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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평점 :

살다 보면 누군가의 슬픔 앞에 멍하니 서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닫아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그 어색한 공기를 견디지 못해 서둘러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꺼낸 말들은 대개 상대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집니다. 어떤 말은 오히려 상처를 더 헤집어놓기도 합니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바로 그 서툴고 난감한 자리에서 시작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여러 곳에 썼던 글들을 모은 산문집입니다. 시와 소설, 영화와 노래, 그리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사회적 사건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가만히 읽다 보면 이 수많은 이야기가 결국 한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타인의 슬픔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덜 잔인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책 제목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슬픔을 ‘공부’한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슬픔은 느끼는 것이지, 공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공부는 고통을 차갑게 분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네 마음을 다 안다”고 쉽게 말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상대의 상처를 내 얕은 경험으로 서둘러 재단하지 않고, 그 먹먹한 세계 앞에 오래 머물러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배우고 상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다가 유독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에 깊이 위로를 받는 순간은 대단한 미사여구를 들을 때가 아닙니다. “저 사람이 내 무너진 마음을 알아봐 주는구나” 하고 느낄 때입니다. 상대가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건네는 위로는,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말이라도 공허하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위로는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그 서툰 노력 속에서 겨우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라고 요청합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힘내라”는 익숙한 조언이나 억지스러운 긍정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겪은 일이 얼마나 참혹한지, 그 일이 자기 삶을 어떻게 부러뜨렸는지 누군가 알아채 주는 일입니다. 그 시선이 빠진 위로는 쉽게 폭력이 됩니다. 좋은 마음으로 건넨 말이라도 상대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얹을 수 있습니다.
문학과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소설은 삶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슬며시 생겨나는 미세한 금을 보게 합니다. 시는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감정의 결을 붙잡아 둡니다. 영화와 노래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우리 앞에 데려옵니다. 예술이 타인의 슬픔을 마법처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슬픔을 못 본 척 외면하지 않는 감각을 길러줍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시선은 카뮈와 보르헤스 같은 문학의 세계에서 탄핵, 혐오 표현, 국가 폭력 같은 사회의 자리로 넓어집니다. 이 책이 가진 힘은 문학과 삶을 서로 다른 방에 가두지 않는 데 있습니다. 시 한 편을 정성스럽게 읽는 마음과 고통받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는 깊은 곳에서 이어져 있습니다. 섬세하게 읽는 사람은 결국 섬세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요청 앞에 서게 됩니다. 책을 읽는 일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덜 함부로 대하기 위한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편안하게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자꾸만 내가 외면했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읽는 동안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한 시간을 지나고 나면,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아주 조금은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섣부른 위로를 건네려던 손을 거두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게 됩니다. 타인의 아픔 앞에서 기어이 덜 잔인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느리고 먹먹한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