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이 들었고, 잠이 든 상태에서는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악몽일 뿐이야. 내가 설령 바지에 오줌을 지리거나 상체를 일으켜 밖으로 나가 담벼락 위를 걸어 다닌다고 해도 그건 몽유에 불과한 거지. 현실 속에서 이렇게 나는 누워만 있는데. 이 현실이 길고 지루한, 벌거벗은 몽환극의 일부라고 해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의 움직이는 꿈이라고 해도. 현실은 현실이지. 현실보다 앞서거나 뒤처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현실의 연약한 지반에 뿌리를 내린 무대. 무대 속의 무대. 무대 밖의 무대. 어떻게 무대가 구부러질 수 있단 말인가. 무대는 기울어져만 간다. 걷거나 멈춰 있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간에 언제나 무대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지. 인물들은, 그것보다 나는 기울어지기 않기 위해,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무대에 발을 붙이고 있는 거야. 기울어지고 싶어도 기울어지지 않지.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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