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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평점 :
멸칭처럼 들리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수식어가 붙은 제목에 놀랐습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출간되지 않았겠지요. 못생겼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 애처로움을 느낀 저자가 그렇지만은 않다고 항변하고 보호하고자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가 잦지 않고 주택에서 오래 살던 시절 서울에서 태어난 이들은 자기 동네 말고는 잘 모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학교와 직장에 따라 이동하게 되면서, 서울 내에서 고향과 낯선 곳이란 분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공간은 생존의 필수조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잊은 기억도 담지한 존재라서 누구에게나 늘 특별합니다. 조부모님 주택이 리모델링되었을 때의 서운함은 내가 거주하는 가족이 아님에도 대단했습니다. 상실의 아픔이 느껴졌지요.
본가와 내 집이라는 개념이 점차 흐려지고, 집을 갖고 싶으나 몇 호라는 이름의 아파트에 살면서, 일부는 체념했고 일부는 망각했습니다. 이동거리도 활동 영역도 넓어지다 보니 사대문 안에서는 걸어서 가지 못할 곳도 없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모르고 가본 적 없는 장소들이 가득합니다. 걷는 여행의 에세이처럼, 보고 읽는 모든 것이 사회학 공부가 되는 시간처럼 의미 깊게 읽고 배웁니다. 현실 산책은 너무 힘든 계절입니다.
못생긴 거 무엇일까요. 사는 사람이 아닌 보기에 불편하다는 뜻일까요. 저자의 발걸음은 정직하게 도시의 삶을 열어나갑니다. 건축학도의 시선과 저널리스트의 질문이 어우러진 특별한 책이기도 합니다.
경사가 60-70도인 길이라니, 작정한 등산이라도 어려운 각도를 일상의 골목길로 사용하며 살았던 분들의 삶이 무척 고되 보입니다.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동네 분들에겐 화재로 인한 희생이 없었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인구는 계속 유입되고 살 곳은 도시계획 안에서 함께 고민되지 않았던 고단한 시절이 그 상태 그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내버려진 듯해서 기분이 울적하기도 합니다. 마침내 재개발 지구가 되면 원주민에게 기쁜 일이었을까요.
“재개발 사업이 끝나고 원주민이 재정착하는 비율은 20~30퍼센트 정도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재개발로 깔끔하고 편리하게 다듬은 새 터전에 계속 살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위해 집과 동네를 '다시' 짓는다는 말인가요?”
반듯하고 깨끗하고 말쑥하게 인위적으로 형성된 거리와 집은 보이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겠지요.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고 유쾌하게 말하던 분들이 있던 오래 전 낡고 멋졌단 세운상가를 떠올려 봅니다.
건축과 사회학의 시선이 강할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재개발 관련 다양한 사례들과 결과들을 보니, 우리가 배워야할 시행착오와 멍청함과 무책임으로 겪어야할 시행착오를 구분해서 보게 됩니다. 행정의 오류는 무한대인가요.
못생긴 곳은 모조리 사라져야한다는 것은, 흔적도 남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은 끔찍한 파시즘같이도 들립니다. 인간이 만든 것 말고도 가치 있는 풍경에는 ‘만들어진’ 것들이 있습니다. 그 자체로 문화유산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오래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천만이라는 세계에서도 몇 없는 메가시티가 서울이지만, 여전히 사회 공동체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보존해야 할 것, 보호해야할 사람들은 어디이며 누구일까요. 지자체의 계획에 따라 살던 곳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들이 생기는 건 괜찮은 건가요.
100년, 200년이 넘은 건물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국가들에 비해, 건축조차 소비하고 버리고 새로 지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의 한국사회에는 건축쓰레기도 엄청납니다. 유례없는 멍청한 낭비며 기후재앙의 시대에는 범죄에 준한다고 믿습니다.
“누군가 보기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못생긴 구도심과 산동네의 풍경, 거기에는 그 나름의 복잡한 맥락이 존재합니다. 공공의 책무는 그 맥락을 최대한 존중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설계하는 것이지, 앞장서 맥락을 무시하고 파괴하라고 선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는 백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기 동네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지는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요. 시민들의 자치조직들이 많아지고, 행정은 지원을 늘리면 좋겠습니다. 동네마다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고 아름다워지면 좋겠습니다.
다음 산책에는 조망만 하고 투시하지 못한 풍경을 찾아보려합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이웃들을 오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