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나의 일이란 내 삶을 점점 내가 좋아하는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내가 동의할 수 없거나 싫어하는 문화에 휩쓸려가디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로 내 삶을 물들이는 일이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은 남의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삶과 나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내가 이길 것은 나 자신과 나의 문화일 뿐, 다른 누군가는 아니다. - P20

나는 오직 나의 시간만을 살며, 그 시간으로 얻는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자신감을 가지고 내 삶을 살 수 있을 뿐이다. 거기에 집중하면 삶이란 매우 심플해진다. 삶이 복잡해지는 건 자신의 기준을 잃고 타인들에게 휩쓸릴 때이다. 그리고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자기만의 시간과 경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것을 쌓는 건 더 힘들어진다. 나는 나로 살기 위하여 심플해진다. - P22

나아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세계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만을 곁에 두며 삶을 확장해가는 일임을 명확히 배웠다. 삶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방식을 해치는 사람들을 걸러내고, 그 방식에 도움을 주는 이들의 손을 붙잡는 것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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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을 상처 입힌 채 떠나보낸 사람들의 텅 빈 눈가. 누구나 자신의 규모에 맞는 부재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 P11

자세히 본 달 껍질은 바삭바삭할 것 같았어요. 평상에 누워 구름에 가렸던 달이 다시 등장할 때마다 다 같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중심에서 귀퉁이까지 잠시 어두워지는 것뿐인데, 그렇게도 신기하고 재미이있었던 것 우리가 그 자리와 그 각도에 존재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깨달음 때문이었겠지요. 개기월식처럼, 비행기 일식처럼, 세계의 아름다움과 마주치는 순간은 결국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사건입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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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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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군가의 슬픔 앞에 멍하니 서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닫아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그 어색한 공기를 견디지 못해 서둘러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꺼낸 말들은 대개 상대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집니다. 어떤 말은 오히려 상처를 더 헤집어놓기도 합니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바로 그 서툴고 난감한 자리에서 시작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여러 곳에 썼던 글들을 모은 산문집입니다. 시와 소설, 영화와 노래, 그리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사회적 사건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가만히 읽다 보면 이 수많은 이야기가 결국 한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타인의 슬픔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덜 잔인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책 제목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슬픔을 ‘공부’한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슬픔은 느끼는 것이지, 공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공부는 고통을 차갑게 분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네 마음을 다 안다”고 쉽게 말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상대의 상처를 내 얕은 경험으로 서둘러 재단하지 않고, 그 먹먹한 세계 앞에 오래 머물러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배우고 상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다가 유독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에 깊이 위로를 받는 순간은 대단한 미사여구를 들을 때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내 무너진 마음을 알아봐 주는구나” 하고 느낄 때입니다. 상대가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건네는 위로는,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말이라도 공허하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위로는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그 서툰 노력 속에서 겨우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라고 요청합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힘내라”는 익숙한 조언이나 억지스러운 긍정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겪은 일이 얼마나 참혹한지, 그 일이 자기 삶을 어떻게 부러뜨렸는지 누군가 알아채 주는 일입니다. 그 시선이 빠진 위로는 쉽게 폭력이 됩니다. 좋은 마음으로 건넨 말이라도 상대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얹을 수 있습니다.


문학과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소설은 삶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슬며시 생겨나는 미세한 금을 보게 합니다. 시는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감정의 결을 붙잡아 둡니다. 영화와 노래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우리 앞에 데려옵니다. 예술이 타인의 슬픔을 마법처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슬픔을 못 본 척 외면하지 않는 감각을 길러줍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시선은 카뮈와 보르헤스 같은 문학의 세계에서 탄핵, 혐오 표현, 국가 폭력 같은 사회의 자리로 넓어집니다. 이 책이 가진 힘은 문학과 삶을 서로 다른 방에 가두지 않는 데 있습니다. 시 한 편을 정성스럽게 읽는 마음과 고통받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는 깊은 곳에서 이어져 있습니다. 섬세하게 읽는 사람은 결국 섬세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요청 앞에 서게 됩니다. 책을 읽는 일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덜 함부로 대하기 위한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편안하게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자꾸만 내가 외면했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읽는 동안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한 시간을 지나고 나면,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아주 조금은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섣부른 위로를 건네려던 손을 거두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게 됩니다. 타인의 아픔 앞에서 기어이 덜 잔인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느리고 먹먹한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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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단편소설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파열의 선(線)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썼었다. 삶의 어딘가에 금이 가고 있는데 인물들을 그것을 모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파열을 깨닫는다. 단편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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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한테 해석이 필요 없는 정보를 잔뜩 집어넣거나 속이 꽉 찼다고 느끼도록 ‘사실‘들을 주입시켜야 돼. 새로 얻은 정보 때문에 ‘훌륭해‘졌다고 느끼도록 말이야. 그리고나면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움직이지 않고도 운동감을 느끼게 될 테지. 그리고 행복해지는거야. 그렇게 주입된 ‘사실‘들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까.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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