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별을 존중할게 - 삶의 이정표가 되어 줄 말과 그림
박규현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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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놓아주지 않아, 현재를 살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실수와 허점 투성이인데, 그대로의 나를 좀처럼 인정하기 싫습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은 상대방을 향한 배려로 이끕니다. 실은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온전한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부박한 사회에 순전한 마음을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휩쓸려가기 싫어 거리를 두니, 홀로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나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예기치 못한 고통의 순간에 어렴풋한 사랑의 기억을 꺼내봅니다. 누군가는 성실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존중하지 않지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님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긍휼과 온정을 베풀었음을 떠올립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사랑 없음이 저의 존재를 흔들 수 없고, 이유 없는 사랑에도 우쭐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책 『너의 별을 존중할게』의 저자 박규현은 찰나의 소중함을 붙들기 위해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자는 잔잔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그녀의 글과 그림은 오돌토돌한 마음은 평온하게 하며, 한없이 쪼그라든 마음에 따스한 위로를 더합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서 받지 못한 배려에 대해 속상해했지, 타인에게 전해주지 못한 따뜻함과 기쁨으로 안타까워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화사한 미소로 세상을 밝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 한번 제대로 건네주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에게도 각자의 힘겨움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흘려버린 작은 은혜에 생기를 더합니다. 따스함은 스쳐 지나가는 미소와 먼저 건넨 위로의 말입니다. 연결될 수 없었음에도 기꺼이 먼저 손 내밀어 준 넉넉함으로 인해 지금도 우리는 살아냅니다. 퍽퍽해진 마음 한가운데 작은 온기를 전달해 줍니다.


그저 나만을 사랑하고 아끼라 말하지 않습니다. 너를 향해 흘러가라 요청합니다. 고통의 순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이겨내라고 도전합니다. 그리할 때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끝끝내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당신도 언젠가 귀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용기 있는 삶은 인생의 진실을 알고도 그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인생에 굴곡이 있으며, 양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삶입니다. 수많은 어둠의 밤을 보내면서도, 누군가의 어둠에 작은 빛을 더하여 주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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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신학
헨드릭 크래머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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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하고도 복잡한 세상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때로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교회와 세상의 간극으로 인해 깊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잠깐의 주일예배로는 한주의 영적 전투가 버겁습니다.


교회의 대다수는 평신도들입니다. 이전에 비해 논의가 늘어났긴 했지만 여전히 평신도의 신학적 지위는 중심부에 있지 않습니다. 1958년에 출간된 『평신도 신학』 이후로도 충분하게 후속 연구가 영글지 않은 듯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평신도의 위치 또한 획기적인 개선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선교학자인 헨드릭 크래머(Hendrik Kramer)는 불모지와 다름없는 '평신도에 대한 신학'을 과감하게 선보입니다. 그의 저술 5년 전에 가톨릭 신학자인 이브스 콩가르(Yves M.J. Congar)가 『교회 안의 평신도』라는 책을 냈지만, 가톨릭 신학 안에서 저술된 책이 개신교의 교회론과는 다른 지점이 존재했습니다.


크래머는 콩가르의 저술에 대해 가치와 의의를 인정하며, 이 책 『평신도 신학』에서도 그 책을 많이 소개하고 인용을 합니다. 더하여 개신교의 교회론에서 평신도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새롭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교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평신도들에 대한 신학적 조명과 성찰을 개신교 내에서 한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미 역사 속에 존재했던 평신도들의 발자취를 훑어갑니다. 우리가 성직자라고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에 속합니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키프리아누스(Cyprianus),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모두 유능한 평신도였습니다.


교부들뿐만 아니라 중세의 수도원 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사람들은 평신도 활동의 실례입니다. 종교개혁 또한 평신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특별히 위대한 종교개혁자 칼뱅(Jean Calvin)은 평신도 때 『기독교강요』를 집필합니다. 이를 통해 개혁교회의 기본적이고 중추적인 틀을 마련합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평신도들의 역할이 중차대했지만 교회에서의 지위는 매우 약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직'이라는 명제를 들고나온 종교개혁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사라진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설교하는 직분의 탁월성을 강조함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빚어졌습니다.


평신도 신학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것이 하나의 동떨어진 논의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평신도 신학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교회의 소명과 함께 가야 합니다. 평신도 신학이 교회론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평신도가 책임 있는 동반자 관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평신도와 동반자 관계를 맺는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종교 기관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존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다른 공동체와 구별되는 독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부름받았다는 인식을 항상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선교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교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이러한 본질을 중심에 둔다면 평신도의 책임 있는 참여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상의 최전선에서 교회를 대표해 있는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위 이전에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존재가 되어 우리는 세상 속에 침투해야 합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소명에 입각하여, 증언과 섬김을 위해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성도들의 정체성을 근거 삼아 동역을 요청해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속할 수 없는 그들이야말로 교회의 주체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역자는 그들을 돕고, 또한 도움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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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종교생활의 특정한 형태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내포하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어떤 형식의 예배와 신경에 기반을 두고 그 하나 됨과 전통이 모종의 우월한 영적 권위로 표현되는 유기체를 말한다. - P95

교회의 본질과 소명을 증언할 때, 그 구성원들의 자격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과 관련된 본질과 소명에 내재된 재창조의 능력에 의존해야 평신도 문제의 전모가 나타날 수 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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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라, 살아가라, 선교하라
마이클 리브스 지음, 김명희 옮김 / 아바서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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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망이나 필요에 의해 관계를 좌지우지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만을 사랑합니다. 실제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만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아끼고 위하는 것은 '이기심'이라 부릅니다.


'사랑'이 풍성한 사람은 그 안에 사랑이 흘러넘칩니다. 존재를 안아주는 사랑을 이미 누리고 있기에, 어떤 관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너'와 함께 하는 이유가 '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풍성함을 나누어주고 싶기에 '당신'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합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풍성합니다. 자연스럽게 흘러넘칩니다. 때로는 나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서로의 따스함으로 인해 어느새 '나'는 이미 충만합니다. '너'를 돌보는 것이 곧 '나'를 돌아보는 것이기에 그 사랑 안에는 어떤 시기나 이기심, 편애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가운데 가능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은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옵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은 이미 그분들 안에서 행복하셨으며, 서로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 기쁘고 즐거운 사랑의 잔치에 그저 우리를 초대하고 싶으십니다.


마이클 리브스(Michael Reeves)는 『삼위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라, 살아가라, 선교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차고 넘치는 사랑을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만이 우리를 풍성하게 합니다. 그러한 이해는 우리의 삶과 선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는 바깥으로 흘러넘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사랑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 가운데 거한다면 우리 또한 그 사랑의 삶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기쁨과 자비를 누리는 행동이며, 전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주님은 죄인을 만나셨고, 함께 먹으셨으며,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홀로 빛나는 그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친히 백성들에게 내려오시며, 그것을 나누어주시는 영광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그 영광의 빛을 세상에 널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 영광과 찬란함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어두움 가운데서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하기에 선교는 우리의 무엇이 아닙니다. 어떤 자격이 갖추어져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깨어진 상태 그대로 하나님께 우리를 맡길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광, 사랑은 우리를 고칠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은 탁월함을 원합니다. 더 멋들어지고 위엄 있기를 원합니다. 인기와 명예, 권력을 탐합니다. 그것이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깨어진 상태 그대로 오기를 원하십니다. 낮아진 그 상태가 가장 적절한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우리는 동참하기만 하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거나 죄책감으로 인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런 동기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으로 인하여 이 땅에 오셨고, 사셨고, 죽으셨습니다. 사랑이 차고 넘치는 아들은 세상에 사랑을 쏟아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고 누린 그 사랑과 기쁨이 흘러넘치기에 어찌할 수 없는 벅찬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쏟아내며, 기쁨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사랑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실 것입니다. 각박한 세상 한가운데 끙끙대며 살아가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만함을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하나님은 사랑으로 풍성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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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성령과의 관계를 유지하시며 아들에게 사랑으로 생명을 주신다. 이분이 진짜 하나님이다. 예수님으로 시작하여 그분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발견할 때, 당신은 비길 데 없이 무한한 아름다움과 사랑과 사랑스러움을 지니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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