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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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91일 관동대지진, 올 해가 조선인 학살 100주기다. 교과서 기록, 중앙방재회 보고서, 대정부질문, 근거들이 있어도 관련 기록이 없어서 진상조사를 못한다는 국회 발언을 100년째인 올 해도 들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951


<“역사를 바로 알자는 목소리를 반일로 매도해선 안 된다.” >

 


억울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이 수천 명이고, 현실에선 100년 동안 제자리지만황모과 작가님은 진실이 규명된 미래를 만들어 주셨으리라 픽션이 채워준 부분이 현실의 조각들을 이어줄 거라 기대한다.

 

죽인다고 끝이 아니라고, 부정과 거짓말은 다 들킨다고, 오래 걸려도 역사는 바로 써진다고. 국내에서 일어난 참사와 죽음도 외면하고, 망자를 모욕하고 유가족을 조롱하고, 이런 현실 속에 닮은 꼴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 무덥다.

 

누구도 한 눈에 실체적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 일은 방해받지 않아야 하고 왜곡되어선 안 된다. 안타깝게도 한 사건을 두고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병들지 않고 유지된다.

 

물론 현실에선 늘 이익 계산을 하는 쪽이 빠르고 결속이 강하고 사회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어 기세등등하다. SF의 장치를 사용해서, 과거의 시공간으로 투입하는 설정이 그래서 숨통이 트이는 설득력이다. 현실이 너무 갑갑하니까.

 

믿지 않는, 부정하는 쪽에서는 증폭된 기억(왜곡, 거짓, 과장)의 증거를 찾고, 진상을 규명하려는 쪽에서는 피해를 줄이고자 과거에 개입하는 선택을 해서 살해당한다. 이는 에러로 기록되고 투입된 이들은 기억이 모두 삭제된 채로 현실인 시작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단단한 부정이 가느다란 증거나 증언으로 서서히 금이 가고 붕괴되듯이, 싱크놀로지 시스템 프로그램대로 시행되지 않은 틈이, 시공간보다 바꾸기 어려운 인간의 시선과 통찰을 바꿀 여지가 된다. 현실보다 더하거나 덜할 모든 장면이 거침없어서 참담하다. 당시의 동력이 두려움이었다면 지금은 뻔뻔함인가.

 

증거를 가져오라는 사람일수록 진상을 알고도 외면하거나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민호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검증된 증거가 있어야만 증명된다면 100년쯤 지나 생존자들이 모두 사망하고 기억조차 희미해지면 민간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한 일도 없던 일이 되리라는 기대 섞인 믿음과 닿아 있다. 모두의 기억이 퇴색되어 자신들의 죄악까지 희미해지길 원하는 것이다.”

 

문학은 잊혀진, 기록되지 못한, 삶과 죽음, 사연과 억울함, 아픔과 고통을 이렇게 생생하게 되살려주는 애도와 추모의 세계라는 걸 다시 절감한다. 죽어간 모든 이들의 삶이 아깝고 분해서 폭염에 피부가 욱신거리듯 마음이 아프다.

 

간절함과 치열함은 정말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그런 시대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럴까. 무력과 무기력이 틈만 나면 그 틈을 파고든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과거라는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거를 경험한 우리의 기억이 끈질기게 남아 있다. 그 과거도 지금 현재도 미래를 결정짓는 요인들이다.

 

그러니 학살은 학살이고 비극은 비극이었다고, 제대로 마주하고, 사과하고, 처벌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최대한 잘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디로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다카야는 이번 생에도 목격했다. (...) 공권력이 작정하고 공문서를 소멸하는 것을, 생사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유족들이 영영 찾을 수 없도록 치밀하고 완벽하게 유해를 은닉하는 것을, 어린이들의 수기까지 꼼꼼하게 삭제하는 것을 보았다. 철저하게 기획된 은폐였다. 전부 똑똑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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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하면 좀 어때 - 이런 나인 채로, 일단은 고!
띠로리 지음 / 푸른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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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이 있고 계획대로인 일상이 가장 편한 독자라서, 살아가는데 충분할 정도라면 나머진 허술해져볼까, 하는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인형 작품들이 허술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시선조차 다정한 인형들이다.



 

속았다, 분하다, 그런 심정이 들었지만, 혹시 내가 허술이란 뜻을 잘 몰랐나 싶기도 하고, 뭔가 허술함에서 멋짐으로 옮겨온 스토리일까 못 읽은 이야기가 흥미로울 듯하다. 어쩌면 허술해도 괜찮다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일까.

 

그러네.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에는 온통 용기가 가득하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는 용기, 밥벌이가 되도록 해내는 용기, 자신이 찾아낸 길을 안내하는 글을 쓰는 용기, 최선이란 쉽지 않았을 텐데, 웃음도 매력도 사랑도 지켜낸 용기.

 

무엇보다, 허술한 나인 채로 최선을 다하기” “허술하게 허슬hustle하기” “허술함의 최전선을 지키는 용사가 되리라이런 결심하기!

 

먹는 방송으로도 유명해지고 돈을 버는 한국사회라서일까, 언제부터인지 ‘1인분의 몫이라는 표현을 종종 본다.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개념 중에, 완벽이나 정상 등등처럼, 1인분이라는 표현도 사람들을 옥죄고 주눅들게 하나보다.

 

식사 1인분도 사람마다 다른데, 사회적 존재로서 삶의 1인분 몫이란 얼마나 다를 것인가. 더 먹는 사람 더 주고 적게 먹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듯이, 삶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일관적으로 모든 상황에서 평생 1인분을 딱딱 해내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짐작보다 허술은 심도 깊은 철학적 제안이다.


 

힘을 풀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걸 참 못해서, 그걸 로또나 한번 사볼까?’하는 심정으로 먼저 다가가라는 조언에 소리 내어 웃었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거나 두렵거나 겁을 먹지는 않을 듯하다.

 

운동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숨쉬기 운동도 어렵다. 간단해 보여도 폐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천천히 한 모금씩 내뱉는 동작을 처음에는 조절하기 어렵다. 속이 답답하고 마음이 급해 한껏 숨을 뱉어버리기 일쑤니까.”



 

휴가에 의미나 계획을 부여하지 말자란 생각도 든다. 그래도 막 탄소배출하며 살아버릴 순 없으니, 조용한 휴가를 앞두고 있다. 마침 가족 생일도 다음 주중이고. 훌쩍 떠나는 여행을 종종 상상하지만, 아직 아니 이젠 그럴 순 없지.

 

저자는 간판이라도 눈여겨보라고 하지만, 나는 대신 가깝다고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얼굴을 눈여겨봐야겠다. 분명 모르는 표정들이 많을 것이다. 뭘 하고 놀면 좋을까. 현실이 기막히고 기분이 무거우니 즐겁기가 힘들고 어렵다.

 

쓸데없는 감상에 젖지 않아도 모든 건 헤어지고 망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자명한 사실이다. (...) 뻔히 망할 줄을 알아도 그냥 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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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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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칭처럼 들리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수식어가 붙은 제목에 놀랐습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출간되지 않았겠지요. 못생겼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 애처로움을 느낀 저자가 그렇지만은 않다고 항변하고 보호하고자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가 잦지 않고 주택에서 오래 살던 시절 서울에서 태어난 이들은 자기 동네 말고는 잘 모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학교와 직장에 따라 이동하게 되면서, 서울 내에서 고향과 낯선 곳이란 분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공간은 생존의 필수조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잊은 기억도 담지한 존재라서 누구에게나 늘 특별합니다. 조부모님 주택이 리모델링되었을 때의 서운함은 내가 거주하는 가족이 아님에도 대단했습니다. 상실의 아픔이 느껴졌지요.

 

본가와 내 집이라는 개념이 점차 흐려지고, 집을 갖고 싶으나 몇 호라는 이름의 아파트에 살면서, 일부는 체념했고 일부는 망각했습니다. 이동거리도 활동 영역도 넓어지다 보니 사대문 안에서는 걸어서 가지 못할 곳도 없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모르고 가본 적 없는 장소들이 가득합니다. 걷는 여행의 에세이처럼, 보고 읽는 모든 것이 사회학 공부가 되는 시간처럼 의미 깊게 읽고 배웁니다. 현실 산책은 너무 힘든 계절입니다.

 

못생긴 거 무엇일까요. 사는 사람이 아닌 보기에 불편하다는 뜻일까요. 저자의 발걸음은 정직하게 도시의 삶을 열어나갑니다. 건축학도의 시선과 저널리스트의 질문이 어우러진 특별한 책이기도 합니다.

 

경사가 60-70도인 길이라니, 작정한 등산이라도 어려운 각도를 일상의 골목길로 사용하며 살았던 분들의 삶이 무척 고되 보입니다.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동네 분들에겐 화재로 인한 희생이 없었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인구는 계속 유입되고 살 곳은 도시계획 안에서 함께 고민되지 않았던 고단한 시절이 그 상태 그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내버려진 듯해서 기분이 울적하기도 합니다. 마침내 재개발 지구가 되면 원주민에게 기쁜 일이었을까요.

 

재개발 사업이 끝나고 원주민이 재정착하는 비율은 20~30퍼센트 정도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재개발로 깔끔하고 편리하게 다듬은 새 터전에 계속 살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위해 집과 동네를 '다시' 짓는다는 말인가요?”

 

반듯하고 깨끗하고 말쑥하게 인위적으로 형성된 거리와 집은 보이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겠지요.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고 유쾌하게 말하던 분들이 있던 오래 전 낡고 멋졌단 세운상가를 떠올려 봅니다.

 

건축과 사회학의 시선이 강할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재개발 관련 다양한 사례들과 결과들을 보니, 우리가 배워야할 시행착오와 멍청함과 무책임으로 겪어야할 시행착오를 구분해서 보게 됩니다. 행정의 오류는 무한대인가요.


 

못생긴 곳은 모조리 사라져야한다는 것은, 흔적도 남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은 끔찍한 파시즘같이도 들립니다. 인간이 만든 것 말고도 가치 있는 풍경에는 만들어진것들이 있습니다. 그 자체로 문화유산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오래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천만이라는 세계에서도 몇 없는 메가시티가 서울이지만, 여전히 사회 공동체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보존해야 할 것, 보호해야할 사람들은 어디이며 누구일까요. 지자체의 계획에 따라 살던 곳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이 생기는 건 괜찮은 건가요.

 

100, 200년이 넘은 건물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국가들에 비해, 건축조차 소비하고 버리고 새로 지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의 한국사회에는 건축쓰레기도 엄청납니다. 유례없는 멍청한 낭비며 기후재앙의 시대에는 범죄에 준한다고 믿습니다.

 

누군가 보기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못생긴 구도심과 산동네의 풍경, 거기에는 그 나름의 복잡한 맥락이 존재합니다. 공공의 책무는 그 맥락을 최대한 존중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설계하는 것이지, 앞장서 맥락을 무시하고 파괴하라고 선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는 백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기 동네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지는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요. 시민들의 자치조직들이 많아지고, 행정은 지원을 늘리면 좋겠습니다. 동네마다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고 아름다워지면 좋겠습니다.

 

다음 산책에는 조망만 하고 투시하지 못한 풍경을 찾아보려합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이웃들을 오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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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범도 1~2 - 전2권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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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을 전공한다는 핑계로, 한국근현대사 공부를 등한시해서 평생 무지했다. <미스터 션샤인> <암살> <밀정> <봉오동 전투> 등 영상을 통해 조금 배우고 잠시 기억하는 수준이었다.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식을 통해 현실에서 못 다한 미완의 역사와 약속을 재소환한 경험이, 역사서와 역사소설을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범도> 출간일이 봉오동 전투 개전일이라 의미가 깊다.

 

과문한 나와 달리, 어른들에겐 그저 9년 전이지만, 2014년 참사와 정치적 격변을 지켜본, 우리 집 십 대 아이들은 시사와 역사에 관심이 많다. 어른들이 낯 뜨거워지는 솔직한 의견과 사회비판도 들려준다.

 

2022년 봄, 과거의 기록으로 일단락되었다고 착각한 전쟁이 먼 나라에서 발발하고, 국내에서는 친일 청산에 실패한 대가를 처참하게 치르는 작금이다. 이제라도 가족 모두 한국사와 세계사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하얼빈>에 이어 <범도>로 가족 책모임을 이어나갔다. 누구의 삶도 전체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여기저기 조각들을 모아 전체 풍경을 채워나가는 읽기와 공부가 때론 벅차고 때론 서글펐다.

 

생생하게 살아계신 홍범도 장군을 따라 다니는 이 책을 읽다가 장군이 머문 마지막 집의 사진을 보고 눈물이 쏟아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잊고, 어떤 허깨비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오늘 살아 있는 나는 평생의 내가 살아오기를 선택한 결과이인 동시에, 내가 살 수 있도록 애써준 모든 이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내 삶에는 타인의 노력과 꿈도 묻어 있다. 역사를 잊지 않고, 귀하게 배우고,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더 빨리 더 많이 더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면, 이기고 죽이는 각자도생의 경쟁 사회 대신 다른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반민 특위 해체라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어도, 두 번째 단추부터는 제대로 채웠을 수 없었을까. 분단된 남한 내부의 학살과 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복잡한 심정으로 다를 수 있었던 상상들을 서럽게 이어갔다.

 

그 아쉬움을 작가가 소설 범도에서 안중근과 홍범도 두 분이 만나는 설정으로 위로해준다. 홍범도 대장이 추천해준 총을 들고 안중근 의사가 단독 작전에 착수한다. 현실이었다면 싶은 역사에 명치 어디쯤이 아팠다.

 

고등학생인 큰 아이는, ‘생계를 위해 열다섯의 나이에입대했다가 떠돌이 포수로 살아간, 홀로 일본군을 처단한 범도에 놀라고, 단단한 생각과 실행력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게 행복하다고 느낄 때마다, 책에서 만난 독립 운동가들이 생각날 거라고 한다. 자신은 도저히 감수할 수 없을 희생을 치르며 굽힘없이 살아가신 분들이 놀랍고, 감사를 전할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결단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더 좋겠지만,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차마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지는 현재의 풍경은,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할 수 있었던 격발의 순간을 거듭 놓쳤기 때문이라는 회환이 두껍게 쌓여간다.

 

신분제 사회의 그늘이 짙었던 시절의 독립운동은 물론,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참여한 분들의 면면이 다양하고, 여러 직업군이 함께여서 먹먹하다. 엘리트가 주도하는 역사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강고한지 절감한다. 소설 속에서, 머슴, 포수, 나팔수, 승려, 막일꾼, 광부 등의 일을 하던 이들이 개연성을 얻어 빛나는 직조물을 채워나가는 시간이 눈물겨웠다.

 

여성들이 조력자나 소비자로만 장식되거나 소비되지 않고, 아내로서, 동지로서 의미 있는 생을 사는 묘사도 반가웠다. 백무아와 더불어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서 처음 만난 김알렉산드라도 반갑고 좀 더 잘 알고 싶어졌다.

 

내가 어릴 적 위인전은 오히려 유해했다. 그래서 아이가 엉터리 신화나 영웅담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삶에 대해 스스로의 속도로 읽고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텍스트를 만난 것이 기쁘다. 현대물리학은 생명탄생이 우연이며,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여러 상황에서 비슷한 질문을 듣고 묻기도 했다. 국내의 정치 상황과 전 지구적인 기후재앙을 겪으며 사는 매일이 불안하고 고단하다. 그래도 포기와 좌절은 진짜 마지막에 하면 되니, 뭐라도 한다.

 

눈앞이 어두워지면, 그건 아직 몸을 덜 낮춰서그렇다고, 내가 밟고 선 곳이 길이라고, 허공만 쳐다보지 말자고, 기어서라도 한 걸을 앞으로나아가자고, 예측과 낙관은 못해도, 싸워야 할 내일이 있다면 계속 하자고 새로 결심할 것이다.

 

큰 희생을 치르는 선택은 못할 것이다. 계속 부끄럽고 미안할 것이다. 다만 나는 뭐라도 하면 결코 ‘0’이 되지는 않는다는 계산을 믿는다.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될 거란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 다른 대안은 없다.

 

미래는 지금 우리가 한 모든 선택이고, 어떤 태도로 살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 책 속의 사람들이 살아간 면면을 보고 자신의 것을 다듬어 갈 기회로 삼아 봐도 좋겠다. 내가 더 이상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는 미래에도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바로 보고 애쓰며 살아 갈 힘을 키울 수 있기를.

 

독립국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자주 느낀다. 이 현실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고도 싶지만,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어 미안하다. 화만 내고 살면 지치고 무기력해진다. 눈도 귀도 닫고 싶어진다. 그렇게 도피하고 침묵하는 모든 순간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역사공부가 과문한 짧은 생각이지만, 식민지와 전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전쟁과 냉전의 산물들을 일상화시켰다고 본다. 비가시적으로 숨어들어 익숙해진 모든 악영향이 현재 목격하는 차별과 폭력과 혐오와 불의의 산실일 듯하다.

 

적극적으로 오용하고 악용하는 이들, 공동체나 사회 전체보다, 이어나갈 미래보다는 당장의 패거리 이익 계산에 무엇이든 망치고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뿌리가 친일의 역사 속에서 번창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드라마 속에서 갓난쟁이를 보내고 끝까지 총탄전을 벌이다 죽어가는 어미이자 독립운동가의 늦더라도 동지들이 친일파 네 놈을 찾아갈 거라는 대사가 사무쳤다. 그 딸이 자라 부모의 원수이자 민족반역자인 친일파를 제거하는 장면이 현실이었으면 해서 서러웠다.

 

겁쟁이에다가, 큰 희생은 감당 못하고 할 수 있는 참여와 후원과 응원만을 하며 살지만, 저자께서 소명처럼 온 힘을 다해 취재하고 조사하고 집필한 이 책을, 찬찬히 읽고 배우는 것도 참여라고 믿고 싶다. 기록은 중요하고 기억은 힘이 세고 읽고 쓰는 것은 저항이자 미래를 위한 선택일 수 있다고.

 

인간의 뇌는 왜곡을 일삼지만, 가소성도 뛰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새롭게 배울 수 있다고 배웠다. 용기 있고 대의를 삶의 가치로 알아보는 사람으로 모두가 태어나지는 못하지만, 이 작품에서 모두가 각자의 성장을 이루듯,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지향하고 애쓰는 모두가 그러모은 의지와 힘이 백 년 전의 탄환처럼, 무겁고 느리지만 반드시 표적에 정확히 도착하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모욕감에 힘들고, 빠르게 변화를 만들지 못해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싸울 내일이 있으면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반걸음 기어서라도 다가가면 될 일이다.

 

2000 페이지나 되지만, 청산리 전투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쉽다. 헌법도 무시되는 참담한 시절이지만, 마침 제헌절이라서, 이어지는 길고 긴 역사 이야기가 고프다.

 

영상으로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표현과 문체, 실존과 같이 입체적인 인물들, 꼼꼼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설계, 작가의 길고 긴 고군분투의 시간이, 어느 해 67일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도 만나고 싶다. 죽임 당하고 잊힌 이들이 화면 속에서 살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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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 주인들의 노래클럽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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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4권의 책은 저자의 어머니쪽, 북미 선주민들의 우주가 태고적 별빛처럼 반짝이고도 처연하게 펼쳐진, 신비로움과 고통이 농도를 높여가던 작품이었다. 처음 맛본 메뉴처럼 바로 꿀꺽 삼키지는 못하고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이 책은 저자의 독일계 아버지 쪽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표지부터 재밌고 기분이 가벼워진다. 비건 소시지라도 구워서 맥주를 마시면서 읽고 싶어졌다. (결국 구웠다. 소시지 볶음밥은 실수인 듯)





 

그나저나 유럽에서 머물 줄 알았는데, 독일 저격수였던 인물이 미국 식빵 맛에 반해 미국으로 와버렸다. 그리고 정육점을 연다. 전쟁은 잊혔지만 생존이 그보다 덜 힘들지는 않다. 흉흉한 시절이라 폭락과 대공황과 흉작마저 닥친다.

 

화내고 뭘 부수고 누굴 때리는 대신 노래를 부른다는 전개가 너무나 안심이라서 눈물이 고일 뻔 했다. 물론 도살이나 도살실의 존재에 속이 울렁이긴 했지만, 그 장소가 노래클럽 모음에 사용되는 것이 묘하게 유쾌했다.

 

삶을 휘두르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다양한 직군의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 등장해서 재밌기도 하고, 주류 밀매자, 보안관, 의사, 은행가가 모두 노래를 즐긴다는 점이 새삼스럽기도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님께서도 뭘 배우러 다니시고, 모임도 많았는데, 팬데믹과 더불어 사라지고 다들 급격하게 노화되신 점이 쓸쓸하고 안타깝다. 함께 노래는 부르는 장면이 그립고 아름답다. 서로 호흡을 나누는 풍경 같다.

 

물론 이렇게 즐겁게 들떠서 맥주도 맘대로 마시고 밤새 노래 부르는 이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여자들은 뭐하고 있나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가르쳐 주는 장면은 참 좋았다.



 

파편화된 관계와 사회, 매일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절,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고, 집회는 항상 수천수만 명이 모이지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어쩌면 함께 뭘 좀 같이 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하는 건가 싶을 때가 왕왕 있다,

 

인류 문명사에 전쟁이 부재한 시기는 드물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때론 생명을 위협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하더라도. 지향이 없다면, 한 걸음씩 내딛는 발걸음이 없다면 산다는 건 또 무엇인가. 왜 애쓰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영원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우리는 지극히 유한한 존재인데 어째서 우리에게 영원을 상상하는 저주가 내려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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