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범도 1~2 - 전2권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자연과학을 전공한다는 핑계로, 한국근현대사 공부를 등한시해서 평생 무지했다. <미스터 션샤인> <암살> <밀정> <봉오동 전투> 등 영상을 통해 조금 배우고 잠시 기억하는 수준이었다.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식을 통해 현실에서 못 다한 미완의 역사와 약속을 재소환한 경험이, 역사서와 역사소설을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범도> 출간일이 봉오동 전투 개전일이라 의미가 깊다.
과문한 나와 달리, 어른들에겐 그저 9년 전이지만, 2014년 참사와 정치적 격변을 지켜본, 우리 집 십 대 아이들은 시사와 역사에 관심이 많다. 어른들이 낯 뜨거워지는 솔직한 의견과 사회비판도 들려준다.
2022년 봄, 과거의 기록으로 일단락되었다고 착각한 전쟁이 먼 나라에서 발발하고, 국내에서는 친일 청산에 실패한 대가를 처참하게 치르는 작금이다. 이제라도 가족 모두 한국사와 세계사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과 <하얼빈>에 이어 <범도>로 가족 책모임을 이어나갔다. 누구의 삶도 전체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여기저기 조각들을 모아 전체 풍경을 채워나가는 읽기와 공부가 때론 벅차고 때론 서글펐다.
생생하게 살아계신 홍범도 장군을 따라 다니는 이 책을 읽다가 장군이 머문 마지막 집의 사진을 보고 눈물이 쏟아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잊고, 어떤 허깨비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오늘 살아 있는 나는 평생의 내가 살아오기를 선택한 결과이인 동시에, 내가 살 수 있도록 애써준 모든 이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내 삶에는 타인의 노력과 꿈도 묻어 있다. 역사를 잊지 않고, 귀하게 배우고,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더 빨리 더 많이 더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면, 이기고 죽이는 각자도생의 경쟁 사회 대신 다른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반민 특위 해체라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어도, 두 번째 단추부터는 제대로 채웠을 수 없었을까. 분단된 남한 내부의 학살과 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복잡한 심정으로 다를 수 있었던 상상들을 서럽게 이어갔다.
그 아쉬움을 작가가 소설 범도에서 안중근과 홍범도 두 분이 만나는 설정으로 위로해준다. 홍범도 대장이 추천해준 총을 들고 안중근 의사가 단독 작전에 착수한다. 현실이었다면 싶은 역사에 명치 어디쯤이 아팠다.
고등학생인 큰 아이는, ‘생계를 위해 열다섯의 나이에’ 입대했다가 떠돌이 포수로 살아간, 홀로 일본군을 처단한 범도에 놀라고, 단단한 생각과 실행력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게 행복하다고 느낄 때마다, 책에서 만난 독립 운동가들이 생각날 거라고 한다. 자신은 도저히 감수할 수 없을 희생을 치르며 굽힘없이 살아가신 분들이 놀랍고, 감사를 전할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결단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더 좋겠지만,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차마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지는 현재의 풍경은,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할 수 있었던 ‘격발의 순간’을 거듭 놓쳤기 때문이라는 회환이 두껍게 쌓여간다.
신분제 사회의 그늘이 짙었던 시절의 독립운동은 물론,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참여한 분들의 면면이 다양하고, 여러 직업군이 함께여서 먹먹하다. 엘리트가 주도하는 역사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강고한지 절감한다. 소설 속에서, 머슴, 포수, 나팔수, 승려, 막일꾼, 광부 등의 일을 하던 이들이 개연성을 얻어 빛나는 직조물을 채워나가는 시간이 눈물겨웠다.
여성들이 조력자나 소비자로만 장식되거나 소비되지 않고, 아내로서, 동지로서 의미 있는 생을 사는 묘사도 반가웠다. 백무아와 더불어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서 처음 만난 김알렉산드라도 반갑고 좀 더 잘 알고 싶어졌다.
내가 어릴 적 위인전은 오히려 유해했다. 그래서 아이가 엉터리 신화나 영웅담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삶’에 대해 스스로의 속도로 읽고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텍스트를 만난 것이 기쁘다. 현대물리학은 생명탄생이 우연이며,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여러 상황에서 비슷한 질문을 듣고 묻기도 했다. 국내의 정치 상황과 전 지구적인 기후재앙을 겪으며 사는 매일이 불안하고 고단하다. 그래도 포기와 좌절은 진짜 마지막에 하면 되니, 뭐라도 한다.
눈앞이 어두워지면, “그건 아직 몸을 덜 낮춰서” 그렇다고, 내가 밟고 선 곳이 길이라고, 허공만 쳐다보지 말자고, “기어서라도 한 걸을 앞으로”나아가자고, 예측과 낙관은 못해도, “싸워야 할 내일”이 있다면 계속 하자고 새로 결심할 것이다.
큰 희생을 치르는 선택은 못할 것이다. 계속 부끄럽고 미안할 것이다. 다만 나는 뭐라도 하면 결코 ‘0’이 되지는 않는다는 계산을 믿는다.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될 거란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 다른 대안은 없다.
미래는 지금 우리가 한 모든 선택이고, 어떤 태도로 살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 책 속의 사람들이 살아간 면면을 보고 자신의 것을 다듬어 갈 기회로 삼아 봐도 좋겠다. 내가 더 이상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는 미래에도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바로 보고 애쓰며 살아 갈 힘을 키울 수 있기를.
독립국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자주 느낀다. 이 현실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고도 싶지만,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어 미안하다. 화만 내고 살면 지치고 무기력해진다. 눈도 귀도 닫고 싶어진다. 그렇게 도피하고 침묵하는 모든 순간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역사공부가 과문한 짧은 생각이지만, 식민지와 전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전쟁과 냉전의 산물들을 일상화시켰다고 본다. 비가시적으로 숨어들어 익숙해진 모든 악영향이 현재 목격하는 차별과 폭력과 혐오와 불의의 산실일 듯하다.
적극적으로 오용하고 악용하는 이들, 공동체나 사회 전체보다, 이어나갈 미래보다는 당장의 패거리 이익 계산에 무엇이든 망치고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뿌리가 친일의 역사 속에서 번창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드라마 속에서 갓난쟁이를 보내고 끝까지 총탄전을 벌이다 죽어가는 어미이자 독립운동가의 늦더라도 동지들이 친일파 네 놈을 찾아갈 거”라는 대사가 사무쳤다. 그 딸이 자라 부모의 원수이자 민족반역자인 친일파를 제거하는 장면이 현실이었으면 해서 서러웠다.
겁쟁이에다가, 큰 희생은 감당 못하고 할 수 있는 참여와 후원과 응원만을 하며 살지만, 저자께서 소명처럼 온 힘을 다해 취재하고 조사하고 집필한 이 책을, 찬찬히 읽고 배우는 것도 참여라고 믿고 싶다. 기록은 중요하고 기억은 힘이 세고 읽고 쓰는 것은 저항이자 미래를 위한 선택일 수 있다고.
인간의 뇌는 왜곡을 일삼지만, 가소성도 뛰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새롭게 배울 수 있다고 배웠다. 용기 있고 대의를 삶의 가치로 알아보는 사람으로 모두가 태어나지는 못하지만, 이 작품에서 모두가 각자의 성장을 이루듯,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지향하고 애쓰는 모두가 그러모은 의지와 힘이 백 년 전의 탄환처럼, 무겁고 느리지만 반드시 표적에 정확히 도착하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모욕감에 힘들고, 빠르게 변화를 만들지 못해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싸울 내일이 있으면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반걸음 기어서라도 다가가면 될 일이다.
2000 페이지나 되지만, 청산리 전투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쉽다. 헌법도 무시되는 참담한 시절이지만, 마침 제헌절이라서, 이어지는 길고 긴 역사 이야기가 고프다.
영상으로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표현과 문체, 실존과 같이 입체적인 인물들, 꼼꼼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설계, 작가의 길고 긴 고군분투의 시간이, 어느 해 6월 7일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도 만나고 싶다. 죽임 당하고 잊힌 이들이 화면 속에서 살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