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뇌과학 -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
리사 제노바 지음, 윤승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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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빈 심포니와 베토벤 협연한 공연을 동영상으로 보고 들었다. 도중에 베를린에서 오래 살다 한국에 거주 중인 이웃이 생각나서 링크를 건네 드렸다https://www.youtube.com/watch?v=Bbr8RZlMLXI

 

그의 연주는 원작의 무게와 열기를 덜어내는 냉철한 분위기가 있어서(완전 사적인 감상)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앵콜곡은 헨델의 흥겨운 대장장이 변주곡이었는데, <모비 딕>에서 대장장이 파트를 읽던 중이라서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이 감상 몇 줄은 오늘 다시 연주를 들으며 기억해 낸 것이다. 그러니까... 그 좋은 시간을 자면서 홀랑 거의 다 잊었다. 연주 자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시력과 기억력의 약화 속도가 비슷한 것도 같고, 하루 중에 얼마를 잊어버리는지 하루가 점점 더 짧게 느껴진다. 불로초를 찾으러 떠날 생각은 없지만 한 해 한 해가 무섭다. 아직 반백년도 채 못살았는데 뭔가 자해 같은 걸 하며 잘못 살았나 싶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철렁했던여러 망각의 순간들이 상기되었다. 저자는 거듭해서 걱정하기는 이르다고, 주의를 더 기울이자고, 아직 정상 작동 중이라고 위로하지만... 기억하고 망각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원래 그랬고 어쩌면 더 창작적일 지도 모르나...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런 재구성이 즐거울까...

 

아마도 의미 있는 것만 남기고 모두 잊어버리길 바라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기대일 것이다. (...) 이런 기억은 내가 나임을 느끼게 해주고, 인생을 하나의 서사로 인식하게 해주며, 타인과의 연결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우리의 뇌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지금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248

 

막내인 자신부터 잊어버린 어머니와 살아서 하는 이별을 경험했다고 하던 친구의 이야기가 화상처럼 뜨겁게 떠오른다. 노화란 참 두려운 일이다.

 

<스틸 앨리스>의 앨리스는 50세 언어학자였다. 말과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나인 것은 맞지만 나가 아니게 된 것도 맞지 않은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내 기억을 쥐어뜯기는 것처럼 너무 슬펐다. 그는 50세였다. 그 언저리의 나는 두렵다.




기억을 잊는다는 것을 잊을 때까지기억을 잃어가는 그가 견디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흐르는 출혈과 같았다. 따뜻한 이상을 보여주는 영화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히 위로 받을 수가 없었다.

 

뇌과학 책들을 읽으며 많이 놀랐고 많이 배웠다. 실망도 컸고 홀가분해진 부분도 컸다. 인간의 뇌가 이렇게 기능하는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잠시라도 어떤 주제로 대화하고 공감하고 합의에 이르는 모든 것이 특이한 기적 같은 일이구나... 오히려 감탄하게 되었다.



저자가 힘껏 전하는 메시지는 잘 받았다. 분명 사람도 삶도 생명도 기억보다 중요하다. 그래도 가능한 오래 저항하고 싶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건강하지 않은 식단을 최대한 줄여보자. 너덜너덜해진 해마라도 아껴보자.

 

걷고 뛰고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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