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 - 오늘 만난 고양이, 어디서 왔을까?
바다루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만 없는 고양이 이야기!
심지어 오래된 책방 시리즈를 출간하는 서해문집이라 믿고 구입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땅의 역사 1 - 소인배와 대인들 땅의 역사 1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음 날 광해군이 공식 왕세자로 지명됐다. 그리고 선조가 선언했다. "마땅히 도망가지 않고 경들과 더불어 목숨을 바치겠노라" 다음 날 새벽 어영대장 윤두수가 끄는 가마를 타고 선조는 대궐을 떠났다. 다음날 선조 일행은 널문리(판문리)에서 점심을 먹고 평양으로 향했다. p 046- P46

쇄환사를 통해 귀국한 피로인은 1607년 1400여 명, 1617년 321명, 1624년 146명이다. 합쳐서 사명당이 데려온 3000명에 못미친다. 돌아가면 천민으로 천대받거나, 북쪽 국경으로 가서 군역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10만 피로인 대부분이 귀국을 거부했다. 비겁한 군주가, 명분에 집착해, 하늘이어야 할 민(民)을 짚신짝 취급한 탓이다. p 051- P51

청은 조선의 실상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청 태종이 소역을 통해 이렇게 전했다. "내가 큰길로 곧장 한양으로 향해도 산성에서 나를 막을 것인가? 너희들의 붓대로 우리 군대를 물리칠 것인가?" 군사력 열세를 빤히 알고 있는 군부는 화전을 주장했고 대명의라는 명분을 내세운 문신들은 전쟁을 주장했다. 목소리 큰 문신 세력이 승리했다. p 064- P64

5월 26일 인조가 교서를 내렸다. "우리 국토가 수천 리인데 어찌 움츠리고만 있을 것인가." 6월 17일 또 내렸다. "우리는 명의 동쪽 신하국으로, 명이 땅을 잃었다고 다른 마음을 품지 않으리라." p 073- P73

설날이 되었다. 인조는 명나라 수도 북경을 향해 예를 올렸다. 망궐례라고 한다. 망궐례 격식을 두고 관료들끼리 난상토론을 벌인 뒤 임금과 세자 부자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청 태종은 산성 동쪽 벌봉에서 대포를 겨누고 누런우산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p 075- P75

진령군과 이유인은 왕과 왕비에게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쌀 한섬과 돈 10냥씩 바치면 나라가 평안하다’고 계시를 내렸다. 왕(고종)은 그리 시행하였다. p 093- P93

민영휘는 당장 서울에 와 있던 청나라 장수 원세개를 찾아가 원병을 청했다. 그리고 궁궐에 들어가 고종에게 "원세개가 허락했으니 청나라 군사를 부르시라"고 청했다. 고종은 "여러 대신들 논의 역시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마땅하니, 청관조회의 발송을 재촉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p 100- P1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나라에 간 고양이 - 고양이 배우들이 재현한 송나라 문화사 이야기
과지라 지음, 허유영 옮김 / 모모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나라에 간 고양이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송나라에 간 고양이는 어떨지 기대됩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어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형제가 겪어야 했던 수난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깝게는 60-70년대 산업개발 시대에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던 우리 부모형제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밥 대신 끼니를 때웠던 것이 붕어빵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었떤 세대에게는 구호물자로 나눠준 밀가루로 풀 반죽을 해서 풀빵 그러니까 붕어빵을 구어팔아 생계를 이어갔던 생존의 몸부림이 기억으로 담겨있다. 일제강점기 떄 모든 면에서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의 붕어빵은 동전 한닢으로 따듯하게 허기진 속을 달래며 굶주린 배를 달랠 수 있었던 구원의 먹거리였다. p 020- P20

단팥빵의 겉모습만 봐서는 내용물에 통단팥이 들어갔는지 아니면 팥앙금이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 해서 통단팥을 넣은 단팥빵에는 겨자씨를 뿌려놓았고, 팥앙금을 넣은 단팥빵에는 참깨를 뿌려 놓았다. 먹는 사람들이 참꺠가 뿌려져 있는지 혹은 겨자씨가 뿌려져 있는지를 보고 입맛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표시를 했던 것이다. p 034- P34

지금 우리가 먹는 단팥빵을 보면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데 소금에 절인 벚꽃 열매를 놓기 위한 흔적이라고 한다. 또한 일왕이 단팥빵을 처음 먹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4월 4일을 단팥빵의 날로 기념한다. p 036- P36

일본에서 다양한 일본식 빵이 만들어진 것은 빵이라는 낯선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강했지만, 서양음식을 통해 왜소한 일본인의 체형을 서구인처럼 키우려는 노력도 있었다. 아시아를 벗어난 일본을 유럽화 하려는 탈아입구의 일환이다. p 041- P41

건빵은 한국군에서만 보급할 것 같고 한국군이 만든 독창적인 전투식량 같지만 사실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만든 결과물이다. 군국주의 일본에서 건빵을 개발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빠르게 발전했으며, 태평양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 때 제국주의 일본군대에 전면적으로 보급되면서 전투용 비상식량으로 자리잡았다. p 053- P53

크로켓은 고로케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는데, 일본에서는 1872년 포테이토 고로케 만드는 법이 기록으로 나오니까 상당히 빨리 전해진 셈이다. p 064- P64

(마시멜로는)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이집트 사람이 먹었다. 그러니까 4,000년이 넘는 유서깊은 과자다.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들에게 마시멜로를 제물로 바쳤고 파라오들도 먹었다. 그렇지만 과자라기보다는 의약품이라는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 p 070- P70

동양에서 순대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에 보인다. 기원전 11세기에서 8세기까지 중국에서 불린 시와 노래를 기록한 책인 시경에, "훌륭한 요리를 곱창과 순대를 준비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p 078- P78

한편 우리나라 문헌에서 순대라는 한글 이름이 처음 보이는 것은 19세기 말 요리책인 『시의전서』다. 한글 이름은 그렇지만 한자로 동물창자를 요리했다는 기록은 17세기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개 창자, 18세기 증보산림경제에 소 창자를 삶은 우장찜이라는 기록이 있다. p 078- P78

우리나라의 실학자 이덕무도 닭발이 천하의 진미라는 사실에 동의를 했고, 서기 3세기 무렵의 문학가인 장협도 닭발을 산해진미라고 했지만, 역사서를 보면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의 임금이 닭발을 무척 즐겨먹은 것으로 나온다. p 135- P135

엉뚱한 소리 같지만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반드시 약과를 놓는 것은 약과가 영혼을 부르는 음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p 273- P273

고려 의종 때 팔관회와 연등행사에서 약과가 빠진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 처럼 요란을 떠는 장면이 고려사에 보인다. (중략) 약과가 영혼을 부르는 음식이라는 것은 중국 전국시대 때의 노래를 엮은 『초사』에 근거를 누고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루는 초혼부라는 노래에 자신의 임금이었던 초나라 회왕을 그리워하며 ‘밀이’라는 음식을 차려놓았으니 돌아오라는 구절이 있다. p 275- P275

양(羊)은 왠만한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는 한자로 네발 달린 가축인 양을 뜻하는 한자이지만, 갱(羹)은 왠만큼 한자 실력이 좋은 사람 아니면 읽기조차 힘든 글자로, 국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양갱은 양고기 국이라는 뜻이다. p 280- P280

일본에서 양갱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인 에도시대다. (중략) 중국에 유학을 온 승려가 귀국하면서 이 떡을 일본에 전했는데,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기 때문에 양고기 대신 팥을 넣어서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양갱이 됐다고 한다. p 280~281- P2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 - 평범한 어른이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합리한 일은 여전히 많고 나는 여전히 나약한데 눈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p 022- P22

직장에서 인간은 ‘업무를 행하는 대상’이다. 서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일 처리의 대상으로 대한다.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포스트잇 떨어지듯 깔끔한 관계. 젊은 날에 일희일비하던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이제는 화르르 불타올랐다가도 금세 사라앉는다. 조금의 감정 소모도 아깝기 때문이다. p 080- P80

일도 받은 만큼 한다. 월급 혹은 성취감만큼. 대부분의 회사는 매번 백 프로 최선을 다할 수 없을 만큼의 일을 준다. 기대에 부응하려 했다간 뼈가 녹는다. 그래서 백프로 최선을 다할 것과 아닐 것을 구분한다. p 017- P17

카톡, 카톡, 카톡. 추억의 msn 메신저 시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모바일이 아닌 PC메신저여서 그랬나(물론 그때도 메신저 로그인으로 출근 시간을 파악하는 상사가 있었다). 우리는 갈수록 초밀접 사회를 산다. 텍스트와 이모티콘, 짤이 온갖 틈을 옥죄어 온다. 그 무차별 폭격에 응대를 해야하는 노동자들. ‘네’는 약해 보이니 ‘넵’이라고 답하는 ‘넵무새’가 되고, 웃지 않는 얼굴로 ‘ㅋㅋㅋ’를 쓴다. p 031- P31

‘급한 업무일때, 퇴근한 직장인에게 카톡을 보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열에 한 명만 분개할 뿐, "누군들 보내고 싶어서 그러겠냐"는 반응이 다수였다. 어라? 답변자가 모두 상사인가? 그들은 사회생활 융통성을 강조했고, 일이 터지고 난 뒤 수습하느니 차라리 지급 응답하겠다,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답했다. p 045- P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