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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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식에 즐거워서 웃었다. 책보다 참사가 먼저 도착했다. 꽉 붙잡을 책이 있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한 일이었다. 11월이 아프고 무서워서 감정은 허등지둥... 막 살았다. 화도 내보고 잊어도 보고 찾아도 보고 외면도 해보고.


 

떨어뜨리지 못하는 문장들이 줄곧 따라다녔다.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이들 틈에서, 저자의 날카로움과 정확함은 아주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뉴스타파에서 유가족 분들의 육성을 처음 들었다. 헉헉 울면서 봐야했기 때문에 저자의 건조한 감성이 어제도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132


 

한 달분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는 기분인데 그 약의 효과가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다. 기억력은 신뢰하기 어렵고 관리가 어려워지는 화는 불쑥거린다. 11월이 다 채워지면 이 책을 잡은 손을 놓을 것이다. 다른 일상을 살아가려 한다. 짧은 감사의 기록을 남긴다.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은 제목을 가진 책, 자신감은 도저한 내용에서 기인할 것이다. 시를 안내해주는 글을 따라 여러 삶 속으로 걸어 다녔다. 대부분이 오독이겠지만 아쉽거나 나쁘지 않다. 미문들 덕분에 거칠어지는 생각과 튀어나오려는 욕을 많이 삼킬 수 있었다.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317


 

나는 그저 소식을 들은 자일뿐인데... 너무나 슬프다. 유가족 중 한 분이 살아남은 이들, 부상당한 이들, 그곳에 있었던 것만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은 누구라도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공개해두었다.

 

애도는 시작도 못했고 장례는 끝나지 않았다. 얼굴을 덮고 이름을 가리고 함부로 해치워버린 거짓 애도, 거짓 문상, 무례한 가짜들. 올 해 겨울은 서늘한 분노로 길고도 추워질 것이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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