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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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렇지만 은행나무는 너무도 곱게 물들었고 하늘은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이 마당의 공기는 샘물처럼 청량하기만 한 것일까.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3 여름방학의 어느 날, 보충수업을 마치고도 해가 지지 않아 유독 지친 날이었다. 유리문이 달린 어머니 책장을 소파 위에서 무심히 넘겨보다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옆에, <裸木>발견했다. 표지의 모든 문자가 한자로 표기된, 내용은 세로로 적힌 책이었다.

 

만났으나 알지 못한 작품과 작가, 그래도 나는 그 순간을 <나목>과의 첫 조우로 기억한다. 그 책장에는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여러 권 있었고, 해를 거듭하면 나이를 먹듯 책이 계속 늘어갔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오랜 버릇처럼 책을 꺼내 펼치곤 했다.

 

사람들은 원래가 똑바로 선 채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 권태롭고 답답해 못 견디게 태어났나 봐.”

 

20111, 한 해 프로젝트를 연말에 겨우 마무리하고, 올 해도 그렇게 살아야하는 건지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는 30대 막바지의 오후였다. 계약서에 서명을 할지, 파쇄할지 사이를 왕복하다가, 미칠 듯이 팽팽해진 신경에 지쳐가던 중, 박완서 작가님이 영면에 드셨단 소식을 화면으로 보았다. 어머니께 그 소식을 전하며 오래 전 그 날 오후가 잠시 떠올랐다.




 

일 년 휴직을 신청하고 나는, 평생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국어를 공부했다. 어떻게 공부할지를 몰라서 한국어능력시험 준비를 시작했지만, 그 핑계로 문학책을 실컷 읽었다. 한자도 없고 세로줄도 아닌 반듯하고 하얀 종이 위의 나목을 다시 만났다. 나이가 더 들어서 본 경아의 발칙함과 맹랑함이 새삼 눈에 띄고 부러웠고, 그래서 아주 조금 미웠다.

 

내가 죽은 후에도 타인의 인생이 있다는 건 참을 수 없다. 다시 전쟁이 몰려왔으면. 지금의 나는 전쟁에 의해 구제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 반백頒白의 반백半白이 되어, 차분하고 아름답고 튼튼한 표지를 착장한 세 번째 나목을 만난다. 내용을 다 아는 작품을 삼일에 걸쳐 다시 읽었다. 새롭게 번역한 문장인 듯 생경하게 느껴지는 행간들을 자주 만났다. 매운 음식을 잘못 삼킨 고역 같은 쓰라린 감정이 올라왔다.

 

정해진 삶을 낙오하지 않고 따라가는 듯 멀쩡하게 굴었던 20대의 , 문득 다 혼란스럽고 두려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던 , 이제 꿈을 다 잃어서 안전해진 독자가 되었다. ‘경아의 울울한 시선과 고단한 발길을 따라 다시 그 시절의 한풍 속을 헤매 다녔다.

 

어머니의 눈에 다시는 어떤 느낌이 담기지 않았다. 부연 눈이 다만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사람보다 더 확실하게 삶을 거부하고 있었다.”




 

전쟁을 겪지 않아 모른다는 말은 틀렸다. 그 전쟁은 모르나, 이후로도 전쟁은 그친 적이 없었다. 종류는 많아지고 상흔은 다양해졌다. 어떤 전쟁은 감쪽같이 일상으로 위장을 해서 종전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이 땅에 사는 몇 명이나 그늘진 데가 조금도 없어서 (...) 화사한 식물에 가까운, 만개한 꽃 같은 표정들을 한 이국의 아가씨들처럼 살 수 있었을까.

 

오십년쯤 살아보니, 외면하고 회피한 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불의의 사고처럼 누군가의 아주 황량한 풍경의 일각 같은 것을 목격하게도 되고, 가식 없는 나의 것이란 가난과 황폐뿐이라는 자각에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나인지 남인지 모를 너절한 풍경을 할 수만 있다면 다 부숴버리고도 싶었다.

 

다정한 친절을 결심해도 서로 나눌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자기만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서로가 알고 있는 무한반복을 산다. 삶은 그렇게 때론 공포가, 때론 다 같이 고가의 망령에 들려 붙들린 포로들처럼 생기를 잃은 의무의 강제노역 같기도 했다.

 

늙기 전에 반드시 죽겠다는 결심은 회환도 없이 무가치해졌다. 초침의 속도로 숨 가쁘게 삶의 재미난 것을 재빠르게 잃어가는 것도 삶의 비밀 중 하나라는 것을 배웠다. 그러다 문득 제 정신을 잠시 차린 사람처럼, 망각을 앓은 이처럼, 오랜 질문을 되풀이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 나만 빼놓고 저희들 끼리끼리는 다 알고 있을 게다. (...) 나만이 사람들의 어떤 질서, 대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자식뻘 나이인 경아가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조작한 말은, 버림받은 아이로는 살 수 없다는 절규로 느껴진다. 나를 사랑하고 걱정해서 기다리다 병이나 죽어버린 어머니, 라는 신화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취한 마지막 끼니 같다. 사실이길 바라며 주문처럼 내뱉은, 가련한 아이의 애달픈 간구懇求.

 

갇힌 내가 스스로는 할 수 없는 해체를 상식적이고 속물적이고 정상적인 삶만을 꿈꾸는 타인의 도움으로 이룬다. 그건 분명 어떤 구원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담지한 공간을 해체하며, 나는 관계의 단절을 육신의 해체처럼 격감한다. 그러나 죽지 않으면 해체로도 존재는 삭제되지 않는다.

 

다만 나는 후원의 은행나무들만은 그대로 두기를 완강히 고집했다. (...) 나는 아직도 그것들의 빛, 그것들의 속삭임, 그것들의 아우성을 가끔가끔 필요로 했다.”





 

고목은 나목裸木이 된다. 나목이 되어 골격뿐인 나신裸身을 드러내고도 위엄을 잃지 않는다. 나무의 본체는 겨울에 드러난 그 모습이다. 태어나 자라며 생긴 온갖 상흔을 수피樹皮에 기록한 맨 몸. 잎도 꽃도 생명의 본체가 아니다. 늘 드러나 있는 진실은 때론 보이지 않을 뿐.

 

인간도 그럴까. 나신이 진실이자 본체일까. 인간이 벗어던져야할 옷가지는 몇 개일까. 인간의 진실은 무엇일까. 어딘가는 가려지고 얼룩지고 감춰진 고유한 무늬를 새겨 넣은 존재가 각자의 본체인걸까.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고독한 존재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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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24-06-27 0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정말 예뻐요^^

poiesis 2024-06-28 17:29   좋아요 0 | URL
^^ 경애의 마음으로 최대한 단정하게 헌사드리고 싶었답니다. 알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4-07-31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04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