는 임병찬이 이끌던 독립의군부가 있었고, 경상도 지역에는 박상진이 이끌던 대한광복회가 있었어요. 박상진이라는 인물은 이력이 특이한데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엘리트를 앞세워 나라를 통치하려 했어요. 그러니 직업이 판사라면 분명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런 길을 택한 사람도 많았고요. 하지만 박상진은 미련 없이 사표를 낸 뒤 “내가 앉을 자리는 판사의 자리가 아니라 이제 피고의 자리다” 라는 믿음 아래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에 자신이 했던 말처럼 일본인 판사의 앞에 서서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지요. p 290 



엄밀히 따지면 최재형은 조국으로 부터 받은 것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항상 배고품에 떨어야 했어요. 그럼에도 조국을 위해 자신이 번 돈을 전부 써버렸습니다. 한국인 마을에 회사를 차려 사람들을 고용하고, 학교를 수십 개 세웠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들은 최재형 덕분에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어요. 안중근을 후원한 사람도 최재형이에요. 우리는 안중근 의사만 기억하지만, 그 활동 자금이 다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누군가는 총을 사주고, 체류 비용을 내주고, 변호사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요. 그 ‘누군가’가 바로 최재형인 겁니다. 그러니 일본이 가만두지 않았겠지요. 그때 최재형도 살해당하고 말았어요. 그곳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은 훗날 스탈인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되지요. p 292



연해주 지역에 최재형이 있었다면 북간도 지역에는 김약연이 있었어요. 김약연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1910년대까지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면서 특히 교육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김약연이 세운 학교의 이름이 명동학교인데, 밝을 명, 동녘 동 자를 써서 ‘동쪽을 밝히다’라는 뜻이지요. 즉, 명동학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어두워진 우리나라를 밝힐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었지요. 명동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말하기와 글쓰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글을 쓸 때는 문장에 반드시 ‘독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했어요. 독립이라는 교육 목표가 확실하다 보니까 일제가 이 학교를 굉장히 괴롭혔어요. p 293



서간도 지역에서 활약한 인물은 이회영 집안의 여섯 형제입니다. 이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였어요. 그중에서도 둘째인 이석영의 재산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섯 형제는 자신들의 가진 땅을 전부 팔고, 가보로 내려오는 책까지 싹 처분한 다음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서간도에 와서 신흥강습소를 세웠지요.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군을 배출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던 신흥강습소는 나중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합니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고 재정도 열악해지면서 결국 폐교되지만,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대 항일 무장투쟁의 서곡을 울리게 되었지요. p 294



당신이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몇이나 되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중근, 김구, 유관순, 안창호 같은 매우 친숙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말한다. 물론 이 분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손들만큼은 독립된 국가에서 살 수 있도록, 독립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이들이 한둘이 아닐 진데, 그 많은 이들의 이름을 유명한 몇몇 독립운동가의 이름 안에 가둬둔다는 사실이.


그렇기에 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독립운동 역사를 공부하고, 우리가 아는 이름보다 더 많은 이름들이 후손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한동안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남긴 어록과 과거에 올렸던 독립운동가 서평을 끝으로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삭풍은 칼보다 날카로워 나의 살을 에이는데


살은 깍이어도 오히려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차라리 슬프지 않다.


그러나 이미 내 전택을 빼앗고 


또 다시 나의 처자를 해치려 하니


내 머리는 자를 수 있겠지만


무릎 꿇어 종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석주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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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인문학책 『채근담』은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아온, 시대가 증명하는 아주 유서깊은 인문고전 책이다. 어느정도로 유서깊은 책이냐면, 『채근담』의 저자 홍자성은 명나라 말기 문신이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대충 17세기 조선에 해당한다. 홍자성은 유교, 도교, 불교 등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는 모든 사상들을 융합하여, 이 책 『채근담』을 썼다. 쓰여진지가 벌써 기백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서로에게 추천하고 열광한다.


기백년전에 쓴 사람이 쓴 글이라면,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이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채근담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인간관계의 어려움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관계맺기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고, 저마다 개성이 다르며, 저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채근담』은 바로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삶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말, 마음을 거스르는 일들은 때론 우리를 성장시키는 가장 좋은 연마재가 됩니다.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며, 늘 기분 좋은 일만 겪는 삶은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자아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삶의 깊이만 얕아질 뿐입니다. 말 한마디에도 사건 하나에도 내면이 흔드릴 때, 그것을 되돌아보며 다듬는 과정이야말로 참된 수양입니다. 달콤함만 좇는 삶은 결국 인생을 망치는 독이 되고, 쓴맛을 견디는 삶은 결국 단단한 지혜를 남깁니다. p 032


참된 가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진짜 청렴한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는 청렴하다”라고 이름을 내세우는 순간, 그 마음속에는 이미 탐욕이 깃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능력은 조용히 발휘됩니다. 과도하게 기술을 자랑하고, 자신의 솜씨를 과시하려 드는 사람은 오히려 미숙함이 들통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과 능력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록되어야 합니다. 겸손한 실천이야말로 오래 남는 힘이며, 조용한 정직함이야말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진짜 능력입니다. p 091


우리는 살면서 ‘기분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좇으며 그 순간의 만족에 안도합니다. 그러나 그 즉각적인 쾌락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입에 좋은 음식도 지나치면 병이 되고, 마음에 드는 일도 지나치면 탈이 됩니다. 절제는 부족함이 아니라 넘침을 막아주는 방패입니다. 오래도록 자신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순간의 기쁨보다 지속될 평온을 선택해야 합니다. p 133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 깊이가 생기기 전까지 성급히 평가하거나 표명해서는 안됩니다. 선한 사람이라 해도 아직 신뢰가 단단히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드러내어 칭찬하면, 도리어 주변의 질시를 불러일으켜 그 사람을 해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악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도 섣불리 배척하거나 공격하면, 예상치 못한 보복이나 억울한 꼬리표를 감당해야할 수 있습니다. 진정 현명한 사람은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살피고, 행동보다 침묵의 무게를 아는 이입니다. 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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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역사책 두 권을 같이 올리는 건 같은 대상을 상대로, 왕이 각기 다른 판단을 하여 초래되는 결과가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판단은 포로로 잡혀있던 백성들을 무사 귀환시켰고, 또 한 사람의 판단은 전 국토를 전쟁에 몰아넣고 황폐화 시켰다. 


​​


『책중일록』 : 1619년 명나라와 연합하여 후금의 수도를 선제 공격했으나 패배한 ‘심하전투’에 참전하고, 청나라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종사관 이민환이 남긴 종군 기록물이다(‘심하전투’는 명청전쟁에 속한 일부 전투 중 하나). 청나라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있던 조선군은 약 1년여만에 조선으로 귀환한다.


『산성일기』 : 병자호란 당시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던 김상헌의 아들 또는 조카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후금의 시작부터 병자호란 이후 삼전도의 굴욕까지 장장 50년 간 인조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책중일록


심하전투의 패배는 우리 해외 파병 역사에서 유례없는 대참변이었다. 1619년의 사르후 전투와 심하 전투의 실상이나 조선군의 항복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아직도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패전의 주된 요인은 전체 병력을 네 갈래로 분산하여 공격을 시작한 명나라 지휘관들의 전략 실패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명과 조선 연합군의 빈약한 무기와 군량 고갈 그리고 허허벌판에서 후금의 기병과 맞붙었던 작전도 결정적 패인이었다. 후금에 대한 조선의 선제공격은 뒷날 두 차례 호란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 - 머릿말 中



명/청교체기 과정에서 일어난 ‘명청전쟁’. 그 전쟁 중에 조선군이 파병하여 참전한 전투가 있다. 명나라와 조선군이 연합하여 후금을 선제공격한 ‘심하전투’와 ‘푸차전투’다. 매우 생소한 이름의 이 전투들은 명나라의 파병 요청으로 인해 진행되었다. 당시 조선의 왕은 광해군이었다. 광해는 명나라의 파병요청에 응하려 하지 않았지만, 당시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재조지은’의 나라였다. 조선의 대신들은 파병을 적극 찬성하며, 파병을 하기 위해 광해를 압박했다. 그들에게는 주변정세는 관심밖이었다. 이 파병으로 인해 백성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재조지은의 나라를 도와줘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런 점은 2024년 현재,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 측근들의 행동과 매우 오버랩된다.



임진왜란 당시 원군을 보냈던 명나라를 위한 조선군 파병. 광해군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조선군은 명나라군과 연합하여 후금의 수도를 선제공격했고, 결과적으로 패배했다. 패배의 원인은 열거하면 입아프니 생략. 전투에서 패배한 군인들에게 선택지는 두 개다. 죽거나 살아서 포로로 잡혀가거나. 



다행스러운 점은 광해군이 전투 전후로 중립외교에 힘쓰며 후금에 적잖은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비록 패배한 전투이긴 하지만, 조선군은 위 전투에서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로 인해 후금은 명나라 포로들은 학살한 반면, 조선군 포로들은 생포했다. 특히 조선군 중 고위직 인물들은 꽤나 후한 대접을 해주었다. 일반 조선군 병졸 포로들에게도 매일 양식과 땔감을 지급했다. 청나라는 광해군이 명나라에 파병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조선군 포로 중 양반 출신 일부가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만, 이는 청나라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아니었다. 조선군 포로들이 주인을 죽이고 도망가거나, 여인을 강간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청 황제 누르하치는 조선군 포로 전부를 죽이려 하였으나, 측근들이 극구 만류하여 양반 출신 조선군만 죽이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렇게 포로생활 1년이 흘렀다. 그 1년간 광해는 중립외교로 청황제 마음을 돌렸다. 이미 승기는 청나라에 있었고, 대신들도 점점 재조지은을 외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선군 포로들은 1년만에 조선으로 무사귀환 하였다. 



광해 말년의 평가는 차지하고서라도, 광해군은 주변 간신들과 달리 대외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조선을 안정화시키고, 백성을 지킬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광해의 이런 점은 리더라면 꼭 갖춰야할 기본 소양 중 하나다. 전제군주든 민주공화국의 대통령든 국민을 대표하는 리더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자질인 것이다. 슬프게도 2024년 겨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이런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그의 사상은 사백여 년 전 왕보다도 못했다. 오히려 지켜야할 국민을 학살했던, 군부독재를 하던 박정희, 전두환과 닮아 있다.



산성일기


《산성일기》를 통해 독자는 병자호란 당시에 있었던 참담한 우리의 역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왔떤 민족의 발자취를 직접 읽음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위치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더불어 이 책이 다시는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우리 민족혼을 일깨우는 지침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머릿말 中



『산성일기』는 청태조 누르하치가 명나라로부터 ‘용호장군’이라는 이름을 얻는데서 시작해, 1669년 12월 삼전도에 승전비를 세우는 데 까지 기록한, 장장 5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쓰여진 일기다. 이 일기를 쓴 사람은 전해지지 않으나, 작품속에 묘사된 내용을 보면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추정한다. 특히 김상헌이 목을 매었던 사건이나, 정온이 칼로 배를 찔러 죽으려 했던 모습, 인조가 성안에서 했던 행동이나 각종 외교문서의 내용을 그대로 수록한 것으로 보아 역사가들은 이 책의 저자를 김상헌의 아들 김광찬 또는 조카 김광현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의 대표였다. 



솔직히 말하여,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답답함과 분노가 그라데이션으로 차올랐다. 지금까지 인조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무념무상하며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이 책은 역사책이기 전에 인조 옆에 있던 측근이 실시간으로 쓴 일기다. 확실히 현대인이 요즘 관점에서 쓴 역사책과는 다르다. 기백년이 지난, 이미 알고 있는 사건에 대해 아주 생생하게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되다니. 괜히 읽었나 싶으면서도, 현재와 오버랩되는 것이 반면교사 삼기 딱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조같은 콤플렉스 덩어리인 인간이 왕이 되자,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가! 



광해를 끌어내리고 왕이 되자마자 그가 한 일은 측근챙기기 였다. 임진왜란 직후라 민생을 챙겨야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측근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그 측근챙기기도, 성과를 따져 챙긴게 아니라 자기 입안의 혀처럼 구는 간신들만 챙겨주다가 ‘이괄의 난’이 터져, 백성을 버리고(!) 공주로 도망가기도 했다. 정묘호란이 터졌을 때도 그는 백성을 버리고 또 도망갔다. 병자호란이 터졌을 때도 그는 백성을 버리고 또또 도망갔다. 그 뿐만인가? 청나라에 항복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았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얘탓이다 쟤탓이다 줏대라고는 하나 없는, 남탓하기에 급급한 왕이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피해는 조선 땅에 사는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전 국토는 청나라 군에 짓밟혔고, 수없는 조선 사람들이 죽었으며, 살아있는 조선 여자들은 청나라에 끌려갔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 왕이 되었더라면, 이 모두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놀랍게도 사백여 년이 흐른 지금 컴플렉스 덩어리인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측근챙기기였다. 자기 주변 인사를 최측근들로 구성했다. 그 과정에서 민생은 파탄이 났다. 파탄난 민생은 자기 탓이 아닌, 남탓으로 일관했다. 거기다 북한이 전쟁을 유발하도록 무인기를 보낸 정황까지 나왔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국민들의 안녕을 헤치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기어이 국민을 향해 총구를 들이댔다. 2024년에 비상계엄이 왠말인가. 이 역시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이 모두가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반복을 끊어내는 해답은 다름아닌 ‘역사’에 있다. 



2024년 겨울, 나라의 존폐를 흔들만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나라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으로 인해. 그는 잘못된 명령을 내렸고, 지금도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고 있다. 콤플렉스 덩어리 임금인 인조와 똑 닮은 대통령, 광해군 주변에 있던 간신들과 똑 닮은 그 측근들. 약 400여년이 흘렀음에도 나라를 대표하는 자와 간신들의 얼굴과 이름만 달라졌을 뿐, 하는 짓은 똑같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주변에 간신이 있을리 만무하다. 이 모든 일들은 국민들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국민들은 대체 무슨 죄인가. 투표를 잘못한 죄인가? 아니, 애초에 제대로된 검증 없이 저런 인물을 대통령 후보랍시고 내놓은 정당이 제일 큰 죄인이다. 이미 2016년 같은 정당 출신 대통령이 헌법 위배로 탄핵된 지가 불과 8년 전이다. 이쯤되면 인재를 보는 눈이 없거나, 국민을 기만하는 것 둘 중 하나이니, 정당 해체해야하는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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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동화’라 하면 권성징악 따위를 말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일컫는다. 심지어 동화의 ‘동’짜는 한자로 ‘아이’를 뜻한다. 하지만 의외의 사실 하나. 동화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편집되고 각색된, 아름다운 이야기만 보고 자라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동화의 원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뭇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잔혹한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백설공주”, “라푼젤”, “피노키오”, “빨간모자” 등 원전은 아이에게 읽어줄 수 없는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단 서양 뿐이랴? 동양, 특히 우리나라 동화인 “콩쥐팥쥐”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무서운 동화를, 진정 동화라고 해도 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잔혹동화’ 다.



우화외 괴담을 한 접시에 플레이팅한 어른을 위한 야식

강지영 소설가 추천사



이 장편소설 『귀여운 것들』  실로 ‘잔혹동화’에 걸맞는 책이다. 제목만 봤을 땐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동화같지만, 책을 펼치면 잔혹한 세상이 펼쳐진다.


이 책속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등장인형(?). 등장인형이라고 하니 좀 이상하긴 한데, 진짜 등장인형이다. ‘도살자 깔랑’, ‘그로테’, ‘어디든 뼈다귀’ 등 전부 인형이니까. 이희지의 애착인형이었던 깔랑, 인형 공장에서 불량품이었던 그로테, 혹 난 쥐라 불린 뼈다귀, 그리고 지점토 인형까지. 모두 인형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았고, 사랑받길 원했고, 사랑받기 위해 사람 손에서 태어난 인형들.


난 첫 단락인 ‘깔랑’편에서부터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잊었어? 내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였잖아. 나밖에 없다고 그랬잖아!’ 

하지만 깔랑은 인형일 뿐이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인형. 짧은 시간 동안 사람에게 사랑받다가 쓰레기봉투 안에 버려진 후에 매립지에 묻힐 운명을 가진 인형 말이다. p 021


한편으로 이희지가 밉고 원망스러웠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웠다. 이희지는 깔랑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던 유일한 인간이었으니까. p 048


깔랑은 그걸 알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제 처지를 그저 수용하며, 모든 상황을 꾸역꾸역 감내해내기도 했다. 그게 바로 이희지였다. 깔랑은 그런 주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인간 곁에 저라도 찰싹 달라붙어 손톱만 한 온기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p 058



네발로 기던 한 여자아기의 애착인형이었던 ‘깔랑’. 깔랑은 아기의 일상을 온전히 함께했다. 하지만 아기가 아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갈수록 깔랑은 아이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비단 깔랑이 하나만의 일일까? 한 아이의 애착인형이 되었다가, 그 아이가 커가면서 어느새 잊혀져 서랍장 구석에 쳐박히고, 소각용 봉투에 들어가는 것. 대다수의 인형의 삶이다. 나역시도 어렸을 땐 분명 애착인형이 있었을 터인데 당장 기억나는게 없기도 하고.



이제 두돌인 우리 뿡뿡이도 없으면 울고 불고 난리날 애착인형이있다. 이미 해질대로 해진 애착인형. 혹시나 안에 솜이 터질까, 똑같이 생긴 인형을 하나 더 사서 보관중인 애착인형. 이 인형들의 끝은 어떨까? 우리 뿡뿡이가 더 커서, 더 재미있는 무언가에 빠지게 되면 애착인형의 존재를 잊게 될테고, 그럼 나는 정리를 한답시고 해져버린 이 인형들을 버릴지도 모른다.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래서 이런 소설이 나왔나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탄생했으나,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귀여운 것들을 위해.


사랑도 받아봐야 제대로 줄 수 있다고 했던가. 검은 여자가 홧김에 지점토 인형을 때려 부수고 다시 이어 붙여줬던 것처럼, 지점토 인형이 다른 인형들에게 줄 수 있는 종류의 애정도 그런 것들뿐이었다. (…) 하지만 그로테는 달랐다. 그로테는 익숙한 길로만 달리던 지점토 인형의 방향을 틀어주었다. p 160


지점토 인형은 엄마가 만들어주었으니 그저 존재하면 됐다. 돌망치가 내리쳐 지점토를 깨부쉈으니 파괴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엄마가 지점토를 뭉쳐줄 때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됐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지점토 인형은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나를 위해서도, 내가 아닌 누구를 위해서도. 이토록 가슴 뭉클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점토 인형은 선택해다. 건너도 될지 아닐지 모르겠는 신호등을 그냥 건너버리기로. p 180


어찌보면 한국판 ‘처키’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이 소설의 시작. 헌데 이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게 정말 ‘인형’만 겪는 일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인형 ‘깔랑’은 누군가 키우다 버린 반려동물과 오버랩되고, 지점토 인형은 가정에서 학대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와 오버랩된다. 또다른 등장인형인 뼈다귀, 그로테도 사회적 약자인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분명 버려진 애착인형 ‘깔랑’에서 시작된 소설인데,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소설 속 인형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과,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소름끼치도록 오버랩되서 되려 찝찝함과 왠지모를 답답함만이 가슴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이토록 차가운 도시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나설 나의 깔랑, 그로테, 뼈다귀, 흰털, 곰 그리고 동그라미가 된 지점토, 너희의 내일을 응원할게! p 234 (작가의 말 中)



부디 이들이 억압되지 않고, 자유로이 날 수 있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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