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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지음, 조동섭 옮김 / 세계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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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타란티노 감독의 급을 평가하는지는 모를 일이나, 별 소용없을 것 같다. 연출을 잘 하네 마네, 영화 수준이 어떠네, 뭐 이런 평가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결같이 이토록 완고하고 독특할 리가 없다.

 

20대가 보기에 조금은 기괴하고 많이 기발한 영화를 시작으로 그의 팬이 되었다. 화면이 어두운 피로 범벅이 되어도, 겁이 나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그 자극을 소비만 하는 작품이 아니라서.

 

어떤 작품의 어떤 장면들은 뇌에 새겨진 문신처럼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잊지 않아야할 것들을 수없이 잊고 사는 걸 생각하면 기이할 정도로 그의 작품이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쓰다 보니 뭔가 한 편 다시 보고도 싶다.

 

미국문화를 폭격 맞듯 접했다고 해도, 미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뭐 그리 많을까. 그러니 특히나 미국 시대극 같은 영화가 재미있을 리 만무한데, 그래도 반가워서 일단 보았다.

 

화면이 추억의(?) 색감이라 즐거웠다. 동선이 적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절제된 표현이 소란하지 않아 편안했다. 어떤 대사나 대화들은 삶의 슬픔을 아주 무겁게 담기도 해서, 속는 기분도 달달한 기분도 없이 2시간 40분을 보았다.

 

물론 옛날 미국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나 당시 시대상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해서 그 부분은 거의 놓쳤다고 본다. 가끔 귀에 익은 노래들은 잠시라도 반가웠다. 샤론 테이트 사건은 다른 책에서 읽어서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영화를 먼저 보았더니, 영화에 없던 장면과 사건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타란티노 감독의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이렇게 오래 듣기는 처음이라 즐거웠다. 영상이 지나가는 속도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후반부 히피들과의 조우는 더 재밌다. 아무래도 날을 잡아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모처럼 잘 채워진 지식정보가 아깝다. 이미 본 영화지만 적어도 두 배정도는 더 많이 보일 듯해서 얼마나 더 재미있을지 기대가 크다.

 

어쨌든 내가 말하려는 건, 지금이 바로 자네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는 거야. 이 순간을 자네는 나보다 고맙게 여기면 좋겠어.”

 

그리고 나면 속 시원하게 화면에 피가 막 튀는, 펑펑 터트리고 다 죽이는(나쁜 놈들 한정), 타란티노의 옛 영화를 한편 더 봐야겠다. 아무래도 <장고: 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 2012>일까. 그러면 두통이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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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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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하다 싶게 소설만 읽는다. 과학서도 그럭저럭 읽히는데 에세이는 읽기가 힘이 든다. 왜 그럴까 싶은데 말로 꺼내 놓지 않아도 알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손에서 놓으면 복잡한 생각들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종이책으로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 문득 두렵기도 하지만, 책은 우산이 아니라 창조된 세계라서 어느 날의 도피는 충분히 안전하고 편안하다. 도파민 분비량을 늘리라는 의존증이 심해지는데 작가의 에세이가 구원 같이 읽혔다.

 

소음처럼 들리던 불편했던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이 책에 몰두하면서 증상이 완화되었다. 문장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끼어들지 않는 느낌. 잠시 슬픔도 두려움도 복잡함도 저 멀리 물러났다. 환승의 마법인가 싶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가보지 않은 세계와 경험하지 못한 삶이 더 많다. 매일 성장하던 한 시기에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발작적인 호감을 가졌다. 덕분에 만난 멋진 세계와 사람들도 많았다. 내 취향이 되는 과정이 행복했다.


 

그때는 내 고유성이나 정체성에 대해 완고하지 않았다. 막 시작한 그림처럼 한 선과 한 색을 더하며 살다보면 언젠가 작품 같은 삶의 형태가 선명해질 거라 믿었다. 그 모든 기회와 선택을 환승이라 불러도 좋을까.

 

결국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아프고 슬프지만 힘을 내고 싶은 묘한 엔딩을 한정현 작가의 소설들에서 느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싶어 부족한 내 어휘들 속을 한참 헤맸다. 그가 불러내는 인물들과 서사가 늘 궁금해서 새 소설을 기대했다. 그런데 스핀 오프처럼 작가의 세계에 잠시 답사 오는 기분도 뜻밖에 즐겁다.

 

자꾸만 자주 휘발되는 가치에 관한 것,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나가는 시간에 의해 가치 없음이 되어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소설 속에서 지켜보고자 했던 나. 여전히 내 안에서 가치로 남겨져 있지만 타인들에 의해 무가치해지는 무언가에 대해 써보고자 했던 것이다.”

 

드라마를 볼 시간은 없고, 영화는 가능한 한 주에 한 편은 보고 싶은데 그것도 매주 여의치 않아, 보고 싶은 영화들이 한 가득이고, 책은 현재진행형으로 숨 쉬듯 읽지만 못 읽은 책, 읽고 싶은 책들이 더 많다. 이 책을 읽으니 목록이 한참 더 길어진다.

 

좋아하는 한정현 작가 따라 환승을 여러 번 하고 싶으니 오래 살고 싶어지네. 분노는 뜨겁지만 금방 지친다. 작가의 메시지처럼 좋아하는 힘으로 힘을 얻어 힘내어 힘차게 살아보자.

 

! 저도 조류공포증 있습니다. 히치콕의 <>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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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욜로욜로 시리즈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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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로 처음 만난 이금희 작가의 분량 넉넉한 장편소설이다. 그의 서사는 허술함이 없이 촘촘하면서도 막힘없이 흘러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두께에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읽히는 게 아쉬울 뿐이다.

 

역사소설은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시대적 거리감에 나도 모르게 안도하고 즐기기만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 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지난한지, 또 얼마나 허무하게 뒤집히는지 현재 목격하는 중이면서도.

 

전형적인 인간형이 아니라, 생생한 욕망과 이익에 쉴 새 없이 흔들리면서도 몸을 바로 일으키는 서사가 좋다. 나의 억울함과 무결함, 상대의 결함과 부족한 점을 한사코 특징지으려는 유혹에 책과 더불어 저항하는 기분이다.

 

간단하지 않은 서사가 잘 만든 퍼즐처럼 유쾌하게 결합하고, 인물들 간의 대조와 대비가 유동적으로 충돌하고 섞이기도 한다. 읽기 시작하면 다 못 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친일 귀족의 딸과 종의 회오리 같은 다큐영화 같기도.

 

구상 후 10년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는 고된 작업이 작품 속 인물들을 모두 살려내어 인터뷰를 한 시간이었나 싶게 현실감 있는 이야기다. 아름답고 완성된 예술품을 본 듯한 즐거움은 수많은 답사를 통해 작가가 직접 본 장소들을 시대적으로 제대로 구현한 덕분일 것이다.

 

70여 년 전에 수남이 집을 떠나 나라를 떠나 대륙을 횡단하고 저 먼 지구 반대편에 도착한 여정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젠 주말 외출도 버거워하는 내 일상에 헛헛한 웃음이 난다.



 

여성 서사가 반갑고 귀하다. 근력과 무기를 내세운 남성 가해자들의 폭력과 살해가 빈번하니 자꾸 움츠러드는 정신이, 작품 속에서 함께 벽을 부수고 뛰어넘으며 격하게 삶을 전면적으로 살아본다. 제목만 보고 슬픈 상상을 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아서 큰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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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 망상 - 어느 인턴의 정신병동 이야기
무거 지음, 박미진 옮김 / 호루스의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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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세 가지 악몽을 꾼다. 어떤 협주곡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연주회날 프로그램북에 다른 협주곡이 적혀 있는 꿈, 무대가 미끄러워 연주하다 의자에서 떨어지는 꿈, 쇼팽 콩쿠르에 다시 나가는 꿈(웃음).”

 

신비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 중에 우연히(?) ‘악몽과 관련된 조성진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대범한 천재는 악몽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웃었다. 그가 연주한 음악을 치료제로 복용하는 팬으로서 안도가 되어 기쁘다.

 

내 악몽을 공개했더니 다른 이들의 악몽도 듣는다. 전공과 하는 일에 관련된 내용의 악몽이 꼭 등장해서 울컥했다. 트라우마에 크고 작은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다른 심리학책 내용이 떠올랐다. 다들 애쓴 만큼 상처가 있다.

 

주인공이자 저자인 무거를 따라 정신병원을 다니고 여러 환자들을 만나본다. 진단명만큼 무엇도 쉬워 보이지 않은 다양한 증상이 있다. 아는 것은 알아서, 모르는 것은 몰라서 안타깝고 막막하다.

 

수십 년의 친밀한 대화를 통해서도 다 알 수 없는 것이 자신은 물론 상대방인데, 트라우마로 꽉 닫힌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용기도 방법도 대단하다. 집요하게 힌트를 놓치지 말고 심층 사고를 하는 직업이 존경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시도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잘 서로를 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비전공자다운 낙관이 생겼다. 무엇보다 대화가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듣고 말하고가 모든 것의 시작.

 

힘들지 않은 증상은 없지만, 체험자에 따라 같은 증상도 발현이 다르지만,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괴물이 보여 도망갈 곳이 없는 조현병이 있는 소년이야기에 코가 시큰하다. 물이 피로 밥이 절단된 사지로 보이는 매일이라니.

 

강한 빛의 자극에 나타나는 신경 반응이 전혀 없었다. 정말 시커먼 강물을 보고 있는 것처럼.”

 

얼마나 억눌리면 하늘이 검은 물로 꽉 차 보이는 걸까. 망상은 두렵고, 착각은 슬퍼서 자꾸 눈물이 난다. 정신질환은 문학과 예술에서 늘 소재로 쓰였다. 작품을 보고 몰랐던 것을 관련 이론을 배우고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비밀을 말할 수 없어, 슬픔을 표현할 수 없어 자꾸만 삼키는 이들은 아마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먹방을 싫어만 했는데, 한국에서 유행한 콘텐츠의 심리 기저에는 여러 가지를 삼키는 수밖에 없었던 삶의 구조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증상의 존재 자체가 환자의 생존을 위해 있다고 본다. 환자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에 증상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논픽션처럼 읽고 썼지만 이 책은 엄연한 소설이다. 반전도 있다. 나의 무지를 반성하고 사회의 차별에 부당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귀한 이야기들이었다. 관련 직종의 분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 아니기를, 질환과 증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확대되기를 힘껏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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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스토리 (보급판) - 양자역학 100년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 퀀텀 시리즈
짐 배것 지음, 박병철 옮김, 이강영 해제 / 반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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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책을 한국어로 읽은 경험이 없다. 교재도 번역서가 아니었고, 필기도 마찬가지였다. 영어와 수학이 내게 가장 익숙한 물리학 언어이다. 번역된 대중과학서나 한국인 저자의 책을 읽으면 용어들에 멈칫한다. 괄호 속 영어 단어가 없으면 개념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동시에 재미있다.

 

이 책은 배울수록 미로 같은 양자역학을 한 줄기 흐름으로 만나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과학적 경험은 힘들어도 역사적 경험은 가능하게 해주니 반갑고 귀한 책이다. 100년의 역사 속에는 내 기억 속 장면들이 등장하니, 그립기도 하다. 당시엔 낯선 고민이었던 질문이 정리되고 기록된 것도 반갑다.

 

논쟁이나 갈등의 면모 중에는 정량화(quantitative)할 수 없는 정성적(qualitative) 것들을 모두 환원하고 예측하려는 태도가 있다. 물증과 객관화가 설득과 공론에 중요한 경우에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물리학이란 관측 가능한 양을 예측하는것이라는 문장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론만큼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실험 물리학의 기억도, 이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도, 머릿속에서 재밌는 생각만 계속 하며 살고 싶다고 은밀히 바랐던 젊은 나도, 물리학은 물론 삶에 대해서도 이해가 얄팍했던 나도 양자역학의 역사를 들려주는 이 책 속 문장들과 함께 소환되고 흘러간다.

 

실체는 환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변덕을 부리지 않고 한결같은 환영이다.”(아인슈타인) 한결같아서 막막하고, 환영이라 홀가분한 이율배반적 감정도 이해될 만큼은 시달리며 꽤 오래 살았다.

 

이론물리학은 저만의 날개가 달린 존재 같기도 하다. 생각하고 또 하다보면, 실험이란 증명조건도, 지구환경도 툭 끊고, 우주공간으로 한없이 날아간다. 그 어느 순간, 과학이론은 사색적이고 형이상학적 문제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몸의 일부를 잘라 던지지 못한 모두가 계속 갈 수 밖에 없는 속도로.


 

입자물리학이 가장 재미있었다. 당시에 입자를 몇 개나 배웠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2008년인가 힉스 입자 관련 소식을 들었던 듯한데. 자연에 존재하는 24종의 페르미온 입자, 반입자까지 48, 광자와 글루온과 다른 입자들까지 추가해서 60, 마지막으로 힉스 입자까지 61.

 

815,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가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American Prometheus>라는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도, 놀란 감독의 연출인 것도 꼭 봐야할 이유다.



 

과학이 완전무결하게 논리적인 과정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몹시 지난하고 누덕누덕한 작업이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 감정도 개입하고, 비논리 혹은 반논리적인 사고도 개입한다. 대책 없이 휘둘리며 어딘지도 모를 길을 한참 걷기도 한다.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불가역한 실수인지, 인류의 한계이자 함정인지, 해법은 몰라도, 영화를 통해 무엇인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핵기술과 핵무기와 함께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즐겁기도 그립기도 하며 읽었다. 원서의 부제는, A history in 40 moments이다. 읽기를 도전하시는 모든 분들이 40번의 우주적 순간을 가능한 흥미롭게 만나 보시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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