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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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선에 뭔가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를 리 없었다. 말하자면 못 알아듣는 언어여도 그게 자기를 욕하는 말이면 다 알아듣는 게 사람인데 뱉은 적 없지만 확실히 존재하기는 하는 마음이 자신의 시선에서 읽히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게 정제된 문장들, 쉽게 술술 읽히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가장 천천히 읽고 싶은 책들 중 하나였다. 필사가 제격인데 그러려면 통필사가 될 듯해서 일단 거듭 읽기로 했다.

 

사실 신입사원 이야기는 내게서 많이 멀어진 풍경이다. 늙고 지친 중년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소재도 때론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주를 관찰하는 저자의 시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무척 무서웠다. 타인의 시선... 관찰... 접근...

 

생각은 무해하다고 가장 주의해야할 건 행동이라고 믿지만, 몹시 복잡한 여러 감정을 맛보면서, 김단의 성격, 생각, 심경들에 나도 함께 휘둘렸다. 소실집이라서 표제작은 [나주에 대하여]는 하나의 단편일 뿐이기도 하지만, 헤어나오기가 무척 힘들었다.

 

없던 기억도 생길 지경이 되어, 혹시 나도 살면서 어느 시기에 누군가를 이렇게 관찰한 내밀한 시간이 있었나, 나 자신으로부터 숨긴 비밀이 있나, 하는 자기검열을 했을 지경... 이렇게 짧은 작품인데 흡인력은 강력했다.

 

다른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무척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체가 좀 이상했을 뿐이다. 애정어리고 조심스러운 말에 사람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시선과 차분한 끈기로 사람의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는 작가는 누군가의 한 가운데서 뽑아낸 듯한 문장을 전해준다. 감탄스럽고 때론 모르고 살고 싶은 무섭기도 한 진실이 묻은.

 

독립, 절교, 파혼, 끊어진 관계들의 기록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어딘가에 아직 찾지 못한 근육이 있을 것이다.”

 

상처가 흉터가 되면 통증은 사라지고 경험이 된다고까지는 생각해봤는데, 관계들의 기록이 근육이라는 힘이 되는 사유가 너무나 반갑다. 근육을 잃어가는 나이라서 더욱... 찾지 못한 근육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새 근육을 만들면서 살고 싶다는, 정말 오랜만에 어떤 기대가 생긴다.

 

단단한 저자가 건네는 든든한 이야기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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