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로즈 트러메인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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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뼈와 같다. 생존하기 위해 뼈가 필요한 생물들이 몸속에 뼈를 만들거나(내골격), 몸밖에 만들거나(외골격), 단단한 껍데기를 만들거나 한다고. 인간은 내골격을 만들고 옷을 입고 껍데기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산다.

 

그러니 집은 생존의 필수품이고 권리가 되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생존도 그 이상의 무엇을 하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살기 위해 필요한 집인데, 집을 마련하기 위해 삶을 소진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도 집을 못 구하고 죽기도 한다.

 

여권검사도 국경선도 없이 여러 국가를 다니는 유럽의 상황에서는 디아스포라의 삶과 국적이 밀접하다. 한국사회에서는 국적이 같아도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아주 많다. 아프고 슬프고 분노가 가득한 사회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그리움과 슬픔처럼 분노 대신 고요하게 선한 인물을 만나게 한다. 고향과 집과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 가기 위해,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희망보다 빠른 상실을 겪는.

 

그 세상은, 일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가 등골이 휘도록 일할 곳이었다.”



 

조금만 덜 힘들어도, 기회만 있으면 몸이 부서져라 일할 그런 성실한 사람들이 그 작은 바람을 찾기가 이렇게 힘든 세상이 결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드는 풍경들만 지나간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사람들, 일터에서 사망한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매해 기록될 뿐 예방되지 않는다. 매일 누군가가 일하다 죽는다. 경영 악화는 노동자 탓이 아니라 경영자 탓이지만, 악화의 피해는 해고로 닥친다.

 

법이 있어도 불법을 태연히 저지르며 해고를 남발하고, 재판을 통해 복직명령이 떨어진 이들을 일시 고용했다 다시 해고한다. 눈이 아픈 폭염에 아스팔트 바닥에 꿇어앉아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하는 질문에 토할 듯 어지럽다.

 

삶이란 일시적인 행복감과 우연히 만난 선인의 호의로 채워지고 빛나면 충분히 좋은 것일까. 배가 고픈 이에게 상큼한 음료를 주어도 좋은 것일까. 마을 전체가 수몰되는데, 의미 있는 장소가 모두 사라지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이주할 충분한 돈이 있으면 괜찮은 것일까.

 

글이 어두운 것은 결말을 스포일링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변명해본다. 선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고, 꿈은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고, 태어난 조건이 무엇이건 응원하고 싶은 사람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누구나의 현실이기를 바라는. 요즘은 이야기로도 불행을 감당할 힘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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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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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빌런을 만났다. 두렵다거나 잔인해서가 아니라 최고로 싫은 유형이다. 등장하면서부터 눈앞이 깜깜했다. 앞으로 얼마나 이 개똥철학을 들어야할까. 짐작보다 말이 더 많았다. 상상 속에서 욕을 하며 1장을 읽고 책을 덮었다.

 

수다스러운 악의 얄팍함을 알고 나니 빌런에게 아무런 동정심도 공감도 없어서 가뿐하고 후련한 것은 장점이다. 빨리 잊고 싶은데 한동안 기억에 달라붙어 있을 정도로 작가가 창작한 인물이 대단했다.

 

또 다른 장점은 그 반대편에서 폭발을 막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이들의 면면이다. 초능력자나 천재가 아니라서, 정의감이나 사명감에 불타지 않아서 좋았다. 현실 일상과 다큐에서 만날 불완전해서 완벽한 인간들이다. 이들의 매력이 덜했다면 완독 못 할 뻔.

 

그러니까 우리는 낙원을 만들지도 못하고 어려움이 닥치면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고자 고군분투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존재이다. 나는 엉망진창이 된 채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애쓰는 이들이 좋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 누린 것 모두 그런 시행착오와 노력을 통해 다듬어진 것들이다. 한 번에 매끄럽게 손쉽게 얻은 지식은 한 조각도 없다. 우주시대가 열렸다는 오늘날에도 실패와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그래서 조잘조잘 타인의 약점을 실실거리며 공격하고, 주류 거대 담론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듯하지만, 무결점과 완벽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 같지 않은, 현실도 사람도 모르는, 이해할 지능이 없는 빌런이 더 싫다. 뭐라도 노력해본 사람은 다 아는 것을 모르는 엉터리 xx.



 

결국 대단하게 떠들어낸 욕망의 정체는 참 비루하기도 하다. 이 모든 캐릭터들이, 내가 느끼는 반감과 격한 감정들이, 작가가 삶을 환기해보라고 보낸 메시지와 기회라고 여긴다. 누굴 실컷 미워했더니 좀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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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구한 라이프보트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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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신을 구명한 듯한 작품이다. 형태가 무엇이건 사람은 누구나 붙들고 버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 무엇이건... 가능하면 모든 신과 종교가 전쟁도 차별도 파괴도 멈출 수 있는 가이드였다면 좋았겠지만.

 

이 불만은 세상 모든 종교가 사라진 세상을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학대하고 죽이는 이들이 여성의 돌봄과 배려, 아니 존재가 모두 사라진 세상을 모르듯이.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기록하는 이들이 어떻게든 힘을 내는 소식을 듣는다. 희망과 기적을 바라며 움켜쥔 아귀의 힘이 다 빠지고, 아무도 버티지 않을, 혹은 못할 시간이 올까봐 두렵다. 나는 겁쟁이라서 남보다 빨리 포기할 지도, 겁쟁이라서 마지막까지 포기를 못할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설정이 초호화요트 침몰 후 구명보트 안이라 불과 얼마 전에 읽은 기이한 소식이 떠올랐다. 묘하게도 초호화여객선이 침몰한 근해에서 그 초호화여객선을 연구하던 이를 포함, 다섯 명의 부호들이 또 침몰한 사고.

 

인류는 영향력이 거대한 - 대체로 유해 - 문명을 만들었고, 스스로를 모든 생물의 최상위에 두었다. 인간 사회에서 부호들은 스스로를 더 대단한 존재로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이야기에서도 인간이 가치를 부여한 모든 것이 별 소용없는 바다라는 환경이 경이롭다.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느끼려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필요해.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느끼려면 바다만 있으면 되는데.”

 

배움이란 대개 두 종류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모르던 세계가 확장되고 모르던 존재를 알게 되어 기쁘고 황홀해지고 더 아름다워 보이는 마법 같은 기쁨. 혹은 인간의 과오를 절감해서 부끄럽고 두려워지는 형벌 같은 자각.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무엇도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망망대해 구명보트에 힘이 미치지 못한다. 생존은 그래서 믿음을 요구하는 걸까. 구명보트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내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기도와 이야기의 주제가 생존에 집중되는 시절이다.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은 그렇다. 인간이 죽으면 신도 사라진다. 아직 살아 있는 지금, 우리가 아는 바다와 육지를 지구 풍경으로 지속시켜야할 텐데.


 

예측되는 상실을 경험하기 전에 상실로 인한 통증이 점점 더 커진다. 이 책은 대상이 무엇이건 상실감을 다독일 것이다. 그러니 아직 낫지 않은 상처 입은 이들은, 잠시 붙들 물성 있는 종이책으로 만나면 더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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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3 소설 보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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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한국 문학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설렌다. 무척 낭만적이다. 계산적이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셔 조바심을 내며 사는 지라, 안전한 선택에 끌리는데, 이 책에서는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무방비로 만날 수 있어 더 좋다.

 

계절이 섞일 때쯤 습관처럼 기다리게 된 습관이 기쁘다. 매번 최애작을 정하고 응원한다. 때론 한 편만 고르기가 어려워서 더 즐겁다. 늘어나는 폭염과 집중 호우와 기후관련 여러 걱정이 상주하지만 행복한 여행이자 공감이었다.

 

누군가에겐 물 밖이 물속과 같겠구나. 저는 우리가 물속이든, 물 밖이든 숨을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류는 내내 쓰레기를 바다에 버려왔는데, 일본 핵오염수만 왜 안 되냐고 묻는 이들이 꽤 많다. 바로 그 때문이다. ‘내내 버려왔기 때문에.’ 해양 오염원 90%가 육지에서 바다에 버린 것들이다. 물론 핵폐기물도 바다에 버렸다.

 

1950년대부터 방사성 폐기물은 물론 오염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바다였다. 농약, 비료, 대량 가축 사육장 쓰레기와 오염물, 양식장 오염물, 도시 오폐수, 선박 기름 유출, 이 모든 쓰레기들이 바다 오염과 대량 멸종에 책임이 있다.

 

물에 섞이거나 가라앉지 않은 쓰레기들은 하염없이 해루를 따라 떠돌다 쓰레기 섬이 되고, 그 크기는 아프리카 대륙 비슷하다. 지구생태계는 인간이 저지른 짓을 수습해오다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인간 생존에 필요한 기능들 중 대부분이 소멸되었다. 그래서 더 버리면 안 된다.

 

단일 사건은 사고라고 부르고, 재난은 서서히 누적된 점증적인 과정이다. 땅 속에 묻은 하수관을 통해 우리가 버린 것들, 오염시킨 것들이, 이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호흡하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으로. 물론 그전에 기후위기로 먼저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모든 과정은 가장 불평등한 방식일 것이다.

 

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인간은 그 뇌로 인해 멸종할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뇌는 인지한 위협을 완벽하게 무시하기도 한다. 예상되는 결과가 아직 멀다고 느끼거나 서서히 다가올 때. 행동 경로를 활성화하지 않는다.

 

인류가 수십 년 내에 극한의 생태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명이 정상 작동하기 못하거나, 멸종을 겪으면, 수만 년 신호를 주고받으며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선들의 신호가 우주를 떠도는 쓸쓸해서 죽을 것 같은 풍경을 상상한다.

 

생존했던 대부분의 시간에 전쟁을 일삼고 산 불평등한 문명, 지구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더럽힌, 스스로를 지적인 존재라 불렀던 생물종. 우리는 수익 창출과 안전 불감증과 여전한 빨리빨리와 외모 평가를 하며 죽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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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
폴 길딩 지음, 양재희 옮김 / 더블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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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생태주의ecology는 시대정신 중 하나였지만, 돌이켜보니 학계와 시민운동의 틀에서만 활발했던 듯하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학회나 토론회에서, 가장 자주 듣는 건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데 쓰레기 잘 치우자는 소리나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 분야에서는 지속 가능성이나 성장을 목표에서 제외한 경제학이 등장했다. 저자 폴 길딩Paul Gilding, 학계와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며, 환경/기후문제와 사회/경제적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 학자이자 대표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방식의 자본주의가 글로벌한 자원낭비와 온난화 물질들을 배출시켰으니, 기후환경 문제와 경제는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분리된 상태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경제 구조의 창조적인 파괴라는 표현은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문제는 인간이 생존 가능한 환경 조건들을 지키면서도, 경제적 대혼란이 없는/적은 방식을 고민하고 통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개인과 수익을 포기하지 않을 기업을 설득하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80억이 넘는 단일종 인류는, 10억 명이 기아로 굶주리고 사망하는 현실에서도, 지구시스템이 감당할 수용력의 100%가 훨씬 넘게 착취 중이다. 그 결과 인간이 지구 생태계에서 필수적으로 받아야할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건들이 파괴되었다.(25가지 중 16가지)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된 온실가스 양은 2022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축산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나선형으로 상승하며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대기 중 농도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는 저자의 이런 노력이 느껴지는 책이 애틋하고 뭉클하고 감사하다. 필요한 모든 도움을 받아야하고, 가능한 많은 이들이 참여해야 효과가 유의미해지는 문제가 기후환경이라는 행성 전체 규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발생한 비상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이 시대를 맞으면 우리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개발해 적용하려 할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대붕괴라고 불렀다. 여기서 대붕괴란 어떤 한 문명의 붕괴라기보다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와해 현상이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를 미래를 염려하여 현재의 이익을 줄이거나 포기하라는 제안은 무척이나 고결하고 품위 있지만, 누구나 설득할 수는 없다. 자기 자식이 있는 이들에게도 쉽지 않다.

 

극한 기후를 체험하면서도 인류는 여전히 미래자원을 모두 끌어다 쓰며 낭비를 멈추지 않는다. 편의를 포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기성세대는 그렇다. 대부분이 환경의 측면에서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으로 살던 대로 살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데이터와 현상들이 보이고, 그 모든 것은 인류가 고민한 시간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경고를 거듭한다. 일단 배출된 온실가스의 온난화 기능은, 당장 배출을 모두 멈췄다 해도, 100, 1000년 지속된다. 배출 가스 포집 기술의 활용범위도 중요하다.

 

우리가 이미 아는 것, 학자들이 제안한 것만 제대로 해도, 희망의 일차적 불씨가 되지 않을까. 무계획적인 산림 벌채/벌목 중단, 석탄화력발전소 감소/중단, 탄소포집/저장시설 설치, 풍력/태양력에너지 발전 확대, 대중교통이용확대, 항공기운항감소, 육식감소, 쇼핑자제 등.



 

나는 이성으로 낙관하지 못하고 낙관할 의지도 강하지 못하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더구나 한국은 기후악당국가이다. 많이 먹고 쓰고 많이 버린다. 그러니 더욱 오랜 시간 애써온 분들에 대한 예의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기적처럼 늦추거나 변화시킬 기회를 희망한다.

 

우리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부를 분배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평등성의 구현은 국가적·세계적 차원으로도 확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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