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여성 잔혹사
서명숙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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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어딘가에서 기억된 이미지에서 비롯된 고정된 형태이다.

가늘고 긴 손가락에 하얀 담배를 가볍게 잡고

한숨처럼 긴 호흡을 천천히 뱉는 일...

 

판타지를 실행하기엔 기관지가 너무 허약했다.

담배 없이도 온갖 질환을 겪으며

겨우 숨 쉬고 산다.

 

학창시절엔 어딘가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면 가장 먼저 알아서

친구들이 지표생물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새벽에 누벨바그 영화감독 트뤼포에 관한 책을 조금 읽다가

사진 자료들을 보니 담배와 담배 연기가 뽀얗게 가득...

 

출처를 알 수 없는 내 판타지 이미지와

흑백사진 속 무해하게 보이는 담배와 달리

잔혹사란 제목을 가진 이 책에는 잔혹한 서사가 있을 것이다.

 

굿즈를 구입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지 꽤 되었는데

참지 못하고 설레며 구입했다.

결심이 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림 : <The Wind in the Willows> Chris Du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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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리커버)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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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등바등

 

며칠 전 일기에 아등바등이란 표현을 썼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등바둥이라 쓴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하는 것이 새로 생긴 취미가 되었다.

 

12월이다. 쉬웠던 적은 없었지만 이젠 체력이 닳아서 어쩌면 무난히 괴롭고 조금 뒤척이며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돌이켜보니 아등바등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비참한 일로 여기면서 건성으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건성으로 살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고, 지금은 여러모로 아등바등이다. 진지하게 애쓰며 산 지는 오래되었고, 애써도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받아들이는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12월은 그런 시간이다. 한 해 동안의 아등바등의 시간의 모두 목격하고, 평가하고, 마무리하고, 포기하고, 답답해하고, 늘 떠나고 싶은 시간.

 

아등바등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절박하게 애쓰지 않으면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집을 고치며 나는 진실로 그렇게 믿었다.”


 

이사에 대한 생각을 오래했다. 지나온 집들에 대해 사유할 줄 모르고 살지 않은 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니 어리석다. 원하는 형태의 이사가 집만 바꾸는 일이 아니라서... 어리석게도 오래 집착하고 아무런 행동을 못하는 중이다.

 

내가 지낼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간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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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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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식에 즐거워서 웃었다. 책보다 참사가 먼저 도착했다. 꽉 붙잡을 책이 있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한 일이었다. 11월이 아프고 무서워서 감정은 허등지둥... 막 살았다. 화도 내보고 잊어도 보고 찾아도 보고 외면도 해보고.


 

떨어뜨리지 못하는 문장들이 줄곧 따라다녔다.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이들 틈에서, 저자의 날카로움과 정확함은 아주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뉴스타파에서 유가족 분들의 육성을 처음 들었다. 헉헉 울면서 봐야했기 때문에 저자의 건조한 감성이 어제도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132


 

한 달분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는 기분인데 그 약의 효과가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다. 기억력은 신뢰하기 어렵고 관리가 어려워지는 화는 불쑥거린다. 11월이 다 채워지면 이 책을 잡은 손을 놓을 것이다. 다른 일상을 살아가려 한다. 짧은 감사의 기록을 남긴다.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은 제목을 가진 책, 자신감은 도저한 내용에서 기인할 것이다. 시를 안내해주는 글을 따라 여러 삶 속으로 걸어 다녔다. 대부분이 오독이겠지만 아쉽거나 나쁘지 않다. 미문들 덕분에 거칠어지는 생각과 튀어나오려는 욕을 많이 삼킬 수 있었다.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317


 

나는 그저 소식을 들은 자일뿐인데... 너무나 슬프다. 유가족 중 한 분이 살아남은 이들, 부상당한 이들, 그곳에 있었던 것만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은 누구라도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공개해두었다.

 

애도는 시작도 못했고 장례는 끝나지 않았다. 얼굴을 덮고 이름을 가리고 함부로 해치워버린 거짓 애도, 거짓 문상, 무례한 가짜들. 올 해 겨울은 서늘한 분노로 길고도 추워질 것이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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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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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선에 뭔가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를 리 없었다. 말하자면 못 알아듣는 언어여도 그게 자기를 욕하는 말이면 다 알아듣는 게 사람인데 뱉은 적 없지만 확실히 존재하기는 하는 마음이 자신의 시선에서 읽히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게 정제된 문장들, 쉽게 술술 읽히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가장 천천히 읽고 싶은 책들 중 하나였다. 필사가 제격인데 그러려면 통필사가 될 듯해서 일단 거듭 읽기로 했다.

 

사실 신입사원 이야기는 내게서 많이 멀어진 풍경이다. 늙고 지친 중년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소재도 때론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주를 관찰하는 저자의 시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무척 무서웠다. 타인의 시선... 관찰... 접근...

 

생각은 무해하다고 가장 주의해야할 건 행동이라고 믿지만, 몹시 복잡한 여러 감정을 맛보면서, 김단의 성격, 생각, 심경들에 나도 함께 휘둘렸다. 소실집이라서 표제작은 [나주에 대하여]는 하나의 단편일 뿐이기도 하지만, 헤어나오기가 무척 힘들었다.

 

없던 기억도 생길 지경이 되어, 혹시 나도 살면서 어느 시기에 누군가를 이렇게 관찰한 내밀한 시간이 있었나, 나 자신으로부터 숨긴 비밀이 있나, 하는 자기검열을 했을 지경... 이렇게 짧은 작품인데 흡인력은 강력했다.

 

다른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무척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체가 좀 이상했을 뿐이다. 애정어리고 조심스러운 말에 사람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시선과 차분한 끈기로 사람의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는 작가는 누군가의 한 가운데서 뽑아낸 듯한 문장을 전해준다. 감탄스럽고 때론 모르고 살고 싶은 무섭기도 한 진실이 묻은.

 

독립, 절교, 파혼, 끊어진 관계들의 기록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어딘가에 아직 찾지 못한 근육이 있을 것이다.”

 

상처가 흉터가 되면 통증은 사라지고 경험이 된다고까지는 생각해봤는데, 관계들의 기록이 근육이라는 힘이 되는 사유가 너무나 반갑다. 근육을 잃어가는 나이라서 더욱... 찾지 못한 근육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새 근육을 만들면서 살고 싶다는, 정말 오랜만에 어떤 기대가 생긴다.

 

단단한 저자가 건네는 든든한 이야기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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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뇌과학 -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
리사 제노바 지음, 윤승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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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빈 심포니와 베토벤 협연한 공연을 동영상으로 보고 들었다. 도중에 베를린에서 오래 살다 한국에 거주 중인 이웃이 생각나서 링크를 건네 드렸다https://www.youtube.com/watch?v=Bbr8RZlMLXI

 

그의 연주는 원작의 무게와 열기를 덜어내는 냉철한 분위기가 있어서(완전 사적인 감상)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앵콜곡은 헨델의 흥겨운 대장장이 변주곡이었는데, <모비 딕>에서 대장장이 파트를 읽던 중이라서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이 감상 몇 줄은 오늘 다시 연주를 들으며 기억해 낸 것이다. 그러니까... 그 좋은 시간을 자면서 홀랑 거의 다 잊었다. 연주 자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시력과 기억력의 약화 속도가 비슷한 것도 같고, 하루 중에 얼마를 잊어버리는지 하루가 점점 더 짧게 느껴진다. 불로초를 찾으러 떠날 생각은 없지만 한 해 한 해가 무섭다. 아직 반백년도 채 못살았는데 뭔가 자해 같은 걸 하며 잘못 살았나 싶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철렁했던여러 망각의 순간들이 상기되었다. 저자는 거듭해서 걱정하기는 이르다고, 주의를 더 기울이자고, 아직 정상 작동 중이라고 위로하지만... 기억하고 망각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원래 그랬고 어쩌면 더 창작적일 지도 모르나...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런 재구성이 즐거울까...

 

아마도 의미 있는 것만 남기고 모두 잊어버리길 바라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기대일 것이다. (...) 이런 기억은 내가 나임을 느끼게 해주고, 인생을 하나의 서사로 인식하게 해주며, 타인과의 연결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우리의 뇌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지금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248

 

막내인 자신부터 잊어버린 어머니와 살아서 하는 이별을 경험했다고 하던 친구의 이야기가 화상처럼 뜨겁게 떠오른다. 노화란 참 두려운 일이다.

 

<스틸 앨리스>의 앨리스는 50세 언어학자였다. 말과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나인 것은 맞지만 나가 아니게 된 것도 맞지 않은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내 기억을 쥐어뜯기는 것처럼 너무 슬펐다. 그는 50세였다. 그 언저리의 나는 두렵다.




기억을 잊는다는 것을 잊을 때까지기억을 잃어가는 그가 견디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흐르는 출혈과 같았다. 따뜻한 이상을 보여주는 영화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히 위로 받을 수가 없었다.

 

뇌과학 책들을 읽으며 많이 놀랐고 많이 배웠다. 실망도 컸고 홀가분해진 부분도 컸다. 인간의 뇌가 이렇게 기능하는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잠시라도 어떤 주제로 대화하고 공감하고 합의에 이르는 모든 것이 특이한 기적 같은 일이구나... 오히려 감탄하게 되었다.



저자가 힘껏 전하는 메시지는 잘 받았다. 분명 사람도 삶도 생명도 기억보다 중요하다. 그래도 가능한 오래 저항하고 싶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건강하지 않은 식단을 최대한 줄여보자. 너덜너덜해진 해마라도 아껴보자.

 

걷고 뛰고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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